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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페미니스트들은 다윈효과를 어떻게 수용하였나?여성은 남성과 ‘다르지만 동등한’ 존재
문지호 리뷰어 | 승인 2018.01.31 16:48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얻고자 투쟁한 역사는 길고도 길다. 그 중에서도 참정권을 둘러싼 여성 권리 운동은 페미니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1세대 페미니즘 운동에 다윈의 진화론 이론이 한 때 유용하게 사용됐다는 점은 흥미롭다. 오현미 그의 논문 「페미니즘에서 '다윈 효과'- 진화론에 대한 1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적 수용」 (『페미니즘 연구』 17(2), 2017년)에서 1세대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권리를 정당화하고자 다윈의 진화론을 왜, 그리고 어떻게 수용하였는지를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기존의 '다윈 효과'에 대한 평가, 즉 다윈주의가 페미니즘에 미친 효과를 부정적으로 해석한 일반적 견해는 20세기 이후의 경험에 투시하여 나온 결론으로 19세기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이 논문에서 저자는 1세대 페미니즘에서 '다윈 효과'가 끼친 영향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 다음의 질문을 제기한다. "첫째, 왜 이들은 참정권을 옹호하기 위해 다윈 진화론을 수용했는가? 둘째, 이들은 다윈 진화론을 수용할 때 발생하는 난점들에 대해 어떤 해법을 제시했는가?" (50-51쪽)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블랙웰의 저서는 이에 대한 답을 일부 해결해준다. 

 

<그림1> 미국의 참정권운동과 참정권론자였던 블랙웰Antoinette Louisa Brown Blackwell

 

동일성에서 차이의 프레임으로:
젠더 이데올로기의 경합장
 
잘 알려져 있다시피 1859년 다윈의 저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이하 『종의 기원』)은 출간 직후 영국과 미국의 과학계와 종교계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는 페미니스트들이 참정권과 교육받을 권리, 재산권, 노동권 등의 '여성문제'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오가던 때이기도 하였는데, 다윈의 새로운 이론은 이들 페미니스트들 운동을 지지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18세기 이전의 빅토리아 시기 사회적으로 지배적이었던 젠더 이데올로기는 무엇이었을까? 종교적 세계관과 자연법 전통이 그 두 가지이다. 우선, 기독교 사상이 강력히 뿌리내린 당시 사회에서는 성경의 창세기에 근거하여 아담과 이브로 묘사되는 남녀를 '동일성'의 프레임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즉, 남성이 존재하고 여성은 남성인 아담의 갈비뼈에서 빚어진 이브로 둘은 하나의 몸으로 여겨졌다. 다른 한편, 자연법 전통에서는 계몽주의의 평등사상에 영향을 받아 남녀의 몸은 물리적으로 차이는 있을지언정 욕구, 이혜관계, 이성적 능력은 같다고 전제했다. 요컨대, 18세기 이전까지는 남녀는 '한 가지 몸'이지만 완전함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고 여긴 것이다.  
 
'동일성' 프레임이 붕괴되고 '차이'의 프레임으로 전환한 것은 18세기 산업혁명의 영향이 크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가내 생산에서 남녀가 가사노동을 분담하고 둘의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 산업혁명 이후에는 생산 영역이 외부로 분리되어 남성의 공적 영역으로 할당되고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가정은 여성의 영역으로 구분되었다. 이때부터 남녀는 한 몸이라는 동일성 프레임보다 '차이'를 가진 존재들로 생각되었다. 남성성은 외부 공적 작업장에서 필요한 능력인 야심, 권위, 권력, 용기, 이성 등으로 대표되었고, 여성성은 가정 내 양육과 가사에 필요한 온화함, 감수성, 이타주의, 부드러움, 연약함 등으로 정의되었다. 이에 따라 이성을 가진 남성이 정신적으로 여성보다 우월하고, 여성은 이타성이 강한 도덕적으로 더 나은 존재로 정의됐던 점에서 둘의 결합은 상보적인 성격을 가진다 여겨졌다.    
그러나 '동일성' 관념이 '차이와 상보성' 관념으로 급작스럽게 변화한 것은 아니었다. 두 프레임은 오랜 시간 공존하고 경합하는 과정을 통해 차이의 프레임으로 옮겨갔다. 저자에 따르면 19세기 후반까지도 여성 참정권 논쟁은 여전히 성경의 틀 안에서 진행되었고, 많이 약화되었다 할지라도 자연법 사상에 근거한 주장 역시 계속 이어졌다. 다윈의 새로운 진화론 이론은 당대 담론장을 지배하던 '동일성' 프레임에서 '차이'의 프레임으로 확실하게 이동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본질주의 vs. 반본질주의
남성이자 과학자라는 이중적 위치를 가진 다윈
 
"다윈 진화론은 종교가 지배하던 당대의 세계관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일종의 혁명으로 볼 수 있다." (56쪽) 당시 종교진영은 신에 의해 창조된 세계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는 '종의 불변'을 옹호하는 본질주의적 견해를 주장한 반면, 과학진영은 '종의 변화'를 주장하는 반본질주의적 입장이었다. 이런 점에서 진화론은 과학진영의 반본질주의적 성격을 뒷받침하는 '진보'의 교의로 수용되었다. '변화'라는 관점에서 다윈주의는 현존하는 질서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본질주의자들의 논리를 타파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다윈 이전에 진화 이론을 주장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다윈은 진화의 기제를 충분한 근거를 통해 증명했다는 점에서, 세계를 성경이 아닌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보였기에 혁명적이었다. 
 
다윈의 설명에서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 살아남아 진화한다는 자연선택설은 유명하다. 그러나 하나 더 주목할 부분은 '성 선택'이라는 자연법칙이다. 그는 『종의 기원』을 통해 종이 진화하는 원인을 밝혔지만, 수컷의 화려한 장식처럼 오히려 생존에 방해가 되는 형질이 어째서 계속 유지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자연 선택설을 지지하자면 암수의 눈에 띄는 차이들은 그들의 생존에 위협을 주기 때문에 진즉에 사라져야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이후 출판한 『인간의 유래』에서 설명했는데, 그에 따르면 암수의 차이는 '생존'이 아닌 '번식'과 관련한 적응에 따른 진화이다. 즉, 암수의 차이는 짝짓기를 위한 결과로, 수컷의 화려한 외형은 암컷을 얻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었다. 다윈은 이를 앞서 제시한 '자연 선택'과 구분하여 '성 선택'이라 명명한다. 
 
"진화론을 수용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진화론이 밝힌 자연법칙 즉 자연 선택이나 성 선택을 전시대의 자연법사상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경향을 보인다." (64쪽)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다윈의 설명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세계'를 상정함으로써 기존 세계를 변화시켜 진보해야 한다는 주장의 무대를 마련하고, '성 선택'의 주체가 암컷이라는 점에서 빅토리아 시대에 지배적이었던 '수줍은 여성'이라는 관념을 뒤엎고 새로운 젠더 이데올로기를 제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다윈의 설명이 여성에 완전히 우호적인 설명은 아니었다. 그는 성차 관념을 제시하면서 남성이 여성보다 정신적으로 우월하다 하였고, 그 관념을 해부학적으로 증명하면서 강화시켰다. 다윈 역시 빅토리아 젠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성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다윈의 진화론은 이후 페미니스트들에게 중요한 이론적 기반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논문의 후반부는 1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성차별적인 다윈의 진화론을 왜 수용할 수 밖에 없었고, 어떻게 수용하였는지를 분석하는 장이다. 
 
 
다윈이 마련한 새로운 담론장: 
종교적 세계관과 자연법 전통을 벗어나기
 
세기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은 여러가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우선 19세기 초반 종교부흥운동 속에서 성장한 여성 참정권 운동은 자연스레 기독교에 뿌리내릴 수 밖에 없었다. 여성 참정권 옹호론자도 반대론자도 성경과 '아담과 이브' 논리에 근거해 그들의 주장을 펼쳤다. 반대론자들은 남성의 갈비뼈에서 탄생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 여겼고, 옹호론자들은 성모마리아를 통해 참정권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성서에 기반한 페미니스트들의 논리는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 이상을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남녀의 욕구와 이성, 이해관계는 동등하다는 자연법 논리 역시 남성 사상가들에 의해 여성의 독자적 참정권을 부정하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데 굳이 여성이 독립적인 권한을 가질 필요가 무엇이며, 여성은 그저 남성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젠더 동등성'이라는 자연법 아래 보호받았다. 
 
"자연법과 성경의 동일성의 프레임 모두 여성의 동등한 참정권을 정당화 하지 못했고 오히려 여성 종속을 지속하는 무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남녀에 대한 동일성의 모델이 제기하는 난점에서 벗어나 여성의 독자적인 참정권을 정당화하려면, 무엇보다 여성이 남성과 구별되는 고유한 욕구와 필요를 가진 존재로 정의되어야 했다. 이는 남녀의 타고난 몸과 마음의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다." (70쪽) 
 
페미니스트들은 자연법과 성격의 '동일성' 프레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프레임을 필요로 했고 다윈은 이에 매우 적절한 자원을 제공하였다. '차이'가 바로 그것인데, 여성들은 남성과 다른 여성의 '차이'를 드러내며 역설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정당화하였다. 여기서 다윈의 진화론은 여성이 남성의 부속물도 아니며, 남성이 여성을 대의할 수 없음을 주장하는 근거로 역할하였다. 
 
다른 한편, 진화론은 페미니스트들로 하여금 불변의 세계를 가정하는 성경이나 추상적인 논리만을 앞세우는 자연법에서 벗어나, 객관적 증거를 통해 검증 가능한 '과학'이 참정권 논쟁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게끔 하였다. 이들은 수컷이 양육을 맡는 사례처럼 암수의 다양한 역할을 사례로 들어 당대의 여성 억압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1세대 페미니스들이 진화론을 변화에 대한 옹호로 받아들인 것은 20세기에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사회생물학을 인간 삶에 대한 변화를 가로막는 결정론과 운명론으로 이해하였던 것과 비교된다. 20세기 사회생물학은 변화보다는 그에 대한 생물학적 '제약'에 강조점을 두었다... 반면 19 세기 다윈 진화론은 반본질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변화를 옹호하는 진보적 사상으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74쪽) 
 
 
다르지만 동등한 여성
평등에서 등가로:
 
그러나 1세대 페미니스트들이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이자면 다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본 다윈의 설명은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 또한 남녀차이의 모델을 수용하자면 남녀평등론과 모순이 생기는 지점을 어떻게 해결할지 하는 게 그 문제이다. 

 

<그림2> 블랙웰의 저서 『자연계에서의 성』 표지

 

논문의 저자는 1875년 출판된 최초의 페미니스트 비판서인 블랙웰의 저서 『자연계에서의 성』를 통해 이 문제를 분석한다. 우선, 다윈의 설명에 대해서 블랙웰은 남성 진화론자들이 과학 연구를 하면서 수컷에만 관심을 갖고 연구했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론이 잘 실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암수에 대한 대등한 관찰을 통해 이 주장을 뒷받침하였는데, 암수가 등가적 특질을 보이는 사례들을 모으고, 암수가 비록 차이는 있지만 그 가치는 등가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즉, 남녀의 우월 관계는 정할 수 없고 두 성별은 서로 다른 차이를 상호 보완하면서 상호 공존하고 각각의 가치는 동등하게 여겨진다고 주장한 것이다. 
 
두 번째로, 평등-차이 딜레마에 대한 해법으로 블랙웰은 역시 '평등'과 '등가성'을 구분하며 수사의 프레임을 '평등'에서 '등가성'으로 이동시켰다. 이를 통해 블랙웰은 자연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존재론적 차이와 권리의 동등성을 결합하는 새로운 담론지평"을 개방시켰다. (81쪽) 블랙웰은 여성은 남성과 '다르지만 동등한(different but equal)' 존재로 규명하며 남성의 그늘에서 여성의 독립성을 구하려 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평등한 권리를 위해서 존재론에서 남녀 차이보다는 동일성을 가정하는 자연법적 논리를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동등한 권리를 위해서 반드시 성적 차이를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성적 차이를 다루는 방식이다. 남녀의 존재론적 차이를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할지, 혹은 차이의 권리를 옹호하는데 사용할지, 평등한 권리를 옹호하는데 사용할지는 담론 전략의 문제일 것이다." (84쪽) 
 
저자는 마지막으로, 남녀의 성적 차이를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가 페미니즘 운동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적 차이를 부정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평등과 차이의 딜레마를 어떻게 잘 극복하려 했는지를 1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사례는 잘 보여준 셈이다.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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