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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을 품은 사회 개념들'das Gesellscahftliche'인가, ‘das Soziale’인가
정강산 리뷰어 | 승인 2017.11.24 13:48

마르크스에게 사회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제도적 의미에서의 사회가 마르크스가 알았던 유일한 ‘사회’였으며, 그에게 사회란 단순히 상부구조로서 조명될 뿐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마르크스가 사회를 언급하기 위해 주로 사용했던 개념-‘사회적 생산관계’, ‘사회적 노동’, ‘사회적 생산력’ 등-에서 ‘사회적’이라는 형용사는 ‘gesellschaftlich’로서, ‘sozial’과는 구분된다(sozial은 ‘사회문제’, ‘사회보장’, ‘사회국가’, ‘사회주의’, ‘사회정책’등의 용례로 쓰인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에 대한 두 개의 개념이 있고, 각각 그에 대응하는 ‘사회적인 것’의 개념을 설정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르크스와 사회적인 것- 사회적인 것의 기원 밖에 놓인 사회적인 것의 자리」(『한국사회학』 49-5, 2015)에서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이하 ‘저자’)는 ‘gesellschaftlich’와 조응하는 개념을 “사회(적인 것)1”로, ‘sozial’과 조응하는 개념을 “사회(적인 것)2”로 구분할 것을 제안하고, 이 중 마르크스의 관심이 전자에 있었음을 지적하며 마르크스에게 있어 ‘사회적인 것’의 질문이 어떤 전개를 통해 다듬어지고 수정되는지 추궁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그가 염두에 두는 것은 사회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사회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모색하는 일이다.

마르크스와 사회

그는 사회의 범주와 개념을 다뤘던 인물들로 흔히 호명되는 뒤르켐과 베버, 마르크스를 차례로 언급하며, 이 속에서 뒤르켐은 경제의 외부로서 사회를 설정한 반면, 베버는 사회를 경제 이전의 구역으로서 경제의 근간이 되는 것으로 규정했으나, 이들은 모두 경제와 사회를 분리되고 독립된 단위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허나 저자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경제를 사회와 독특하게 연결시킴으로써, 사회를 경제와 분리되지 않았지만 동시에 경제와 일치하지도 않는 무엇으로 위치 짓는데, 이는 당시 고전파 경제학을 내재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경제를 역사적인 것이자 모순적인 것으로 재구성해내는 마르크스 변증법의 핵심일 것이다. 즉 마르크스는 경제적 관계들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경제’로서 인정될 수 있으며, 따라서 경제 그 자체가 독립적으로 온전히 파악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경제적 관계들은 그것이 사회적 관계들인 한에서의 경제적 관계들인 것이고, “‘경제학’은 ‘사회적인 것’ 없이 완결될 수 없는 불가능한 과업으로 해체된다”(223)는 것이다.

 

저자는 알튀세르의 구분을 따라, 1845년의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에서 이미 헤겔의 ‘시민사회’, ‘본질’ 개념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마르크스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여전히 헤겔의 형이상학적 잔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청년기의 인간주의적 혹은 소외론적 마르크스는 여기서부터 인간의 본성을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로 간주함으로써 독자적인 방식의 유물론을 정립시켜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인간본질의 외부에 놓인 채 본래적인 것이 발현되지 못하도록 구획하고 제한하며 소외시키는 ‘사회’는, 외려 그 나름의 합리성을 통해 1차적으로 인간을 규정하며 상호작용하는 대상으로 성립된다. 요컨대 이것은 마르크스에게 잠재되어 있던 구조주의적 계기를 설명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그는 주체에서 객체로 향해왔던 담론의 벡터를 뒤집어 객체에서 주체를 향하는 사유의 모델을 고안하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스스로 물구나무 선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을 뒤집음으로써 유물론적 변증법을 고안했다고 주장한 것은 단순히 수사적인 차원에서 물질이 관념에 앞선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개념들과 방법론을 발견함으로써 역사를 과학적이고 물질적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시인하는 것으로 독해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어쩌면 우리는 마르크스의 이러한 전회를 존재론에서의 탈출, 혹은 실체론에서 관계론으로의 이동이라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반대로 우리는 이러한 전환을, 역사적인 국면에서 알튀세르의 이론적 개입이 일시적으로 열어젖힌 개념들이 투사된 효과로서 간주할 수도 있을 텐데, 까닭인즉 이렇게 마르크스를 헤겔과 절연시키려던 알튀세르의 시도는 맑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와 과학을 구분함으로써 당대 프랑스 공산당 내부의 교조적 기류를 끊어내야 했던 그가 처한 정세적 맥락과 분리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그러한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구분은 자기비판을 거쳐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로 이어지는데, 패리 앤더슨은 “Considerations on Western Marxism”(1976)에서, 수많은 이들이 영감을 받았음을 고백하며 자연화시킨 이 논문 역시 정세적 개입의 연장에서 쓰였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썼다. 이에 대해서는 󰡔문화적 맑스주의와 제임슨󰡕에서 제임슨이 알튀세르를 둘러싼 컬트적 현상을 비판하는 대목을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마르크스 사회 개념의 종별성

이어 저자는 1857~1858년 사이에 작성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의 특징을 기술하며, 이를 1. ‘생산일반’에 대한 규정에 이어 특수한 역사적 시기를 살펴보는 것, 2. 소유와 개인의 관계를 통해 자본주의를 규정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저자에 따르면 양자는 모두 일반성을 통해 특수성을 규명하려는 데서 수렴하며, 이런 점에서 여전히 대상의 특정적인 종별성을 파악하는 작업에서 한계를 지니는 접근이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공동체 내부의 유적 존재로서 자신을 소유자로 만듦으로써 공동체 자체를 재생산하던 전자본주의적 인간이 자본주의에 이르면 개별화의 과정을 겪으며 소유를 박탈당한다고 서술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자본주의는 사실상 개인적 소유가 불가능해진 시대로서 표상되는데, 이는 자본의 시초축적의 시기에, 본래 영주가 관리하던 장원 내부에서 이뤄지던 소농중심의 생산을 꺾고 이들을 대규모의 무산계급, 즉 임금노동자로 전환시켜온 자본주의의 특징을 떠올려볼 경우 이해가 쉬울 것이다. 허나 저자는 이러한 설정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를 이어줄 매개는 존재하지 않게 되며, 그런 점에서 이러한 헤겔 혹은 포이어바흐적인 “2자구도”는 모순의 전개를 드러내는데 강점이 있을지언정, 그러한 구도 자체가 형성된 원인과 그것이 지속(“재생산”)되는 이유를 분석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자본󰡕에서 마르크스가 개별노동의 사회성이 전도되어 자본에 의해 담지 된다고 설명할 때는 ‘물신숭배’라는 제3항과 ‘재생산’이라는 구도가 상당히 중요하게 강조”되는 반면, “󰡔요강󰡕은 세 공간과 ‘과정’이라는 도식이 아니라 두 공간과 ‘거울’이라는 도식을 가지고 전도된 사회성을 설명”하는데 그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특히 󰡔자본󰡕에서 제기된 마르크스의 핵심적 논의를 (자본주의)재생산에 관련된 것으로 규정하며, 이를 마르크스의 결정적 전환점으로 간주한다. 즉, 󰡔자본󰡕에 이르러 비로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동학 내지 그 효과의 핵심에 자본의 축적, 생산관계의 재생산, 노동자 계급의 재생산, 노동자 계급의 세대 재생산 등을 셈하게 되고, 이 속에서 단순히 ‘소유’의 문제설정에 머물러 있던 논의는 소유를 구조적인 효과로서 간주하는데 까지 나아가 “‘과정’이나 ‘구조’, ‘기제’, ‘역사’”를 염두에 두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의 지양은 사적소유의 폐지라는 윤리적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들을 규명하고 부정하는 작업, 즉 부정의 부정으로 전화된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비슷한 시기를 다루지만 그와 달리 ‘통치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18세기 이후의 역사를 규정한 푸코를 언급한다. 그에 따르면 양자가 각각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자연화’, 통치성의 ‘자연성’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일견 서로 유사한 방법론적 구조를 지니는 듯하지만, 푸코에게 통치성의 공간이 단일하고 평면적인 반면,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의 공간은 최소한 세 개 이상의 층위에 분절되어 있다고 한다(굳이 저자가 푸코와 마르크스의 방법론을 공간적 유비를 통해 견주어본 까닭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푸코의 논의에서 결정적인 심급이 권력이 행사되는 방향(통치, 인구, 정치경제학)과 국가의 문제라면, 마르크스의 논의는 권력과 국가의 공간을 초과하여 경제를 포함하며 이러한 요소들의 위상적 관계에 까지 다다른다는 점을 웅변하고자 했으리라 생각한다. 혹은 푸코가 단순히 합리적 대상의 비합리성을 드러내는데 그쳤다면(물론 푸코 역시 권력의 생산성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는 합리적 대상의 비합리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한편으로 그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 필연이라는 점까지도 고려한다는 점에서 다차원적 계기를 지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이 지점이 바로 정치경제학 비판의 기획에서의 마르크스가, 푸코, 심지어는 포이어바흐적 마르크스와도 구별되는 부분이라 제시한다.

이후 저자는 “자유, 평등, 소유, 벤담”이 지배하는 자유로운 교환의 낙원으로서의 상품유통 및 상품교환의 영역을 “교환1”로, 마르크스가 “은밀한 생산의 장소”라고 언급한 생산영역에서의 교환을 (노동/자본 간의)“교환2”로 설정하고,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어 교환2에서 발생하는 특징을 “1. 자본에 대한 노동의 종속인 동시에 2. 노동의 자본으로의 직접적 전화”라고 규정한다. 즉, 구체적으로 다양한 종별성을 지닌 채 사후적으로 생산에 투여되는 생리적 에너지들이자, 노동력들은 ‘노동’으로서 구매되는 순간 자본을 통해서, 자본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그에 대해 미지불된 잉여분의 가치를 생산하게 되는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쓴다. “여기서 ‘교환’은 ‘사회적인 것’이 경제 내부로 연결되는 고리가 된다. ‘교환’은 경제 바깥의 ‘사회’가 작동하는 표층인 동시에, 경제 내부로 들어와 작동하는 고리이기도 하다.”(237) 허나 그는 동시에 교환1의 영역은 교환2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교환2가 작동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형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거짓이나 가상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교환1은 교환2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이제 양자의 상호작용 속에서 교환의 세 번째 측면이 나타나는데, 이는 교환3으로서, 앞선 교환들의 효과로서 발생하는 전도된 구조, 즉 물신숭배라고 할 수 있다. 교환2가 교환1 속에서 작용하는 과정, 다시 말해 상품이 유통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 교환 3은, 화폐(형태)에 이르러 완성된다. 여기서 ‘사회적인 것’은 전도되어 나타나고, 자본에 그 고유한 자리를 내주게 된다. 요컨대 화폐에서 표현되고 있는 상품의 가치들은 상품 자체에 내재된 구체적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의해 규정된 것이지만, 그와 무관하게 마치 정태적이고 불변하는 것으로 전제되어야만 하며, 사회적 관계의 맥락을 소거 한 채 대상화된 가치를 담지 하는 것으로서 투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이미 서로를 비추는 거울상으로서의 두 상품이라는 2자적 관계를 넘어, 사회적 필요노동 시간이라는 3자적 항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강조점이다. 즉, “본래 사회적인 것은 사회적 분업 속에 놓여 있는 개별적 노동들이고 또는 그것이 놓이는 교환관계이지만, 실제로 사회성을 체현하고 있는 것은 개별노동도 두 상품의 교환도 아닌 제3의 자리에 있는 것(‘사회적 필요노동’의 구현체로서 화폐)이고, 그것은 더욱이 이 개별 노동이 일어나거나 교환이 진행되기 이전에 마치 ‘선재’하는 것처럼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의 ‘사회적인 것’은 ‘상호주관적’(inter-subjective)이지 않다. 이 맥락에서 물신숭배도 ‘주관적’이지 않고 구조적”(241)이라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마르크스가 교환가치형태나 화폐형태만을 문제시했던 󰡔요강󰡕과 달리, 󰡔자본󰡕에서 비로소 ‘사회적 필요 노동’이라는 항을 함께 사고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마르크스에게 ‘사회적인 것’이 교환의 세 번째 층위에서 비로소 출현하기 때문”인데, 여기서 사회성의 결과로서의 화폐는 이제 사회성을 규정하고 호명하는 척도로서 제시된다. ‘사회적인 것’은 법률적 허상으로서의 교환1의 영역도, 숨겨져 있는 교환2의 영역도 아닌 전도된 효과로서의 교환3의 영역이지만, 이때 사회는 어떤 내용도 갖지 않는다. 물신숭배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있는 것은 ‘금융’으로서, ‘사회적인 것’ 또한 이 단계에 이르러 완성되기에 이른다.

 

사회의 고유한 공간은 어디인가

이제 저자는 마르크스에게 재생산의 문제설정이 갖는 위상을 다시금 검토한 뒤 그 특징을 다음과 같이 열거 한다: “첫째로, ‘사회적인 것’은 경제의 외부가 아니며, 정치 또한 ‘사회적인 것’의 외부로 사고될 수 없다. 둘째, 사회적인 것은 상호주관성이나 사회계약적 구도로 해명되지 않는, 세 가지 교환들로 얽힌 구조적 효과의 산물이다. 셋째, ‘사회적인 것’은 자연법칙의 자동메커니즘이 아니라, 재생산의 위기를 내장한 모순적 기제이다. 넷째, 사회적인 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성을 부여하는 장치(기제)이자 그 (전도된)효과이다. 다섯째, 이 효과를 발생시키는 서로 맞물린 세 교환들이 재생산으로 얽힌 구도를 변혁하지 않는 정치는 불가피한 실패로 귀결된다. 여섯째, 따라서 사회적인 것은 되찾아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변혁/전화되어야 할 역사적 특수성이다.”(252) 이어 그는 이것이 마르크스의 약점이자 강점이 될 수 있음에 주목하길 요구하며, ‘das Gesellscahftliche’(사회(적인 것)1)과, ‘das Soziale’(사회(적인 것)2)를 견주어 볼 때, 후자의 용례에 비해 마르크스가 체계적으로 사용했던 개념은 전자였음을 검토한다. 여기서 저자는 “국가를 내적으로 포함하는 정치-경제적 공간”인 사회(적인 것)1에 비해, 외려 사회(적인 것)2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로서 간주되어야 하며, 이에 조응 하는 정치 또한 사회(적인 것)2가 아닌 사회(적인 것)1의 영역, 즉 ‘사회국가’의 개입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의 재발명이자 그 총체적인 구조적 변혁에서 이뤄져야 함을 역설한다. 이때 사회(적인 것)1의 공간은 ‘das Soziale’과 달리 표상되지 않는데, 이는 이미 물신숭배를 통해 사회성의 부정(부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das Soziale’(사회(적인 것)2)은 자연스레 그 빈자리를 채우고 표상됨을 얻는다. 허나 동시에 저자는 사회(적인 것)2을 빼놓고 정치를 사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순히 사회(적인 것)1로부터 현실을 직접 연역할 수는 없음을 시인하는데, 이는 한편으로 사회(적인 것)2는 사회(적인 것)1을 발견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마지막으로 그는 사회의 개념과 그 공간을 명확히 할 필요를 강조하고 변혁과 혁명에 동등한 위상을 부여한 발리바르의 작업을 암시하며 논의를 마무리한다.

허나 저자가 자크 동즐로를 인용하며 표현하듯 19세기의 특수한 발명품으로서의 사회(적인 것)2는 애초에 계급투쟁을 굴절시키는 이데올로기적 봉합이자 자본의 효과로서 간주되는 것이 옳겠지만, 맑스가 전제했던 사회(적인 것)1의 개념이 구체적 형태로 드러나는 사례 또한 찾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 논문은 그에 대해 많은 대답을 주기보단, 오히려 사회개념에 대한 아포리아를 마주하게 하는 듯하다. 그러나 사회와 사회적인 것을 둘러싼 질문들이 한국의 진보적인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2010-2015년 사이의 흐름 속에서, 이 논문이 마르크스에 충실한 시각을 통해 과거에 파묻힌 문제설정을 고집스레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은 특기해야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서동진, 혁신, 자율, 민주화… 그리고 경영 : 신자유주의 비판 기획으로서 푸코의 통치성 분석, 『경제와 사회』 89호, 2011

조은주,  「인구의 출현과 사회적인 것의 구성」『경제와 사회』 105호, 2015

정강산 리뷰어  wjdrkdtks9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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