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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페미니즘과 그 불만영미권 페미니즘 담론에 나타난 세대론과 역사쓰기
정강산 리뷰어 | 승인 2018.01.17 15:45

부모 세대가 일군 복지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베이비 붐 세대 이후의 “X세대”와, 저소득이 예고된 비정규직과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여느 때보다 낮은 평균급여를 받는 이들을 지시하는 “88만원”세대, 단일하게 구획된 원룸형 입방체에서 벗어난 주거의 경험을 할 수 없는 젊은 층을 가리키기 위한 박해천 식의 “큐브세대”에서부터-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등을 포기한 2~30대를 암시하는 “5포 세대”, 포기의 범위가 이보다 훨씬 더 추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n포 세대” 등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조건을 반영하는 여러 세대 담론들은 여느 때나 변함없이 번창해왔다.

허나 이는 분석의 계기로서 다소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요컨대 세대론은 시대적 단절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체계의 연속성을 인지하는데 취약하며, 반대로 역사적 변화를 나타내기 위해 제기되었던 본래의 맥락과 무관하게 초월적인 실체로서 사용됨으로써 그릇된 판단을 내리게 하고, 무엇보다 주체의 담론을 손쉽게 전유하여 저급한 포퓰리즘적 수준의 세대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는 소위 386세대를 향한 두루뭉술한 경멸이나, 이미 자신의 자리를 꿰찬 것으로 가정되는 이전 세대로 흐르는 분노의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예컨대 수년전 제기되었던, 국립현대미술관에 청년관을 만들자는 주장이 한 사례가 될 수 있겠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론은 변화하는 시대의 눈금을 어림해보려는 시도로서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기에, 그것을 윤리적으로 비난하기 보다는 내재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갖는 것이 긴요할 것이다. 이는 요즘 유행하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쟁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릿터(Littor)를 비롯한 여러 문예지가 자가 갱신을 표방하며 세대론과 페미니즘을, 혹은 ‘세대론으로 무장한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화두로 삼는 모습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을 서사화하고, 시대를 규정하는 작업이 세대론으로 과연 충분히 수행 가능한지, 그것이 가능하다면 세대론을 보다 급진적으로 전유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쟁점인 듯하다. 조선정, 「포스트페미니즘과 그 불만_영미권 페미니즘 담론에 나타난 세대론과 역사쓰기」(한국여성학 4분기 30호, 2014)는 이러한 맥락에서 포스트페미니즘의 세대론을 검토한다.

‘포스트페미니즘’의 기원

서두에서 저자는 90년대 이후의 ‘포스트 페미니즘(postfeminism)’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 제시하며, 본 용어의 경계를 정의하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에 따르면 포스트페미니즘은 으레 ‘post-’라는 접두어가 내포하는 단절 및 연속성과, ‘페미니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가진 넓은 의미를 고려할 때 논쟁적일 수밖에 없으며, “주류화/제도화한 페미니즘을 가리키는 말”에서부터 “과거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음을 드러내는 통계지표나 대중문화에서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를 통칭하는 말”(48)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용례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주석, 개입, 도전, 질문, 반응, 호출, 환기”(49)라는 측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일종의 의미화과정으로 독해될 수 있는 것으로서, 특히 다음과 같은 특징을 공통적으로 내포한다. 즉 포스트페미니즘은 1. 여성주체를 ‘세대’ 단위로 규정하고, 2. 페미니즘의 역사를 순차적이고 연대기적인 맥락에서 이해한다. 따라서 본 논문의 주요 범위는 여성주의 세대담론이자 역사기술의 방법론으로서의 포스트페미니즘을 분석하는 것이라 간주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우선 현대적 용례에서 포스트페미니즘의 역사는 대략 30여년이나, 그 기원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 여러 국가들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얻은 이후의 시기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것에서부터 찾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애초에 ‘페미니즘’이라는 개념 자체가 19세기말 영국, 20세기 초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과 관련하여 쓰이기 시작되었음을 떠올리면 당연한 사실인데, 이러한 용법에선 참정권의 획득과 동시에 페미니즘은 소멸하고 성별구분에 주목할 당위는 사라진다. 저자는 1987년 발행된 낸시 코트(Nancy Cott)의 선행연구를 참조하여 1919년에 적지 않은 여성들이 위의 용례를 따라 자신들을 ‘포스트 페미니스트’라 칭한 바 있다고 말한다. 허나 60년대가 되면 페미니즘은 다시금 사회변혁운동의 맥락에서 활발히 제기되는 쟁점이 되는데, 1963년 미국에서 출판된 프리단(Betty Friedan)의 󰡔여성다움의 신화󰡕(The Feminine Mystique)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중산층 가정주부의 우울감을 ‘여성다움’에 함몰된 필연적인 효과로 조명해냄으로써 잠시 동력을 잃었던 여성해방운동에 불씨를 지피는데 공헌한다. 더불어 유럽에선 68혁명을 전후로 급진 페미니즘이 발전하는데, 이 흐름은 정신분석 및 사회주의운동과 공명하며 세를 키워나갔다. 영미권과 유럽 등지에서 발생한 이런 조류들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신좌파적 테제와 ‘자매애는 강하다’라는 급진 페미니즘의 표어를 전유하고, “가사노동, 가정폭력, 피임과 낙태를 둘러싼 자기결정권, 임금차별 철폐” 등을 쟁점화하며 자신들의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게 된다.

 

부정적 용례의 '포스트페미니즘'

이런 과정을 거쳐 1982년엔, <뉴욕타임즈>의 편집장 볼로틴(Susan Bolotin)의 특집기사 󰡔포스트페미니스트 세대의 목소리󰡕에서 포스트 페미니즘이라는 용례는 다시금 부정적으로 출현한다. 여기서 그녀는 “그해 여름 헌법에 여성 차별금지 조항을 삽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남녀평등헌법수정안이 십년에 걸친 비준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사실을 개탄하며”(52) 당시의 젊은 여성들로부터 주체적인 조직화의 계기를 찾기 힘들다는 점을 토로하는데, 볼로틴의 의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대가 전선을 가다듬는 단계에 있음에 주목하고 섣부른 비관을 지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80년대의 신보수주의 체제를 경유하여 제 1세계에서 여성의 노동력시장진출이 어느 정도 가시화된 상황에서 ‘포스트페미니즘’은 더 이상 존재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루하게 버틴다는 의미가 짙은 경멸 섞인 용례로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수잔 팔루디(Susan Faludi)를 빌어 이런 용례로 사용되는 포스트페미니즘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시화한 것을 페미니즘의 완성으로 과장하면서 여성이 겪는 실질적인 임금차별이나 열악한 처우를 은폐하는 수사적 전략이자 그런 전략을 밀어붙임으로써 페미니즘의 공론장 자체를 폐쇄하려는 미디어의 선전선동”(53)이라 정리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포스트페미니즘은 1. 20세기 초반 참정권 획득 이후의 페미니즘을 가리키거나, 2. 비관 어린 맥락에서 조명되는 볼로틴식의 모델에 이어 보수주의자들의 반 페미니즘적 공격으로부터 부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순차적으로 나머지 3 가지 양상을 검토한다. 세 번째로 저자가 주목하는 포스트페미니즘의 측면은 제 2물결 페미니즘의 일부 의제에 대한 일종의 반테제로서 제출된 흐름으로서, 이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80년대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나머지 투쟁하기보다는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하는 전략에 의존하면서 초심을 상실했다”. 이는 에이즈(AIDS) 파동에 의해 섹스와 관련된 쟁점이 후퇴하고, 부분적으로 “남성폭력 반대운동과 포르노그래피 반대운동이 페미니즘의 의제를 독점한 상황”(Ibid)에서 기인하는데, 이에 따라 데이트강간과 같은 이슈에 성폭력 반대운동이 내놓은 일부 대응은 외려 자상하고 상냥한 섹스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데 일조하며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인 여성상을 공고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데보라 시에겔(Deborah Siedel)을 참조한 저자에 따르면 “섹슈얼리티에 대한 안전지향주의적인 경향은 일찍이 1982년에 뉴욕바나드대학교에서 있었던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한 기념비적인 학술대회에서 물꼬가 트인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이런 맥락에서 포스트페미니즘은 앞선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을 빅토리아 시대의 조숙하고 위선적인 여성들과 비교하거나, 그들의 금욕적이며 남성혐오적인 경향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저자는 나오미 울프(Naomi Wolf)를 이러한 포스트페미니즘의 경향의 대표주자로 셈하는데, 울프는 1993년 자신의 저서 󰡔불에는 불로: 새로운 여성의 힘과 그 사용법󰡕(Fire with Fire: The New Female Power and How to Use It, New York: Fawcett)에서 “남성적 가치체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출세, 권력욕, 성공신화 등을 페미니즘이 적극 포섭하자고 제안”(54)하며, 성차는 단지 주어진 것을 기술하는 것이지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평등을 지향하기 위해선 ‘피해자 페미니즘(victim feminism)’에서 ‘파워 페미니즘(power feminism)’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녀 주장의 요체다. 저자는 울프의 주장이 소수자로서 여성의 객관적인 위치를 인정하면서도 피해자라는 사실이 여성주체의 형성에 결정적인 사항은 아님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페미니즘에 대한 울프식 비판은 “참여, 쾌락, 평등, 책임, 자신감, 당당함 등의 요소”(Ibid)를 전유하며, 포스트페미니즘의 용례를 보다 페미니즘적으로 굴절시킴으로써 반-성폭력 의제에 고여 있던 당시의 페미니즘에 일종의 돌파구를 연 셈이나, 여성주체를 적극적으로 상상해내게끔 하는 미덕을 좋게 평가하더라도 “차이와 평등을 대립시키는 오랜 논리를 반복한다든가, 자기계발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 부족하다는 점”(55)은 그 한계임을 지적한다.

 

‘포스트페미니즘-대중문화’의 변증법과
‘포스트구조주의-포스트페미니즘’의 공명

이어 포스트페미니즘의 4번째 측면은 미디어 중심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저자는 포스트페미니즘이 미디어로부터 분리되어 사고될 수는 없음을 논구하며 제임슨 식 비유를 들어 “포스트페미니즘은 후기 자본주의에 (혹은 전지구적 신자유주의에) 상응하는 페미니즘이라 할 만하다”(Ibid)고 언급한다. 즉 권력의 첨병으로서의 대중문화는 “페미니즘에 수시로 접속하고, 페미니즘은 미디어가 다룰 수 있는 무엇, 미디어가 재현할 수 있는 무엇으로 간단하게 복제”되며, “페미니즘이 지속적으로 미디어의 호명을 받을수록, 페미니즘의 접근성이 실현될수록, 페미니즘의 재현이 일상화될수록, 포스트페미니즘이 구현된다”(Ibid)는 것이다. 이른바 ‘헐리우드 페미니즘’, 즉 애슐리 주드, 엠마 왓슨, 레나 던햄, 레이디 가가, 비욘세 등에 의해 논해지는 페미니즘을 보노라면 우리는 그것이 셀럽들과 텔런트들의 생리와 매개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중문화를 통해 표현되는 양상을 관측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옳게도 “드라마 속 앨리 맥빌이 얼마나 전형성과 동시대성과 핍진성을 담보하느냐라는 질문은 차치하고, 페미니즘이 어떤 방식으로 잡지 표지에서 소비되는가라는 질문이 더 본질적”(56)임을 지적한다. 그에게 포스트페미니즘의 이런 측면은 현실에 있는 여성의 위치를 지우고, 여성을 미디어에 재현된 이미지를 통해서만 논해질 수 있는 존재로 전락시키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페미니즘의 공론장 자체가 대중문화와 등치되는 효과가 발생”(Ibid)하는데, 이는 다소 확장하여 여타 SNS 상의 해시태그 달기 캠페인이나 ‘좋아요’와 ‘리트윗’을 통해 빠르게 순환되는 얇은 두께의 글들이 공론장에서 과잉표상 되는 측면에 적용시켜도 유요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런 측면에서 대중문화 텍스트가 남성 지배권력을 온전히 남겨둔 채 페미니즘을 소비하도록 유도한다고 주장했던 타니아 모델스키(Tania Modleski)를 인용하며, “대중문화가 여성의 욕망을 재현하는 한 통로처럼 보이면서도 그것을 관리하고 봉쇄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는 비판”(57)이 페미니즘 문화연구의 주요한 준거가 된다는 점을 명시한다.

이어 저자가 살펴보는 포스트페미니즘의 다섯 번째 측면은 재현의 정치성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로서 출현한 것으로서, 여기엔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의 핵심 개념들- 탈 주체, 탈 중심성, 비동일성, 복수성, 수행성 등을 페미니즘적 인식론 내부에서 관철시키기 위해 성적 차이를 구성된 것으로 간주하며 결과적으로 현실의 여성으로부터 멀어진 버틀러식의 퀴어 이론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는 논리적으로 1. 여성 주체를 단일한 것으로 가정하여 정체성의 정치에서 출발하는 기존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며, 2. ‘여성’이라는 범주 이전에 동성애의 기원과 퀴어 정치학을 계보학적으로 탐구하게 된다.

 

제3의 물결과 포스트페미니즘의 세대론 검토

이제 저자는 이러한 포스트페미니즘의 경향들에 대한 일종의 돌파구로서 주창된 페미니즘의 제 3 물결에 대해 소개한다. 여기에선 단절적 의미가 강조되는 ‘포스트페미니즘’과는 달리 ‘제 2물결’과의 연속성이 보다 주목되는데, 이에 개입한 대표적인 연구서인 <제3물결의 쟁점Third Wave Agenda>이나, 흑인 페미니즘 소설가 앨리스 워커Alice Walker의 ‘우머니즘Womanism’(여성의 경제적 참여와 노동시장 진출을 장려했던 백인 중산층 중심의 ‘페미니즘’은 제 1세계 1등 시민들의 전유물이기에, 흑인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이 해방이라기보다 외려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는 점을 모른다고 주장하며- 그녀는 풍자를 섞어 ‘아줌마주의(혹은 식모주의, 하녀주의, 가정부주의로도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개념을 주창했다) 등이 공통적으로 점유하는 심상은 백인 중산층 중심의 주류 페미니즘에 균열을 내어 논의를 다변화하고, 제3세계 유색인종 페미니즘과 보다 공명하며 다양성과 차이 등의 가치를 전유하고, 규범적 이상보다는 개인적 욕망과 일상적 실천들을 강조하는 것이다.

요컨대 <제3물결의 쟁점>에선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 ‘자매애는 강하다’ 등 제2물결 페미니즘의 기조들은 편협한 것으로 비판되지만, 그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계승되며 개인, 정치, 자매 등의 범주를 현실적으로 재정의하자는 제안이 제기된다. 저자에 따르면 제3물결은 “포스트페미니즘의 반 페미니즘 경향에 대한 교정이자 페미니즘의 정치성을 복원하려는 문화적 기획으로서, 포스트페미니즘과 미묘한 긴장관계에”(63) 있는 것으로, 제2물결이 여성 주체와 관련하여 선택의 내용을 강조한다면, 제3물결은 선택의 가능성 자체를 강조하는 특징을 지닌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제 저자는 포스트페미니즘이 가진 세대론적 전제를 발본적으로 비판한다. 즉 저자는 세대라는 주체단위를 중요하게 간주하는 포스트페미니즘의 경향을 문제 삼는데, 이에 따르면 “세대는 단순히 동시대성을 공유하는 연령집단이 아니라 세대의식을 가지고 사회변동의 주체로 활동하는 적극적인 주체모델”이지만, 특정한 세대의 출현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변동을 가능케 하는 역사적 환경과 조건이 어떤 세대와 맞물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64) 즉 많은 논자들이 망각하고 있지만, 결국 세대론에서도 핵심이 되는 것은 “그 세대의 의식과 무의식, 정서와 취향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의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역사적 현실”(Ibid)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제 2물결이 제기한 불평등, 차별, 폭력, 가부장제의 제도적 억압 등의 주제에서도 특히 성별임금격차나 낙태와 같은 쟁점은 지구적 금융위기와 고용유연화, 빈곤 등과 깊게 연결된 것으로 나타나지만, 포스트페미니즘이 흔히 제기하는 X세대와 같은 세대론은 이 만큼 충분히 규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저자는 더 나아가 이것이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단순화되는 페미니즘 자체의 세대론의 빈약함과도 관련된다고 꼬집는다).

이어 그는 세대론의 시각에서 나타나는 페미니즘이란 한편으론 비역사적이게도 총체적이고 고정적인 실체이자, 다른 한편으론 분절된 파편이 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즉 세대라는 범주의 남용은 현실의 여러 차이들이 세대라는 모호한 소급점으로 환원되어 총체적으로 고정되는 한편, “페미니즘을 90년대 ‘정체성 정치’가 노정한 포퓰리즘의 편향에 노출”(66)시킴으로써 “정체성이 구성되는 사회적 맥락의 복잡하고 미묘한 얽힘을 이해하고 억압을 해결하는 대신 특정 집단을 식별과 분류가 가능한 범주로 묶어내 정체성을 확인하고”, “정치공학적인 포퓰리즘의 입지를 강화”(67)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세대론적 패러다임은 으레 세대가 변함에 따라 특정한 조류의 “페미니즘이 효력을 잃는다”(Ibid)는 식의 주장으로 나아가는데, 이는 페미니즘이 “그것을 생산해낸 주체와 동일하지 않다”(Ibid)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여성주체가 집단적이고 다변화된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세대론은 개인주의를 합리화하거나 외려 미리 정해둔 세대적 각본에 따라 유동하는 대상을 미리 구획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며, “끝없는 경계 넘기를 통한 역설의 발견과 의미의 생산을 목표로”(71) 삼는 것이 외려 페미니즘의 본령임을 주장한다.

비단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전방위한 영역에서 기승을 부리는 세대론적 패러다임에 면역되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 저자의 주장은 다소 과격해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의식에 주목할 수 있는 까닭은, 단순히 세대적으로 사안을 조명하기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으며, 동일하게 가정된 실체 속에도 무수한 분열과 차이가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자신들의 출발점을 배반하는 자가당착에 관해 본 논문이 충분히 페미니즘적인 방식으로 무장한 채 참교육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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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옥, 󰡔보수 여성 주체에 대한 연구- 20대 총선 부산여성총연대의 활동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연구 16(2)󰡕, 2016.

정연심, 󰡔서구페미니즘의 이론적 쟁점과 이슈󰡕, 󰡔나혜석연구 8󰡕, 2016.

정강산 리뷰어  wjdrkdtks9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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