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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문화의 혁명과 함께한 기술한글 타자기의 도입과 성장의 역사
문지호 리뷰어 | 승인 2018.05.03 07:45

개항 이후 영문 타자기와 일문 타자기가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둘은 모두 소수의 무역회사나 일부 관공서의 문서에서 사용되었을 뿐 한국인의 일상에 스며들지는 못했다. 결국, 한국인의 언어 생활에서 타자기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한글 타자기의 개발이 필요했다. 그러나 한글 타자기를 만드는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모음과 자음으로 나누어져 있는 한글은 얼핏 생각하기에 한자나 일본어에 비해 로마자 방식의 타자기의 활자를 한글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글 타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문제와 더불어, 사회 문화적인 변화가 함께 수반되어야만 했다. 

 

기술적 모아쓰기

우선. 

 

음절 내 위치에 따른 자음 기역(ㄱ)의 형태 변화

 

 

사회-문화적 과제:
가로쓰기와 한글 전용

한글 타자기의 발명에는 기술적 문제만 있던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해결해야 어려움이 많았는데 가로쓰기와 한글 전용 글쓰기 방식의 변화가 바로 그것들이다. 당시 한국은 서구와는 다르게 세로쓰기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가로쓰기 메커니즘으로 발명된 로마자 타자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세로쓰기 문화 자체를 가로쓰기로 바꾸든지, 로마자 타자기를 세로쓰기에 적합하게 개조하는 수밖에 없었다. 쉬운 문제는 아니었는데, 후자의 문제는 가로로 타자기를 사용하되 최종 결과물은 세로쓰기로 읽을 있는 형태의 임시방편으로 잠시 해결되었으나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세로쓰기 문화를 가로쓰기로 바꾸는 것은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글에 대한 관념과 인식의 틀을 바꾸는 혁명적 변화였다.”(404

가로쓰기에 이은 하나의 문제는 한자를 섞어서 사용했던 글쓰기 문화에서 한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였다. 한자를 한글과 병용하였던 20세기 초에는 한글로만 글을 쓰자는 주장이 매우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한글로만 글을 문장은 뜻이 명확치 않을 뿐더러 세대간 단절을 낳는다는 지식인층의 강렬한 반대가 있었고, 신문이나 잡지, 관공서 등에 이미 뿌리깊게 자리잡은 한자병용 글쓰기 문화는 쉽게 바뀔 있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 타자기는 어떤 쓸모가 있을 것이며, 어떻게 만들어야 것인가? 한글의 장점을 포기하고 한자 타자기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 것인지, 한글의 우수성을 살리되 대중의 인식과 싸워 나갈 것인지? 하는 문제는 한글 타자기의 개발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논쟁의 주요 논점들이었다

 

타자기 불모지에서 시장 개척하기:

공병우와 세벌식 ‘속도’ 타자기

 

 해방 전까지 한글 타자기를 개발하고 보급하려 시도들은 꾸준히 있었다. 1914 무렵 최초로 모아쓰기 한글 타자기를 개발한 이원익 타자기나, 1934 한글 타자기의완성으로 소개된 소개된 송기주 타자기가 그러한 시도들이다. 그러나 타자기 모두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는데, 글자꼴이나 자판배열, 타자 속도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글쓰기 문화가 바뀌지 않고 시장의 수요가 충분치 않은 환경에서 값비싼 타자기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운 이유가 컸을 것이다. 영문 타자기가 이미 존재하는 글쓰기의 형태를 기계에 그대로 옮겨 사회적으로 무리없이 받아들여졌던 것과 달리, 한글 타자기의 도입은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송기주의 “조선글 타자기” 광고. 『동아일보』, 1934. 5. 12 조간 5면.

1940년대 말까지 수십 대의 물량도 소화하지 못한 한글 타자기 사업은 20년이 지난 1968년에 이르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어떻게 20 사이에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을까? 저자는 이를 두고 사회가 가로쓰기와 한글 전용을 받아들이는 문화로 차츰 변해간 것과 더불어, 한국전쟁을 거치며 비대해진 군이 한글 타자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한글 타자기의 새로운 지평을 사례는 공병우의속도타자기이다. 안과의로 유명한 공병우는 한글의 우수성에 관심을 갖고 한글 타자기를 발명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는 글자의 균형과 조형성을 중시한 이전의 발명가들과 다르게 타자의 속도와 효율성을 우선시하였다. 공병우 타자기는 가로 모아쓰기를 실용적으로 구현하여 글씨가 찍히는 모습을 자리에서 있게 만들었고, 글쇠 벌수를 줄여서 빠르고 직관적인 타자를 가능하게 만들어서 타자 속도를 증가시켰다. 공병우 입장에서는 간편하고 빠르게 타자를 있는 중요했기 때문에 받침의 유무와 상관없이 짧은 모음 하나가 두루 쓰여 글자꼴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 결과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공병우 타자기의 자판. 공병우는 사용자들의 의견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끊임 없이 자판을 소폭 수정했다. 사진에 보이는 자판 배열은 그 중 하나다. 다만 초성은 오른쪽에, 중성과 종성은 왼쪽에 배열한다는 대원칙은 변함없이 적용되어 왔다. 맨 위의 숫자 줄까지 자모가 배당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촬영.

 

그러나 한자를 사용할 없거나 글씨 모양이 예쁘지 않은 점은 역시 단점으로 작용하여 시장에서 쉬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때문에 공병우는 스스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했고, 그는 타자기 문화에 익숙한 미국인들을 목표 소비자로 삼았다. 이러한 와중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공병우에게 시련이자 기회로 다가왔다. 비록 타자기에 관심을 보였던 주한미군은 놓쳤지만, 중국과 영국에서 타자기 문화를 접한 당시 해군참모총장이자 해병대 창설자인 손원일의 후원으로 군에 타자기를 보급할 있게 되었다. 형식보다는 능률과 속도를 중시하는 군의 문화에 들어맞은 공병우 타자기는 빠르게 군의 표준 타자기로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한글 타자기의 수용에는 군이냐 민간이냐의 여부보다그가 얼마나 서구 문물을 많이 접한 인물이냐에 따라 좌우되었다고 있다 분석한다. 그런 점에서 공병우는 손원일이라는 인물의 도움으로 운이 좋게 타자기 업계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데 성공한 셈이었다

공병우 타자기로 찍은 한국전쟁 정전협정문. 세벌식 타자기의 특징인 아랫줄 이 고르지 않은 글씨체가 보인다.
 

“공병우 타자기의 성공은 단순히 자판 배열이나 타자기 메커니즘의 우열로만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술혁신의 궁극적인 원동력은 발명가 한두 명의 창의력이라기보다는 그 사회의 신기술에 대한 수요와 지원이다. 사회가 그 기술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또 그 기술이 태어날 수 있도록 인력과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지에 따라 새로운 기술이 그 사회에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434쪽)

 

속도냐 모양이냐:
타자기 시장의 성장과 분화

 

시간이 지나며 점차 사람들은 한글전용 글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서구식 출판물의 증가로 가로쓰기 글쓰기에도 익숙해지면서 한글 전용 타자기를 쓸만한 물건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군부대에서 인기였던 공병우 타자기가 민간 시장에서도 인기를 얻은 아니었다. 가령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에서는 속도가 느리더라도 가지런한 모양의 글씨를 선호하였기 때문에 그에 적합한 다섯벌식 타자기의 대표인 김동훈 타자기가 인기였다. , “이렇게 시장이 분화된 것은 타자수 개인이 어떤 타자기를 선호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타자수를 고용하는 집단이나 기관이 한글 타자기에 기대하는 바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타자기의 수용은타자기는 무엇을 하는 기계인가라는 규범적 질문과 연결된다. 공병우 타자기를 선호하는 집단은 타자기는 무엇보다도 빠른 속도로 글을 찍어 주는 기계라고 인식했던 반면, 체재 타자기를 선호하는 집단은 타자기를 반듯하고 단정한 문서를 만들어 주는 기계라고 여겼다고 있다.”(433) 이제 한글 타자기 시장이 성숙과 팽창은 1960년대 후반에 가서 타자기의 표준화 논쟁이 이어진다

 

같이 읽으면 좋을 논문 

김태호, 「1969년 한글 자판 표준화 (『역사비평』 , 113, 2015)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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