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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형성을 위한 '절충적 전략'과학데이(1934-1936)의 시각적 이미지 전략 분석
문지호 리뷰어 | 승인 2018.04.04 06:40

1934년 4월 19일, 제 1회 과학데이는 ‘전 조선의 과학화’라는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 대규모 행사였다. 비행기를 이용해 삐라를 공중 살포하고 수 십대의 자동차가 스펙타클하게 행렬하고 대량의 포스터가 뿌려지는 볼거리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장관이었다. 정선아는 그 동안의 과학데이 행사에 대한 과거의 연구가 1920-30년대 민족 계몽운동 관점에서 과학대중화 운동의 부수적인 행사 차원에서만 다루어 과학데이에 대해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는  「과학데이(1934-1936) 스펙타클: 일본 식민지시기 특정 과학관의 공공성 획득을 위한 절충적 전략」 (『인문사회 21』 5(2), 2014)에서 과학데이 그 자체에 대한 분석, 그 중에서도 특히 시각문화서의 성격을 중심으로 과학데이를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학데이는 발명학회가 주체가 되고 ‘과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기획된 행사였다. 발명학회는 1924년 “과학적 발명과 조선공업의 장려”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로 주로 발명가, 기술자 등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활동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발명학회는 과학전문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기관>의 설립을 희망하였는데 이를 지지해줄 수 있는 세력과 자본의 확충을 위해 식민지 조선인 공공의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즉, 특정 과학관을 가진 지식인층이 자신들의 과학관에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입혀 목적을 성취하고자 선택한 전략이 바로 ‘과학 대중화 운동’이었”고, 과학데이는 이를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선택되었다.(82쪽)

“1933년 발행된 학회의 기관지인 <과학조선>은 지식인 지지 세력을 모으기 위한 통로로, 1934년에 열린 과학데이는 보다 넓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기획된 이벤트라고 볼 수 있다.” (82쪽)
 

대중 속의 과학:
환상과 일상의 경계에서

그렇다면 당시 조선 대중들이 과학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어떤 것이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한 마디로 ‘환상’이자 ‘일상의 모든 것’으로서의 과학이었다.”(83쪽) 여기서 ‘환상’이라 함은 단순히 신기하고 새로운 물건에 그치지 않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인류 전체의 과거와 미래를 비춤을 뜻한다. 1930년 전후에 나온 대중신문과 저널에 실린 과학 관련 기사 속 이미지를 분석해보면, 발전된 신식 도시 번화가의 일러스트가 원시동굴 사진과 함께 제시되거나, 현대의 헤드폰처럼 보이는 물건을 쓰고 있는 어린이의 사진 또는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 등이 나온다. 저자는 여기서 당시 언론에서 볼 수 있는 과거와 미래의 비교가 과거를 과학이 부재하여 미개하고 야만적인 상태로 보고, 과학이 더 발전하는 미래에는 더 나은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유토피아적 미래관과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과학관이 존재하던 1920-30년대 대중들은 과학을 복잡하고 추상적인 글이 아닌 흥미롭고 신기한 ‘구경거리’, 일종의 ‘환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 과학은 부엌과 미용, 종교, 교육 등 삶의 “모든 것으로서의 과학”이기도 하였다.

 

<그림1> 원시거주지 동굴과 베를린 번화가 대조 (출처: 동아일보 1929년 7월 23일)

 

비슷한 시기 발명학회의 기관지이자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발행되었던 『과학조선』에 실린 과학의 이미지는 대중매체에 실린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조선』에서는 실제 성취될 가능성이 있고 현재 인류에 의해 성취되고 있는 매우 현실적인 과학기술을 보여주고 있다.”(86쪽) 가령, 비행선이나 최신 기계식 공장과 같이 과학기술의 발전 그 자체에 주목하거나 성취될 가능성이 있는 현실적인 과학기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대중적 과학상이... 실제 기술의 과정은 생략된 채 과학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막연한 ‘요술봉’으로 인식하는 듯한 시선으로 과학기술을 이용해 달라지는 인간 세상이라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과학조선』에서의 과학기술은 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텍스트와 함께 기술 자체가 프레임 안에 주인공으로 재현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대중의 과학 이미지가 일상과 기술, 과학지식의 총체적 성격을 담아 상상의 결과물로서 형성된 반면에 『과학조선』의 과학은 실제적인 가능성을 기준으로 과학을 선택하였고, 일상과 과학기술이 비교적 분리되어 있으며, 과학기술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재현되어 있는 것이다.”(86쪽)

 

<그림2>좌: 미래 기계를 보여주는 백두산 2호 표지/ 1936년 기사 사진 ‘장래의 세계’우: 과학조선 1935년 2월호 비행선, 비행기, 객선 사진/ 과학조선 1936년 1월호 생산 공장 사진.&#8232;

 

이처럼 대중이 인식하는 과학에 대한 이미지와 전문가들이 인식하는 것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발명학회는 그들이 추구하는 과학 대중화 운동을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하여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울 필요성을 느끼고 과학데이에서 등장하는 과학의 이미지는 환상이나 일상의 생활방식 속 과학이 아닌 “현실적으로 추구해야 할 ‘산업’으로서의 과학이미지를 현재 실현 가능한 가장 환상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 전략을 취했다.(87쪽)

 

“과학데이는 이렇게 대중의 관심과 흥미(삶의 총체적 방식으로서의 과학), 전문가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 및 관념(전문적인 산업과 발명의 과학) 사이에서 기획된, 그 틈을 메꾸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90쪽)

 

현실이지만
스펙타클한 현실

여기서 저자는 과학데이에 사용된 이미지 자체와 그 이미지가 유포된 방식, 2가지 관점에서 과학데이를 분석하며, 과학데이에 생산되고 사용된 이미지가 대중이 애초에 가지고 있던 상상 속의 과학과 전문가들이 인식하는 산업으로서의 과학을 절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우선 행사이미지로 사용된 포스터를 분석해보면, 포스터에 나오는 대상물이 『과학조선』에 등장하는 것과 같이 현실 속의 과학을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표현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과학조선』에 등장하는 과학이 복잡한 기계물이 사진으로 그대로 제시되었다면, 과학데이의 포스터에서는 동일한 대상이 더 이해하기 쉬운 도안 형식으로 그려지고 표현방식이나 색감에 있어서도 대각선 구도로 역동성을 강조하거나, 꽉 찬 화면에 채워진 화려한 색감으로 눈길을 끌게 했다.

 

<그림3> 과학데이의 포스터

 

과학데이 행사를 알리고 이미지를 유포하는 방식도 매우 혁신적이었다. 대표적으로 홍난파가 작곡한 과학노래를 틀며 ‘최첨단 기술의 산물’인 자동차 약 30대가 경적을 울리며 행진하는 행렬은 기껏해야 사람이나 수대의 자동차가 움직였던 과거와는 규모나 볼거리 면에서 비교 불가능하게 ‘스펙타클’했다. “이는 탈 것이자 메시지를 광고하는 수단으로서 자동차를 이용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산업과학의 산물 자체인 자동차의 기능을 완전히 활용·전시하여 과학의 힘을 감각적으로 과시하는 것이었다”(89쪽) 더불어 과학데이 행사에는 비행기를 이용해 삐라를 공중에서 대규모로 살포하고 활동사진 상영회, 기계설비의 공장 견학, 실험실 관람, 라디오 강연 등 당시 동원할 수 있는 최첨단 매체와 시설이 모두 동원되었다.

 

“과학데이의 스펙타클은 대중들에게 널리 퍼진 과학, 즉 모든 것을 빨아들이면서 동시에 현실에서 구체적인 어떤 것도 될 수 없었던 과학을 현실적으로 성취해야 하는 실체로서의 과학으로 당겨오기 위한, 절충적인 과학의 이미지라 해석된다.”(92쪽)”

 

<그림4> 1935년 4월 20일자 과학데이 자동차 행렬광경 사진

대중이 실제로 어느 정도로 주최 측의 의도에 맞게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이후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제 1회 과학데이가 열린 그 다음해부터 일제에 의해 대규모의 화려한 행사가 대폭 축소됨에 따라 제 2회 과학데이부터는 야외행사가 금지된 일부 라디오 방송과 강연회 정도만 열리며 사실상 “조선인 중심의 과학대중화 운동과 전문적 과학연구”가 쇠퇴하였다. 그럼에도 제 1회 과학데이는 상상이 아닌 실제에 대한 이미지가 깊은 인상을 남기고, 직접 체험하는 대규모 행사로 인해 다수의 대중에게 주최측이 의도한 동일한 이미지를 동시에 각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새로운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을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임종태, 「김용관의 발명학회와 1930년대 과학운동」 (『한국과학사학회지) 17(2), 1995년)

전상숙, 「물산장려논쟁을 통해서 본 민족주의세력의 이념적 편차」 (『역사화 현실) 47, 2003년)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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