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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페미니즘이 걸어온 길윤보라 서울대 연구자의 ‘온라인 페미니즘’의 역사 탐색
권성수 리뷰어 | 승인 2016.05.20 10:42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피해자에 대한 추모물결이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범죄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본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는 ‘젠더’의 문제로 보게 된 것은 여성운동의 노력과 그에 따른 젠더의식이 높아진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강남역 10번 출구 국화꽃 한 송이와 쪽지 한 장씩 놓고 오는 추모가 이어지는 가운데에도 여전히 일베를 비롯한 뉴스 댓글에서 관련 사건에 관한 여혐발언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함께 생각해볼 만한 논문 한 편을 요약 소개하고자 한다. 온라인 문화생태계와 젠더 변동에 관심을 갖고 여러 글을 발표한 윤보라 서울대 연구자의 「온라인 페미니즘」(여/성이론, 2014년 5월)에서는 온라인 공간에서 페미니즘이 걸어온 과정과 성과 그리고 과제를 함께 논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탄생과
페미니즘


최초의 PC통신 서비스이자 ‘하이텔’의 전신인 ‘케텔’이 한국경제신문사에 의해 개발된 지 30여 년이 흘러 한국은 어느새 IT강국이 되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인터넷 문화의 발달은 비단 IT산업의 부흥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정치·경제·문화 전반적인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2008년 ‘촛불집회’는 그간 전혀 정치적 장소로 여겨지지 않았던 온라인 공간이 ‘직접민주주의’의 장場으로 기능하며 정치적 공간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을 발휘한 사회사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동시에 온라인 공간은 많은 여성이 한국사회의 급격한 젠더 변동을 실험하는 핵심적 장이기도 했다. 사이버 공간이 처음 열렸을 때, 많은 페미니스트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주목하는 한편, 이 공간이 여성운동과 페미니즘 담론을 실험할 수 있는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온라인 공간은 현실 세계에서의 사회적 위계질서와 결별한 민주적 의사소통 공간이자 ‘구성 중인 공간’으로 여성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윤보라 연구자는 『여성혐오가 어쨌다구?』(현실문화, 2015)에서 '김치녀와 벌거벗은 임금님들 : 온라인 공간의 여성 혐오'라는 주제로 참여했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여성이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점이 주로 부각되었다. 그럼에도 이 공간이 기존의 수직적, 폐쇄적인 남성중심적 사회질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해방적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 전망이 많은 여성주의자가 사이버 공간을 희망의 장소로 주목하도록 만들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적지 않은 페미니스트 모임이 PC통신 네트워크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소통과정은 여성에게 녹록하지 않았다.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서 여성의 담론실천이 자유롭고 평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온라인은 여전히 남성친화적인 공간이었고, 여성은 쉽게 언어폭력에 노출되거나 침묵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할 것을 강요받곤 했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페미니스트들의 관심사는 여성이 이 공간에서 어떻게 자신이 만든 틈새를 지키고 목소리를 낼 것인가로 모아졌다.


‘여성주의’사이트와
‘여성 전용 커뮤니티’ 전국시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이른바 ‘여성주의’를 표방한 사이트가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대학가에서 여성주의를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삶의 지표로 내세운 ‘영페미니스트’집단은 인터넷 문화에 비교적 익숙하고 새로운 기술문화를 쉽게 받아들일 자원을 갖고 있었으며 기존의 오프라인 기반 운동방식에서 벗어나 여성운동의 거점을 온라인으로 옮겨오는 데 성공했다.

최초의 여성주의 웹진을 표방하며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딸들’의 목소리를 전하겠다는 취지로 1998년 창간한 『달나라딸세포』와 2000년 <언니네>에 실린 글들은 당시 여성이 사이버 공간과 관계를 맺으며 어떤 어려움을 느꼈는지 잘 드러난다.

컴퓨터를 감히 범접하지 못할 무엇으로 생각하던 내가 처음으로 사이버 공간에 접속하고 느꼈던 짜릿함은… 그러나 사이버 공간은 이미 남성인걸. 상대적으로 불평등한 온갖 악조건을 뚫고 천신만고 끝에 사이버 낙원에 접속한 앨리스에게는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어.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온라인 성폭력, 낯설고 공격적인 토론 관행들…

우리는 바로 이 공간에서, 사이버 공간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이, 즐겁고 편안한 곳, 여성이라는 것이 짐이 아니라 기쁨과 흐뭇함이 될 수 있는 곳, 여성주의의 상식이 강물같이 흐르는 곳, 우리의 상상이 정말로 우리의 삶을 즐겁게 바꾸는 cyber community를 만들려고 합니다. ‘여성문제’뿐만 아니라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여성의 삶에 대한 가식적인 희망보다는 솔직한 가능성을 탐구하고, 그 시각과 느낌을 공유하여 진정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바로 언니네의 목적입니다. (172~173쪽)


페미니스트들이 온라인상에 자신만의 공간을 창출한 한편, 상업적 여성 포털사이트들도 속속 생겨났다. 저자는 이런 포털사이트들이 비록 외부에서 ‘주어진’공간이라 하더라도 ‘일반 여성’역시 남성 중심적 사이버 공간에서 벗어나 ‘안전한 공간’을 갖게 되었다는 점,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젠더 변동의 주요 장소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고 있다.

여성주의 문화운동 단체 '언니네트워크' (www.unninetwork.net)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사이버 테러, 여성혐오,
반격


온라인 페미니즘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1999년 군가산점 폐지 논란에 따른 남성들의 대대적인 사이버 폭력이었다. 5명의 대학생이 9급 공무원 시험 시 군필자에게 부여되는 5%의 가산점이 위험이라는 헌법소원을 냈다는 사실이 PC통신에 알려지자 사이버 게시판은 이른바 ‘예비군’의 폭력으로 가득 찼다. 심지어 헌법소원을 낸 5명의 대학생은 남성 온라인 유저들에게 ‘이화5적’이라 불리며 실제로 신상위협에 시달렸다. 이에 대항하여 여성들은 “사이버상에서 성숙한 토론문화를 만들기 위해” ‘시스터본드’라는 단체를 띄워 여성들이 침묵을 지키거나 그 공간을 떠나버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애썼다.

또 하나의 사건, 2001년에 벌어진 ‘월장 사건’은 부산대학교 여성학 소모임 학생과 졸업생들이 만든 여성주의 웹진 <월장>이 2001년 4월 창간호에 ‘도마 위의 예비역’이라는 글을 게재한 지 10일 만에 남성 네티즌들에 의해 초토화된 사건을 말한다. <월장>홈페이지는 남성들의 욕설과 위협으로 도배되고 웹진 회원들의 신상정보가 유출되면서 이들에 대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협박이 이어졌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사이버공간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성폭력’사건으로 꼽히고 있으며,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오프라인과 연결되어 어떻게 여성들의 발언력을 빼앗고 위축시키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여성들이 어떻게 이 공간을 전유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기실 여성들에게 온라인 공간의 성차별적 조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20여 년에 걸친 역사에서 여성은 여성배제 구조에 대항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해 왔다. 이 사이 변화한 것은, 온라인이 더는 온-오프라인으로 구별되는 ‘가상공간’, 혹은 현실의 확장으로만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스마트폰의 도입과 같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힘입어 현실 세계보다 더 강력하게 주체를 형성하는 주요 공간으로 기능하며, 때문에 현재 온라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거대한 반격(backlash) 현상은 현실과 대단히 밀착된 채로 우리의 일상과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한국사회를 달군 ‘일베 현상’은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성배제구도를 넘어서서 여성혐오 담론이 어떻게 전 사회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며 고착되어 가는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동안 온라인 페미니즘의 방향 설정은 주로 새로운 여성운동 전개를 위한 전략적 측면 혹은 가부장적 질서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여성주체들에 대한 발견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현재는 급격한 젠더 변동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자기정체성을 구성하는 여성들과 이에 대한 저항 담론을 내세우며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하는 사회에 어떻게 페미니즘이 개입할 것인가가 중요해진 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라인을 매개로 작동하는 젠더 주체화 과정에 대한 탐색과 적극적 개입의 방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178~179쪽)


이 글이 쓰여진 2014년 이후 2015년에는 ‘여성 혐오’의 해로 명명될 만큼 많은 젠더 이슈가 발생했다. 또 지금까지도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여성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논문의 내용을 통해 얼마나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온라인에 목소리를 쌓아왔는지 그 노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길지 않은 글이기에 기회가 된다면 꼭 전문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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