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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한 투쟁, 재구성되는 마을제주해군기지 건설반대 투쟁 이후 강정마을 정체성의 능동적, 자주적 재구성
강병준 리뷰어 | 승인 2017.10.27 09:04
구럼비바위 옆 제방에 그려진 벽화. 2012년 7월 촬영. By 강병준, CC BY-NC 4.0

발전과 안보의 논리는 동아시아의 마을들을 하나하나 으스러뜨렸다. 밀양에는 송전탑이 완공되었고, 성주에는 미사일 포대가 진입했으며, 후쿠시마는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고, 오키나와에서는 미군 비행장 이전지 건설이 진행 중이다.

자본과 국가의 거대하고 조직적인 힘에 맞서기에 마을 주민들과 연대 시민들의 힘은 지나치게 작기 때문에, 개발 프로젝트를 백지화시키고 마을 공동체를 원형 그대로 보전하는 100%의 승리를 바라는 것은 과한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을의 미약한 저항을 짓밟고 들어온 점령군들이 마을 한복판에 거대한 승전 기념탑을 세워놨어도 마을은 여전히 존재하며 사람들은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달라져버린 풍경과 상처입은 관계들이 마을과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를 나름의 형태로 받아들이면서, 마을과 사람들은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가야 한다.

그 재구성의 과정에서 이전 투쟁 과정의 주체들이 흩어져 사라져버리지 않고 계속해 모이면서 새로운 투쟁과 시도의 잠재력을 유지 및 재생산해낸다면, 표면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끝난 투쟁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를 꼭 낙담만 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윤여일 씨는 논문 「강정, 마을에 대한 세 가지 시선 : 커먼즈에서 커머닝으로」(『환경사회학연구 ECO』 21(1), 2017.6)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및 그에 맞선 투쟁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서로 다른 시각으로 다룬 세 편의 문헌을 살펴보며, 실패로 끝난 투쟁 이후의 시간 속에서 마을이 어떤 식으로 관계와 정체성을 능동적으로 재구성해갈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 현장 인근에서 촬영한 구럼비바위. 2012년 7월 촬영. By 강병준, CC BY-NC 4.0

커먼즈

1996년에 발간된 『강정향토지』에 따르면 '강정'이라는 마을의 이름은 마을이 냇가에 위치해 있고 천연수가 용출되어 물이 많이 난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대두되기 이전 발간된 이 책에는 강정마을이 위치한 자연환경과, 주민들이 마을에 정착하게 된 내력, 무속신앙을 비롯한 생활사 자료와 사진들이 실려 있다.

『강정향토지』가 묘사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것들, 즉 마을의 형성 및 존립 조건을 제공하는 자연환경과, 그런 특정하게 주어진 자연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어 온 생활 습속 및 공동체적 합의들을 합쳐서 논문은 "커먼즈"로 규정한다. 논문이 볼리어의 책을 인용하여 규정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커먼즈는 '자원+일련의 사회적 규약+공동체'이다." 이를 참고하자면 『강정향토지』는 커먼즈 그 자신이 주체가 되어 바라본 커먼즈에 관한 기록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강정향토지』가 묘사하고 있는 강정마을의 커먼즈 상당 부분은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파괴 내지 크게 변형되었다. 구럼비바위는 발파되었고, 강정천과 마을 앞바다는 심각한 수질오염을 겪고 있으며, 마을 공동체는 분열과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오늘날의 시점에서, 『강정향토지』는 마을의 무엇이 파괴되었으며 얼마나 어떤 식으로 파괴되었는지를 증언하는 기록의 역할을 뜻하지 않게 수행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가 주체가 되어 바라본 마을의 모습이 『강정향토지』에 기록되어 있다고 할 때, 그에 비해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던 당시 중앙 및 지방정부가 마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는가 하는 점은 2012년에 작성된 「제주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지역발전계획」에 잘 나타나 있다.

「지역발전계획」은 구럼비바위 발파가 한창이던 2012년 3월 무렵에 작성된 문서로, "민·군복합항을 지역발전과 연계하는 동반발전 모델 제시"를 통해 지역 경제 측면에서 해군기지 건설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건설을 통해 1)크루즈 여객선이 입항하는 관광지로 조성되며, 2)농수산 특산물 및 관광자원 개발로 주민 소득이 증대되고, 3)주거환경이 현대화되며, 4)지역 주민과 군이 화합하는 공동체가 형성되고, 5)신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친환경 '생태도시'가 된다.

기본적으로 마을을 '현대화'의 대상이며 '도시'로 발전되어야 할 '열악하고 부족한' 곳으로 보는 시각이 이같은 계획에서 드러난다고 논문은 지적한다. 또한 마을 주민들의 생활 공간이자 중요한 커먼즈인 용출수나 강정천 등 자연자원들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구경거리로 무분별하게 개발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마을의 고유성과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점, 그에 따라 그것이 마을 주민들의 소득 증대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충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민·군 화합의 공동체'라는 청사진이 무색하게도 마을에는 이미 군인을 상대로 하는 유락시설이 늘어나고 있어, 마을이 군 기지에 경제적 문화적으로 종속되는 기지촌화가 우려되고 있다. 해군은 마을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며 장병들에게 마을 안 식당 이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마을 주민들은 군인들이 군복을 입은 채로 마을에 들어오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의 갈등으로 초래된 마을 공동체 파괴와 내분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역발전계획」은 강정마을에 태양광 및 해양풍력 발전 시설을 건설해 마을을 '에너지 자립마을'로 육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건설 규모는 풍력, 태양광, 지열을 합해 3천억 원을 넘어서며 전력 생산량도 30MW가 넘어 마을의 에너지 자립에 필요한 수준을 한없이 초과한다. 이는 실제로는 복합항에 에너지를 공급할 발전시설을 강정마을에 집중 배치하겠다는 계획에 불과한 것으로 논문은 파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논문은, 「지역발전계획」이 마을과 마을 주민들의 고유성과 주체성을 존중하지 않고 외부자로서의 관점과 결정을 강요하고 있어 "반커먼즈적이며 반마을적"이라고 단정한다.

 

(논문에 덧붙여서 생각해보는 내용이지만, 한국의 지역 개발을 둘러싼 갈등에서 신재생에너지가 동원되는 방식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본디 에너지 전환 담론에서 태양광 발전은 기존의 화력, 수력, 원자력 발전과 달리 소규모 분산형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각 지역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자주적, 민주적으로 계획해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어 마을 담론과 결합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신재생에너지는 오히려 마을과 대립되어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는 맥락에 배치되는 경우가 자주 관찰된다. 밀양 송전탑 건설 사례에서 한전 측이 태양광 패널 설치를 위한 토지 임대 수익을 송전탑 건설에 찬성하는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주민들을 회유 및 이간질했고, 이런 종류의 이간질들로 인해 마을 주민들 사이에 깊은 감정의 골이 패여 마을 공동체가 파괴된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참고 자료 : 『밀양송전탑 반대투쟁 백서, 2005~2015』,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근본적으로 반-마을적인 성격을 띠는 대규모의 건설 개발 사업을 위한 주민 회유 작업에 있어서, 분산형 발전 모델이나 '에너지 자립마을'과 같은 대안적 색채를 띠는 언어들이 적극 동원되고 있는 점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신재생에너지 담론은 그것이 가져올 사회 경제적 변화에 대해 낭만적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그 낭만적 묘사를 그것에 대립되는 성격의 권력 및 자본이 훔쳐다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무력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에서 『강정이야기』 영문판을 리디자인했다. By Everyday Practice, CC BY-NC-ND 4.0

커머닝

『강정이야기』는 한 달을 주기로 발행되는 마을 신문으로, 농촌마을로서 강정마을의 주요 행사나 소식을 다루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투쟁 신문의 성격을 띠기도 하는 마을의 자치 간행물이다.

투쟁 신문으로서의 성격과 관련되어, 『강정이야기』가 다루는 소식들의 공간적 범위는 독특하다. 강정마을을 중심적으로 다루는 매체의 성격 상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같은 전국적 규모의 이슈가 다뤄지지 않는 반면, 반대로 강정마을 투쟁과 관련 있거나 연대하는 사안이라면 공간적 한계를 두지 않고 다뤄지는 모습도 보인다. 2016년 5월호에는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행진 소식이 주요하게 실렸고, 7월호에서는 세월호에 해군기지 건설에 쓰일 철근이 실려 있었다는 보도에 관해 다루고 있다.

논문은 또한 "이나가와 코지"라는 이름에 주목한다. 이나가와는 오키나와 현에 속한 일본의 최서단 영토인 요나구니 섬의 군사기지화에 반대하여 활동하던 활동가로서, "평화의 바다를 위한 섬들의 연대" 모임을 통해 강정마을과도 연대하여 방문한 바 있다. 이후 이나가와는 요나구니 섬에서 자위대를 감시하는 활동을 하던 중 2016년 4월 10일 행방불명되어 다음날인 11일 해저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는데(관련 자료), 국내와 국외를 막론하고 어느 언론이나 매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 인물의 이름과 사건을 『강정이야기』만큼은 다루고 있다.

이처럼 '강정'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매체인 『강정이야기』는 지리적 구획으로서의 '강정'에 국한되지 않고 강정마을에 드나들고 연대하는 사람과 사건들의 흐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공간을 담아내고 있다. 다시 말해, 『강정이야기』에서는 "반경으로서의 마을"이 곳곳에서 읽힌다. 이는 강정마을 투쟁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의 연대 및 그것이 생산해내는 새로운 형태의 마을 정체성과 관련 있을 것이다.

"지킴이"라 불리는, 투쟁 현장에 거주하여 당사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연대 활동을 펼치는 형태의 활동 및 활동가들은 2000년대 중반 평택 미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논문은 소개한다. 그런데 강정마을의 경우에, 구럼비 발파 및 해군기지 착공으로 운동의 가시적 목표가 상실되어 '패배'로 일단락이 지어졌음에도 지킴이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새로운 주민이 되어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투쟁에서의 지킴이 활동과도 구별되는 특별한 점이라고 논문은 지적한다.

이 새로운 구성원들과 함께 주민들은 마을 곳곳에 새로운 커먼즈를 건설해내고 있다. 다양한 연대기구와 협동조합 등의 활동이 생겨나고 있고, 평화회관, 책방, 길거리미사천막 등 모임의 장소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같은 새로운 커먼즈들은 상실된 기존의 커먼즈인 구럼비바위를 계승 및 대체한다는 공통의 성격을 띤다. 즉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동네마당으로서, 사랑방으로서, 놀이터로서, 쉼터로서, 성소로서, 그렇게 문화를 빚어낸 공간"이었던 구럼비바위가 폭파되어 사라진 이후, 구럼비바위가 수행했던 역할을, 새롭게 건설된 이들 활동과 장소들이 대신하면서 또한 구럼비바위를 기억하고 계승하고자 하는 의식을 보이는 것이다.

새로운 커먼즈를 일궈내고자 하는 능동적인 활동들을 논문은 "커머닝"으로 규정한다. 볼리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유된 자원을 관리하는 체제들"을 커먼즈라 할 때 이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상호지원, 갈등, 협상, 소통 그리고 실험의 행동들"이 바로 커머닝이다. 커먼즈와 커머닝은 발전, 국가, 안보, 경쟁 등의 가치를 앞세워 생태계, 지역성, 다양성을 끊임없이 희생시키는 국가와 자본에 맞선 대항담론으로서, 마을의 중요한 결정이나 사업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마을의 자연자원은 누구를 주체로, 무엇을 근거로, 어느 수준까지 보존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된다고 논문은 주장한다.

논문에 따르면, 소위 '제주 민·군복합항 관광미항' 준공식이 있었던 2016년 2월 26일 강정마을 주민들은 '강정생명평화문화마을' 선포식을 열어,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부속마을로 전락하는 게 아니라 전통을 지키고 새롭게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선언은 해군기지라는 현실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또 구럼비바위라는 중요한 자연적 커먼즈가 영원히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강정마을이 커머닝이라는 공동의 실천을 통해 어떤 가치와 정체성을 추구하고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논문이 작성된 2017년 6월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4월 제주도를 방문하여 강정마을 주민들에 대한 해군의 구상금 청구 소송 철회와 처벌 대상자 사면을 공약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문 대통령은 제주 제2공항 및 신항만 조기 개항을 공약한 바 있는데, 제2공항 건설지인 성산읍 주민 등 반대 도민들은 이를 '제2의 강정'으로 규정하며 난개발을 규탄하고 있다.

생태계와 지역 주민들의 삶과 의사를 희생시키는 개발 사업이 여전히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고, 이미 완공된 해군기지가 강정마을의 문화적 주체성을 지워 종속시키게 될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한, 마을이 마을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어"의 자리를 찾고 지켜내도록 하기 위한 강정마을의 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운동 이후의 운동은 서서히 그리고 분명히 전에 없던 마을상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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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 따이싱셩, 「공동자원론과 한국 공동자원 연구의 현황과 과제」, 『경제와사회』 108호, 2015.12

정영신, 「동아시아 지평에서 바라 본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문제」, 『내일을 여는 역사』 제46호, 2012.3

강병준 리뷰어  iyyag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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