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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영화, 미국적 맥락과 한국적 맥락 비교 연구한국 ‘B급 영화’ 정체성 탐색을 위한 비평장 고찰
권성수 리뷰어 | 승인 2016.08.18 17:50

‘B급’이란 말은 위계 안에서 하위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대중적 취향과 거리를 둔 매니악한 취향 혹은 주류를 전복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이는 듯하다. 특히 영화 앞에 수식어로 자주 등장하는 이 단어는 비주류 영화를 지칭하는 듯하지만, 쿠엔틴타란티노 같은 메이저 감독 앞에 수식어로 붙는 걸 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비평에 관해서라면 그 텍스트가 영화에 호의적인지 아닌지에 따라 ‘B급’이란 단어를 발화 안에서 어떻게 쓰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작금의 B급 영화의 정의와 용례는 명확하지가 않다.

조주영 건국대 문화컨텐츠학과 박사과정 연구자와 안승범 교수의 「한국 ‘B급 영화’ 정체성 탐색을 위한 비평장 고찰」(『인문콘텐츠』, 2015년 6월)에서는 B급 영화가 정확히 미국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계보를 자세히 추적하고, 한국은 그 계보 중 어느 부분을 취했으며, 현재 한국 영화 비평장에서는 어떤 용례로 ‘B급’이 쓰이는지 예시들을 나열해 분석하고 있다.


B movie,
할리우드에서 끈질기게 살아남기


일반적으로 ‘B movie’의 시원은 1930년대 미국 영화산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기술되지만, 저자들은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잠재기를 거쳤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1920년대 이후 메이저 스튜디오는 경비절감과 흥행의 안정성을 위해 제작 공정에 있어 표준화의 길로 들어선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1920년대 중반 이후, 메이저(Major)로 자리 잡은 일부 스튜디오들은 자체 전문 인력들을 숙련시키는 과정에서 소자본 영화를 찍어보도록 했고, 이를 통해 초기 B movie제작 환경이 조성된다.” (47쪽)

이 환경을 바탕으로 ‘대공황’이 얹어지자, B movie시스템은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불황에 대처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할리우드가 이른 바 ‘동시 상영’정책을 내세운 것이다. 영화관은 A movie의 상영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B movie의 상영을 시작하는 등, 한 편의 영화 요금으로 두 편을 제공함으로써 영화 관객을 불러 모았다. B movie는 A movie에 비해 적은 제작비가 할당 되었는데, B movie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나름의 제작 노하우를 갖추어갔다.
 

"B movie는 스타 배우도 없고, 예산도 충분치 않았으며, 사실상 감독도 유명한 감독이 아닌, 이른 바 ‘3무(無) 영화’의 성격을 지녔다." (48쪽)

그러던 1930년 말에서 1940년대 중반 즈음, B movie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인건비가 상승했기에 할리우드는 인건비를 비롯한 제작비 절약을 위해 A movie조차도 유명 배우를 쓰지 않고, 촬영일자를 줄이며, 영화제작에 쓸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을 실용성의 차원에서 과감히 받아들인 것이다. 이 시기 B movie는 기존 저예산 제작 시스템 속에서 했던 다양한 특수효과 실험을 통해 공포영화와 같은 특정 비주류 장르를 확장시켜 간다. 물론 여기서 특수효과란 저예산을 증명하는 소위 싸구려 기술에 불과했지만 그로써 특유의 ‘키치Kitsch’한 감성에 열광하는 관객층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할리우드 시민들의 생활방식 변화로 영화가 아니더라도 TV와 같은 여가 활동들이 생겨나 영화산업에 위기가 찾아왔다. 반면 이러한 위기 안에서 자기만의 영화 취향을 가진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저자들은 여기서 1960년대 B movie 산업의 대부로 불리는 로저 코먼Roger Corman감독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이 시기 로저 코먼, 에드워드 D. 우드와 같은 감독들은 ‘익스플로테이션 영화exploitation movie’를 선보이는데, 이 영화는 B movie의 여러 개성적 특징을 극단적으로 수렴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섹스와 폭력, 마약과 극단적 범죄가 주요 소재였으며, 그와 관련된 장면들이 영화 상영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관객을 자극했다. 다소 엉성한 영상은 굳이 감추지 않으면서도 컬트적 호응을 얻는데 주력한 익스플로테이션 영화들은 특정 관객층의 취향에 호소하면서 매니악한 팬덤을 형성해 나갔다.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B movie를 주류영화계로 끌어들임으로써, 차별적 용어인 B movie의 개성이 탈색되었다. 더 이상 ‘저예산’, ‘완성도 낮음’, ‘무명 배우 출연’등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에 둘러싸여 ‘패러디’, ‘오마주’, ‘상호텍스트성’, ‘자기반영성’ 등을 키워드로 한 많은 비평문 속에서 작품성과 변별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53쪽



한국 비평장 안에서의
B급 영화


저자들은 한국 비평장 안에 등장하는 B급 영화라는 용어가 위에서 살펴본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B movie 개념에 더 많이 의지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1980년대에 덧보태진 의미자질을 의식한 경우도 없진 않지만, 대개는 1970년대 이전까지 확장을 거듭해 온 B movie에 대한 의미망 안에서 몇몇 의미자질을 의식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실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지난 20여년 동안 기발표된 현장비평문을 중심으로 B급 영화에 대한 국내 평자들의 이해를 분석했다.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에선 다음 네 가지 내용에 근거해 ‘B급 영화’란 언명이 이뤄지고 있다. (각 내용에 해당하는 인용문 및 분석은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인과성이 부족하고 디테일이 부족한 저질영화나 고의로 질을 떨어뜨린 영화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서는 서사구조가 허술하거나, ‘코미디comedy’장르의 쾌감을 위해 서사적 왜곡과 비약을 의도적으로 수용한 영화들, 또는 의도치 않았으나 서사적 실패가 두드러지는 영화에 B급 영화라는 호명을 붙이곤 한다. 인용문에 등장하는 영화는 전략적으로 인과성이나 개연성을 벗어난다고 해석되는 로맨틱코미디 <남자사용설명서>와 서사적 연결과정에서 드러내는 결점을 엽기적 실험으로 봐준다면 B급 영화라는 명칭을 붙일 수도 있겠다는 <썬데이 서울>이다.
 

 

둘째, 기존 관습과 이데올로기를 전복하는 도전적인 영화, 혹은 기존 장르를 탈피하려는 목적이 창의적으로 실천되는 영화이다. 한국의 비평장 안에서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만든 영화들, 혹은 분명한 작가적 자의식을 바탕으로 ‘전복’과 ‘탈피’를 꾀한 영화들에 B급 영화라는 수식을 붙이곤 한다. 인용문에 등장하는 영화는 스릴러나 형사물의 관습을 깨뜨리는 서사흐름, 동시대 한국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복적으로 드러낸다고 해석된다는 <내가 살인범이다>와 반역하고 싶어 하는 대중의 정치적 욕망을 특색 있게 수렴했다는 <흡혈형사 나도열>이다.
 

 

셋째, 신인감독이나 무명감독이 주류 영화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비교적 이름없는 배우를 데리고 만든 이색적인 장르 영화, 혹은 저예산·단기제작·다작의 형태를 보이는 감독의 영화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인식을 보여주는 글들 중에는 B급 영화에 대한 이해가 매우 소박한 경우가 있으며, 때론 맥락 없이 미국의 B movie 개념을 차용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넷째, 기존의 관습적 장르 규준을 비트는 영화나 패러디·오마주를 통해서 장르혼종의 실험에 충실한 영화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개념적 접근은 한국 비평장 안에서 최근 들어 더 확대되는 추세로 보고 있다. 비평문에 인용된 영화는 1960년대 미국의 익스플로테이션 영화에 가까운 액션물을 주로 만드는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장르적 관습을 뒤섞는 형식으로 아예 장르혼종적 영화를 지향하는 작품인 <군도: 민란의 시대>다.

마지막 네 번째 성격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1930-1960년대 미국에서 형성된 B movie 개념과 긴밀하게 접맥된다고 할 수 있다.


B급 영화는
진정 비주류인가?


저자들은 이제 한국영화 시장에서 B급 영화는 비주류라는 편견에 갇힐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B급’의 논거가 되는 요소들을 흥행코드로 적극 활용하는 주류 상업영화가 극장가에 즐비하며, 관객들 역시 ‘B급=소수의 취향’이라는 편견을 더 이상 갖지 않게 되었다. 저자들은 이제 1970년대 이전의 미국적 전통에 기초한 B movie 개념으로 B급 영화를 명명하는 것은 합리적인 비평 행위가 아니라고 말한다.

“정리하면, 현재의 B급 영화는 국내 현장비평 담론 안에 적층된 여러 가지 편견을 무색하게 할 만큼 대중적인 주류영화의 성격을 띠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폭력과 코미디, 우아함과 괴상함이 그로테스크하게 불협화음을 이루는 영화들 중 많은 수가 주류영화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다. 탈장르적·전복적인 특징이 두드러지는 영화라 할지라도 동시대적 코드에 부합하면, 언제든지 흥행할 수 있는 이유도 그와 관련된다. 그 때문에 ‘B급’의 준거가 되었던 논리들도 이제는 상당부분 유효하지 않게 된 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안하건대, 비교적 객관적 정보에 속하는 제작비 규모나 제작기간, 연출자의 유명세 정도나 출연배우의 인지도 정도로 ‘B급’을 단순 분류하는 태도는 이제 지양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 ‘B급 영화’의 정체성을 재탐색하는 연구는 이러한 최소한의 합의 속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65쪽)

저자들은 논문 안에서의 논의를 ‘B급 영화’의 자기 지시성self-referentiality을 해명하기 위한 여정으로 정의한다. 이 논문을 기획한 의도는 B급 영화라는 용어가 비평장 안에 출연할 때, 균질하지 않은 시선들이 그 안에 담겨 있어 합리적인 독해를 방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논문 안에는 사전적 논의를 위한 재료들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저자들의 바람처럼 이 논문이 더욱 명확한 의미의 B급 영화 개념 정립과 영화비평의 풍성함을 위한 발판이 되길 바란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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