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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 이론은 파농의 “흑인성”을 숙고했는가?차선일·고인환의 「‘프란츠 파농 담론’의 한국적 수용 양상 연구」
강성민 리뷰위원 | 승인 2016.01.30 14:59
프란츠 파농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1925~1961)에 대해서는 전공 분야를 불문하고 한 번씩 들어보았을 것이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으로 포스트식민주의의 대표적 이론가가 된 프란츠 파농이 국내에 소개된 지도 어언 30년을 헤아린다. 2015년 3월 발표된 차선일·고인환의 「‘프란츠 파농 담론’의 한국적 수용 양상 연구」(『국제어문』 제64호)는 그 수용사를 정리하고 있어 도움이 된다.

이 논문은 일차적으로 프란츠 파농의 사상이 한국의 사회와 문화에 수용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되돌아봄으로써, ‘파농 담론’이 수용된 사회적 맥락을 구체화하고 파농을 어떻게 전유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는 고유한 역사적 국면 속에서 살아 있는 파농을 구제하고 현재적 사상가로서의 파농의 가치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데 있다. 저자들은 ‘파농 담론’의 수용사에서 반성적으로 되물어봐야 할 것은, 파농이라는 제3세계 출신의 흑인사상가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우리의 시각이 은연중에 서구중심주의와 식민주의, 인종주의 등에 감염되어 있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논의를 풀어나간다.


다면적 경력의 파농이 외려 그의 사상 파편화시켜

먼저 필자들은 “파농의 다면적 정체성이 그의 사상을 조각조각 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파농은 정신의학자이자 혁명적 이데올로그였고, 정신분석가이자 철학자였으며, 독립운동가이자 외교관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프랑스령 식민지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나 유럽식 교육을 받은 흑인이면서 알제리의 민족해방운동에 헌신하며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저항한 외국인이었다. 하지만 파농 스스로 강조했듯 “파농의 언어는 언제나 흑인의 말이었고 피식민지인의 글이었다. 파농의 사유는 그가 살았던 마르티니크와 알제리와 튀니스의 산물이며 그 장소에서의 삶을 이해하고자 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역사적 맥락과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라 파농은 편의적이고 일면적으로 해석되며 자유주의자로서의 파농,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파농, 문화유물론자로서의 파농, 혁명투사로서의 파농, 정치이론가로서의 파농, 포스트모던 파농 등으로 양산되었다.

지금까지의 지적인 일단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면, 파농은 실제 한국에서는 어떻게 수용되었을까. 필자들은 국제적 맥락과는 주목할 만한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파농에 관한 글이 처음 발표되는 1971년부터 파농에 관한 논의가 소강국면에 접어드는 1990년대 이전까지, 파농 텍스트의 번역과 소개는 후기 저작인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과 『알제리 혁명 5년』에 집중된다. 1971년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의 제1장 「폭력에 관하여」를 발췌하여 옮긴 것을 시점으로,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모두 세 차례나 완역되고, 책의 일부를 번역한 것도 다섯 차례에 이른다. 『알제리 혁명 5년』 역시 한 차례 완역되고, 그 일부만 소개되기도 했다. 반면에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1978년에 시인 김남주의 번역으로 출간된 뒤, 한 차례 발췌 번역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과 『알제리 혁명 5년』이 식민지 해방투쟁의 사상적 지도자이자 혁명운동의 이론가로서의 파농의 사상이 응축되어 있고,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정치적 의식이 싹트기 이전 정신의학자로서의 파농이 쓴 저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1970~80년대 한국사상계에서 ‘파농’의 수용과 논의가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졌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파농은 우선 ‘혁명운동가’로 국내에 소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71년 그의 글을 잡지 『신동아』에 처음 번역·소개한 하동훈은 과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폭력론을 설명하는 근거로 동원했다. 즉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기 1년 전에 수입된 흑인사상가의 폭력론은 군부독재정권이 몰락하기까지 약 20여 년 동안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폭력시위의 전략적 지침과 그 이론적 정당성을 해명해주는 사상으로 환영받으며 적극적으로 읽혀졌다고 할 수 있다.
 

출판사와 번역자를 달리 해가며 판을 거듭해온 『검은 피부, 하얀 가면』


민주주의 사상의 자원으로 70~80년대 수용

이러한 맥락에서 당대의 담론에서는 파농의 사상을 “민주주의의 철학”으로 규정하기도 했고, 진정한 참여민주주의를 위한 텍스트로 심도 있게 논의되기도 했다. 사실 파농은 특정한 정치체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지지했다기보다는 단지 공통적인 것(the commons)을 생산하는 민중의 결속과 연대를 강조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사고 자체는 보편적인 평등주의적 이념에 가까운 것이며, 이 이념적 요소는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어떤 정치이데올로기로도 번역가능한 것이다.

‘파농 담론’의 수용사에서 1990년대는 ‘파농의 공백기’라고 할 수 있다. 1998년에 파농을 주제로 삼은 두 편의 상론이 나오기까지 이 시기 파농에 관한 학술적 논의는 사실상 거의 전무하다. 필자들은 이것을 “탈이념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나타난 일시적인 ‘단락적 현상’으로 이해“한다. 1990년대 국내의 탈식민주의 사조 수용은 이론의 범위가 제한적이었는데 주요 참여자들이 주로 영문학자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1998년의 두 편의 글 이후 파농 담론은 가파르게 증가해 주제론적 다각화, 양적 확대와 질적 심화도 이뤄졌다.

이 논의들은 다시 몇 가지 지류로 나뉘는데 첫째, 탈식민주의 사상가로서 파농 사상 전반에 관한 종합적인 논의, 탈식민주의와 정신분석의 비판적인 결합으로서 파농의 정신의학에 대한 분석, 다른 이론(가)들과의 비교적 시각에서 폭력 또는 페미니즘의 주제를 살펴보는 연구들이 있었다. 특히 이경원이란 연구자가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파농을 연구하며 글을 발표해왔는데 거의 독보적인 행보였다.


한국 민족주의의 배타성이 파농을 밀어냈는가?

하지만 필자들은 “서구화된 ‘탈식민주의 이론’의 비판자로서 파농의 면모를 발굴한 것은 중요한 성과이지만, 이러한 시각 자체가 최근 서구에서 전개되는 논의를 발빠르게 수입한 것은 아닌지 반문할 필요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연구자 양권석은 이경원의 연구에 대해 “식민지의 거친 역사적, 정치적 현실과 무관한 하나의 이론적 가능성으로 존재하도록 하기 위한 탈역사화, 탈정치화의 과정”이 진행되었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필자들은 되묻는다. “과연 파농의 ‘흑인성’은 음미되고 숙고되었던 것일까?” 더불어 최근 학계와 비평계의 쟁점 중 하나인 폭력에 관한 정치적·철학적 논의들에서 파농의 폭력론은 왜 고립되어 있는가?라고 묻기도 한다. 이상으로 볼 때, 1970~80년대 이후 파농의 민족주의와 민족문화론이 국내 민족문학론의 내부로 흡수되지 못했듯, 순수한 ‘민족’의 성지에 흑인이 주민으로 등록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강성민 리뷰위원  review@bookp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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