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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히스토리의 한국적 수용 어디까지 왔나?최영태 연구자의 글로벌 히스토리에 관한 단상
박일귀 리뷰어 | 승인 2016.07.26 01:36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역사학계(특히 서양사와 역사교육 분야)는 미국에서 논의가 시작된 글로벌 히스토리global history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존 세계사 서술의 한계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던 연구자들은 글로벌 히스토리를 세계사 서술의 새로운 대안으로 환영했다. 그들은 이 새로운 역사 방법론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했고 관련 도서와 논문들도 다수 발표했다. 2012년에는 국내에 ‘거대사학회’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글로벌 히스토리에 대한 논의가 급격히 줄어든 느낌이 든다. 2000년대에 비하면 최근에 관련 논문과 저서가 많이 등장하고 있지 않다. 글로벌 히스토리의 국내 수용이 이론적 수준에서 끝난 것인지, 아니면 현재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잠재기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최근 글로벌 히스토리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어 현재 상황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논문은 최영태 대구대 교수의 「글로벌 히스토리에 관한 단상: 한국에서 수용과 발전 그리고 가능성」(『서양사학연구』, 2015년 6월)이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글로벌 히스토리에 대한 논의를 정리하고, 문제점과 한계를 파악한 뒤 역사학계에서 글로벌 히스토리를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고찰해 보는 순서로 논의를 진행한다.

 


글로벌 히스토리의
국내 연구 특징


저자는 우선 글로벌 히스토리에 대한 국내 연구의 특징을 정리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연구자마다 글로벌 히스토리를 부르는 용어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보편사, 거시사, 초국사, 거대사, 세계체제사, 새로운 세계사, 새로운 지구사, 지구사, (간)지역사, 비교사, 통합사 등이 있다. 저자는 연구자들 사이에 용어는 통일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논의를 통해 글로벌 히스토리가 지향하는 방향은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논문은 공통적인 방향을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한다.

미국에서 초창기 글로벌 히스토리를 주도한 제리 벤틀리 교수(1949~2012)

첫째, 연구자들은 대부분 글로벌 히스토리를 서유럽 중심주의 담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론으로 간주하였다. 미국의 제리 벤틀리Jerry Bentley는 글로벌 히스토리가 서유럽 중심의 관점에서 왜곡되고 폄하되었던 사람들의 역사를 회복하고 그들에게 정당한 목소리를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주장했는데, 한국의 연구자들도 대체로 이에 동의하고 있다.

둘째, 연구자들은 글로벌 히스토리를 지구라는 행성을 단일한 연구 대상으로 삼는 역사학의 한 분야로 보았다. 거대사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조지형 교수는 새로운 세계사와 지구사 모두 지구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새로운 세계사는 초국적 역사 현상에 정초하고 있는 반면, 지구사는 지구성의 역사를 연구 대상을 삼고 있다는 데서 둘의 차이를 구별하였다. 국내 글로벌 히스토리 연구의 선구자격인 배한극도 슈펭글러나 토인비가 문명을 단위로 역사를 연구한 것에 반해 글로벌 히스토리는 지구를 단일한 시스템으로 보고 인류사 전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셋째, 연구자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 현상과 관련하여 세계를 파악하고, 현재 우리 역사 교육의 분리 담론과 지역화 담론을 극복하고 성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글로벌 히스토리를 보고 있다. 특히 김원수 교수는 한국사의 여러 사건들을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거나 새롭게 들여다보면서 분리 담론과 지역화 담론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넷째, 글로벌 히스토리가 서유럽의 역사적 위치를 상대화하는 것처럼 인간 중심의 역사를 상대화함으로써 자연(질병, 기후, 물질, 생태계, 행성으로서 지구 등)의 정당한 위치와 지위를 찾아 주려고 한다는 것이 연구자들이 공통으로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다. 조지형 교수는 글로벌 히스토리의 목적이 자연을 정복 대상이 아닌 공생의 존재로 바라보고 인간의 우월성을 해체하여 자연과 인간 사이의 정의 내지 균형을 복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히스토리의
한계와 가능성


저자는 글로벌 히스토리에 대해 이론적 논의는 활발하게 이루어진 데 반해 구체적인 연구 성과물은 미미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는 많은 학자들이 자신이 주장한 연구 방법론을 통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지만 연구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논문에서 저자는 김원수 교수의 연구 사례를 소개한다. 김 교수는 「한반도 전쟁과 대한제국의 헤이그 특사 파견」이라는 논문에서 대한제국의 전쟁과 보호국화 문제를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쟁과 평화의 세계 문제로 파악하려 했다. 또한 거문도 사건에 관해서는 영·러의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저자는 김 교수의 연구가 한국에서 현실적인 접근 방법이라고 평가한다. 단채 신채호가 ‘아시아판 발칸’으로 인식했던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이권 쟁탈을 둘러싸고 일어난 세계사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미국이나 유럽 외의 나라에서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글로벌 히스토리의 연구 방법으로 본 것이다.

저자는 육영수 교수의 연구 결과에도 주목한다. 육 교수는 식민지 시대 조선 지식인들에게 니체가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그리고 같은 시기 중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의 이해와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는지를 탐색하여 ‘민족주의적 영토’에 유폐되었던 니체를 동아시시아의 시공간에 자리매김함으로써 재발견하려고 하였다. 이처럼 유럽의 근대성이 다른 나라와 지역에 어떻게 수용되고 변형되었는지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도 글로벌 히스토리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역사 교육 분야에서는 강선주 교수가 세계사 교육의 대안으로 ‘상호관련성의 원리’를 강조하면서 우리 역사를 세계사적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국내에서 글로벌 히스토리는 기존 세계사 서술 또는 역사 서술의 대안으로 각광받았지만 어느새 연구의 열기가 많이 식은 듯하다. 저자도 우리 학계에서 구체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그 이유를 이론적 구성이나 틀이 아직 구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론이나 연구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논의한다고 해서 새로운 이론을 체화하여 구체적인 결과물까지 내놓을 수 있을까?

이 논문은 그 동안 국내 글로벌 히스토리의 연구 경향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을 준다. 하지만 제목으로 제시한 글로벌 히스토리의 가능성을 제시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의미 있는 사례로 제시한 김원수 교수와 육영수 교수의 연구 역시 글로벌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연구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서양사 연구자인 육 교수가 동아시아 지성사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점은 특기할 만하다. 글로벌 히스토리는 기존의 경계를 허무는 탈근대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글로벌 히스토리의 연구 방법론에 대한 한국사와 동양사 연구자들의 인식이나 태도가 자못 궁금해진다. 특히 국내 역사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사 연구자들은 글로벌 히스토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자신의 연구에 이 새로운 역사 서술 방법론을 적용할 마음은 있을까? 역사 서술은 결국 역사가의 서술이라는 점에서 볼 때, 새로운 역사 연구 방법론에 대한 당대 역사가들의 인식과 태도도 한번쯤은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어쩌면 새로운 역사 이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토양, 즉 역사가와 그가 처한 현실이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박일귀 리뷰어  pik10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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