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2016 정치/사회
세월호라는 ‘사회적 고통’세월호 참사를 극복하려는 노력들 (2)
문지호 리뷰어 | 승인 2017.11.02 07:53

2014년 말의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광복 이후 일어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한국인들은 한국전쟁(15.5%)을 꼽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겪지 않은 20·30·40대가 가장 중요하게 꼽은 사건은 세월호 참사였고, 조사자 전체를 고려해도 세월호 참사는 13.9%로 두 번째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참사가 발생한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기에 이뤄진 조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세월호 참사가 한국인들의 마음에 새긴 고통의 강도를 짐작케 하는 결과이다.

 

어떤 사건이 역사적 견지에서 중요시될 정도라면, 그 사건은 광범한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 역시 사태의 복잡다기한 ‘사회성’을 고려한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양한 현장연구를 수행해 온 서울대 인류학과의 이현정 교수는 세월호 참사의 ‘사회성’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우선 이 사건을 ‘사회적 고통’으로 바라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교수의 논문 「세월호 참사와 사회적 고통: 표상, 경험, 개입에 관하여」 (『보건과 사회과학) 제43집, 2016년 12월)는 지금껏 세월호 참사를 표상하고 경험해 온 방식, 나아가 그 사건에 개입해 온 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세월호 참사의 문제를 사회적 경험으로서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적합한 방식으로 “해결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성찰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64쪽)

 

인천항에 정박해 있는 세월호. 2014년 3월 27일. [출처: 위키백과]
 

 

‘고통’을 어떻게 학문적으로 다룰 것인가

 

세월호 참사는 고통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고통을 학문적으로 다루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필자에 의하면, 세월호 참사의 경우 우선 그 고통이 “우리 사회 전반에 참으로 다양한 형태로 등장했다”는 점이 한 가지 난점이다. 즉 생존자, 생존자의 가족과 지인들, 유가족과 그 지인들, 실종자의 가족과 지인들이 “각자 경험하는 고통의 깊이나 양상은 기존 삶의 서로 다른 맥락과 가족적·경제적 상황 속에서 결코 한 가지로 환원될 수 없었다.” (64-65쪽) 나아가 배가 침몰하는 과정을 미디어를 통해 바라보던 일반 국민들 역시 간접적이나마 분노, 무력감, 죄책감 등 다양한 양상의 고통을 겪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이처럼 “사회 전반적이고 삶에 깊숙이 배태된 ‘고통’”을 그 사태에 적합한 방식으로 과연 “학문적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어려움은 “지금까지 고통은 측정 가능한 속성으로 분리되고 고통을 다루는 전문가들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온 실증주의적 학문 경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돼 있다. 이 문제를 필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고통의 문제는 공무원들에게는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의 수로써, 의료전문가들에게는 외상 후 스트레스의 진단 결과, 입원 환자 수, 혹은 자살위험도로써, 정치전문가들에게는 성명서 지지자의 명단과 정부 지지율의 변화로써, 경제전문가들에게는 지역경제 하락률을 보여주는 그래프로써, 복지전문가에게는 복지자원의 할당 근거와 비율로써 해석되어 왔다. (65쪽)

 

필자의 진단에 따르면, 이러한 ‘전문적’ 접근들은 “각 개인이 경험한 -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온 몸으로 부대낀 - 고통의 총체성을 도외시하고 이들의 경험을 분절화시킴으로써 오히려 고통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실패”한 듯하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필자는 ‘사회적 고통’(social suffering)이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문제에 접근하려 한다. “고통이 갖고 있는 사회적인 성격을 여러 측면에서 강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고통 개념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66쪽)

 

우선 사회적 고통 개념은 “고통의 감각이 존재론적으로 개인(의 몸)의 문제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경험하는 고통의 내용이나 강도”는 “가족관계, 공동체 및 국가 안에서 개인이 부여받은 위치와 역할”처럼 각자가 처해있는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둘째, 사회적 고통 개념은 “지역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 따라 고통의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의미가 달라진다는 면”을 고려한다. 셋째, 사회적 고통 개념은 고통이 언제나 “전문가적 담론 속에서 관료제적 관리나 기술적 개입의 대상으로 선별되고 정의된다는 점”과, 전문가들이 고통에 개입하는 양상이 그 고통을 악화시키거나 새로운 고통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66-67쪽)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를 ‘사회적 고통’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통을 ‘소비’하는 미디어, 고통을 생산하는 미디어

 

필자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의 고통을 미디어가 ‘소비’한 방식은 단적으로 말해 “무책임”했다. 사고 직후부터 여러 언론들은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버젓이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를 냈으며, 부모와 오빠를 잃은 6살 어린 아이의 얼굴 사진을 그대로 보여줬고, 겨우 구조되어 나온 학생에게 “친구가 죽은 사실을 알고 있느냐”며 인터뷰를 요청”하는 등 무능력하고 사려 깊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사고의 원인이나 대책에 대한 논의보다 사망자 보험금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피해자들의 슬픔과 인권을 무시한 채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기도 했다. (68-69쪽)

 

더욱이 두 차례의 선거를 거치면서 고통은 점차 “진영 정치화”됐고, 미디어는 이런 경향을 부추기고 강화했다. 필자는 이처럼 “판가름을 요구하는 고통에 대한 현란한 표상들은 세월호 참사가 야기한 고통의 본질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논의를 가로막았다”고 진단한다. 가령 미디어는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이 실제로 얼마나 다른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 놓이게 되었”는지, 그들과 “가까운 친지와 주변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들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되었으며, 어떤 “질병과 신체적 변화를 겪고 있고, 그 결과 [어떠한] 2차·3차적 트라우마와 고통을 겪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69쪽)

 

이에 반해 “단식과 집회에 참여하는 유가족들의 투쟁적인 모습과 배·보상금 수혜자로서의 이미지는 모든 언론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나아가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이 “삶과 가족, 나아가 물질중심주의의 현대 사회에 대해 갖게 된 남다른 반성과 깨달음에 대해 조명하기보다는, ‘노동계급 출신’ 또는 ‘외국인 밀집 주거지역이 많은 안산 거주민’이라는 사회경제적으로 능력이 부족하고 불쌍한 희생자의 이미지만을 강조하면서 타자성을 강화”하기도 했다. (69-70쪽) 이를 필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결국 단순하고 과격한 이미지로서의 고통의 생산, 유가족들의 진영 정치 프레임으로의 포섭, 참사에 대한 배금주의적인 해석, 그리고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거리두기 및 타자화가 반복되는 속에서, 대중들은 점차 생존자 및 유가족의 고통에 대해 ‘피로’와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70쪽)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고통에 대한 이러한 표상들이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필자에 따르면, 유가족들에게는 “진상규명을 향한 국가와의 싸움만큼이나 미디어의 이들을 향한 시선”이 “낯설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들은 “‘자식을 팔아 돈을 챙기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뭇 세상의 태도에 경악했다.” 이러한 미디어의 표상은 유가족들로 하여금 “컵라면을 먹거나, 양말을 벗거나, 심지어 웃음 한번 짓는 행위도 조심스러워”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발언과 행동이 어떻게 미디어에 의해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다루어질 수 있는지 늘 의식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는 “특정한 방식으로 현실을 가공하고 주체를 형성하는 권력 그 자체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필자는 결론 내린다. (70쪽)

 

 

고통이 경험되는 다양한 방식들

 

필자에 의하면, 세월호의 고통은 “안산과 인천과 진도와 제주도에서, 학생들과 어른들, 생존자와 희생자와 실종자의 부모와 형제자매와 일반 시민, 그리고 한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겪은 복잡다기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시공간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났고, 때로는 “서로 충돌하기도 했다.” (70쪽) 가령 세월호의 고통은 같은 안산 지역에서도 다르게 경험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들 사이의 차이와 분열과 갈등은 점점 구체적이고 복잡한 양상으로 드러”났다. “자녀를 잃은 유가족과 자녀가 살아 돌아온 생존자 가족 사이에는 과거의 친밀감으로 도저히 그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살얼음 같은 차가운 긴장과 적대”가 흘렀고, “같은 학교나 학원을 다녔던 희생자의 형제자매들과 생존 학생들 사이에도 마찬가지의 불편함과 불신이 존재하며, 간혹 갈등의 폭발로 인해 이미 다치고 상처받은 마음에 또 다른 생채기가 생기기도” 했다. (71쪽)

 

생존 학생들의 고통 역시 복합적이었다. 그들은 “수학여행에 대한 기억이 악몽처럼 되살아[나]” 힘겨워하는가 하면, “눈앞에서 빤히 배에 갇힌 친구들을 보면서도 혼자 살아온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 했다. 이런 괴로움으로 인해 생존 학생들은 사고 이후의 처리를 위한 여러 사회정치적 노력에 쉽게 가담하기 어려워 했다. 희생자에 대한 부채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희생자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것이다. 또한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뺏거나 보트를 타는 과정에서 선수를 빼앗는 등 어른들의 이기적이고 잔인한 모습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까닭에 학교나 지역에서 만나는 어른들에 대한 불신”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까닭에 생존 학생들의 부모들은 점차 “유가족들과는 거리를 두면서, 자녀의 트라우마 치료와 정상적인 생활 복귀를 우선순위로” 삼게 되었다. (72쪽)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에게는 당연히 상실의 고통이 가장 컸다. “이제 그만 좀 해라” 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으나, “부모들은 아직도 왜 자신의 아이가 그러한 사고를 당했고 또 구조되지 못하고 죽어가야 했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만큼 “자녀와 아무리 가까운 친구였다고 하더라도, 한동안 유가족들은 생존 학생들을 편안하게” 보지 못했다. 부러움과 원망의 감정이 뒤섞이는 가운데 생존 학생들을 좋은 마음만으로 대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또한 “같은 희생 학생 부모들끼리는 오랜 투쟁과 고통 속에서 이제 속마음을 터놓는 가까운 동지와 친구가 되었지만, 생존 학생의 부모들과는 ‘속마음이 다르기에’ 그러한 관계 맺음이 쉽지 않[았]다.” (72-73쪽) 희생 학생 이외의 자녀가 있는 유가족들은 “진상규명 운동을 위해 싸우는 동안, 홀로 집안에 ‘방치’되고 있는 다른 자녀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인해 더욱 힘들어했고, “다 키워놓은 외동아이를 잃어버린 부부들은 갑작스러운 커다란 공허 속에 계속 살아가야 할 자신과 이유를 찾지 못하며, 배우자와 둘이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73쪽)

 

한편 유가족들의 고통은 미디어의 보도는 물론이고 “친척, 친구 및 이웃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더욱 커졌다. 그릇된 미디어의 보도 탓에 “마치 유가족들이 엄청난 배상금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친척이나 친구들은 비싼 상품의 구매나 투자를 권유하거나, 심지어 어려운 생활 처지를 도와달라며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이가 죽은 게 무슨 벼슬이냐”며 “온통 세월호 이야기로 뒤덮인 안산을 불만스러워하[는]” 이웃들이나, “배상금 금액을 부풀리고 마치 국민의 혈세로 지급하는 것처럼 흑색선전을 일삼[는]” 정부와 미디어는 또 다른 고통의 원천이었다. 더욱이 “정부가 배상금을 책정할 때 단원고 학생들의 삶의 가치를 ... ‘도시일용직노동자’를 기준으로 [천편일률적으로] 책정했다는 사실”은 “혹시라도 그 돈을 받으면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우려[해]” 배상금을 신청하지 않은 부모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갈라 놓았다. (73쪽)

 

“시신조차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다. 2016년 8월, “실종 학생들의 부모들은 자녀의 책상과 소지품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원래의 교실에 그대로 남겨두는 것을 선택”했는데, “혹시 물품을 빼 버리면 자녀의 시신 구조 작업을 더 이상 하지 않을까봐, 또 ‘미수습자’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자녀들이 잊히게 될까 두려운 까닭”에서였다. 이 외에도 “유가족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으며 또 다른 형태의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던 단원고 생존 교사들과 그들의 가족들”, “사고 소식을 듣고 무엇보다 생명을 구조하고자 뛰어들었지만, 도리어 언론에 의해 왜곡되고 국가에 의해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린 잠수사들도” 말못할 고통을 겪고 있으나 사회의 눈길은 좀처럼 그들에게 향하지 않는다. (74쪽) 그러나 필자에 의하면, “참사가 불러온 사회적 고통의 상당한 부분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언어나 증상으로 표현되기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지금 우리가 현상적으로 접하는 고통이란 빙하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지도 모른다.” (75쪽)

 

 

정치적, 전문가적 개입이 낳는 고통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적 고통은 그 고통을 낳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와 전문가들이 ... 개입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발생하거나 악화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우리 사회의 정치적 내지 종교적 지도자들은 피해자들 및 공동체를 구성하는 전체 성원들에게 [이 참사에 대한] ‘설명’과 ‘위로’를 적절하게 제공하지 못했다.” 특히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정치적 지도자들(관료, 정치인, 대통령)의 태도”는 “유가족들에게 가장 충격적이고 당혹스[런]” 현실이었다. (75-76쪽)

 

종교계의 지도자들 역시 큰 위로가 되지 못했다. 필자에 따르면, 안산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는 지역”이었기에 “다른 어느 도시보다 대형교회가 많고 개신교 신도의 비율도 높”았거니와, 이들 교회들은 지금껏 “낯선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에게 물질적이고 심리적인 부조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당한 이들에게 일부 교회는 위로가 되기보다 오히려 상처가 되곤 했다. 특히 “진상규명과 특별법을 요구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보수 언론에서 ‘종북’ 내지 ‘반정부’ 세력으로 다루어지면서, 안산 대형교회의 태도”는 참사 초기와 달리 “비판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아가 안산시기독교연합회에서 2015년 8월에 교회 행사를 개최하면서 “그간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서울 대형교회의 목사들을 강사로 초청”한 일은 “개신교도 유가족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종교가 정치 못지않게 추가적인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76-77쪽)

 

전문가들의 개입은 또 다른 의미에서 피해자들의 고통의 실재와 어긋나고 있었다. 참사 직후 보건복지부는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이후 가족협의회의 뜻을 따라, 안산온마음센터로 명칭 변경)”를 설치하여 “참사 피해자의 의료·심리적 개입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을 배치했다. 그러나 정신과의사, 임상심리사, 정신보건간호사, 사회복지사들의 전문적 헌신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의 문제는 결코 ‘의료적 패러다임’만으로 설명될 수 없었다.”

 

의료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이 참사의 원인을 정부의 방관과 무책임에서 찾고 진상규명을 통해서만이 감정적 울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피해자들이 갖는 이러한 태도를 오히려 치료가 필요한 ‘병리적 증상’으로 간주하였다. 반면, 이미 국가와 관료들에 대한 불신이 쌓여 있는 생존자나 유가족의 입장에서, 가해자인 국가가 설립한 기관에서 국가가 고용한 전문가들에게 상담과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77쪽)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필자에 따르면 이는, “피해자 집단의 심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역사적·정치적·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충분치 못한 고려로 인해 결국 피해자의 고통을 전문가들이 가지고 있는 일방적 프레임”에 가둔 결과에 다름 아니었다. (77쪽) “전문가의 개입이 피해자들의 고통의 구체적인 맥락과 그 의미를 파악하기 전에 이루어진다면, 의도와는 달리 고통을 도리어 악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78쪽)

 

 

파국에 맞서 학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회학자 막스 베버에 따르면, 근대 학문의 전문화는 학문 진보의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고통의 지점들을 측정 가능한 것으로 바라보고 분류하는 작업은 고통을 다루는 전문가들의 특화된 영역을 설정해줄 뿐 아니라 개입의 지점을 명료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세월호 참사와 같이 그 고통이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권력의 복잡한 영향에 의해 발생된 경우에는 오히려 고통의 실질적인 내용과 성격에 대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78-79쪽) 가령 트라우마센터 전문가들이 “‘자살위험’을 걱정하며 집집마다 사전 허락 없이 방문하여 자살위험도를 측정”할 때 그들이 던진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은 “자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유가족들에게 “왜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느냐”는 “질책처럼 들릴 수 있었던 것이다.” (78쪽)

 

세월호 참사를 ‘사회적 고통’ 개념으로 이해해보려는 필자의 시도는 그런 점에서 제도화된 사회과학의 전문 분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고민과 함께 제시되고 있다. 필자에 따르면, 전문가의 책무란 점에서 볼 때 세월호 참사를 설명해 온 사회과학자들 역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각종 사회과학적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설명’이 “참사 피해자들에게 전혀 ‘납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75쪽)

 

만일 부족 사회의 주술사 만큼조차 공동체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없다면, 사회과학은 어쩌면 그 효능이 이미 다했거나 아니면 근본적인 변화의 시점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79쪽)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지호 리뷰어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210, 1층  |  대표전화 : 031)955-8898  |  팩스 : 031)955-2557
사업자번호 : 141-81-14390   |  등록일 : 2009.02.01   |  발행인 : 강성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성민
Copyright © 2018 리뷰 아카이브.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