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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에는 이중주어가 있다”이중주어의 문법적 성격에 관하여
정지원 리뷰어 | 승인 2018.02.14 08:00

 세계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국제 공용어로 자리 잡은 영어의 위상은 나날이 올라간다. 이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인들은 특히나 영어를 배우는데 열심이다. 우리는 항상 영어 공부를 강요받는다. 한국 사회의 이러한 영어 광풍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영어를 잘 못 한다. 이는 인도유럽어에 속하는 영어가 고립어인 한국어와 언어학적으로 거리가 먼 언어라는 데서 오는 점도 크다.

 한국어는 일반적으로 특정 어족(語族)에 속하지 않는 고립어로 여겨지는데, 이러한 한국어의 독특성은 문법에서도 드러난다. 그 특이한 것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바로 '이중주어(二重主語)'의 문제이다. 간단한 예시를 들자면, “나는 네가 좋다”라는 문장에서 '-는'과 '-가'는 둘 다 우리가 “은·는·이·가”로 모을 수 있는 주격 조사이다. 한 문장에서 주격조사가 두 번 쓰이는 것은 한국어와 일본어 정도를 제외하면 인도유럽어와 같은 다른 언어들에서는 보기 드문 문법적 현상이다.
 

(Map of Korean language, 출처: 위키백과)


 이중주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서울여대 이정택 교수「이른바 중주어문에 관하여: 서술절 설정의 당위성을 중심으로」 (『청람어문교육』 34, 2006년 12월)에서 중주어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기존의 연구들을 비교하며 다룬다.


중주어문에 관한
세 가지 관점

 저자는 주어가 한 문장에 이중, 삼중, 다중으로 등장하는 '중주어(重主語)' 현상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다루는데, 이 중주어문(重主語文)에 관해서는 '서술절을 지닌 복문(複文)', '실질적인 구조에서의 일반적인 단문(單文)', '문법 외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들이 있다.

 중주어가 있는 문장을 서술절로 보려는 시도는 이미 유길준이 '대한문전'(1909)에서 '총주어(總主語)'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을 통해 일찍이 시작되었다. 주시경은 '국어문법'(1910)에서 “그 사람이 맘이 착하오”(245쪽)의 예를 들어 이 문제를 다루는데, 이는 서술절 개념을 쓴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최현배도 '우리말본'(1937-1987: 742, 830)에서 “부지런한 학생이 성적이 좋으니라”(245쪽)와 같은 문장을 '풀이 마디'(용언절)을 가진 복문으로 보았다. 이러한 서술절 개념의 핵심은, 중주어문이 복수(複數)의 절을 가진 문장이라는 것이다.

 성생문법적 설명을 보면, 한 문장에 주격조사가 두 번 들어가더라도 이건 표면적인 현상이므로, 실질적으로 중주어문은 복문이 아닌 단문으로 파악된다. 예를 들면, “여우가 입이 짧다”, “우리 집이 식구가 많다”“여우의 입이 짧다”, “우리 집에 식구가 많다”를 실질적인 내용으로 삼는다. 하지만 여기엔 “자동차가 현대가 더 좋다”“자동차의 현대가 더 좋다”(246쪽)라고 바꿀 수 없는 반례 상황들이 있다는 문제가 있다. 박순함(1970)도 이와 유사하게 주제화 개념으로 중주어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데, 여기에도 주제를 나타내는 문법적 표식을 뚜렷하게 정리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중주어문을 문법외적 현상으로 보는 입장을 보면, 남기심(1996)의 사례가 있다. 그는 한국어를 “비형상적인(non-configurational) 속성을 지닌 특수한 언어”(247쪽)로 본다. 그는 이중 주어에서 첫 번째 주어가 두 번째 주어를 확인, 지정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문법적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례를 보면, “철수가 눈이 좋다”에서는 '철수'는 그 눈이 철수의 눈이라는 점에서 '눈'을 확인, 지정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저 아이가 사랑이 필요하다”(247쪽)에서는 이것이 성립하지 않는다. '아이'는 '필요하다'가 없이 '사랑'을 확인, 지정하는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술절 설정의
당위성

 저자는 중주어문을 기존의 서술절을 지닌 복문으로 보는 시각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 남기심이 복문에서 절표지(節標識), 그러니까 하나의 복합문장에 두 개의 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문법적 표식이 없다는 것과, 복문과 달리 중주어문에서 상위문의 주어가 내포문 속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서술절 설정의 당위성을 비판하는 것을 반박한다.

 우선 저자는 절표지가 없어도 종속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가 문제이다”(249쪽) 같은 예시를 통해 제시한다. 이 문장엔 명사절표지가 없지만 '느냐'라는 전성어미(轉成語尾)를 통해 절이 주어의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러운 문장이 된다. 이 전성어미는 “나는 순희에게 선생님께서 순희를 부르셨다 말했다”(250쪽)와 같은 인용절에서의 '-고'의 역할을 하는 절표지인 '인용토'처럼, 서술어에 다른 문법적 기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서술절은 전체 문장 안에서 자신의 원래의 기능인 서술어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절표지가 필요 없다고 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상위문의 주어가 내포문 속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말하자면, 주절 성분은 일반적으로 종속절로 이동할 수 없지만, 서술절에서는 가능하기에 서술절 개념의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반박한다. 이를테면 “서울이 건물이 색이 밝다”에서 “건물이 서울이 색이 밖다”“건물이 색이 서울이 밖다”(250쪽)로 구성요소의 위치를 바꿀 경우, 서울에 있는 건물이 색이 밝다는, 서울에 초점을 맞추는 문장이 건물의 색에서는 서울이 밝다는, 건물에 초점을 맞추는 문장으로 변하기에 의미가 다른 문장이 되어버린다.

 저자는 이어 “토끼가 앞발이 짧다” 같은 중주어문이 “선생님은 순희를 짐을 들렸다”(252쪽) 같은 중목적어문과 유사하다는 것을 토대로 중목적어문을 복문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중주어문도 복문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중주어문과 중목적어문에는 상이점도 있다. 중목적어문에서 첫 번째 주어가 서술어와 호응하는 반면 중주어문에서는 호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주어문에서는 첫 번째 주어와 두 번째 주어 사이에 층위가 있다고 할 수 있고 복문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당위성이 생긴다. 중주어 구문의 구조를 봐보면 이와 같다. “[우리나라는주어 {사람들이주어 (인심이주어 좋다서술어)서술절}서술절]”(253쪽)

 “저 아이가 사랑이 필요하다”, “저 아이에게 사랑이 필요하다”(253쪽)와 같이 중주어 구문이 다른 격으로 구성된 문장으로 대치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저자는 내용이 같다고 하더라도 문법적 형식이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저런 경우에도 서술절을 복문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런 측면에서 위의 문장은 “저 아이가 사랑이 저 아이에게 필요하다”(254쪽)와 같은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저자는 서술절을 설정하는 기존의 주장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논문을 끝맺는다. 그에 따르면 비록 서술절을 설정하는 것이 인도유럽어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언어가 인도유럽어와 같을 순 없다. 한국어는 인도유럽어와 다른 체계가 있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일한 ‘이중 주어 구문’에 대한 대조 연구: 일본어의 ‘주어유무 논쟁’과 한국어의 ‘서술절구 논쟁’을 중심으로」, 문창학 · 목정수, 『일본학 연구』 45, 2005

「국어 문법의 서술절 설정에 대한 비판」, 송창선, 『국어교육연구』 65, 2017



 

정지원 리뷰어  j.je@fu-berli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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