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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조지와 피케티로 보는 부동산과 불평등 문제토지 과세는 불평등 문제의 '충분한' 해법이 될 수 있는가
김종현 리뷰어 | 승인 2017.11.23 00:40

문재인 정부 하에서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정책들이 도입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비해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부 지역 투기를 잠시 억누르기는 했지만 ‘풍선 효과’로 인해 전반적인 투기 추세는 줄지 않고 있으며, 신용대출은 오히려 커져서 부채 문제가 전반적으로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판의 목소리와 논쟁이 오가는 것 자체가 한국 경제의 불평등 구조의 핵심에 바로 부동산 문제가 놓여있다는 인식을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지점에서 최근의 경제학계에서 불평등 문제에 가장 천착한 사상가인 토마 피케티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19세기 후반 불평등 문제를 토지 소유의 문제와 연결 지어 생각한 헨리 조지 역시 그와 연결 지어 생각해 봄직한 경제사상가이다. 이들의 시각에서 한국의 부동산 문제와 불평등 문제의 교차지점에 대한 혜안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두말할 나위 없이 수용해야 할 것이다. 전강수, 「헨리 조지와 토마 피케티, 그리고 종합 부동산세」 『한국행정학회 제2015년 하계학술발표논문집』, 2015는 바로 이 두 인물로부터 그러한 교훈을 도출하려는 논문이기에 이 리뷰를 통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논문에서 저자는 피케티가 헨리 조지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면서, 피케티가 간과한 지점들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그의 불평등 분석이 헨리 조지의 이론과 결합됐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출처: Wikipedia

헨리 조지의
분배 이론

헨리 조지의 경제 이론에서 핵심적인 부분은 빈곤을 설명하기 위한 분배이론이었다. 조지느 물질적 진보에 의해 생산량이 증가하더라도, 지대가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 임금과 이자의 합계는 생산량보다 느린 속도로 증가하거나 아니면 감소하게 된다. 조지는 이것이 대중의 상대적 심지어는 절대적 빈곤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관건은 물질적 진보에 의해 경제성장이 일어날 때 지대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할 지의 여부이다. 헨리 조지의 주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진보와 빈곤』 제 4권은 바로 이 점을 논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된 부분이다.

여기에서 조지는 차액지대론을 기반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즉 각 토지의 생산량과 한계지의 생산량 차액에 따라서 지대가 결정대로, 그 차액이 지대의 수익으로 흘러가게 된다. 나머지는 ‘임금+이자’로 분배되게 된다. 따라서 한계지의 생산량이 작고 어느 토지의 생산량이 많을수록, 지대의 비중은 커지는 대신 ‘임금+이자’의 비중은 작아진다. 토지 사이의 생산량 차이의 폭이 커지면, 지대의 손으로 흘러 들어가는 수익 또한 커지므로, 지주의 수익 또한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 소득 중 지주들이 가지는 비중은 커지고, 물질적 진보의 성과를 지주층이 몽땅 차지해버리게 되며, 따라서 물질적 진보 속에서도 빈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토지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는 토지의 토기적 보유와 유휴화를 초래하여 한계지를 밖으로 밀어내는데, 그 역시 지대의 비중을 증가시키므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데 톡톡히 한 몫을 한다. 따라서 조지는 지주가 지대를 불로소득으로 전유하게 허용해선 안 된다고 말하며, 지대를 환수하는 토지가치세를 도입해 국민들이 공평히 그 과실을 나눠 갖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물론 조지가 지적한 것처럼 인구증가, 기술개선, 토지가치 상승 모두가 분배를 반드시 악화시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토지가치의 빠른 상승이 분배 악화의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분명해 보인다.

 

피케티의
불평등 이론

한편 피케티는 몇 가지 간단한 항등식과 통계를 기초로 불평등 이론을 전개한다. 그는 자본소득 분배율(a)이 자본수익률(r)과 자본/소득비율(B)을 곱한 값이라고 말하며 이 항등식을 ‘자본주의의 제1법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로 B값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 자본소득 분배율이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자본이 귀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피케티는 B값의 변동 추이를 논하기 위해 B=s/g 공식(자본주의의 제2법칙)을 더한다. 여기서 s는 저축률, g는 경제성장률로, 이 공식은 해로드-도마 성장모형에서 나온 균형성장의 조건식이다(따라서 장기에, 자본재 대상으로, 자산가격이 소비자물가와 같은 비율로 변화하는 경우에만 유효하다는 점에 유의). 따라서 저축률이 일정한 경우,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면, B가 상승한다. 그런데 피케티는 21세기에는 인구 증가가 정체되고 기술진보 역시 정체될 것이므로 경제가 장기 정체에 접어들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g가 하락할 것이므로, B값이 상승할 것이다.

물론 B값이 올라갈 때 r이 하락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속도는 B값의 상승 속도보다 느리다는 것이 피케티의 주장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피케티는 자본과 노동의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물론 피케티는 이에 대한 근거를 탄탄히 제시하지 못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지는, 즉 r>g인 상황으로 인해(‘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모순’) 불평등이 심해지는 현상 또한 지적한다. 세습자본주의가 도래할 것이란 말이다. R은 거의 일정하게 4~5% 수준을 유지하나, 21세기 자본주의는 인구 증가가 한계에 도달했고 기술진보는 고갈해가고 있으므로, 또한 r<g이었던 경우는 2차 대전 종전 이후의 예외적인 시기였을 뿐이므로 앞으로 그런 기적적인 현상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피케티의 결론이다. 다만, 2차 대전 직후 30년간 부등호 불평등이 완화됐던 것은 자본 중과세와 자본파괴의 결과였을 따름이다.

 

헨리 조지
대 피케티

그렇다면, 피케티와 헨리 조지라는 두 경제 이론가 사이의 관계를 우리는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 것일까? 저자는 둘 사이에는 분명히 친화성이 있다. 불평등의 문제를 경제이론의 핵심 분야로 복권시켰을 뿐 아니라 조세를 통한 불평등 해소를 아주 중요한 대안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한 공통점이란 것이다. 그런데 피케티는 조지의 경제이론을 언급하지 않으며, 한편으로 조지의 시각에서 보면 피케티의 경제이론에는 여러 문제점이 많기도 하다.

우선 헨리 조지는 ‘근로 소득’과 ‘불로소득’을 구분하고, 후자의 부당함을 명확히 하며 후자가 분배가 과세돼고 분배돼야 함을 분명히 강조했다. 그런데 피케티는 그러한 구분을 무시하고 단지 부가 일부 계층에 집중되는 것에 대해서만 문제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조지스트들은 ‘생산적 자본’에도 과세를 하는 글로벌 자본세를 불평등의 대안으로 제시한 피케티를 비판한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토지와 자본을 동일한 범주 안에서 취급했다는 것에 대해서 저자는 피케티를 비판한다. 저자는 토지는 “천부성, 공급고정성, 위치고정성, 개별성, 연접성, 영속성 등 인공물인 자본이 갖지 않는 특수한 성질”(471)때문에 자본과 구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성질 때문에 토지는 그 경제적 효과나 가치결정 메커니즘이 자본재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불평등 분석에서 토지 가치의 상승이 갖는 의미를 피케티가 축소하는 듯하다고 저자는 피케티를 비판한다. 특히 주택 가격 상승이 B값을 이끌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 실증적으로 드러났는데 피케티는 이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택이나 토지가치의 상승이 불평등 상승의 주된 요인이었다는 것은 피케티의 이론적 동맹자였던 스티글리츠도 최근들어 인정한 사실이다.

따라서 피케티의 불평등 연구는 헨리 조지의 경제이론을 통해 재해석돼야 하며, 그를 통해서 대체탄력성에 대한 자의적 가정 등을 억지로 도입하는 일 없이 일관된 불평등 이론의 발전으로 이어져야 한다.

 

대안에 대한 논의,
논의에 대한 대안

따라서 저자의 대안은 간단하다. 아무튼 불평등의 심화를 막기 위해서는 과하게 집중되어 있는 자본 일반에 중과세를 해야 한다는 피케티의 대안과 달리, ‘노력자산’과 ‘불로자산’을 구분해서 후자에 더 강하게 과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불로소득의 원천인 토지에 과세를 하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각종 자연자원에 부과하는 자연세를 낸다든지, 혹은 이명박 정부 집권 후 무력화된 종합부동산세를 복원∙강화된다든지 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분명 저자의 논의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현대 경제학의 논의, 특히 한계생산성 이론에 입각한 논의에서는 계급이나 착취에 대한 논의가 없고 모든 경제적 생산과 교환은 평등한 관계에 입각한 것처럼 여겨져서 불평등 문제의 해소는 구조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시혜적인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비생산적 계층과 생산적 계층을 구분하고, 전자가 후자의 생산물을 전유해간다고 규정하는 순간 경제학은 ‘정치적’이 되고 그들의 부당한 소득을 환수하여 불평등을 해소해야 할 수 있다는, 오늘날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과연 피케티가 과연 그런 문제를 완전히 무시했을까? 이 논문에서 피케티는 그런 논의를 완전히 무시하는 대부분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과 다를 바 없이 그려지지만 실상 그렇지는 않다. 피케티는 분명 최고경영자들과 상당한 고소득 자본가들이 자신의 ‘한계생산성’과 무관하게 엄청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점을 『21세기 자본』 곳곳에서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그도 분명히 헨리 조지와 비슷한 문제 의식이 있는 것이다. 다만 피케티는 그 ‘전선’을 자산소유자와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 사이에 설정한 것뿐이고, 조지스트들은 토지소유자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잡은 것뿐이다. 그렇다면 일부 급진적인 피케티 지지자들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신봉자들은 거꾸로 조지스트들에게 이렇게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생산적’ 자본가들은 과연 ‘생산적’인가? 그 자본가들도 결국은 생산현장에서 벌어지는 ‘착취’를 통해서 이윤을 얻은 자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에게서 소득을 환수해와서 재분배하자는 글로벌 자본세는 (부족하면 부족했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 않은가?

사실 이런 논쟁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과 조지스트들 사이의 아주 고전적 논쟁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논쟁은 피케티 신봉자와 조지스트들 사이에서도 아주 유사한 구도로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논쟁인데, 논쟁의 1단계를 재생산하고 가능한 반박을 준비하지 않아서 논쟁이 발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다만, 토지 자산에 중과세를 하는 것을 통해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재원으로 삼자는 것에 피케티 신봉자와 조지스트(그리고 유비를 위해 언급한 마르크스주의자들 모두) 동의를 할 것이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관련된 논쟁-즉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 비단 토지소유자와 토지를 갖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 때문인가-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 한, 이 해결책이 ‘충분한’ 해결책인지에 대해서도 논쟁은 여전할 것이다. 또한 한편으로, 부동산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단지 토지 문제 그 자체만을 건드리는 것으로 충분한지 여부도 따져볼 일이다.

 

전강수, 「부동산 양극화의 실태와 해소 방안」 『역사비평』(71) 2005

최병두, 「자본주의 사회와 토지·주택문제」 『경제와사회』(7) 1990

김종현 리뷰어  mrkim_s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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