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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후한後漢에서 환관이 득세했던 이유는?황제의 나이와 환관들의 정치적 개입의 관계
권성수 리뷰어 | 승인 2016.07.19 16:53

중국에서는 '환관'이 거세된 자라는 의미인 엄인閹人이라는 말로 불렸다. 이들은 주로 미천한 임무를 수행했는데, 춘추전국시대를 지나면서 궁에서는 환관의 필요성을 느껴 본격적으로 그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비로소 엄인은 환관宦官으로 불리게 된다. 환宦은 ‘기른다’라는 의미이다.

이렇듯 용어상으로도 사회적 차별이나 비하를 당하던 이들이 언젠가부터 황궁에서 무시 못할 지위를 누리고 권력정치에 개입하게 된 때가 있었다. 바로 중국 후한시대와 고대말 로마다. 손태창 뮌헨대 고대사학과 연구자의 「로마와 중국 후한의 비교: 황제의 나이와 환관들의 정치적 개입의 관계」(『서양고대사연구』, 2015년 3월)에서는 왜 이 시기에 유독 환관이 득세했는지를 파헤친다.


미성년 황제들을
휘둘렀던 양 제국의 환관들


후한, 로마 양제국에서는 공통적으로 미성년 황제의 지배시기에 환관들의 정치적 개입이 있었다. 미성년 황제는 독립된 통치권을 누리지 못했고, 항시 주변의 실세들에 의해 조종되었다. 저자는 바로 이 비정상적이며 권력상의 불균형이 느껴지던 시기에 환관들의 정치개입의 여지가 높았을 것으로 보고 연구의 방향을 두 갈래로 잡는다. 하나는 18세 미만 미성년 황제시기의 환관과 황제들의 관계를 검토하고 이어서 성인 황제 시기엔 어떠한 조건에서 환관들이 정치적 개입을 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고대 대부분 왕조들이 궁내에서 지배자의 필요를 위해 생식기능이 불능인 남성들을 두고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자연스럽게 동서양의 환관들을 비교할 필요성이 학계의 관심을 사게 되었다." -142쪽 (사진="오스만 제국 하렘의 흑인 환관들")



로마의 미성년 황제와
환관


우선 로마 쪽의 유일한 사례인 미성년 황제 아르카디우스가 환관과 결합되는 배경을 살펴보면, 사료를 통해 볼 때 다소 분명하게 환관 측에서 적극적으로 황제를 이용해 환관권력을 쟁취하고 강화하려는 동기가 파악된다. 저자는 일개 환관이 과감하게 당대의 실권자인 황실경호대장 루피누스를 제거하고 심지어 그의 지위를 대체할 계략을 세우게 됐는지 제한적으로 남아있는 사료에서 당시의 정황을 해석한다.

저자는 먼저 정치권에서의 문제를 볼 때 다소 일방적이면서 거만한 통치를 한 루피누스의 모습에서 에우트로피우스가 야심을 가져 볼 만한 여지가 있다고 본다. 루피누스의 그늘에서 순응적이어야 했을 미성년 황제 아르카디우스를 볼 때, 이 구도를 반 루피누스 노선으로 삼아 정치적 공세를 펼칠 구실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에우트로피우스는 루피누스와 경쟁관계에 있던 세력과 연합해 루피누스를 살해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 사건 이후 조직적으로 선임환관 에우트로피우스가 궁내의 질서를 재편함과 동시에 주요 반대세력들을 신속히 제거한 것으로 보아 그의 간계에 의해 사건이 주도되었다고 보고 있다.

미성년 황제인 아르카디우스 치세에서 에우트로피우스가 권력을 누린 기간은 399년에 그가 황제에게 내쫓기고 곧 정적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대략 4년 정도의 기간이다. 이 시간은 십대의 중후반에서 20대 초반에 걸친 미숙한 황제 아르카디우스의 집권초기였다. 저자는 이를 고려해 미성년 황제 통치기 비교연구에서 유일한 로마의 사례인 아르카디우스와 환관 에우트로피우스는 이 미성년 황제라는 요소가 환관이 정치권으로 나아가는 빌미를 주었으며, 적지 않게 환관정치가 가능케 하는 구조적 원인이 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에우트로피우스Eutropius의 흉상


후한의 미성년 황제와
환관


로마의 경우 불안정한 정권상황에서 환관이 득세할 여지가 있었다면, 중국의 경우에는 다양한 이유로 정치적인 개입이 가능했다. 우선 화제의 경우에는 본인이 황권을 회복하기 위해 중상시 직분의 믿을만한 환관 정중을 불러들였다. 88년 장제 사후 후계로 지목되어 황제로 즉위한 화제는 생모가 아닌 장제의 본부인 두태후 밑에서 꼭두각시 놀음을 해야 했다. 심지어 두태후와 외척들은 비밀리에 황제를 모살할 계획마저 꾸미는 등 노골적으로 장기적인 외척지배를 획책하는 중이었다.

결국 화제는 정중과 모의하여 92년 외척이자 대장군 두헌이 흉노족 원정을 떠난 사이 황실 내 친위군을 동원해 두씨의 집을 급습해 일거에 멸절시켜버렸다. 이 92년의 환관을 활용한 사례는 후한사에 있어 장차 이어질 부단한 환관의 정치개입으로 가는 선례가 되었다.

이로부터 약 한 세대가 지난 후 안제의 아들이던 유보劉保가 외척세력에 의해 황태자의 신분에서 제음왕이라는 지위로 강등되자 궁내에서는 외척파 환관들과 유보파 환관들 간의 세력다툼이 벌어졌다. 결국 유보파 환관들이 무력으로 외척파 환관들을 제압함으로써 몇 년간 눌려 지내던 유보를 황제로 세우게 되었다. 그가 바로 후한사에서 태학太學을 세우고 유가적 통치를 강화한 순제順帝였다. 순제의 경우는 화제와는 다른데, 바로 황제가 환관의 궐기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환관들이 스스로 개입을 했다는 것이다.

영제의 통치기에는 환관들이 이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국정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역시 저자는 12세에 즉위한 황제의 어린 나이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선황제인 환제가 후사 없이 죽자 장제의 후손인 해독정후 즉 영제가 즉위했는데, 이 정권교체기에 실세로 대두한 두태후의 오라비 두무와 태위인 진번 등이 후한이 혼란스러워진 원인을 환관 때문이라 여기고 환관제도를 철폐하려고 했다.

존립이 위협받게 된 환관들은 한편으로는 두태후에게 의지함으로써 두무의 정책이 제동에 걸리도록 했으며, 막 황궁에 들어온 어린 황제에게도 각별한 호의와 충성을 보여 환심을 샀다. 이와 같은 궁내 환관들과 그들을 반대하는 고위관리들의 투쟁은 결국 영제 즉위 원년인 168년 9월에 처절한 살육전을 벌임으로써 매듭이 지워졌다. 환관들이 장환의 군대를 잘 활용함으로써 두무와 진번을 죽이고 궁내에서의 지위와 생존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제국을 비교한 결과 저자는 통치의 외형에서 같은 결과를 발견했다. 즉 미성년 황제의 지배가 환관이 정치에 개입하게 되는 좋은 빌미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한의 세 가지와 로마의 한 가지 비교연구 사례들에서는 다른 개입조건 또한 발견된다. 즉, 후한에서는 환관의 존립이 위기에 처할 경우 환관들의 정치적 작용이 두드러진 반면 로마에서는 미성년 황제 통치기 권력구조의 불안정을 환관이 개인적 이익을 위해 이용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미성년이 아닌 성인황제 시기에는 환관이 정치에 개입할 수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성인 황제 역시 개인 성향상 통치력이 부족할 경우 그 틈을 이용해 환관이 득세한 경우가 많았다.

“요컨대 지배자의 연령을 통해 본 환관의 정치적 개입이라는 이 주제는 다음과 같이 결론이 지워진다. 기본적으로는 통치가 미숙했던 어린 황제들의 시기에 환관들의 대두가 우선적으로 확인이 된다. 또한 성인이 지배를 하더라도 황제 가까이에 있던 환관들은 황제의 필요 혹은 스스로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곧잘 정치에 깊이 개입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환관의 정치개입에 있어 황제의 나이는 일차적으로 동인으로서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나이의 배후에는 황제통치의 미숙과 권력장악의 문제가 있었기에 성인황제의 시기에도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보이듯이 집권에 있어 성격상 혹은 대인관계에 있어 통제력에서의 문제가 있으면 얼마든지 환관의 조종에 휘둘릴 여지도 있었다. 그런즉 나이라는 조건 이외에도 이러한 황제의 통치장악력의 정도가 환관의 정치개입에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66쪽)

저자는 ‘환관’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동서양 고대사를 비교연구했다. 특히 이 연구는 선행연구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서구에서 본격적인 중국환관의 연구가 저자가 속해 있는 뮌헨대학의 울리케 유겔Ulrike Jugel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후 중국의 연구와 교류하며 활발히 서구와 비서구 지역의 환관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2009년 뮌헨대 고대사가인 데텐호퍼Dettenhofer의 로마와 중국간 황궁의 환관들을 비교한 논문이 게재되었는데, 이의 바통을 이어받아 본 논문의 저자가 그 범위를 좁혀 연구내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논문 내의 흥미로운 내용도 내용이지만 다국적 역사학자들이 인류의 공통 역사를 함께 연구하며 소통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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