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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 산책 1'절망'과 실존의 단계
정지원 리뷰어 | 승인 2017.12.29 08:15
(출처: 위키백과)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는 실존철학의 선구자로 높은 평가를 받지만 정작 국내 철학계에서 그를 다루는 논문은 그리 많지 않다. 아마 이는 그의 철학이 굉장히 기독교적이기에 비기독교인 사람들에게 수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키르케고르를 그저 기독교 사상가로만 평가한다면 우리는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다른 값진 것들도 잃게될 것이다. 그의 철학에는 후대의 실존철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들의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은 유명하지만 정작 보통 사람들이 자세하게 접할 일이 없는 키르케고르의 철학을 개론적으로 다루는 한 논문을 살펴보자. 군산대 임규정 교수「키에르케고르의 절망의 형태와 삶의 단계의 상응에 관한 연구」 (『철학연구』, 2008년 2월)에서 키르케고르의 저작을 비교하며 그가 제시한 삶의 단계와 절망의 개념을 풀어나간다.

 키르케고르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Sygdommen til Døden)』에 나오는 '절망(Fortvivlelse)'의 형태는 다음과 같이 도식화 할 수 있다.

1. 절망의 의식과 상관없는 절망의 형태
     1) 유한성과 무한성이라는 규정 밑에서 본 절망
     2) 가능성과 필연성의 규정 밑에서 본 절망
2. '의식'이라는 규정 밑에서 분석되는 절망
     1) 자신이 절망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는 절망
     2) 자신이 절망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는 절망
          A.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려고 하지 않는 것: 나약함의 절망
          B.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려고 하는 것: 반항의 절망          (352쪽)


 저자는 키르케고르가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다루는 절망의 다양한 형태들이 『이것이냐 저것이냐(Enten - Eller)』를 비롯한 다른 작품들에서 다루어지는 '실존의 3단계'(심미적 실존, 윤리적 실존, 그리스도교적 실존)와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불명료하다고 주장하며, 양자의 대응관계를 밝히며 키르케고르의 이론을 설명한다. 이 대응관계를 탐구할 때 중요점은 '자기의식의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의식'은 자신의 '현실성'과 '가능성'을 관계시키는 자기인식이다. 가능성과 현실성의 관계에 관해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고 하는 말을 떠올릴 수 있다. 가능성은 가능한 것으로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라면, 현실성은 그러한 가능성을 제약하며 주어지는 현실에서 나온다.


심미적 실존:
직접적 심미주의와 반성적 심미주의

 키르케고르의 '심미적 실존'의 단계는 '직접적 심미주의'와 '반성적 심미주의'로 구별된다. 여기서 '돈 주앙'으로 표상되는 직접적 심미주의의 키워드는 '직접성'이다. “직접적 심미주의는 자기의 발달 과정에서 직접적 욕망의 지배를 받는 원초적 단계에 해당한다”(353쪽) 서로 유기적으로 구성된, 세 하위 단계로 나누어지는 직접적 심미주의는 욕망과 욕망의 대상을 분리하지 못하는 첫 번째 단계에서 욕망과 욕망의 대상을 물리적으로 구별하는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가며 심화된다. 이 직접적 심미주의의 단계에 있는 사람은 살면서 느끼게되는 욕망들에 수동적으로 휘둘린다. 이렇게 주어지는 욕망은 그저 운이 좋으면 해결되고 아니면 마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삶은 동물의 삶이나 다를 바가 없다.

 '유혹자 요하네스'로 표상되는, 언어를 통한 사유로 인간이 '직접성을 넘어설 수 있게하는 '반성적 심미주의'는 누군가가 자기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을 때 이행하는 단계이다. “반성은 간단히 말해서 직접성의 부정이다”(357쪽) 그러나 이 반성적 심미주의의 단계에 있는 사람도 '현실성'과 '가능성'으로서의 자기는 의식하지만, 양자와 관계하는 실존적 결단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며 회피한다. 그는 결단을 회피하며,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 제약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하고싶은 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윤리적 실존과
그리스도교적 실존

 어떠한 사람이 '이것이냐 저것이냐'하는 그러한 실존적 '결단'을 할 수 있게 될 때, 그는 “자기가 가능성을 제한하는 현실성을 극복하고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분투”(361쪽)하는 '윤리적 실존'에 단계로 들어간다. 이 단계의 사람은 삶에 주어진 많은 '가능성'들이 '현실성'에 의해 제약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수용하고, '현사실성', 즉, 자신이 내던져져 있는 사회적 환경, 즉 죄성(罪性)을 후회하는 것이다. 그는 비록 죄악에 가득찬 세상에 태어났을 뿐 그 죄악을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 죄악에 책임감을 느낀다. 따라서 자신에게 보편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도 '현사실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인간 세상이 죄악을 벗어날 수 없는 '현사실성'은 모든 것이 가능한 초월자인 '신'과의 관계를 통한 '그리스도교적 실존'을 통해 넘어설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것에 대한 가능성으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너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의 특징을 안다는 것은 '초월적 비약'을 가능하게 한다.


절망은 여러 실존의 단계와 어떻게 대응하는가?
키르케고르의 처방: '그리스도교적 실존'

 이쯤에서 일단 서두에 정리된 절망의 여러 형태를 다시 보고 올 필요가 있다. 여기서 '절망' 자체를 의식하는지, 의식하지 못하는지에 관한 차이가 이 절망의 형태들을 질적으로 구별시킨다.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관점 아래에서 절망을 실존의 여러 형태와 대응시킨다.

 '직접적 심미주의'의 단계에 있는 사람은 자기의식이 없는, 다시 말해 자기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단순한 인간이다. 그는 절망을 의식하지 못한다. 자신이 절망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 절망은 엄밀한 의미에서 절망은 아니다.

 '반성적 심미주의'의 단계에 있는 사람은 '나약함의 절망' 속에 있다. 그는 자기반성이라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이 절망하고 있다는 것을 회피한다.

 '윤리적 실존'의 단계에 있는 사람은 '반항의 절망' 속에 있다. 그에게 절망은 외부에서 수동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즉, 그는 자신이 절망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절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절망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도 절망은 해소될 수 없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그리스도교적 실존'을 이러한 절망에 대한 처방약으로 제시한다. 그리스도교적 실존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현실성'을 가장 잘 자각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신'은 현실성과 '가능성'의 양자의 문제를 해소시킬 수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키에르케고르의 주체성의 지양과 "죄책감"에 대한 고찰」, 임규정, 『철학연구』 76, 2000. 11.
「키르케고르의 '실존적 권태'와 '심미적 실존의 의의'」, 이명곤, 『철학연구』 127, 2013. 8.

 
 

정지원 리뷰어  j.je@fu-berli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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