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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적 소비방식’에 주목하라!류영진 연구자의 ‘아즈마 히로키의 데이터베이스 소비론’
권성수 리뷰어 | 승인 2016.07.13 09:01

서브컬쳐를 탐닉하는 그늘진 이미지의 ‘오타쿠’는 더 이상 부정적 의미만으로 쓰이지 않는다. 이제는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하며, 2차 창작을 주도함으로써 창조성을 발휘하는 능력자’란 의미도 어느 정도 가미된 듯하다. 비주류의 주류화가 이루어진 걸까? 실제로 미국, 프랑스 등 세계적으로 오타쿠 인구가 늘어가고 있으며, 일본 오타쿠계 문화는 한국이나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서브컬처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의 문화콘텐츠 상품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그 인기의 기원에는 일본의 열성적 마니아들인 오타쿠들의 서브컬쳐 소비방식이 있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들의 문화에서 출발하여 이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생활양식의 문제로 확장시키고 있다. 데이터베이스 소비론은 이러한 오타쿠들의 소비론이다. 세계적으로 문화콘텐츠 산업의 인기가 높아지고 한국 또한 문화콘텐츠 산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문화소비자로서의 현대 사회의 오타쿠를 분석하는 아즈마 히로키의 개념을 소개하고 이해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 지적 작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189쪽)

류영진 후쿠오카대학교 경제학연구과 연구원, 「아즈마 히로키의 데이터베이스 소비론과 한국소비문화에의 시사점에 대한 탐색적 고찰」(『동양사회사상학회』, 2015년 9월)

아즈마 히로키가 말하는 ‘데이터베이스 소비’란 무엇일까? 그는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구성 요소가 소비의 대상이 되는 콘텐츠의 수용 방법”이라고 정의한다. 이야기는 하나의 세계관, 질서, 설정 등을 의미하는데, 커다란 이야기 혹은 질서가 상품의 배후에 존재함으로써 개별 상품이 비로소 가치를 지니게 되며, 소비자는 이에 대한 소비를 반복함으로써 자신들이 커다란 이야기의 전체상에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즈마 히로키는 포스트모던 도래 이후 콘텐츠 소비자들은 심층의 메시지가 아닌 표층에 있는 외양, 특성, 특징만을 열광적으로 소비한다고 분석한다.

여기서 아즈마 히로키는 이야기에 대비되는 개념이자 데이터베이스 소비론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인 ‘모에 요소’를 등장시킨다. 그는 ‘모에 요소’를 소비자의 열광을 자극하는 것으로서, 표층에 드러난 외양의 특성이라고 정의한다. 캐릭터의 외양 더 나아가 그 외양을 구성하는 장식, 생김새, 목소리 등 세분화된 구성요소들은 ‘모에 요소’로서 소비자들에게 인식된다. 또한 시각적인 기호를 넘어 캐릭터가 주인공의 소꿉친구라거나 불치의 병에 걸렸다 등과 같은 설정이나 말투, 성격, 심지어 몸짓 같은 것으로도 가능하다. 캐릭터는 작품 고유의 존재가 아니라 소비자에 의해 곧바로 모에 요소로 분해되고 등록되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나타나는 것이다. 즉, 이 거대한 모에 요소들의 집합이 바로 데이터베이스다.
 



일본과 한국의
데이터베이스 소비 양상


저자는 앞선 아즈마 히로키의 이론을 자세하게 검토한 후 실제 일본과 한국에서는 데이터베이스 소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일본은 최근 ‘문화의 나라’, ‘쿨재팬’ 등 거시적 경제정책으로 문화콘텐츠의 비중을 끌어올리고 있으며, 일본식 문화콘텐츠는 전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물론 망가, 라이트노벨, 보컬로이드, J-pop, 하라주쿠 패션, 게임, 일식요리 등 다양한 콘텐츠는 전파속도뿐 아니라 경제적 파급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즉, 오타쿠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서브컬쳐를 비롯한 각종 문화콘텐츠들이 현대 사회의 주된 소비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다양한 콘텐츠 중 저자가 논문 안에서 큰 비중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은 아이돌 문화이다. 그 중 AKB48라는 그룹을 중심 예시로 든다. AKB48은 일본의 경기 침체 속에서도 경기를 부양하고, 레이디 가가도 이루지 못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회현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아이돌 그룹이다. AKB48는 노래를 잘 하지도 춤을 잘 추지도 못하지만, 결성 당시부터 팬들에게 그 성장과정이 완전히 공개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아이돌과 다르다. 이것은 주도권이 아티스트가 아니라 팬에게 있다는 의미이며, 그룹 자체가 미완성, 미성숙이라는 코드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AKB48라는 그룹은 소비자가 전방위적으로 원하는 캐릭터의 거의 모든 조합을 구성해 낼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진 조합들이 다양한 콘텐츠로 범람하고 있다.

“AKB48는 수십 명의 멤버들이 모두 완전히 개별적인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전면에 드러나고 있다. 글래머임을 강조하며 성적인 매력을 과시하는 멤버가 있는가 하면, 귀여움, 병약미, 백치미 등 일반적인 요소는 물론, ‘변태’, ‘심해어를 좋아함’, ‘박치기 전문의 돌머리’, ‘벌레 음식을 좋아함’, ‘레몬이 되고 싶다’ 등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아주 다양하다.” ⓒkndynt2099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얼마 전 Mnet의 <프로듀스 101>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출연자들은 확실한 캐릭터로 대중에게 수용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AKB48 표절 논란이 일 만큼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본 논문이 발표된 이후에 방영된 프로그램이기에 논문에서는 다뤄지고 있지 않다. 다만 2013년 ‘빠빠빠’라는 곡으로 인기를 얻었던 그룹 ‘크레용팝’이 저자의 주 분석대상이 된다. 쟁쟁한 아이돌들 사이에서 방송활동이 전무했던 크레용팝이 거리로 나와 ‘크레용팝TV’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동영상 방송을 시작하며, 그룹의 성장과정 자체를 공유한 점 등이 AKB48의 미완성 코드와 대응된다.

저자는 아이돌 외에 데이터베이스적 소비 양상을 포착할 수 있는 것으로 TV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들었다. 이 역시 내러티브의 연속성보다는 ‘야동 순재’, ‘식신 준하’, ‘꽈당 민정’ 등 캐릭터가 주는 흥미요소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러한 캐릭터들은 분절되어 매드무비등의 형태로 유튜브, 블로그 등에 저장되고, 각 부분이 콘텐츠 전체를 대체해버린다. 저자는 아즈마 히로키의 표현을 빌려 이것을 부분들의 덩어리가 ‘거대한 비이야기’로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일본과 한국의 데이터베이스 소비에 해당하는 문화적 공통점을 보여주지만 차이점 또한 빼놓지 않고 지적한다. 일본의 경우 모에 요소들에 대한 조합이 소비자들에 의하여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한국은 데이터베이스에 대하여 마케팅적인 접근이 많이 이루어지며 특정 생산자가 데이터베이스 자체를 독점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쿠마모토현의 캐릭터인 쿠마몬은 캐릭터 개발과 함께 관련 저작권을 풀어 누구나 캐릭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세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식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재생산되었고 그 경제효과는 2년 동안 1244억 엔에 이르렀다.

반면 한국의 데이터베이스는 특정 콘텐츠 생산 집단에 의해 독점(또는 과점)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으며, 현재 한국의 콘텐츠가 “획일화로 차별성이 부족하고”, “스타일의 자가 복제가 증가하면서 소비자가 싫증을 느끼기 시작하였다”는 문제제기를 볼 때 저자는 데이터베이스를 독점한 주체들에 의해서 ‘상품적으로만’생산되는 콘텐츠로서의 한계라는 해석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즉 매년 웹 공간에서 수백만의 2차 창작물이 쏟아지는 일본의 쿨재팬이 맹위를 떨치는 반면 한류의 한계론이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화콘텐츠를 소비하는 양식에 걸맞은 대안들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소재들이 만들어져도 제대로 빛을 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직 한국의 문화산업은 거대 엔터테인먼트 사업자들에 의하여 주도되는 면이 강하며, 그 외의 흐름들은 메이저와 분리된 B급으로 위치 지워 보이지 않는 벽을 쌓는 경향이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문화산업이 획일화, 식상함의 한계점에 부딪칠 때 이를 넘어서기 위한 동력이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참여 가능한 환경에서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는지 모른다.” (217쪽)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는 경제적인 게임의 규칙이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변하리라 예측했으며, 그 예측에 부응해 소비자에 관한 학계의 다양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본 논문 역시 소비에 대한 고찰 중 하나로서 특히 일본의 이론가 아즈마 히로키의 데이터베이스 소비론을 ‘소비’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론에 대응하는 다양한 예시와 더불어 한국 문화콘텐츠산업의 방향성도 함께 제시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며, 국내 학계에서 아직 많이 다루고 있지 않은 아즈마 히로키의 이론을 소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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