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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겔’ 자가투약 관행은 ‘의학적 미신’인가?수액(링거)을 자양강장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의료 관행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
문지호 리뷰어 | 승인 2018.01.02 19:09

일반인들 사이에서 흔히 ‘링겔’이라 불리는 링거(수액)는 본래 영국의 생리학자 링거(Ringer)가 1882년 개구리 실험용으로 만든 생리적 염류 용액인 링거액(Ringer’s solution)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오늘날 의학적으로 탈수 증상이 있거나 전해질이 부족한 이들, 혹은 수분과 영양분을 경구 섭취하기 힘든 환자에게 사용하는 기초 의약품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링거는 오랫동안 “피로회복과 자양강장을 위하여 자가투약(self-medication)’되는 지역 내 의료관행”의 일부였다. 더욱이 링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의학적 기대가 “의학적 미신”이자 “주사 신앙”에 불과하다는 의료전문가들의 비판이 적지 않고, 의약분업이 시행된 이후로는 처방전 없이 링거를 임의로 주사 처치하는 행위가 불법화되었음에도, 링거 자가 투약 관행은 음지에서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214쪽)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전문가들의 말처럼 링거 자가 투약 관행은 계몽으로 물리쳐야 할 미신에 불과한 것일까? 신유정의 논문 「수액(링거)을 자양강장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의료 관행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 (『비교문화연구』 21.2, 2015년 7월)는 “의료전문가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링거 자가 투약] 관행이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요인을 인류학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계몽 대 미신이라는 이분법이 이 현상을 적절히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보이고 있다. (212쪽) 

 

[그림1] 2013년 서울시 강동구 주최로 열린 제200회 강동한마음 봉사의 날 행사. “기운내시라”는 의미로 영양수액을 주사하고 있다.

의약분업 이후
링거 투약 관행의 현황

오랫동안 한국에서 링거는 “‘자조(self-care)’의 도구”였다. 가난이 짓누르는 무게가 압도적이던 시절 “링겔은 영양제의 대명사이자 만병통치약처럼 취급되었다.” 과거 언론에서 “상류층이 사용하는 피로회복제”, “효도 선물 1순위”라는 링거 관련 기사나 광고를 싣는 일 역시 드물지 않았다. (214쪽) 시간이 흐르면서 링거는 “‘기운이 없다’ à ‘링겔(또는 보약)이 필요하다’는 식의 자가 진단에 따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약물’이 되었고, 실제로 의약분업이 시행되기 전에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약국에서 수액을 구입할 수 있었으며, 소위 동네 ‘주사 아줌마’들의 도움을 받아 내원하지 않고도 링거를 맞을 수 있었다. 요컨대 링거 투약에 관한 한 지역민들은 “생의학적 처치도구를 자양강장의 목적으로 사용하되 그 처방, 투약, 진단의 과정[을] 전문가적 권위에 의하지 않고 주민들 스스로” 판단하고 수행하는 중심 주체였다. (219쪽)

의약분업은 이러한 환자 주체성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필자에 의하면,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의약분업을 통해 대부분의 약들이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됨에 따라, 이전에는 약국에서 자유롭게 구입했던 약들을 사기 위해 반드시 의사 처방전을 받아야 하는 ‘귀찮고 불편한’ 상황이 벌어”짐으로써 환자의 주체적 수행성이 상당히 위축된 것이다. (220쪽) 이런 상황은 의약분업 이후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된 수액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처방전 없이 링거를 임의로 맞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링거 투약 관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필자에 따르면, 의약분업 이후의 변화에 지역 주민들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는데, 이중 아예 “다른 자양강장제를 선택하는 것”을 제외하면 링거 투약 관행은 “공적인 의료기관을 이용”하거나 “주사 아줌마에게 링겔을 맞되 더욱 은밀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222쪽)

우선 이전처럼 주사 아줌마를 통해 링거를 맞는 경우를 보면,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연망”이 링거 투약 관행의 중심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남성 피면접자들과는 달리 여성들은 대개 여러 차례 주사 아줌마에게 [링거를] 맞아본 경험이 있었으며, 경로를 추적하다 보면 인근 읍내의 식당 주인이나 옷 가게 사장 등 수액을 공급하고 주사 아줌마를 연결시켜주는 연망의 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연망의 핵은 단순히 링거를 맞는 활동의 중심지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곳은 “새로 생긴 병원 등의 의료정보, 자녀들의 선 자리나 부동산 가격 등 제반 지역 정보들이 ... 교환되는” 정보 교류의 장이기도 했던 것이다. (222쪽) 그러므로 링거 투약 관행은 역으로 사회적 연망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반면 이런 음성적 투약 관행이 불편하거나 그 바탕에 놓인 연망에서 떨어진 이들은 공적 의료기관에서 링거를 맞기도 한다. 이때 흥미로운 대목은 링거 “자가 투약 행태가 공적 공간 내에서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조사한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링거 투약 관행은 다음과 같이 이뤄졌다.

대개의 경우 진료실에서 의사 면담을 거쳐 수액을 처방 받는 것이 아니라 접수대에서 “링겔 맞으러 왔어요.”라는 말을 하면 바로 수액실로 안내되거나, 자신이 갖고 있는 수액병을 들고 가서 ‘요금(혹은 공임)’을 지불하고 맞고 오기도 한다. (223쪽)

즉, 링거 투약에 관한 한 주민들은 의사의 전문성에 일방적으로 지배받기보다 그 전문성을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필자에 따르면, 주민들이 링거를 맞고 지불하는 돈을 ‘치료비’나 ‘진료비’라 칭하지 않은 점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주민들은 병원에서 의사를 대면하고 진료를 받거나 치료를 받을 때 지불하는 비용을 치료비 혹은 진료비라 일컬었는데, 링거를 맞는 경우에는 이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주민들은 ‘주사 놔 주는 값’, ‘세’, ‘요금’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주사 아줌마에게 지불하던 비용을 ‘공임’이라 부른 것을 생각하면, 이런 용어 사용은 병원에서 링거를 맞는 행위가 지역 주민들의 주체적 행위성을 어느 정도 약화시키기는 했어도 완전히 제거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병원이라는 공적 공간은, 주사 아줌마를 불러 편하게 맞을 수 있었던 안방 등 사적 공간의 대체물”과 유사한 기능을 하며(226쪽), 거기서 “의사들의 역할은 공간을 제공하고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정맥 주사를 놔주는 것에 국한”되고 있었다. (225쪽)

 

링거 투약 관행의
지속 이유

그렇다면 지역 주민들은 왜 링거를 계속 맞는 것일까? 필자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우선, 링거는 일종의 “환자 역할(sick role)을 부여한다.” 사회학자 파슨스에 따르면 “병자는 정상적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책임을 면제”받는데, 여기서 의사는 전문적 진단을 통해 그러한 책임 면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필자에 따르면, 실제 주민들은 “혈관에 바로 투약하는 링겔을 맞은 [환자의] 경우 좀 더 아픈 사람으로 간주”했고, 당사자 역시 그런 인정 하에서 “정상적인 사회적 역할에 대한 책임에서 보다 떳떳하게 면제”된다고 생각했다. (227쪽) 즉, 링거는 그와 “교환 가능한 다른 항목들 - 한약, 개소주, 기타 영양제 등 - 과는 사뭇 다른 맥락에서 소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약을 먹는 사람은 당장 심각하거나 위중하게 ‘아픈 사람’이 아니다. 오늘 해야 되는 노동으로부터 면제 받거나, 남편의 손찌검과 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환자’일 때라야 가능해진다. 그리고 링겔은 그것을 물적으로 정의해줌과 동시에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게 만들어준다. (228쪽)

둘째, 링거는 처치 시간이나 비용에 비해 “한 번의 처치로 분명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링거 투약 관행에 부정적인 봉직의들 역시 “맞으면 일단 좋다. 그게 일시적일 뿐 치료적 효과는 아니지만.”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228쪽) 그리고 주민들 역시 주관적 느낌일지언정 그 효과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봉직의들도 크게 부정하지 않는 그 ‘일시적 효과’가, 비록 주관적 느낌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연 누구일가?

오늘 일당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나 자신이 아니면 그 일을 대신 해 줄 사람이 없는 이들은 일시적이더라도 그 즉각적 효과를 기대하며 링겔을 맞곤 했다. ... 예를 들자면, 비 오기 전에 고추를 따야 한다거나 들깨를 털어야 하는 농민들, 주말 대목이기 때문에 반드시 장사하러 나가야 하는 재래시장 상인들, 대신 애 봐 줄 사람이 없는 할머니 등이 있다. 이들은 누구에게 노동을 면제받거나 환자로 인정받을 필요가 없으며, 이들의 일상에서 환자 역할로 얻게 되는 특별한 유익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노동을 지속하게 해주는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강장 효과만이 이 처치의 목적인 셈이다. (228-229쪽)

이들 역시 링거가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강장 효과’만을 제공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링거와 한약을 번갈아 소비하는 패턴을 보이곤 했다. 가령 일부 농민들은 “농번기에는 링겔을 맞고 겨울철 농한기에는 보약을 먹는 규칙적인 소비 양상”을 보였다. “내년 봄부터 시작되는 일 년 농사에 적합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효과가 천천히 드러나지만 다음 해 겨울까지 지속될 것이라 기대되는 보약”을 농한기에 먹어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230쪽)

 

[그림2] 동네 의원에 붙어있는 링거 홍보 포스터

 

지역 의사들의 역할과
근거중심의학(EBM) 현실

필자에 따르면, 링거 관행이 특이한 형태로 지속되는 데는 지역 의사들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었다. “생의학 전문가들이 의학적 적응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링겔을 맞으러 다니는 행위를 ‘미신’이라고 비판한 것과는 달리, 지역의 의원들에서는 이를 권장하거나 최소한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231쪽) 물론 이들이 불법적 주사 관행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의사의 진료 없이도 링겔을 맞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편안한 조명과 시설이 갖추어진 전용 ‘수액실’을 구비하여 서비스로 물리치료를 해주기도” 하는 것이 지역의 의료 현실이었다. (231-232쪽) 이로 인해 지역 주민들도 ‘큰 병원’과 ‘인근 지역 의원’이 링거 처방에 대해 서로 상반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필자가 인터뷰한 두 의사의 말은 이러한 현실의 일단을 잘 보여준다.

개원가는 병원수련의들과 입장 자체가 전혀 달라요. 그냥 진통제나 항생제만 줘도 될 환자들에게도 신경안정제랑 소화제를 줘야 좋다고 하죠. 약발 자체가 달라요. 그렇게 넣어서 주면 아우, 약 참 잘 듣는다 그러고. (중략) 사실 링거를 맞아야 되는 딱 적응증은 매우 드물어요. 그런데 심리적 요인이 크니까. (개원 약 10년 차 개원의) (233쪽)

정말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주는 걸까 그런 의심이 되기는 해. 나는 학교 다닐 때 주로 EBM이나 교과서 중심으로 최소한 피해는 안 주고, 약도 최소한으로 주고 뭐 그렇게 배웠는데. 그게 정말 양심에 따른 판단인지는 의심이 되지. (중략) 실제로는 돈 때문이라고 봐야겠지. (봉직의) (233쪽)

필자에 따르면, 이런 모순적 의료 현실은 전반적인 한국 의료 체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선 한국의 “개원의들은 대부분 전문과목과 상관없이 일차 진료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데, 그에 반해 “가벼운 질환에도 환자들은 3차 의료기관으로 몰리는 등 지역 의료계의 현실은 팍팍”한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동네 의원은 한정된 지역 내 인구집단 속에서 경영해 나가기 위해, 비급여 항목을 늘리고 환자 당 진료시간을 줄임으로써 총 진료 건수를 늘리는 등의 전략을 채택하게 된다.” 이런 만큼 지역 의원들은 “지역의 문화적 특성이나 환자들의 생활 전반”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가령 위에 인용한 봉직의의 경우 “상당수의 지역 주민이 포도농사를 하는”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한 여름에 포도 농사를 하느라 땀 많이 흘리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하는 6~70대 환자들이 수액을 맞으면 눈빛이 달라진다”고 한다. (234쪽) 그러므로 지역 병원 내 링거 투약 관행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근거중심의학을 강조하며 ‘임의적’ 링거 투약 관행이 지속되는 현상을 한국 사회에 여전한 미신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세대의 의사들은 근거중심의학에 대해서 상이한 이해도를 갖고 있었으며, 심지어 개원한지 오래된 지역 의사의 경우 근거중심의학이란 용어 자체를 낯설어하기도 했다. 한편, 주민들의 인식 역시 미신이나 무지라고 치부하고 넘아갈 만큼 결코 천편일률적이지 않았다. “그냥 맞는 거지, 뭘.”이라며 링거의 효능에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는 이들도 있고, 각자의 직접, 간접 경험에 따라 링거 처치 여부를 판단하는 이들도 있으며, “의료담론에서 말하는 의학적 적응증과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상당히 “숙지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238-239쪽)

필자는 이러한 태도를 “어떤 미신적인 믿음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유용하다고 판단된 상이한 지식을 맞추어놓은 것(bricolage)으로 생의학 지식과 비생의학 지식이 절충, 선택된 것”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즉, “주민들은 어느 한 의료지식만을 통해 고통을 이해하거나 해소하고자 하지 않고,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지식들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의료전략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링거 투약 관행은 “‘올바른’ 의학적 지식의 부족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실용적 목적에 따라 모순되고 한정된 의료지식의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시켜 고통을 해석하고 의료적 중재를 선택하는 방식의 사유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241쪽)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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