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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근 목사] ‘통일한국’을 위해 교회가 할 일 ③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4.08.04 15:35

   
▲ 송 원 근 목사
남북한 통일이 이루어진 후 통일한국을 위해 교회가 이렇게 섬겼다고 말할 수 있는 교회의 통일사역의 역사를 아는 것은 오늘 통일을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통전적인 지혜를 줄 것이다. 

  제1기는 흡수통일 기도기(1940~50년대), 제2기는 반공운동 사역기 (1960~1970년대)라고 한다면 제3기는 평화운동 사역기 (1980년대)이다. 

  1980년대의 교회의 통일 사역은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평화 운동에 집중했다. 그러므로 이시기를 평화 운동 사역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는 전두환 정권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민간 통일 운동이 진보적 학생들이나 지식인들이 민족해방파(NL: National Liberation) 와 민중민주파( PD: People’s Democracy)로 나뉘어 활동을 하던 시기이다. 

  1985년에는 23개 시민사회단체가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함께 이루기 위해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민통련)이라는 이름으로 연합했고 이때 기독교 진보진영에서 통일 운동을 주도하던 문익환 목사가 이 단체의 의장이 되었고 함석헌과 김재준 목사는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였다. 
  
 그러므로 80년대에 한국교회 진보진영은 통일 활동에 적극성을 띠게 되는데 주로 통일운동이 교회연합단체의 통일에 대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동조를 구하는 형식의 통일사역으로 전개하였다. 1979년 조국통일 해외기독자회가 발족하여 스위스 비엔나에서“조국통일에 관한 북과 해외 동포 기독자간의 대화”를 개최 비엔나 선언(1981.11.5)을 하였다. 이 회의에 북측대표 5명과 해외동포 및 기독교인 13명이 참가하여 제1차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간의 대화’모임을 갖고 그 동안 기독교와 공산주의 대립을 반성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함으로써 남한의 기독교 진보진영의 통일운동의 기본 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후 핀란드 헬싱키 선언(1981.12.5)을 했고 1982년 9월16일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KNCC)산하에 통일문제연구원 운영위원회를 조직하였고 1985년 2.28일“한국교회 평화통일 선언”을 했다.

  1986년에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교단에서는“북한선교와 통일정책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

(1986.1.20.~25)했고 이어서 한국통일문제에 관한 공동선언(1986.1.22~23)을 예장통합과 기장, 미국 장로교가 공동으로 발표하였다. 1986년 9월에는 북한전도 대책과 통일문제에 대한 교단의 입장을 밝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을 채택 고백서 8장‘국가’의 6항에서 “조국의 통일과 남북의 화해와 평화의 정착”을 명시했다. 

 80년대 전반기는 진보진영이 적극성을 띠며 평화통일의 기치를 들고 통일활동에 참여하면서 교회가 통일 문제에 대해 적극성을 가진 시기이다.            
        
   <계속> Acts북한 연구교수·자연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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