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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발명하라!"혁명적 테러의 트로츠키를 정신분석학의 옹호자로 새로이 조명하다
김주원 리뷰어 | 승인 2016.06.08 03:27

만약 레닌이 그토록 일찍 죽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혹은 스탈린이 아니라 트로츠키가 소련을 이끌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우리가 기억하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이미지를 형성한 ‘전체주의’ 사회가 아니라 다른 과거가 펼쳐졌을까. 이런 의문은 그만큼 러시아 혁명의 진로를 좌우한 권력투쟁의 무게를 드러내 주는 듯하다. 그런데 러시아 역사를 조금만 살펴봐도 당시 지도적인 ‘고참 볼셰비키’였던 트로츠키는 혁명과 내전기의 활약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권력투쟁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인상을 풍긴다.

트로츠키는 엉뚱하게도 동시대 사람들이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생활, 관습, 의례 같은 ‘문화’에 관한 저술에 몰두했다. 레닌의 병환이 심각해지면서 ‘포스트 레닌’의 빈자리를 두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리라는 것이 금세 예상되는 판국에, 트로츠키는 문화와 정신분석학에 관심을 쏟으면서 후일 ‘재능의 낭비’라는 평판까지 받았다. 수유너머N 연구원이자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 최진석「트로츠키와 문화정치학의 문제: 무의식과 ‘새로운 인간’을 둘러싼 투쟁」(마르크스주의연구 제12권 제4호, 2015년 11월)에서 레닌의 죽음을 전후로 한 트로츠키의 ‘이상한 나날들’이 재능의 낭비나 권력투쟁으로부터 도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혁명 후의 ‘새로운 인간’을 만들기 위한 분투이자 내기라는 주장을 펼쳐 흥미롭다. 


레닌과 스탈린, 트로츠키의 
‘문화혁명’


트로츠키의 전기 작가로서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필맥, 2005) 등 트로츠키 삼부작의 저자로 국내에 알려진 아이작 도이처는, 트로츠키가 문화에 관심을 가졌던 건 “러시아의 경제적 후진성만큼이나 긴박했던 정신적 후진성에 대한 대처”이자 “문화의 본원적 축적을 추구하는 과정”이었다고 봤다. 그러나 트로츠키에 관한 권위자인 도이처조차 ‘문화의 본원적 축적’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볼셰비키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 내려 시도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먼저 레닌은 10월 혁명이 성공한 후에도 여전히 러시아가 후진 공업국이고 전 국민의 85%에 달하는 농민 대부분이 문맹이라는 것에 고심했다. 그는 1923년에 발표한 「협동조합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문화혁명’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지만, 볼셰비키들은 이미 혁명 국가의 운영을 위한 전문가와 지식의 확보를 문화혁명의 우선 과제로 삼고 있었다. 그들은 비록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지만 이를 운영할 지식은 부족했기 때문에, 테일러주의 같은 이른바 ‘부르주아 학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레닌이 자칫 구습으로 돌아가기 쉬운 인민을 혁명적 인간으로 계발하기 위해 제안한 것은 규율과 교육이었다. 레닌의 주문은 “하나도 둘도 셋도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의식화’로는 구습에 익숙한 인민을 계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한편 1927~1928년경에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스탈린이 1928년 제1차 5개년계획을 추진하면서 문화혁명은 전환점을 맞는다. 그동안 국가 경영의 필요에 의해 수입된 부르주아 학문과 전문가를 향한 공격이 청년 프롤레타리아로부터 빗발쳤다. 다시 말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중심으로 이질적인 계급을 공격하고 절멸하려는 계급전쟁이 스탈린 문화혁명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이때 또 다시 ‘새로운 인간’이 문화혁명의 전면에 제기되는데, 이 새로운 인간은 최대의 생산성을 달성한 노동자 영웅의 형태로 등장했다. 공산주의의 이 ‘문화적 인간’은 후일 스포츠 영웅 같은 문화영웅도 이 범주에 포함했다. 이들은 어떤 역경도 헤쳐 나가는 긍정의 화신이자 혁명의 수호자로 표상되었다. 하지만 실상 스탈린 시대의 새로운 인간은 교조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체제에 지위향상을 향한 욕망을 가중하면서 권력에 충성하는 ‘예스맨’으로 변질되었다. 

그런데 트로츠키는 레닌이 심각한 발작을 일으킨 1922년 5월 25일을 전후해 ‘문화 영역의 계급투쟁’에 해당하는 논문 집필에 몰두했다. 「작은 것에 유의하라!」(1921년 10월 1일), 「붉은 군대에서의 ‘너’와 ‘당신’」(1922년 7월 18일), 「문화적인 말씨를 위한 투쟁」(1923년 5월 15일), 「정치만으로는 살 수 없다」(7월 10일), 「습관과 관습」(7월 11일), 「보드카, 교회, 영화」(7월 12일), 「낡은 가족과 새로운 가족」(7월 13일), 「가족과 의례」(7월 14일), 「진보적이고 반동적인 관료주의에 반대하여」(8월 6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8월 8일), 「작은 것과 큰 것」(10월 16일) 등 트로츠키는 『일상생활의 문제들』에 담긴 글을 쓰면서 일상의 문제를 전면에 내걸었다. 연구자는 ‘일상생활의 문제들’에 대한 트로츠키의 답변은 따분한 교훈에 그쳤지만, 트로츠키가 대결하려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하게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비록 트로츠키는 공공연히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가 “곳곳에서 ‘무의식적으로’ 노출시키는 쟁점은 이성과 의식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삶에 고착된 개인과 집단의 심리, 인간 의식의 이면에 대한 검토와 그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전기 '적색 테러'를 옹호했던 트로츠키는 정신분석학에 기초해 인민의 무의식을 탐구하고자 했다. (사진: Marxist Internet Archive)

 


‘새로운 인간’을 
발명하는 첫 걸음, 무의식

여기서 트로츠키의 주목을 끈 것은 다름 아닌 정신분석학이었다. 레닌이 정신분석학에 대해 불편해한 것과 달리, 트로츠키는 정신분석학의 유물론적인 성격을 부각하면서 정신분석학을 옹호했다. 특히 그는 정신분석학의 ‘도약’을 강조했는데, 그럼으로써 “소비에트의 공식적 과학이 보지 못하고 공식적 이데올로기가 부정하고자 했던 무의식을 문제화”했다는 것이 연구자의 주장이다. 이른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정통 교리인 ‘토대와 상부구조’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자면 인간의 심리를 비롯한 상부구조는 토대를 반영하며,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계급투쟁이 없기 때문에 혁명 역시 불가능하다. 하지만 무의식은 ‘의식의 타자이자 외부’로서 토대-상부구조의 단순한 반영이라는 논리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트로츠키는 무의식을 탐구함으로써 무엇을 하고자 한 것일까? 연구자는 1920년대 초 트로츠키가 몰두한 『일상생활의 문제들』 집필은 “개별 신체의 조형과 함께 더욱 넓은 범위에서 사회적 삶의 형식을 새롭게 창안하는 방식”을 겨냥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제의 억압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던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은 혁명 후에도 보드카에 곧잘 취하고 태업을 반복했다. 이걸 공산주의의 강철 규율로 통제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 트로츠키의 판단이었다. 일상 속의 관습과 관행, 의례는 무의식에 속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축하하고 싶어 하고, 자신에게 기쁜 일이 생기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는 그에 합당한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런 욕망은 일상생활에 뿌리박은 것이기에 기존의 관행을 교육이나 규율로 다스리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전기 작가들에 따르면 “대의를 위해서라면 현실에 대한 폭력적 개입을 마다하지 않았던 인물”인 트로츠키였지만, 인민의 보수적인 습속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일상의 의례를 발명하고자 했다. 여기서 그는 ‘새로운 욕망’을 창출하는 장치로서 영화에 주목하기도 했다. 

트로츠키의 문화혁명은 그의 실권과 함께 ‘실현되지 못한 가능성’으로 남아 버렸다. 트로츠키는 그의 주저 『배반당한 혁명』(갈무리, 1995)에서 “가족 문제를 내버려둔 것이 소련이 퇴행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지적했다”고 한다. 연구자의 관점은 슬라보예 지젝이 혁명 이후에 진행되었던, 아주 유치하지만 중요한 시도에 대해 언급한 것을 연상시킨다. 즉 “결혼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는 어떻게 기를 것인가?”와 같이, 얼핏 계급투쟁과 무관한 듯 보이는 질문과 실험이야말로 진정으로 혁명적이며 혁명을 지속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트로츠키의 문화정치학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그 단초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1917년의 혁명으로 인해 새로운 사회가 출범하자마자 “혁명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란 질문을 “그 중심을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와 재빨리 등치시켰던 경쟁자들에 비하면 다소 ‘어이없어 보이는’ 행보지만, 트로츠키는 자신의 신념과 열정을 추구하는 데 맹목적이길 마다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급변하는 정국을 짚어내지 못한 ‘실수’나 ‘어리석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의 정세를 면밀히 고찰해 본다면 오히려 심오한 통찰이자 지혜였을지 모른다.”(41~42쪽) 
 

김주원 리뷰어  leopord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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