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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에서 '사실 vs 가치'의 이분법 극복하기비판적 실재론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마르크스와 뒤르켐
강병준 리뷰어 | 승인 2017.11.19 15:14
칼 마르크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김명희 교수의 논문 「맑스와 뒤르케임의 딜레마와 자연주의 사화과학의 가능성」(『한국사회학』 49(1), 2015.2)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사상가는 두 명이 아니라 실은 세 명이라고 이해해야 할 듯하다. 게다가 그 세 번째 인물인 영국의 과학철학자 로이 바스카가 주창하고 있는 입장인 비판적 실재론이야말로 어쩌면 이 논문을 읽는 독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검토해 보아야 할 입장일지도 모른다.

저자 자신이 비판적 실재론을 "오늘날 실증주의 과학관의 오류를 정정하고 주류 과학철학의 실패에 대한 대안으로 그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이론틀이라고 소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에서 '비판적 실재론'이나 '로이 바스카'의 키워드로 검색해서 찾아낼 수 있는 논문의 수는 별로 많지 않은 느낌이다. 비판적 실재론이라는 철학적, 메타이론적 입장 자체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루려 하는 몇 안되는 논문들은 해당 키워드들을 논문 제목에 당당히 적기보다는 어쩐지 에둘러 드러내고 있는 듯하고, 행정학 등 보다 세부적인 분야에서 비판적 실재론적 연구 방법을 적용해 보고자 하는 연구자들은 관련 연구의 부족으로 방법론을 구체화하기 어려워 아쉬움을 표하고 있는 듯하다. 비판적 실재론이라는 단어가 한국에 소개된지도 그리 짧지만은 않은 세월이 지난 듯한데, 단지 아직 이 주제를 연구하는 연구자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분위기가 학계 안팎에 작용하고 있는 탓인지 문외한인 입장에서는 그저 짐작만 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극복할 것인가? : 암묵적 메타이론으로서의
실증주의와 그 폐해

어쩌면 저자가 논문 도입부에서 지적하고 있는 한국 사회과학계의 분위기가 그 문제와 관련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이 논문은 사회과학에 있어서의 방법론적 전제에 관한 글인데,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무엇보다 방법론의 차원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사회과학적 연구도 암묵적으로 이론적 함의를 지니고 있으며 그 이론은 어떤 사회과학 방법에 의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방법은 특정한 존재론인식론을 함축"하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의 경우 "'과학적 지식 자체에 대한 과학적 지식'에 대한 논의를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의식적으로 배제"해 왔다고 저자는 고발한다. "이러한 관행의 암묵적인 이론적 근거"는 "과학적 지식은 철학에서 독립한 지식이나 철학을 배제한 지식"이어야 한다는 가정인데, 이 가정은 메타이론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실증주의'라 부를 수 있는 인식론적 입장"이 암묵적 메타이론으로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과학은 암묵적으로 철학을 전제"할 수밖에 없음을 보이는 것은 비판적 실재론이 그 논리 체계 구축의 첫 단계인 초월적 실재론을 변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략으로서, 그 구체적인 내용은 논문의 2장에서 간략히 다뤄지고 있다. 그런데 실증주의적 전제 위에서 이루어진 관행적 사회과학 연구들에서는 과학과 철학을 기계적으로 분리하려 했고, 이같은 전제가 두 명의 중요한 사상가인 마르크스뒤르켐에 대한 전통적이고 구조적인 곡해를 재생산해 왔다는 것이 이 논문의 주된 문제의식이다.

실증주의적 전제에 힘입어 재생산되어 오고 있는 두 사상가에 대한 전통적 곡해는 저자에게 있어 "이분법"이라는 키워드로 거듭 비판된다. 이 이분법은 때로는 '마르크스 vs 뒤르켐'의 형태로 두 사상가의 사이를 지나가는 분단선으로 설정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두 사상가를 모두 관통하여 "청년 맑스와 노년 맑스", "초기 뒤르케임과 후기 뒤르케임" 사이에 "인식론적 단절"을 설정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 이는 "과잉자연주의""반자연주의"의 이분법이며, "사실과 가치, 과학과 비판"을 기계적으로 나누어 대립시키고자 하는 이분법인 동시에, 결국 그 둘 중 어느 것을 통해서도 현실 설명력을 갖춘 이론 체계를 제시해 대립을 통합해내지는 못하고 갈등만을 재생산하고 있는 "딜레마"인 것이다.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맑스와 뒤르케임의 '과학적 방법'을 경험적 규칙성의 추구로 이해"하는 것, 그럼으로써 "맑스의 역사이론이 경험적으로 확증되지 않았기에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표준과학모델과 베버가 공유한 가치중립/가치자유테제""맑스와 뒤르케임의 '사회과학'의 과학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으려 하는 태도 등이 모두 실증주의적 과학관에 따라 "착종"된(모순되게 뒤섞인) 것으로서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딜레마를 드러내는 것들이다.

저자가 진단하기에 마르크스와 뒤르켐의 이론은 여전히 그 잠재력과 설명력이 고갈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해 "현실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 "잘못된 반목"을 극복하기 위해 두 사상가를 화해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있어 왔으나, "실증주의 과학 패러다임의 지속적인 헤게모니"에 대한 비판이나 극복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로이 바스카

인식적 오류 : 경험주의적 존재론의 문제와
비판적 실재론의 해법

저자의 진단에 따르면, 논리실증주의 전통에서는 정신, 인간을 물질, 자연으로 환원시켜 설명하고자 함으로써 과잉자연주의로 치닫는 문제를 야기해 온 반면, 이에 대항하고자 하는 입장은 신칸트주의에 뿌리를 두어 인간과 자연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분리함으로써 인간 및 사회의 활동에 관해 "자원론적", 즉 환경이나 조건의 영향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자유의지만을 강조하는 설명을 내놓으려 함에 따라 반자연주의적 문제를 야기해 왔다.

그런데 두 전통이 모두 경험주의적 존재론과 그것을 전제로 삼는 실증주의적 과학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바스카는 본인의 저서 『초월적 실재론과 과학』에서 과학철학의 전통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로 고전적 경험론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계승하는 전통으로서, 경험적으로 관찰되는 사실들의 '객관적' 기록이 곧 과학이며 또한 지식의 합리성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과잉자연주의적 태도를 직접 뒷받침하는 것일 것이다.) 둘째로 초월적 관념론칸트에 의해 정립된 것으로서, 이 입장에서는 인간의 상호주관 외부에 있는 사물과 현상들이 '있는 그대로' 인식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지식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들, 예컨대 자연 현상의 규칙성이라든지 인과율과 같은 것들은 모두 인간 사회와 그 정신에 의해서 구성된 것으로 본다. (이는 반자연주의적 태도와 관련있을 것이다.)

바스카는 초월적 실재론을 세 번째 입장으로 규정하면서, 이 입장에서만 과학이라는 사회적 현상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세계의 실재론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스카는 앞선 두 입장, 즉 경험론적 설명과 관념론적 설명이 모두 인간에게 경험된 것만을 실재로 인정하는 '경험세계' 개념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존재론을 인식론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근대 이후 서양철학의 전통적 태도를 바스카는 "인식적 오류"로 명명한다.)

바스카에 따르면 경험론적 설명에서는 과학의 사회적 성격, 즉 이미 사회적으로 생산되어 있는 지식들을 재료로 삼아서만 과학적 지식이 생산될 수 있고 또 그 지식이 사회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관념론적 설명에서는 과학의 사회적 성격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과학적 지식의 대상이 되는 자연 현상 그 자체는 인간 사회나 정신 활동과 무관하게 스스로 존재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할 수 없으며, 지식의 합리성을 뒷받침할 근거를 마련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즉, 과학적 지식이 '자동적(스스로 존재하는) 차원'과 '타동적(인간 사회에 의해 구성되는) 차원'을 모두 갖는다는 사실로부터 기존의 경험론과 관념론 모두와 구별되는 제3의 과학철학적 입장의 필요성이 유도된다고 바스카는 주장하는 것이다. 바스카는 과학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어떻게 작동하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점에 대한 고찰이, 이 세계와 실재 자체가 어떤 식으로 구조화되어 존재하는지를 알아내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과학이라는 사회적 활동이 가능하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세계가 어떠하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바스카에게 있어서 일종의 코기토(cogito)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바스카는 과학자들이 경험된 현상을 수동적으로 '있는 그대로' 기술하기만 한다고 보는 시각을 거부한다. 바스카에게 있어서 과학 지식의 대상은 기제들, 즉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과 원리들을 밝혀내는 것인데,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사건들 속에는 여러 기제들이 복잡하게 섞여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사건으로부터 기제를 분리해낼 수 없어 과학적 지식을 생산해 낼 수 없다. 이를 '개방 체계'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사건들의 인과 관계에 개입해서 대부분의 기제들을 차단하고 몇몇 기제들만 나타나도록 하는 '폐쇄 체계'를 만들어 그 속에서 사건을 관찰함으로써 기제를 발견하고자 하는데, 이같은 활동을 우리는 '실험'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깃털과 쇠공이 단순히 낙하하는 사건에서는 중력 뿐만 아니라 공기 저항도 함께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중력 가속도라는 기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공기 저항을 차단하고 중력의 영향만 나타나도록 통제한 실험 환경에서만 과학자들은 '중력 가속도는 질량에 상관 없이 일정하다'는 기제를 발견해낼 수 있다.

결국 과학적 방법론의 핵심적 활동인 실험으로부터 바스카는 실재가 세 가지 차원으로 구조화되어 있음을 연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사건들에 관한 우리의 경험들의 집합인 '경험적 영역', 둘째는 인간이 경험하든 말든 상관없이 발생하고 있고 또 앞으로 발생할 것인 사건들의 집합인 '현실적 영역', 셋째는 이 사건들을 지배하는 기제들의 집합인 '실재적 영역'이다.

실증주의가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 경험적으로 입증되는 것만을 실재한다고 인정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경험적 영역이라는 한 차원 속에 모든 실재를 뭉뚱그려버리는 평면적인 세계관을 드러내는 데 비해, 초월적 실재론은 경험으로부터 독립적인 실재의 영역을 인정하여 세계가 구조적, 즉 다층적으로 존재함을 통찰해냄으로써 경험적 실재론을 효과적으로 반박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비판적 실재론은 초월적 실재론을 통해 과학 일반에 관한 철학을 연역해낸 뒤, 비판적 자연주의의 단계에서 이를 사회과학에 적용하려 시도한다. 초월적 실재론이 과학이라는 사회적 활동의 존재로부터 세계의 속성을 연역해내는 전략을 취했다면, 반대로 비판적 자연주의에서는 자연과학적 지식의 대상들과 달리 사회과학적 지식의 대상들만이 갖는 특수성으로부터 출발해 사회과학이 합리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져야 할 조건들을 설명한다.

그 인식론적인 한계로서, 사회과학에서는 자연과학에서처럼 폐쇄 체계를 구성해서 탐구할 수가 없다. 따라서 사회과학에서는 경험적 검증이나 재현성 등의 개념을 적용할 수 없고, 이 때문에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포퍼 류의 이론들과 반증의 기준 등은 ... 모두 완전히 기각되어야 한다"(바스카, 『비판적 자연주의와 사회과학』). 다시 말해, 사회과학에서 이론은 예측적이기보다는 설명적이다.

자연과학과 달리 실험적 방법을 통해 이론을 검증할 수 없는 대신, 사회과학 고유의 이론 구성 방법은 사회가 갖는 존재론적 특성들로부터 도출된다. 특히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은 사회가 개념 의존적이라는 것, 즉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갖는 생각과 상관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행위 의존적이라는 것, 즉 그 기제들이 지배하는 사건 내지 현상들과 상관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가 항상 개방 체계이기 때문에 사회과학적 탐구는 그 대상을 적절히 정의해서 개념화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게 되는데, 이 두 가지 특징은 그 개념화가 지나치게 자의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의 합리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유의해야 할 점들을 제시해 준다. 물론 그 개념 정의의 최종적인 타당성은 그것을 이용해 구축된 가설의 설명력을 통해 판별될 수밖에 없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회과학 그 자체도 사회에 관한 관념이며 또한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즉 사회과학은 그 탐구 대상인 사회 속에 포함되는 일부이며, 필연적으로 그 탐구 대상인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사실과 관련하여, 사회과학적 지식의 생산 활동은 두 가지 점에서 비판으로서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게 된다. 첫째는 기존에 존재하던 사회에 대한 관념들 - 어쩌면 환상 혹은 이데올로기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비판이며, 둘째는 그 환상 내지 이데올로기들과 결합되어 존재하던 사회 자체에 대한 비판이자 변동의 움직임이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증 속에서 이론과 실천, 사실과 가치 사이의 구분은 무너진다. 저자는 이를 통해 비판적 자연주의가 "인간과학을 지배해 온 이분법과 이원론을 극복"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에밀 뒤르켐

마르크스와 뒤르켐의 초기 저작에서
이미 시도되고 있는 이분법의 극복

그런데 오늘날 비판적 실재론의 등장을 통해 효과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분법에 대한 극복이, 실은 마르크스와 뒤르켐의 초기 사유에서 이미 시도되고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논문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 주장은 저자의 주된 목표이기도 하다.

우선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들로부터, 저자는 세 가지 점에서 비판적 자연주의의 단초를 발견한다. (여기서 비판적 자연주의란 과잉자연주의와 반자연주의 모두를 거부하면서 합리적으로 자연주의를 사회과학에 적용하려는 시도라는 뜻으로 쓰인 것으로 이해된다.)

첫째로 마르크스는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국민경제학과 헤겔 철학 모두를 비판하면서, 인간을 생물학적 욕구에만 충실하게 움직이는 동물처럼 묘사하려는 태도와 인간을 순전히 정신적이기만 한 존재로 간주하려는 태도 모두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마르크스는 "유적 존재"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파악하면서도 사회적 존재로서 동물과 구별되는 고유한 생활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여, 인간 대 자연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인간관을 드러내고 있다.

둘째로, 같은 책에서 마르크스는 자연주의와 "인간주의"가 철저하게 관철될 때에는 통합된다고 주장하면서 그 통합된 실체가 사회라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마르크스는 자연과학과 인간과학(사회과학)이 통합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고 저자는 이해한다. 셋째로 『독일 이데올로기』에 이르러서는 경험론과 관념론, 유물론과 관념론의 이분법적 대립이 어떤 식으로 극복 및 비판적으로 종합되어야 할지에 대한 견해가 구체화되면서, 그 방법과 관련해서 역사를 시야에 담는 관점이 드러나고 있다.

한편 저자는 뒤르켐에게서도 세 가지 점에서 비판적 자연주의의 단초를 발견한다. 첫째로 뒤르켐은 "당대 칸트주의 도덕론과 공리주의 경제학"이 모두 "도덕과 경제, 인간과 자연에 단절을 설정하는 이원론적 편견"을 품고 있음을 비판했으며, 이런 입장에서 경제학을 향한 비판을 전개해가는 과정에서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세워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둘째로 뒤르켐은 서로 다른 과학들이 공통적으로 따르는 탐구의 방법론으로서 철학, 즉 과학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논증의 과정에서 뒤르켐은 "진정한 과학은 관찰에 의해서만 지탱될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경험론적 과학관을 반박하며, 또한 "정신 현상은 자연 현상의 일부"라고 주장함으로써 초월적 관념론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뒤르켐 스스로가 자신의 입장을 "외부 세계가 실재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실재론적 독트린"으로 규정한 바, 이같은 논증의 과정에서 뒤르켐은 일종의 실재론적 입장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로 뒤르켐은 당시 칸트주의 도덕론과 공리주의 경제학이 모두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취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사회과학의 자율성을 모색한다. 뒤르켐은 경제학들이 고립된 개인을 가정하는 것은 '추상'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방법"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사회분업론』을 통해 분업이 "자연적 사실인 동시에 도덕적 사실일 수" 있음을 논증하려 시도한다.

저자는 두 사상가의 저작으로부터 발견되는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둘 모두 자연과 인간, 물질과 정신, 사유와 실재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를 거부했다. 경험론과 관념론 모두를 거부하며 실재론적 관점을 드러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동일한 의미에서 과학일 수 있다고 주장하되, 사회과학에 적용될 수 있는 자연주의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했다. 결론적으로, 둘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전제들은 "실증주의 과학관과 상이한 원리에 입각하고 있으며, 비판적 실재론의 관점에서 보다 풍부하게 이해될 수 있음"이 드러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이분법 :
바스카의 경우

바스카의 경우에도 기존 사회과학에 전통적인 이분법적 대립이 있음을 인식하면서 비판적 실재론이 그 이분법의 비판적 종합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마르크스에게서 이미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하는 지향과 그 방법으로서의 실재론적 사고가 나타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은 바스카와 김명희 사이의 공통점이다.

그런데 둘이 인식하는 전통적 이분법의 구도가 다소 상이하다는 점은 흥미롭다. 김명희가 기존 사회과학계에 마르크스와 뒤르켐을 둘러싼 이분법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며 이를 극복 및 종합할 수 있는 대안으로 비판적 실재론을 소개하는 데 비해, 바스카는 베버와 뒤르켐을 이분법의 두 축으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마르크스와 함께 자신의 비판적 실재론적 관점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바스카의 책 『비판적 자연주의와 사회과학』의 2장 「사회들」에서 바스카는 사회와 개인들이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해 기존의 모델 3가지를 소개하고, 각각의 한계를 지적한 뒤, 네 번째 모델로서 자신의 "변형적 사회활동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이 중 모델 I과 모델 II가 각각 베버와 뒤르켐의 것인데, 바스카에 따르면 베버의 모델 I은 사회가 순전히 인간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하는 "자원론"이며, 뒤르켐의 모델 II는 사회가 개인에게 강제력을 행사한다고 보는 "물상화" 모델이다.

버거의 모델 III에서는 사회와 개인이 "변증법적" 관계를 이루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묘사함으로써 베버 대 뒤르켐의 이분법을 해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느 순간에는 인간이 사회를 "창출"해내기도 하는 것처럼 묘사하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모델이라고 바스카는 지적한다. 개인의 모든 행위에 앞서 사회가 항상 이미 존재하고 있으면서 행위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델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스카의 모델 IV에서는 사회가 나름의 상대적 지속성을 갖고 존재하면서 개인의 사회적 삶을 조건 짓고, 개인은 그 조건 속에서 사회를 재생산 및 변형하게 된다.

"인간들은 그들의 표상들, 이념들 등등의 생산자들이지만, 그들은 그들의 생산력들 및 그에 조응하는 교류의 특정한 발전 - 가장 광범위한 교류 형태에 이르는 - 에 조건 지어져 있는 현실적인 행동하는 인간들"이라고 지적한 마르크스의 언급은 바스카의 모델 IV와 사실상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말해서 바스카는 마르크스에게서 이견이나 비판점을 찾아내는 일이 없는 듯하다. 바스카는 마르크스와 자신을 구분짓지 않으며, 자신의 비판적 실재론이 사실상 마르크스의 계승 및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르크스와 뒤르켐의 화해를 제안한 김명희 역시 한국적 맥락에서는 상당히 마르크스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한 셈이지만, 확실히 바스카는 김명희보다도 더 마르크스에 우호적이다. 이 사실을 굳이 드러내 언급하는 것이 혹시나 한국 내에서 비판적 실재론을 널리 알리는 일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강병준 리뷰어  iyyag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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