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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이 재현하고 있는 것들최봉림 연구자의 ‘가족사진, 정형성에서 이산구조로’
권성수 리뷰어 | 승인 2016.08.02 17:56

간혹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가족사진이 걸려 있는 집을 볼 수 있다. 방문객은 방문한 집의 가족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져있는지 가족사진으로 유추할 수 있지만, 혹 가족 간에 불화가 있지는 않는지 유독 두드러지게 친한 관계가 있는지 등을 알긴 어렵다. 저마다의 가족에겐 특유의 사정이 있지만, 가족사진은 판에 박힌 듯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관에서 찍은 개성 없는 가족사진과 달리 ‘작가들의’ 가족사진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최봉림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연구원은 「가족사진: 정형성에서 이산구조로」(『미술사학보』, 2015년 6월)에서 촬영대상과 객관적 거리를 확보한 작품사진을 통해 가족에 관련된 사회적 조건의 변모가 가족사진의 재현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지 분석한다.



‘가족사진’인가?


역사의 흐름에 맞물려 '가족'의 관념은 변화해왔다. 그러나 가족 개념이 역사를 초월해 동일성을 유지하는 듯 보이는 이유를 저자는 가족이라는 사회집단이 다른 사회 공동체와 구분되는 특이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족은 부모의 특정 유전자형의 공유가 이루어지면서 ‘가족 내 이타주의’로 결속한다. 이로써 가족은 다른 공동체가 갖지 못한 피의 내밀함으로 통합되며, 본능적인 호의 속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유토피아적 공산주의 체제가 피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실현되었다"고 본다.

사진관의 가족사진은 이러한 사회적 정의가 인습적 상징체계에 의거해 재현된 이미지다. “가족 구성원의 포즈, 표정, 복장, 그들이 위치한 자리 그리고 조명, 소품, 카메라의 위치 다시 말해 가족사진의 모든 기표는 남김없이 기의에 직결되는 양상을 띤다.”(144쪽) 저자는 마찬가지로 가족구성원의 표정에서도 쉽게 기의를 포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가벼운 미소는 사랑, 모성애와 부성애, 형제애 혹은 효심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혜의 기표다. 반대로 무표정은 외부로부터 가해진 유위전변에 대한 초연한 대처의 기표로 작용한다. 그리고 후광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인공조명은 상징적 자본이 충만한 이상적 가족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그렇다면 왜 가족이라는 사회적 단위는 이 허구적이며 정형화된 이미지를 무수히 주문하고 소비하는가? 간단히 말하면 가족사진은 그 구성원들에게는 은밀하지만 강력한 통합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는 사진촬영이라는 의식에 참여하면서 어떤 이해관계로 파기할 수 없는 자기의 혈연을 확인하고, 사진촬영을 위한 배열의 자리, 즉 사회가 당위적으로 인정하고 가족이 자연스럽게 요구하는 가족 내에서의 지위와 역할의 자리에서, 가족에 대한 자신의 책무를 내면화한다. 그리고 방안에 놓이거나 앨범에 넣어진 가족사진을 보면서 구성원들은 선천적 형상의 닮음을 확인하고 거역할 수 없는 공동체 의식을 확고히 한다. 혹은 이뤄지지 않는 가족의 우애와 결속을 이미지의 허상으로 충족시킨다.” (146쪽)

"한 세대에 걸친 한 가족의 변모를 담은 일곱 장의 사진은 사진사의 촬영방식이나 인물들의 자리와 포즈에 있어서 동일성은 아닐지라도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이 판박이는 이미지의 저작권을 박탈하는 사진관명의 부재와 사진사의 익명성을 정당화한다." (논문 143쪽)

 

정형적이지 않은
가족사진들


저자는 한국과 미국의 정형적인 사진을 분석한 후, 그 범주를 벗어난 작품사진들을 분석해 구조적 차이에 주목한다. 먼저 월간중앙의 사진기자로서 1971년에서 72년까지 ‘한국의 가족’을 취재한 주명덕의 사진.

논문 150쪽


주명덕의 사진 중 두어 사진은 가족 내 결합이 사회적 조건에 의해 파열의 위기에 처한 상황들을 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부산 연남동, 1971>이라는 가족사진이다. 이 사진은 난민촌에 거주하는 가족의 사진이다. 난민촌은 한국전쟁과 더불어 대도시 주변에 생겨났으며, 1960년대 이후에는 도시화, 산업화로 우후죽순 늘어났다. 대개 그것은 국가소유의 미개발 지역인 도시 주변의 야산에 토지소유권 혹은 토지사용권을 법적으로 취득하지 못한 채 버려진 판자와 양철로 너저분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산동네’, ‘달동네’, ‘판자촌’, ‘꼬방동네’등으로 불리게 된다.

이 사진을 두고 저자가 제기한 문제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어떻게 도시 권력은 힘없는 가족의 생존에 저토록 가혹한 위해를 가할 수 있는가이며,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민가족이 견지하는 일체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이다.

일단 첫 번째 문제에 대한 저자의 생각. 역사 이전에 인간의 생식과 생존을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자연이었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이러한 자연의 전제적 힘에 적응할 수 있는 생존의 기술을 터득했다. 이 기술은 정치, 경제, 법, 군사, 의학 등의 ‘제도’로 수립되었으며, 제도의 힘, 즉 권력은 자연의 힘을 대신해 가족의 연속성과 계속성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부산, 연남동, 1971>의 겨울나무는 돛폭이 광풍에 찢겨져 나간 돛대와 같고, 난폭한 파도는 외딴 섬에 갇힌 가족을 공격했다. 섬에는 폭풍우에 뿌리 뽑힌 나무와 잔해들이 떠밀려 왔다. 그러나 이 재앙은 자연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도시 재개발사업을 입안하고 수행하는 도시 권력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151쪽)

그렇다면 두 번째 문제, 아이들을 앞과 곁에 두고 이들을 수호하는 부부는 무엇으로 이 거친 삶을 견디는 것일까? 저자는 에밀 뒤르켐의 말을 인용하며 답을 대신한다.

“우리가 단지 개인의 목적만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일을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일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자신 외의 것에 소용되기 때문이다. 개인은 그 자신만으로는 충분한 목적이 되지 못한다. 개인 자신을 목적으로 삼을 때, 개인은 자살에 이르는 비참한 도덕 상태에 빠지고 만다. 우리가 일에 매달리는 것은 바로 우리 가족의 자산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 자식들의 안락을 증대시키려는 방책이다.” (151쪽)

이 밖에도 저자는 가족통합의 임계점을 위태롭게 예시하는 네 명의 다른 작가의 사진을 분석한다. 모두 앞서 소개한 정형적인 가족 범주를 벗어난 이산적 가족형태를 나타내는 사진들이다. 저자는 사진들에 나타나는 가족의 이산구조가 과거의 일체형보다 건전치 못하고 도덕적으로 불길하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적 가족의 내밀한 통합구조는 피의 이기주의, 배타적 보수주의로 이어지면서 사회적으로 더 위험할 수도 있고, 개방과 관용을 의제로 삼는 현대성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쇠락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본 논문은 또한 유교적 사회가 주입한 가족질서의 습성 때문에 전통 가족에 대한 일종의 노스탤지어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한계도 함께 언급한다.

저자가 소개하고 분석하는 사진들을 통해 사진이 내포하는 정보의 의미를 비롯해 현재 변화하는 가족형태에 숙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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