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2015 문학/예술
어려운 현대시를 읽는 하나의 독법황병승의 시를 읽어보자!
권성수 리뷰어 | 승인 2016.04.03 11:57
『2013 제13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내일은 프로』(황병승 외, 문예중앙)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시는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가뜩이나 의미가 함축된 시를 감당하기 버거워하던 대중은 더욱 시에서 멀어졌고, 전문 독자인 비평가들도 읽기 어려울 정도로 시는 고도의 마이웨이를 달리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현대시를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은 오죽할까?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현대시 강독 수업을 하던 김지훈 교수는 학생들이 제대로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고민하다가 본 논문을 작성했다고 한다. 「개성화의 관점에서 시적 주체의 특성 연구 – 황병승의 시를 중심으로」(『인문학논총』, 2015년 6월)에서 저자는 미래파 대표시인 황병승의 일부 시를 독해하며, 현대 시에 접근하는 하나의 독법을 제시한다.


분석심리학적 관점으로
현대 시 읽기

저자는 독자를 크게 ‘내포독자’와 ‘실제독자’로 나눈다. 내포독자는 타인이 아닌 ‘시인 자신’ 즉, 시인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다중적 인격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시에서 시적 주체를 통해 형상화되는데, 시의 소통과 미적 성취의 문제에서 난해함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이러한 무의식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융의 분석심리학을 키key로 사용한다. 분석심리학의 핵심이론인 ‘개성화’ 혹은 ‘자기실현’ 문제는 무의식 속 그림자를 직시하고 적극적인 상상을 통해 의식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데 목적이 있다. 융은 ‘자아’와 ‘자기’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는데, ‘자아’가 사회가 바라는 인격이라면 ‘자기’는 전자와 더불어 무의식 속 그림자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문학 작품은 작가의 적극적 상상의 결과물 즉, 무의식의 의식화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으로 ‘집단무의식’의 성격이 강한 작품은 ‘개인무의식’의 성격에 비해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개인무의식 영역이 활성화된 현대시는 독자와의 소통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제독자와의 소통’보다 ‘내포독자로서 자기와의 소통’이 강한 자기표현으로서 글쓰기 성향이 강한 시일수록 난해하고 모호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 저자는 이러한 작품은 사회·보편적 잣대와 더불어 심리적 잣대로 다가설 때 난해함과 모호함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고 말하며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시 읽기에 접근해볼 것을 제안한다.


황병승의 詩에 나타난
시적 주체

황병승의 시는 ‘무의식’을 토대로 쓰인 시가 많다. 이러한 환경에서 형상화된 시적 주체는 반사회적 인격인 그림자의 성격을 지닌 존재들로 비춰진다. ‘금기의 주체’로 트랜스젠더가 형상화되기도 하고, ‘환상과 초월의 주체’로 어린이가 형상화되기도 한다. 이것을 저자는 시인이 무의식 속 그림자를 형상화함으로써 ‘자기실현’을 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읽어내는데.

『여장남자 시코쿠』 (황병승, 문학과지성사, 2015)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얼굴을 맨바닥에 갈아버리고
뒤로 걸을까 봐요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나의 항문이 도무지 혐오스럽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입술을 뜯어버리고
아껴줘요, 하며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 봐요
―중략―
부끄러워요? 악수해요
당신의 손은 당신이 찢어버린 첫 페이지 속에 있어요

― 「커밍아웃」 , 『여장남자 시코쿠』부분, 19쪽.

저자는 제목으로 쓰인 ‘커밍아웃’을 사전적 의미로만 읽어내면 해석의 폭이 좁아질 뿐만 아니라 심층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시어의 함축성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에 사용된 알레고리의 특성을 개성화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뒤통수, 항문.”은 “얼굴, 입술.”과 대극을 형성하는데, 여기서 ‘대극’이란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어떤 상태의 극단적인 성질이며, 정신은 여러 대극은 조정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가 주목하는 지점은 이러한 대극의 흐름이 “부끄러워요? 악수해요/당신의 손은 당신이 찢어버린 첫 페이지 속에 있어요.”에서처럼 의식과 무의식의 불균형 상태를 가시화·극대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조율하고 타협한다는 점이다.

“악수(행위)를 통한 화해는 커밍아웃을 하고자 하는 “손”을 태초의 “찢어버린 첫 페이지.” 즉 자궁의 원형으로 환기시킴으로써 일단락시킨다. 황병승의 시에서 ‘찢는 행위’는 “열두 살, 그때 이미 나는 남성을 찢고 나온 위대한 여성(『여장남자 시코쿠』)”에서처럼 회귀본능으로서 자궁의 원형을 환기시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심리상태는 의식과 무의식의 잠정적 균형을 나타낸다. 황병승의 시에서 금기된 욕망은 숨김이 아니라 드러냄으로써 그림자를 직시하는 시적 주체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7쪽)

욕망과 금기의 주체로 형상화된 ‘성적 소수자’는 다수에 의해 억압받는 ‘틀림’이 아닌 ‘다름’을 표방하는 존재다. 저자는 이것을 무의식 속 그림자의 속성이 의식과의 다름을 인정하고 의식화함으로써 전체정신으로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의도로 읽어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트랜스젠더는 그것의 구체적인 대상으로 대극의 상황을 극복하는 ‘상징적 주체’인 것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뽀삐」라는 시를 소개하며 ‘다수’가 아닌 소수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사회·보편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고 새로움을 열망하고자 하는 전체성으로서 자기 실현을 하고자 하는 시적 주체를 읽는다.

또 하나의 ‘상징적 주체’로서 ‘어린이’를 제시하는데, 「어린이」, 「어린이날기념좌절어린이독주회」를 소개하면서 대극의 상황을 잠정적으로 종결시키고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과 조화를 촉진하는 초월로의 심리적 이행을 하는 ‘어린이’원형을 읽는다. 즉 ‘어린이’가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없애고 의식의 세계와 상충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상징적 주체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현대시에서 새롭게 등장한 주체를 자기실현을 위한 적극적 상상의 산물로 보고 ‘분석심리학’이라는 이론적 토대로 ‘성적 소수자’, ‘어린이’를 읽어낸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강독수업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어려운 점을 고민한 흔적들이 드러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본 논문을 현대시의 ‘변화’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별하지 않고 당면한 현상으로 직시해 적극적으로 읽어내는 안내서라고 볼 수 있겠다. 저자가 글 말미에 황병승의 시를 해석했던 것처럼 현대시에 나타난 개성 있는 시적 주체들을 발굴해 연구해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그 또한 기대가 된다.

권성수 리뷰어  nilnilist@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권성수 리뷰어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글항아리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210, 1층  |  대표전화 : 031)955-8898  |  팩스 : 031)955-2557
등록번호 : 경기, 아51383   |  등록일 : 2016.05.13   |  발행인 : 강성민  |  편집인 : 강성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현민
Copyright © 2021 리뷰 아카이브.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