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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로크 비애극은 현대에 주목받을만한 것인가?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으로부터
정지원 리뷰어 | 승인 2018.01.17 15:42

 우리는 보통 '바로크'가 현대와 멀게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로크가 현대와 연관성이 있다면 어떨까? 숙명여대 박영욱 교수는 그의 논문 「바로크 비애극과 알레고리로서의 이미지」 (『시대와 철학』 23, 2012년 3월)에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그의 저서 『독일 비애극의 원천(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에서 주제로 다루는 독일 바로크 비애극의 철학·예술적 의미에 관해 다룬다. 이에 따르면 바로크는 단지 오래되고 낡은 것이 아니라 현대인에게 새롭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 된다.


'고전주의'와 '상징',
'바로크'와 '알레고리'


 저자는 논문의 서두에서, 현대에 들어와서 재발견되는 '바로크적인 것'의 탈근대적 특성에 관해 언급한다.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다루어지는 바로크적인 것에 대한 재해석은, 바로크적인 것의 탈근대적 특성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이 저작에서 벤야민은 바로크 극들을 '비극(Tragödie)'이 아닌 '비애극(Trauerspiel)'이라는 단어로 칭하는데, 이는 바로크 '비애극'에 고전주의적 형식을 갖춘 '비극'과 대조적인 특징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양자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비극이 '상징'을 담고 있다면, 비애극은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벤야민의 '알레고리'와 '상징'의 비교는 이 바로크 비애극의 가치를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 '상징'은 고전주의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이념(Idee)'이 감각적인 혹은 물질적인 수단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상징으로 무장한 고전주의 작품들은 유기적으로 짜여진 어떠한 틀 속에서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념을 표현한다. 이와 반대로 바로크 비애극에서 보이는 알레고리는 상징의 이러한 '이념의 현현'을 공허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알레고리에서는 뚜렷하게 특정한 것을 지향하는 '본질적인' 것은 없이, 그저 무의미함과 덧없음 자체가 뚜렷하게 드러날 뿐이다.
 

Artemisia Gentileschi - Judith Slaying Holofernes (출처: Wikipedia)
Caravaggio - Judith beheading Holofernes (출처: Wikipedia)


 저자는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 카라바조의 그림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를 통해 이를 조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다른 바로크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동일한 주제의 그림을 그런 것과 대조하며 이 그림에서 드러나는 바로크적 모호성을 설명한다. 젠틸레스키의 그림에서 유디트는 뚜렷한 주체로서 대상화된 객체인 홀로페르네스를 비장하게 죽인다. 남성적 폭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이 서사적인 그림과 달리 “카라바지오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매우 모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전되어 나타난다. [...] 선을 드러내는 유디트 얼굴에 투사된 조명은 오히려 유디트의 나약함과 연민만을 조명할 뿐이며, 그녀의 여린 얼굴과 몸은 홀로페르네스의 격렬한 얼굴과 대조적인 한 쌍을 이룬다. [...] 피와 칼의 직선 문양은 곧장 거의 직선으로 유디트의 팔로 연결되어 끝내는 유디트의 얼굴에 다다르게 된다. 이 선을 따라가는 시선의 과정은 사건의 서사를 통합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피(선정성), 폭력(격렬함), 가냘픔(여성적 수동성)으로 이어지는 정서적 통합과정이다. 이러한 통합과정은 서사적인 통합과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사적인 인과성이 파괴되었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인 감정(affection)에 가까운 것이다. [...] 이러한 에로티시즘의 감정은 서사에 의해서 형성된 상징들의 의미작용을 교란하거나 붕괴시켜 버린다.”(263쪽) “이 그림에 나타나는 반복되는 의미와 무의미의 중첩, 희극과 비극의 교차, 덧없음이야말로 바로 벤야민이 독일 바로크 비애극의 특성으로 강조하는 것이다”(265쪽)

 바로크 비애극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 근거한 고전주의적 비극의 형식들이 모두 파괴되어 있다. 주인공은 기존의 고전주의적 비극에서의 주인공과 달리 하나의 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존재가 된다. “정해진 플롯에 따라 진행되는 비극이 도덕성을 내포한 상징적인 것에 바탕을 둔다면, (이율배반적인 감수성인) 멜랑콜리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비애극은 알레고리적인 것에 기반한다. 바로크 비애극에서 군주는 어느 순간 폭군이 아닌 순교자로 둔갑하며, 순교자는 폭군이 되는 이동이 반복된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어느 순간 우스운 것이 되며, 순교의 진정성도 어느 순간 덧없는 코미디가 되고 만다. “이러한 반복성, 불안정성, 덧없음이야말로 알레고리적인 것의 원천이다.”(267쪽)


예술, 인식의 대상이 아닌
이념의 재현


 이러한 바로크 비애극의 특성은 단지 그 시대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예술 일반에 대한 철학적 영감을 제공해줄 수 있다. 『독일 비애극의 원천』의 서문인 “'인식비판적 서문'에서의 핵심적인 주장은 진리란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이념으로서 재현의 대상이라는 사실이다”(268쪽)

 벤야민에 따르면 진리인 이념은 산문적 형식으로 재현하는 방식으로 접근될 수 있다. “산문적 형식이란 개념으로 제시할 수 없는 이념으로서의 진리를 간접적인 방식으로 서술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진리의 부분적인 단편들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산문적 형식이란 단편적인 서술방식을 말한다. 이는 곧 진리란 총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한다”(269쪽) 여기서 벤야민은 진리의 미(美)성을 도출해낸다. 진리가 인식적이지 않다면, 우리는 진리를 어떻게 접할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 플라톤의 『향연』에서처럼,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것으로서 드러날 수 있다. 그렇기에 벤야민의 관점에서, 철학은 진리를 품기 위해서 예술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모델로서의 예술은 무엇일까? 예술은 이미지로서 이념을 구현하지만 그것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징이 아니라 알레고리로서 파악될 수 있다. 진리는 하나의 목적으로 뚜렷하게 규정되어 닫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진리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는 것에도 또한 그 속성이 있어야 한다. 상징은 이미지를 통해 개념을 담는다. 그런데 벤야민에게 예술, 혹은 이미지가 개념으로 환원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는 것이 된다. 진리는 마치 비잔티움 벽화의 모자이크 단편들이 모여 신비로운 빛을 보여주듯이, 총체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바로크 예술작품은 이런 점에서 고전주의적 예술작품보다 예술의 일반적 특성에 들어맞는다.


오늘날의 예술과
알레고리


 그러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옛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볼 수 있는 아우라의 상실과 함께 그 예술성을 상실했는가? 저자는 벤야민이 아우라의 붕괴를 긍정적으로 본 것을 너무 과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아도르노의 주장을 끌어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제의가치(Kulturwert)'가 붕괴되더라도 예술작품에는 우리의 인식에 총체적으로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가 없다면 그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이 있는 한, 하나밖에 없다는 데서 오는 아우라 일반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뵈메(Gernot Böhme)의 의견을 가져와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아우라는 옛 화가들이 창작한 회화작품들 같이 오직 하나뿐인 특별한 것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일상에서 항상 봐왔던 어떤 것이 어느 순간 특별하게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익숙한 것에서 오는 갑작스러운 낯섦에도 아우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현대에도 예술작품은 아우라가 있을 수 있고, 바로크적 알레고리는 현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생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현대사상으로서 바로크: 벤야민과 들뢰즈의 경우」, 서동욱, 『철학논집』 44, 2016. 2.
「"바로크"와 알레고리: 발터 벤야민의 언어이론」, 최문규, 『뷔히너와 현대문학』 16, 2001. 4.

정지원 리뷰어  j.je@fu-berli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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