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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이길 거부한다황우석 사건 이후 난자 기증 여성들을 둘러싼 담론 분석
문지호 리뷰어 | 승인 2018.01.29 23:40

현대 생명공학 기술이 발전하며 DNA, 혈액 등과 같은 인체 조직 샘플은 중요한 실험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윤리적 규범과 사회적 합의가 미비한 상황에서 연구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논란에서 불거진 여성의 난자, 제대혈 채취와 사용이 문제시되며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이 문제를 둘러싼 찬반론자들은 실험에 사용한 여성 몸의 일부가 ‘폐기물’의 일종이기 때문에 연구에 ‘재활용’ 하는 게 정당하다는 입장과 ‘신성한 몸’을 침해 당한 여성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반대편 진영으로 나누어졌다.

정연보는 그의 논문 「여성의 ‘몸’과 생명공학 연구- 몸의 ‘미결정성’과 과학 연구에의개입」 (『페미니즘 연구』 14(1), 2014년 4월)에서 여성의 몸을 ‘폐기물’ 또는 ‘소중한 것’으로 이분화하는 기존의 논의를 비판하면서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몸의 활용 방향과 신체물질 공여자로서 역할한 여성의 주체적인 행위성을 다각도로 접근할 필요성을 주장한다. 

 

여성의 몸을 둘러싼
이분법의 한계

그동안 연구자들은 장기 기증의 수혜자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미지로 묘사되는 반면 장기 공여자는 담론에서 배제되어 왔을 뿐 아니라 공여자의 상당 수가 저임금 국가의 사회적 약자 계층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장기 수급과 배분에 있어 역시 인종적, 계급적, 젠더적 불평등과 부정의가 존재한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119쪽) 그렇다면 이제 신체 중 일부가 실험에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정당화 된다면 그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또한 어떠한 사람들이 어떠한 이유에서 이러한 재료의 공여자가 되는가? 

 

 

"에밀리 마틴(Martin, 2001)은 의학 텍스트에서, 여성이 매달 겪는 주기는 난자를 생산하여 아이를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묘사되며, 월경은 아이를 만드는 데 ‘실패’한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였다. 여성의 배란과정에 관한 설명에서는, 난포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존재해있으며, 난자가 생산되기보다는 마치 재고가 쌓여 단지 선반 위에서 퇴화하고 늙어가는 것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반면 남성의 정자 생산은 낭비적인 것으로 그려지지 않으며 남성의 재생산 생리는 생산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120쪽)

황우석 사건의 줄기세포 옹호 담론에서 여성의 난자 이용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주로 사용되었던 주장은 임신에 기여하지 않고 쓸모없이 배출되는 ‘잉여’물인 난자를 ‘재활용’한다는 것이다. 즉, 어차피 그냥 두면 버려질 ‘폐기물’인 물질을 유용하게 활용하기 때문에 난자 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난자 채취를 위해 수반되는 과정의 위험성을 비가시화하고, 불임클리닉에서 여성에게 난자와 배아를 생산하여 냉동보관하게끔 유도하는 관행이 고착되는 현실을 간과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기술이 특정 신체를 이용하려는 의도를 반영하여 발전하는 점을 상기하면 여성의 난자를 “‘잉여’ 혹은 ‘폐기물’이라 불리는 물질들이 생명공학 기술에 이용 가능한 상황을 만드는 데에는 젠더 규범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121쪽) 이 과정에서 기증자에게 채취에 따르는 위험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고, 기증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기증된 물질이 질병 치료가 아닌 미용이나 노화 방지의 상업 목적으로 은밀하게 이용될 가능성 또한 문제이다. 

황우석 사건의 비판 담론에서는 난자를 폐기물로 보는 주장에 대항하며 여성의 몸에서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떤 부작용을 야기하는지를 드러내며 ‘피해자’로서의 여성의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이 담론에서 여성들은 황우석 연구팀과 미디어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로 묘사되며 난자를 포함한 여성의 몸은 소중하게 보호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상정되었다. 논문의 저자는 여성의 몸과 공여자에 대한 이런 시각들이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단순화시키거니와, 여성의 몸은 미래를 위해 “‘변형’ 또는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류의 보수적 인식과 공명”했다는 점에서 “여성의 행위성(agency)을 충분히 담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127-128쪽) 즉, 피해자인 여성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그들이 왜 기증을 결심했는지, 이런 과정에서 어떤 맥락이 작용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연스레 배제하고, 여성의 몸에 대한 기존의 보수적인 시각을 강화할 위험이 있었다. 

 

적극적 참여자로 ‘비전문가’
몸의 ‘미결정성’과 행위성

이렇듯 정연보는 여성의 신체를 ‘폐기물’이거나 ‘소중하고 신성한 존재’로 보는 기존의 이분법적 시각을 탈피해 ‘재생노동’과 ‘미결정성’이라는 관점을 시작으로 여성의 몸을 새로이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재생노동(regenerative labor)’은 “신체물질의 공여를 ‘노동’으로 보는 페미니스트 시각”의 연장선에서 줄기세포 연구에서 과학자들의 업적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배제된 여성 공여자들의 역할을 드러내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 줄기세포 연구와 같은 재생의학에 사용되는 몸의 “잠재성”을 인정하는 게 중요한데, 몸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가능성이 산업에서 중요하게 재협상 조건으로 의미를 가지며 결과적으로 공여자의 공여 행위를 하나의 행위이자 노동으로 인정한다. 동시에 몸이 연구에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지, 신체의 어느 부분이 사용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몸의 ‘미결정성’을 환기한다는 의미로 중요하다. 이런 시각의 전환은 여성을 피해자나 수동적인 이미지로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여성의 행위성을 전면으로 드러내고 주목하게 만든다. 이 논문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공여자의 인터뷰 자료와 인터넷 담론 분석은 이러한 측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나는 알 권리가 있다
개입과 통제를 향한 비전문가들의 관심 

황우석 박사 연구에 난자를 기증한 여성들을 무지한 피해자로 보는 시각은 이들의 다양성을 간과하는 위험을 낳는다. 저자는 난자를 제공한 많은 여성들이 과학기술에 희망을 갖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불확실성과 의문들, 과학기관들에 대한 불신 등 ‘양가적인 태도’를 가진다는 것을 중요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135쪽) 황우석 지지 카페의 글을 분석한 저자는 난자를 기증한 여성들은 그들의 행위에 맹목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기 보다, 오히려 난자 채취 행위와 연구에 대해 많은 의문과 불안감도 갖고 있으면서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공여자들이 언론에서 만들어낸 ‘성녀’ 이미지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생식 세포 및 조직들은 여성의 몸에서 생산된 것이지만 여성들은 단지 채취의 위험성만 감수할 뿐 그로부터 생산된 생산물에는 거의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따라서 이 글은 위에서 언급한 몸의 미결정성의 측면에서 기증 이후의 목소리 확보에 대해 고민할 필요를 제기한다(142쪽)... 여성을 수동적 피해자로 간주하기보다는, 생식 세포 경제의 중요한 행위자로서 인체조직의 채취과정과 사용방향 등에 관한 여러 정책 결정 등에 있어, 이들의 목소리를 비중 있게 다룰 필요를 제기해야 한다. (144쪽)”

또한 저자는 난자 제공자 A를 인터뷰하며 그가 이미 단순한 공여자를 넘어 과학기술과 윤리, 여성의 몸에 대해 상당한 식견을 가진 ‘전문가’가 되어 있었음을 지적하며 그가 기증 이후 난자의 활용과 연구의 향후 방향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따르면 공여자들은 많은 고민과 논쟁으로 그들 몸에 대해 가진 관심과 생각이 변화하는 시간을 겪었다. 이를 통해 그들은 그들의 기증 행위가 제 가치로 인정 받기를 원했고, 기증에 따른 위험성과 이후 활용에 대한 충분한 정보, 그리고 이 과정에 그들이 개입할 수 공간을 필요로 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일방적 ‘성녀’ 이미지의 굴레가 아닌 진정한 알 권리와 참여 공간인 것이다.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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