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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함이 제거된 가족...‘금융 리터러시’로 무장서동진 교수, 금융화에 침윤된 우울한 가족의 사회학
김주원 리뷰어 | 승인 2016.03.28 05:51

우리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돈이 없다.” 그렇다. 우리는 보통 돈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돈이 있어야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으며, 돈을 벌기 위해 매일같이 노동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노동을 하는 경제생활의 정반대편에 가족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돈이 있어야 가족도 부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적어도 가족의 품 안에서는 좀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감정을 느끼며 사회생활에서 얻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동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의 「우울한 가족: 금융화된 세계에서의 가족과 정동」(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Vol.31, 2015년)은 흔히 생각하는 대로 가족 관계가 안온하거나 정적이기는커녕,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계의 논리에 너무나 충실하다는 것을 드러내려 한다. 이때 우리가 사는 세상의 논리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금융화financialization’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화라고 하면 최신 금융기법에 따라 경제가 움직이는 것으로, 저 멀리 월스트리트의 일이거나 혹은 여의도 금융가의 전문 애널리스트와 펀드 매니저의 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1997년 금융위기와 그 이후의 IMF 구제금융을 겪었고, 2003년 카드대란과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금융이라는 문제를 마주했다.

 

자산 증식의 수단이 된
임금

누구나 늘 돈과 관련된 말을 늘 하며 살아간다. 그만큼 돈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는 것이겠지만, 그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라고 일축하기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일상과 돈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항상 금융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서동진 교수는 경제학자 코스타스 라파비차스와 도스 산토스의 논의를 참조하면서 개인의 사적 소득(임금)이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바뀌는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그동안 자본주의 분석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며 착취를 당하는 동시에, 노동을 해서 만든 생산품에서 소외되는 이중의 과정에 대한 것이었다. 이때 착취를 통해 잉여가치, 즉 이윤이 축적된다. 그런데 라파비차스와 도스 산토스는 오늘날엔 산업자본가가 수취한 이윤을 금융자본가가 이자라는 형태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본가가 노동자의 소득에서 직접적으로 이윤을 수탈해 간다고 분석한다.

 

 

이런 현상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게 신문 지상을 점령하다시피 한 가계부채 문제다. 가계부채는 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을 벌였던 은행과 각종 금융기업이 소비자 신용 내지 신용대출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과감히 대출을 허용하면서 빚어진 사회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자본이 국경을 더욱 쉽게 넘나들면서 개인과 가족이 세계 경제의 흐름에 더욱 민감해진 데서 비롯된 문제이기도 하다.

 

가족의
금융화

여기에 불안정 고용으로 인해 단기적인 노동을 할 수밖에 없거나 정규직으로 일해도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개인과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기 위해 자신들의 소득을 자산 증식 수단으로 활용하는 상황이 더해지면서 가족의 금융화가 일상적인 현상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동안 가족은 자본의 외부에서, 자본이 그 자체로는 생산하지 못하는 상품인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사회적 관계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가족은 자본의 논리에 더욱더 깊숙이 종속되면서 사회적 재생산 자체가 수탈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여성주의 정치경제학자의 논의를 빌자면 ‘사회적 재생산의 금융화’라 할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가족을 움직이는 동인에 그저 경제적인 합리성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개인과 가족을 부르는 새로운 명칭인 ‘금융 소비자’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이 인생의 흐름에 따라 밀려오는 여러 가지 재무적 과업들”에 대처하면서 자신의 ‘라이프이벤트’를 관리하는 기업가적 주체entrepreneurial subject가 된다. 이 기업가적 주체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윤리적인 주체인 동시에, 삶의 위험을 적극적으로 감수하는 모험가이며 삶의 불안정성을 견뎌내야 하는 존재다. 여기서 불안은 금융 소비자의 주된 감정 혹은 정동으로서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주체에 조응한다.

서동진 교수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가족이 일종의 기업가적 주체로서 치러야 할 대가인 불안은 전통과 단절된 근대적 개인이 봉착하는 불안감이나 정치적인 변화에 따른 두려움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즉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불안정성이 개인과 가족에게 더욱더 깊이 침투함으로써 가족을 둘러싼 환상을 부수고, 새로운 가족의 상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불안이라는 정동이 더욱 강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강조되는 것은 개인과 가족 성원이 겪게 될 ‘생애주기’에 따른 숱한 ‘라이프이벤트’를 예측하고 이를 돈의 문제로 번역하는 지식이다. 이런 지식은 ‘금융 리터러시’로서 가족이 반드시 갖춰야 할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금융화의 윤리와 적대하는
연대의 윤리

물론 이런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된다거나 모든 가족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 논문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고 또 끝을 맺는다.

영화의 주인공인 산드라는 자신을 해고하려는 회사에 맞서면서 동료 노동자를 설득해 복직을 시도한다. 우여곡절 끝에 다른 이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그녀를 계약직으로 부르겠다는 회사의 제안에 대해, 산드라는 재계약 해지야말로 해고라며 제안을 거부한다. 그녀의 윤리적 몸짓은 금융화된 가족, 돈을 생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보다 윤리적인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가족의 모습과는 아주 다르다. 산드라가 보여주는 연대의 윤리, 금융화된 가족의 우울과 불안을 걷어내는 영웅적인 결단은 신자유주의의 윤리와 대결하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저 우리 모두 산드라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오늘날 금융화된 가족생활은 전처럼 가족에서 기대할 수 있었던 ‘안온함’을 제거한다. 미래가 더욱더 깊이 현재의 선택과 결정에 통합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현기증 나는 금융적 실천에 의해 매개되었을 때 개인과 가족은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 이때 불안은 더욱 증폭되고 심화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안과 원망을 금융화된 가족생활의 핵심적인 정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80쪽)

우리는 금융화를 으레 경제학자가 연구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해외에서는 문화연구와 사회학, 인류학의 주된 연구대상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화를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들이 조금씩 나온다는 점에서 이번 논문은 의미 있는 참조점이 될 것이다.

김주원 리뷰어  leopord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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