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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의 개인적 역량이 고려에 끼친 영향이희주 교수의 ‘고려 태조 왕건의 리더십과 국가’
권성수 리뷰어 | 승인 2016.06.28 09:09

이희주 서경대교수의 「고려 태조 왕건의 리더십과 국가: ‘군주의 권력’과 ‘국가권력’의 상관성을 중심으로」(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2015년 9월)에서는 고려가 475년 동안 왕조국가로 지속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을 창업군주인 태조 왕건의 리더십에서 찾고 있다. 즉, 논문에서 저자는 군주의 개인적 역량이 국가의 힘으로 전환될 때, 군주의 권력은 국가의 지속성과 함께 유지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태조 왕건의
상황인식과 유연성


한국의 지도자상의 모형은 다양하다. 고조선의 단군 왕검부터 이순신, 현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마음 속의 지도자를 하나쯤은 품고 있다. 지나친 신화화는 왜곡된 역사관과 잘못된 행동을 불러올 수 있지만, 객관화된 분석 하에 이루어진 공과의 평가는 새로운 지도모형을 발전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지도자마다의 특성은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떼어놓고 분석할 수는 없다. 특히 새로운 왕조를 일으킨 창업군주라면 더욱 그렇다. 고려의 창업군주 태조왕건은 어떨까? 그는 뛰어난 리더십으로 새 통일왕조를 건설했으며, 그가 구축한 시스템은 고려가 475년이나 지속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저자에 따르면, 왕건은 후삼국 분립과정 속에서 궁예와 견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약한 세력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통일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을 저자는 ‘통일’의 전략이 타 패권세력과 비교하여 ‘적실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또 그 대표적 사례로 신라에 대한 ‘친선정책’과 각 패권세력에 대한 ‘혜화정책’을 꼽는다.

저자가 말한 신라에 대한 친선정책이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친선정책, 즉 견훤과 궁예가 반신라적인 정책을 수행한데 비해 왕건은 신라에 우호적인 정책을 실시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사실 이러한 상반된 통일 정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따로 있다. 신라 하대에 이르러 위로는 부패와 실정, 왕위계승 등으로 정치적 혼란이 일어났고, 아래로는 민의 수탈이 가중되어 정세가 극도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정부는 조세를 독촉했고 이에 대항해 전국적으로 반란이 일어났다. 이때 반신라적 성향을 띠며 중앙정부에 저항한 집단 가운데 두드러진 세력이 견훤과 궁예였던 것이다.

반면 왕건은 궁예의 반대 세력에 의해 추대되어 군주가 되었기 때문에 견훤이나 궁예처럼 반신라적 성향을 건국에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궁예나 견훤과 다르게 왕건에게 부여된 정치적 조건이었다. 특히 전주인 궁예와의 차별화된 정책이 자신의 정당성을 획득하는데 필요했기에, 저자는 왕건이 궁예와 반대되는 신라 친선정책을 펼쳤을 거라고 추측한다.

또한, 저자는 ‘상황과 정책의 적합성’문제가 군주의 ‘상황인식과 대처능력의 유연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정책의 유용성’관점에서 신라 친선정책은 탁월했다고 본다. 가령 후삼국 정립 초기에 건국 명분으로 작용하던 ‘반신라적 성향’이 시간에 따라 흐름이 바뀌어 ‘신라에 대한 존왕의식’으로 바뀌었고, ‘신라를 전복시키는 것’이, 중국 등 국제관계나 국내의 역학구도 속에서 오히려 빌미로 작용하여, 다른 세력의 역공을 받을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정치적 군사적 상황에서 신라와 친선관계를 유지하면서 후백제와의 경쟁에 군사력을 집중했던 왕건이 견훤보다 상황인식이나 유연성 그리고 대처능력이 뛰어났다고 평가한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 877-943), "‘고려’라는 ‘한국 의 시공간적 특성’에 기인하여, 창업군주 왕건의 개인적 역량이 어떻게 국가 힘의 증에 매개 역할을 하는가를 미시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한국적 지도자상의 모형 구축’이라 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왕건의
관계적 권력관


왕건은 신라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패권세력에 대한 통일정책에도 이와 유사한 방식을 채택하였다. 그는 각 지역의 패권세력에 ‘혜화’의 이념에 기반한 통합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면서, 한편으로는 강권적인 무력흡수의 통합 형태를 취했다. 특히 혜화의 이념은 ‘존왕의식’을 전제로 하면서, 이를 각 지역 성주에게까지 확대시킨 통합의 형태인데, 존왕의식은 국가간 외교적 측면에서, 상대국가의 군주를 존중하는 ‘예의 사유양식’이다. 신라의 군주에게는 물론, 견훤을 ‘상보’로 높이는 데서 상대 지도자를 존중하는 왕건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왕건의 이러한 사유양식은, 상대세력을 존중하는 내면적 덕성에서 비롯한 것이며, ‘관계에 의존해서 힘을 더욱 증대, 상생시킨다’는 관계적 권력관을 형성하는 근원이 되었다. 이러한 통합성은 지역 패권세력과 동반자적 관계를 만들어, 많은 지역 성주들이 귀순하는 효과를 낳았다. 왕건은 귀순하는 성주에게는 기득권을 유지시켜 줌과 동시에 ‘원윤’이라는 품계를 주어 충분한 대우를 해주었는데, 저자는 이를 지역 성주들과 동반자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고려의 정치체제 안으로 이들을 편재시키는 탁월한 왕건의 정치술로 평가한다.

왕건은 혜화에 기반해 권력의 사점화, 독점화를 지양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권력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면 반발하는 세력에게는 강력한 무력을 사용해 제압했다. 각 지역 패권세력에 대한 이러한 양면의 통합정책은 휘하 장수에게도 적용되었는데, 공로가 큰 장수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였으며, 만약 적에게 투항하는 장수가 있으면, 그 처자를 저자에서 사형을 시킬 정도로 신상필벌을 엄격히 하였다.


구성원의 역량을
국가역량으로 전환하는 방식


저자가 분석하기에, 왕건의 통합력은 구성원의 역량을 국가역량의 강화로 전환시키는 데 특징이 있다. 이는 대내적 통합을 이루는 방식으로 대내적 통합력이 높을수록 국가역량은 높아진다. 왕건의 권력관은 권력이 관계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는 ‘관계적 권력관’과 공적 영역에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공적 권력론’인데, 이는 군주, 지배층, 민의 역량을 국가의 역량으로 전환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이 세 계층이 국가 역량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논문 안에서 자세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전체적으로 궁예가 자신의 감정에 치우친 것과는 달리 왕건의 권력 사용은 훨씬 합리적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국가경영은 당시 신라의 골품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의 대응방안임과 동시에 왕건의 국정철학이 투영된 조응물이기도 했다. 혈통에 의한 골품제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의 창출은 지배층에게 희망적인 미래를 제시하였고, 이에 기반해 왕건에 대한 지지기반은 더욱 견고해졌다.

또 하나 저자가 왕건 리더십의 특징으로 꼽은 것은 덕의 함양과 권력에 대한 자기 절제였다. 왕건은 이것을 통해 국가의 힘을 증대해 군주 권력의 지속성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의지는 훈요십조를 통해 후계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는데, 훈요십조를 보면, 군주의 권력유지는 군주 개인적 측면에서는 권력 창출의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국가의 공적 질서와 함께 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관계적 권력관’, ‘권력의 공유화’, ‘공적 영역에서의 권력운영’등에 관한 왕건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군사적 역량이 강했던 견훤과 궁예가 군주의 권력을 유지하지 못한 것을 교훈 삼은 것으로, 왕건은 군주가 군사적 역량을 넘어 사회통합의 근원인 윤리적 역량까지 갖추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또 하나, 저자가 보기에 왕건에게 일관되게 흐르는 지도자로서의 인식은 민원民怨에 대한 경계였다. 군 지도자 위치에 있을 때도 그는 점령지의 ‘민의 안녕’에 대해 휘하 군졸에게 엄령을 내렸으며, 전주(궁예) 정권의 몰락도 민원으로 규정하였다. 실제로 저항이 심했던 청주지역에 직접 내려가서 지역민을 위무할 정도로 왕건은 민원을 가장 우려하였으며, 민이란 군주의 존립을 부여해주는 근원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저자는 논문 안에서 왕건의 통치행위를 통해서 ‘군주의 역량이 어떻게 국가 힘의 증대로 전환되는가’를 살펴본다. 특히 왕건이 인식한 권력관이 개인적 역량으로 발휘돼 고려가 475년 동안 지속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는 전제를 서신내용이나 사료 등을 제시하면서 꿰어나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논문 안에는 저자의 바람처럼 현대한국정치사회에서 국가권력을 운영하는 집단이 참고하면 좋은 사항들이 담겨있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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