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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으로서의 섬플라톤과 노자의 '공간'과 함께
정지원 리뷰어 | 승인 2017.12.22 08:24

 한국인들은 한국의 특징으로 흔히 '다이나믹'이라는 단어를 꼽는다. 그렇게 역동적으로 바쁘게 흘러가는 한국사회에는 그 이야기를 풀어내지도 못한 채 소외되는 수많은 것들이 있는데, '섬(島)'도 그 중 하나다. 제주대 김치완 교수는 논문 「섬[島]-공간의 철학적 접근: 플라톤과 노자의 "공간"개념 검토를 중심으로」(탐라문화 45권0호, 2014년 02월)에서 '섬'에 초점을 맞추어 '공간'의 개념에 대해 다룬다.

(출처: 위키백과)

 저자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전통적 만화와 달리 세로 스크롤 방식의 공간활용을 하는 웹툰을 예시로 든다. 독자들은 웹툰을 볼 때 스크롤을 내리며 본다. 이는 서정적 느낌을 강화시키는데, 웹툰의 이러한 특징은 전통 중국 회화와 유사하다. 전통적인 중국 회화는 중국인들의 “은폐되었던 시간과 공간이 무한히 펼쳐진다”(122쪽)는 관념에 따라, 세로로 길게 펼쳐진 그림 내의 묘사된 공간들을 순차적으로 보게끔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이 예시를 들며 4D 기술의 시대에 살면서도 여전히 2차원의 평면 위에서 공간을 구현시키는 우리의 현실을 환기시킨다. 특히 전통적인 일점투시적인 인식에서 '섬'이라고 하는 공간은 육지를 중심으로 하여 소외된다. 이를테면 한국인들에게 한반도 지도를 그려보라고 하면 일본이 영유권 주장을 하는 독도는 꼭 그려넣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독도보다 큰 수많은 한반도 부속도서들은 생략된다. 그 독도 또한 하나의 점으로 간략하게 표현된다. 이는 한 시점에 모든 것을 보고자 하는 사람의 일점투시적인 인식구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왜곡과 소외를 해소하기 위해 일점투시적인 인식구조에서 벗어나 중국회화나 웹툰과 같은 이동투시적인 인식구조로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확장을 통해 섬은 은폐되어 말려 있던 것이 주르륵 펼쳐지듯, “아직 펼쳐지지 않은 '실제적 삶의 공간'”(123쪽)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어서 저자는 논의를 풍부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플라톤과 노자의 '공간' 개념을 비교 검토한다.


비어-있음
존재 공간의 가상과 실재

 '비어-있음' 부분에서 저자가 하는 말을 보자. 인간은 공간이 실재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정작 공간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공간을 묻는 질문에 관한 하나의 답으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Τίμαιος)』에서의 공간에 대한 인식을 설명한다. 플라톤은 여기서 형상(이데아: ιδεα)과 그 이데아의 모방물, 그리고 '코라(κώρα)'를 구별한다. 여기서 코라는 “어렵고 분명하지 않은 종류의 것”(125쪽)이다. 이데아가 감각적인 형태의 모방물로 펼쳐지고 모방물이 이데아로 환원하는 것은 코라 속에서 이루어진다. 즉 이데아와 모방물의 존재는 그 존재만으로도 그것이 있는 어떠한 공간을 상정한다. 그러니까, 만물이 생성되고 소멸할 때 이는 그 생성소멸이 벌어지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 공간은 만물의 운동과 관여하며 그것을 수용하는 것으로서 항상 그러하게 있다. 여기서 저자는 플라톤이 이 코라를 만물의 '유모(乳母)'로 비유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플라톤의 공간 개념에 대해 설명한 후, 이에 비교되는 노자의 공간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노자의 말대로라면 그것은 스스로 그러한 것으로서의 자연을 본받는 '길(道)'이다. 저자는 “그윽한 암컷(玄牝)의 문(門)”, “식모(食母)”(128쪽)와 같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표현을 골라 플라톤의 코라와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저자는 “'그것' 가운데 생성 변화하는 사물이 있지만 '그것'은 한결 같아서 모이면 본래적인 것으로 돌아가고 흩어지면 그릇이 된다”(129쪽)는 『도덕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이 노자의 공간에 관해 설명한다. 즉 노자의 도(道)는 그것 자체로는 없는 것이나 있는 것들을 있게 하는 것으로서 없으면서도 있는 게 된다. 비어 있는 것은 비어 있음으로 있는 것이 된다. 무언가가 비어있지 않다면 그것은 채워질 수 없다. 따라서 이 비어있는 것은 자리를 차지 하지 않고 비어 있음으로 모든 채워져 있는 것의 모태가 된다. 따라서 저자는 플라톤과 노자의 '공간'을 사물로서 공간을 차지하며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물들이 존재하는 공간으로서 있다고 정리하며 '비어-있음'으로 명명한다. 공간은 인간의 인식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는 인식론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주체에게 주어진 대상의 객관성을 묻는 것으로 논의를 연결하며 플라톤과 노자의 '공간'에 관해 논한다.


잘라-깁기
인식 공간의 분할과 편집

이제 저자는 인식되는 것으로서의 공간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플라톤의 공간 인식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이라는 주체가 공간이라는 객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플라톤은 인간이 인식 대상으로서의 객관성인 이데아를 이미 탄생 이전에 인식하고 있었으나 망각했다는 자신의 '상기설(想起說)'을 제시한다. 인간에게는 이미 이데아에 대한 인식이 있다. 인간이 사물들에서 이데아를 인식하는 것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이데아를 '상기(ἀνάμνησις)'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이데아에 대한 참된 인식을 모방해서 모순된 우리의 인식을 넘어설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코라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반면에 노자에 관한 저자의 설명에서, 노자는 “길[道]이라고 할 수 있는 길은 변함없는 길[常道]이 아니고, 이름[名] 붙일 수 있는 이름은 변함없는 이름[常名]이 아니다”(133쪽)로 시작하는 『도덕경』의 1장에서부터 이 문제를 선언적으로 다룬다. 특정한 것으로 지칭 가능한 길은 참된 길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노자에 따르면 특정하게 지칭가능한 공맹(孔孟)의 인의(仁義)와 같은 것은 참된 길이 아니라, 참된 길의 모방에 따르지 않는 것이 된다. 참된 길은 모든 길을 길로서 기능하게 하는 그 근원에 있으므로, '스스로 그러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두 사상가가 근본적으로 세계를 거짓되지 않은 것으로 보기는 하지만 세계를 인식할 때에는 모순의 여지가 있음을 드러낸다는 것을 공통점으로 엮으며, 이러한 인식적인 작업을 '잘라-깁기'로 명명한다.
 

덜어-내줌
실천 공간의 해체와 구성

 저자는 다시금 플라톤과 노자의 '공간' 개념을 환기한다.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방적 존재이다. 그렇게 모방적으로 생성되고 운동하는 것들은 그 생성과 운동에 관계하는 터전으로서의 공간을 상정한다. 플라톤과 노자는 이 공간의 힘에 관해 명확히 설명하진 못하였으나, 현대인에게는 자연과학에서의 공간인식까지 아우르는, 보다 넓은 공간에 관한 시야가 주어져 있다. 따라서 공간에 관한 담론은 이전에 비할 바 없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사이버공간은 새로운 공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저자는 이런 공간에 관한 다양성들 속에서 사람의 삶이 이루어지는 터전으로서의 '실천적 공간'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천적 공간은 플라톤보다는 노자에게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도덕경』에서 직접적으로 이에 관해 표현하는 것들을 보면, 이를테면 빈 그릇은 그 비어있음으로 인해 그릇으로서의 쓸모가 있다. 집은 그 안이 비어 있어야 집으로써 쓸모가 있다. 이렇게 '덜어-내줌'을 통해 공간은 특정한 공간으로 구성된다.


일상성의 '섬-공간'에 대한 제언

 저자는 사이버공간을 예시로 들며 공간에 관한 인식을 환기시킨다. 사이버공간은 실제로 물리적인 공간이지는 않지만 그와 관계하는 '사이버 모욕죄', '인터넷 포털규제'와 같은 법적인 실재성이 있는 공간이다. 저자는 이러한 가상공간이 '사실상-공간'으로 전이되는 것에서 우리가 플라톤과 노자의 '공간'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한다. 사이버 공간은 현실 공간의 모방물이지만 '사실상'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섬-공간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일단 해양법 상으로 섬의 정의는 사람이 거주하며 생활을 영유하는 공간으로 것을 핵심으로 한다는 것을 꼽는다. 그런데 섬은 그 섬에 사는 사람에게는 일상의 공간이지만, 외부인에게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낯선 곳이다. 저자는 이 둘 중 무엇이 진짜 공간인지 묻는다. 그리고 어쨌든 사이버공간이 그러하듯, “'그것'에서 자연적으로 구체적인 삶이 이루어졌다면 '사실상-공간'으로 인정되어야만 한다”(142쪽)고 주장한다. 이렇듯 저자는 공간 인식에 있어서 그것을 '실천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저자는 이어서 “우리가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상 일상이 아님을 해체시키기 위해 제시된”(142쪽) 노자의 도(道)를 르페브르(H. Lefebvre)의 사회공간론과 비교한다. 그에 따르면, 르페브르의 사회공간론은 일상의 종식으로서의 혁명을 강조한다. 이 혁명은 일상을 거부하고 재구성해야 하는 것인데, 자본주의의 일상성의 조작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참함과 축제성의 대립 문제를 해결하여 본연의 축제성을 되찾는 것이 도시를 만드는 혁명이다. 저자는 이를 “꾸미지 않음을 보면서 질박함을 품으라[見素抱樸]”(143쪽)는 노자의 구절과 비교한다. 이를 섬에 대입해보면, 섬에 관한 공간도 섬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으로서의 공간과 외부인의 낯선 공간으로서의 두 공간이 서로를 해체하면서 재구성하며 실천적으로 그 축제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지원 리뷰어  j.je@fu-berli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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