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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자’ 양성 기획, 딜레마에 빠지다문화연구자가 본 국내 문화연구자 양성의 현주소
박일귀 리뷰어 | 승인 2016.06.18 20:59

한국에 문화연구가 본격적으로 소개된 지 20년이 넘었다. 여기서 문화연구는 영국 버밍엄대학의 현대문화연구소(CCCS)가 주창하고 실험했던 ‘비판적’ 문화연구를 말한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사회학, 미학, 인류학, 영어영문학 등 주로 인문·사회학 분야에서 비판적인 분석의 도구로 ‘문화연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06년 한 대학의 일반대학원에 문화연구학과가 협동 과정이 신설되었다. 국내에서 문화연구가 정식 학문으로 올라 ‘문화연구학과’라는 이름이 생긴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문화연구가 제도권 안에 진입하면서 위기에 빠진 인문·사회학 분야에 창조적인 비판 정신을 되살리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갈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적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지금 제도권 안에 자리 잡은 문화연구라는 지적 실험은 어느 단계에 와 있을까? 정원옥 『문화과학』 편집위원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문화연구자’ 양성 기획의 현주소」(『문화과학』 2015. 3.)는 현재 국내 문화연구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의미 있는 논문이다. 문화연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학과 내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내부자의 입장에서 현 상황을 진단하고 있다. 그는 문화연구학과가 생긴 지 아직 10년 밖에 되지 않아 성과를 논하기에는 이르지만, 애초에 기획한 ‘문화연구자’ 양성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바로 미래의 문화연구를 이끌어 갈 후속 세대이기 때문이다.


문화연구자의
양성 기획

국내에서 학제간 연구를 통해 비판적 문화연구자를 양성하는 학과는 두 곳이다. 2001년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설립된 문화학과 협동과정과 2006년 중앙대학교 대학원에 개설된 문화연구학과 협동과정이다. 전자는 교수 성향에서 알 수 있듯이 젠더 정체성이 강화된 문화연구자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그에 반해 후자는 영국 전통의 문화연구를 계승한 ‘비판적’ 문화연구라는 점을 강조한다. 논문은 주로 저자가 몸담고 있는 중앙대 문화연구학과의 사례를 중심으로 문화연구자 양성 기획의 현주소, 특히 이것이 처해 있는 딜레마를 보여 주고자 한다.

저자는 비판적 문화연구자의 양성 기획이라는 점에서 볼 때 학위논문 작성을 유예하고 있는 학생의 비율이 높은 현실을 문화연구학과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왜 논문을 쓰지 못하거나 쓰지 않는지 세 가지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한다. 첫째, 논문 작성 자체의 어려움, 둘째, 문화연구학과의 열악한 연구 환경, 셋째, 졸업 이후의 불투명한 전망을 꼽고 있다.

 


문화연구자 양성의
딜레마

문화연구에도 분과 학문과는 다른 학제간 연구만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문화연구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전공의 모호성’과 ‘소수성의 경험’이라는 조건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조건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개성, 다양성, 창의성, 자유, 비판성 등으로 전유하면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저자는 학제간 연구의 딜레마를 문화연구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숙명이라고 본다. 문화연구라는 지적 기획은 태생적으로 지배적 지식 생산 체계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분과학문을 비판하는 데서 비롯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적 기획가 달리 현실은 어떤가? 저자는 문화연구학과가 분과학문의 틀을 넘어서려는 시도와 비판적 문화연구자를 양성하려는 기획 모두 딜레마에 봉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 문제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논문 작성을 유예하고 있는 문제로 나타난다고 본다.

첫 번째로 지적한 학위논문 작성의 어려움에 대해 가장 긴 지면을 할애하면서 그 까닭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연구 대상을 설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존 분과학문의 연구대상과 비교하면 구성이 너무 복잡하다. 연구 대상을 관통하는 정치경제학의 문제들, 담론이나 서사 또는 기호의 문제들, 주체 형태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연구 대상을 설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연구 대상에 대한 전문성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여러 분과의 학문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수업을 들을 순 있지만 그만큼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분과 학문 체계를 문제 삼고 비판할 때마다 ‘비전공자’로서 개입하게 된다.

또한 논문 심사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논문 심사에 다양한 학문 분과의 교수들이 참여하므로 이들의 상이한 기준과 이해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심사받는 논문을 둘러싸고 문화연구 논문인지 아닌지 논쟁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학생들은 자신의 논문이 왜 문화연구 논문인지 심사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독특한 상황이 연출된다. 저자는 문화연구가 분과 학문 체계를 동요시키기는커녕 학문으로서 인정받기에 급급한 현실을 꼬집고 있다.


문화연구자로
'살아가는' 일

두 번째로 문화연구학과의 열악한 연구 환경을 지적한다. 우선 한국의 전반적인 학문 연구 환경이 ‘학진(학술 진흥 재단)’을 중심으로 연구비 경쟁 체제로 바뀌면서 대학원생들은 정치사회적 실천이나 이론적 모색이 아닌 생존 그 자체와 연관해서만 하나의 집단으로 묶이고 있다. 이에 더해 중앙대 문화연구학과는 기본적인 연구 시설 자체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전임 교원도, 연구 공간도, 장학금도 없고, 다른 협동과정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학과 사무실 하나가 전부다. 연구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셈이다. 저자는 최소한의 연구 환경을 위해서라도 전임 교원이 확보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논문 작성을 유예하는 문제도 전임 교원 확보를 통해 조성된 연구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졸업 이후의 불투명한 전망도 수료생들이 논문 작성을 유예하거나 포기하는 이유로 제시한다. 문화연구자로 살아갈 수 없거나 취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면 굳이 어렵게 논문을 작성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연구학과의 교과 내용이 취업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문화연구학과의 세부 전공은 크게 문화이론과 문화기획으로 나뉘는데 상대적으로 문화이론을 전공하는 학생의 비중이 훨씬 높다. 문화기획을 전공한 교수가 없어 외부 강사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사실 문화기획 분야는 문화 산업, 문화 경영, 문화콘텐츠 학과 출신의 졸업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비판적 문화연구자는 취업문이 넓지 않을뿐더러 배운 지식을 활용할 여지도 많지 않다.

학계에 남는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문화연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가 문화연구를 가르치는 교수로 재생산된 구조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학과의 정규직 교수가 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구조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문화연구가 굳이 제도 내에 존속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꼭 제도 안에서만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비판적’ 문화연구자의 길을 제도 안에서만 모색할 필요는 없다. 분과학문체계를 넘어서려는 지적 기획이 문화연구의 제도화였다면, 문화연구자는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제도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제도의 바깥에는 사회운동도 있고, 현장도 있고, 대안교육도 있다. 제도 안에서는 연구가 곧 생계유지가 되는 조건들을 ‘함께’ 만들기 위해 연대하는 학문공동체를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연구자로서 살아가는 일은 정녕 불가능한 일인가? 이 물음은 문화연구학과를 졸업한 박사들에게 하나의 과제로 제시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문화연구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후배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90쪽)

이에 덧붙여, 외부의 제3자로서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물론 제도권 안에서 문화연구를 구축하는 작업은 문화연구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이다. 그런데 문화연구학과의 학생들이 모두 문화연구자가 ‘되기’ 위해, 또는 취업을 하기 위해 문화연구학과에 들어와 공부하는 건 아닐 것이다. 각자의 현장에서 문화연구라는 분석 도구를 이용해 좀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해 보려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문화연구학과의 커리큘럼이 하나의 유용한 도구로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학과의 입학생은 많은 데 졸업자(학위취득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학생들이 2년의 수료 과정으로도 만족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문화연구학과는 이들을 위해 좀 더 나은 연구 환경을 구축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장(context)에서 활용할 수 있는 내실 있는 내용(text)과 훈련 과정들을 마련해 가는 것을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박일귀 리뷰어  pik10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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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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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OODY 2018-02-19 06:08:32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쟁력 있는 인적 자본이 되지 못하면, 배운 지식을 적용하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사회에는 없습니다. 순수한 공부의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등록금이 고공으로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비전없이 맘 편하게 연구를 할 수 있을까요? 위 사안에 대한 견해 또한 문화비평적 태도로 접근해야 할 겁니다. 글쓴이의 나이브한 원론적 마무리 발언은 기사의 성실성을 의심하게 만드네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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