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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장례식, 그의 동료들은 왜 축제분위기였을까?한국 현대 르포문학사 서술을 위한 시론
강성민 리뷰위원 | 승인 2016.01.28 09:11

이와 유사하게 1970년대 소수의 엘리트층이 아닌 다수 대중에게 또 다른 의미에서의 ‘정전’으로 기능했던 것 중 하나는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이었을 듯하다. 그리고 이는 1990년대 『체게바라 평전』이나 2000년대 『88만원 세대』, 그리고 2010년대 공지영의 『의자놀이』 등에도 마찬가지로 적용 가능할 듯하다. 그럼에도 이들 텍스트는 문학사 서술에서 배제되어 있다. 문학사가들에 의해 문학은 시, 소설, 희곡의 세 가지로 분류되었고, 비평이 이들 텍스트를 추동하는 내적 논리로서 승인되었다. 현재 거의 모든 문학사가 시, 소설, 희곡, 비평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논문 270~271쪽)

위의 인용은 「한국 현대 르포문학사 서술을 위한 시론」이라는 논문의 도입부다. 장성규 서울대 강의교수가 『국제어문』 65호(2015년 6월)에 발표한 이 논문은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엽까지 르포문학을 스케치하면서 르포의 문학적 특질과 그 문학사적 필요성을 진지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런 목소리는 최근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이 실상은 ‘르포’에 기반한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귀 기울여볼 만하다.“아직 엄밀한 통계로 입증되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1980년대 문학 텍스트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당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고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이 아닐까 싶다. 

르포는 서사 구성물이라는 점에서 문학적 특성을 지니지만, ‘픽션’을 절대화하는 근대 문학의 규범에 의해 문학장 외부로 추방된 바 있다. 르포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고유의 미적 속성을 귀납적인 방식으로 추출하고, 이로부터 르포 ‘문학’에 대한 재인식을 시도하는 문학사적 공공성을 구성하려는 지적 기획이다.

첫째, 르포는 일차적으로 특정 사건에 대한 취재의 형식을 지닌다. 그런데 다른 취재물, 예컨대 신문 기사나 사회학 논문 등과 구별되는 것은 ‘사건’의 어떠한 면에 초점을 맞추는가의 여부이다. 이는 특히 르포가 문학의 일부임을 고려할 때 더욱 중요하게 분석해야 하는 지점으로 판단된다. 둘째, 르포 역시 하나의 서사물이다. 따라서 특정한 내러티브의 구성 원리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는 특히 흔히 단순한 취재물로 간주되는 르포가 실상 매우 복합적인 내러티브 구성 원리와 전략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지점으로 판단된다. 셋째, 르포는 서술 주체와 서술 대상간의 교섭이 매우 풍부하게 수행되는 장르이다. 따라서 기록자인 서술 주체의 정체성 변화가 다른 장르에 비해 두드러지는 특성을 지닌다.

필자는 1960년대 이후의 르포문학의 선구자들을 먼저 다루기 시작한다. 그 첫 자리에 박태순이 온다. 우리에겐 『국토기행』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는 박태순은 전태일에 삶과 죽음에 대한 르포를 남기기도 했고, 그의 장례식이 있던 날에 대한 기록도 소상히 남겨 공식적인 기록 밖의 새로운 사실을 전해준다. 그 가운데 전태일의 장례식 풍경이 그려진 대목이 예사롭지 않다.

“그것(전태일 열사의 운구 도착에 대한 소문-인용자)이야 어찌 되었든 구경 나와 있는 어린 남녀 직공들은 마냥 떠들썩하고, 호기심과 흥분에 쌓여 있었다. 서로들 소곤소곤 얘기하고 시간 약속들을 하고 유행가 가락을 흥얼거렸다. 이 바람에 오징어, 다슬기, 군밤, 번데기, 순대국 장사들이 단단히 수지를 맞추고 있었다. 나이어린 직공들은 누가 죽었건 말았건 일을 안하고 쉬게 되었다는 것이 무척 즐겁다는 표정들이었다. 그야말로 축제(祝祭)무드였다.”(논문 277~278쪽)

이걸 보고 박태순은 “고인은 엉뚱한 일로 자기 동료에게 선심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기록했다. 피곤에 찌든 그들은 사정이야 어쨌든 이렇게 하루 쉬는 것이 너무나 좋았던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풍경은 오랜 세월 만들어진 전태일이라는 ‘열사’ 이미지에만 익숙한 우리에겐 다소 충격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신선한 충격이기도 하다.

이후 필자는 1980년대 민중문학운동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니는 소설가 김남일의 「노동운동의 성지 모란공원」, 1980년대 노동소설의 대표작이자 현장 증언을 토대로 쓰여진 방현석의 『새벽출정』 등을 살펴본 뒤 “역사 서술에서 간과되기 쉬운 구체적 개인의 내면과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조그마한 틈새에 대한 증언은 르포 문학만이 수행할 수 있는

1969년 청옥 시절 친구들과 남산에 오르던 날. 맨 왼쪽이 전태일이다.(출처: 전태일 재단)

매우 중요한 미적 성과”라고 평가한다.

소설가 황석영의 르포는 르포가 갖는 서사문학적 측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어둠의 자식들』은 르포와 소설은 물론, 수기와 픽션, 서술자적 개입 등이 결합하는 장르 혼종적 양상”을 보여주며 「구로공단의 노동실태」라는 르포에선 1) 수출증대 2) 외화 가득율 재고 3) 근로자 복지 향상 4) 유신과업 완수의 내용을 담은 “근무 지침”, “모집광고의 문구” 등이 그대로 삽입되어 독특한 서사적 효과를 획득하고 있다. 필자는 특히 황석영 르포의 이질적 서사 장르들의 혼종이 단순한 양식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발화 주체의 이동과 집단적 담화 형식 등을 통해 다성성을 획득하는 등 미학적 구성 원리로까지 발전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서술자가 자신의 입장을 과도하게 내새워 서술 대상이 지니는 고유성을 손쉽게 해소시킬 경우 르포는 “대상을 비판하는 계몽적 논설이나, 혹은 대상과 서술자를 동일한 것으로 설정하는 의사(pseudo) 체험 수기가 될 위험이 크다.” 필자는 이런 점에서 공지영의 르포인 「부엌에서 우루과이라운드까지: 여성농민의 하루」가 서술 주체와 서술 대상간의 거리 확보를 통해 위와 같은 위험을 피하고 있는 텍스트”라고 평가한다. 공지영의 텍스트는 오히려 타자와의 대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이상의 세 차원에서 주요 작가와 작품을 분석한 필자는 향후 르포문학사를 위한 과제를 제시했는데 1차적으로는 어떤 작가와 작품이 있는지에 대한 서지작업, 즉 르포 텍스트의 수합과 정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다음에야 르포 문학의 미학적 특성이 다양하게 체계적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성민 리뷰위원  review@bookp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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