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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대립이 사라졌다고?경제민주화 담론을 둘러싼 이념대립과 한국
최태준 리뷰어 | 승인 2017.10.04 08:14
경제적 불평등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왜 정치사상을 살펴보는가

얼마 전 독일에서 총선이 치러졌다. 그 결과는 꽤 참혹했는데, 비록 기민당이 승리했지만 동시에 극우파들 역시 14% 이상의 득표를 올리며 선전했다. 어딜 가든 극단적인 열정들은 10% 내외를 향유하게 마련이지만 극우정당이 의회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는 ‘유의미한’ 대항세력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정치에 있어 심각한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무엇이 극우정당을 성장케 했을까?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제적 문제, 즉 먹고 사는 문제는 한 사회를 뒤흔드는 중요한 균열이다. 독일 총선에 대한 여러가지 분석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아무래도 경제적 불평등 문제이다. 경제적 빈곤과 불평등이 반발심을 불러오고 그것이 극우정당을 성장케 한 주요 동력이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 민주화 담론이 등장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정부의 정책적 실패로 인해 가속화된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민주화’에 대한 담론은 오랫동안 진척되어 왔다. 멀게는 해방 전후, 가깝게는 지난 16, 17대 대선에서도 경제민주화는 화두였다. 특이할 만한 점은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단지 소득 불평등의 개선이나 복지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두고 특정하게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통해 형성되어온 한국의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법은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담론을 해석하는 방식은 대단히 제한적이고 좁다. 종종 경제민주화는 정책적 기술의 문제라거나 혹은 법적 해석의 문제로 치환되어 이해되어 왔다. 혹은 대립하는 주장들을 단순히 나열하거나 혹은 경제적 비용과 효용을 계산하는 수학적 문제로 접근되기도 하였다. 이런 방식의 접근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지나치게 좁은 해석을 낳을 뿐만 아니라, 경제민주화가 만들어온 담론의 이념적 지형과 기반을 구체적으로 보지 못하게 한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대립이 벌어진다는 말은, 단지 경제적 효용이나 법리적 해석을 두고 학자들 간에 벌이는 논리싸움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그만큼 이념적 대립구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질문은 매우 간단하다. 경제민주화는 어떤 정치사상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가?

이번에 살펴볼 논문은 권도혁, 강정인 교수 「경제민주화 담론에 대한 정치사상적 고찰」(한국정치학회보 51(1), 2017, pp.5-27)로써 경제민주화 담론이 가지고 있는 정치사상적 함의를 살펴보려 한다. 비교적 최근에 제출된 논문이고,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이해를 진척시킴에 있어 본 논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 가지 대립구도: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공화주의

경제 민주화 담론을 둘러싸고 어떤 이념들이 대립하는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을 듯 하다.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공화주의가 그것이다. 한국에서 세 가지 갈래의 논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한국경제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파는 경제민주화를 쓸모 없는 것 내지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하며 ‘실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시장과 민주주의는 전혀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공간이다. 시장은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공간이지만, 민주주의는 강제성의 원칙이 작동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민경국, 배진영 등의 논자들에 의해 제시되는 경제민주화는 독일 사회민주주의를 모델로 하지만 이 때 경제민주화란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는 모델로 이해된다. 요컨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고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주장을 로크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로크는 자신의 저서 『통치론』에서, 자연상태의 인간이 “자신의 소유물과 인신을 처분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Locke, 1996, 11)를 누리고 있는데,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권위체가 없기 때문에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로크는 “자연적 권력을 포기하고, 공동체가 제정한 법에 따라 모든 사건에 관해서 그 보호를 호소할 수 있는 공동체의 수중에 그 권력을 양도”하는 정치사회가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정치권력이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두번째는 장하준과 정승일, 그리고 이병천을 중심으로 한 사회민주주의파다. 이들은 한국의 문제점을 고용불안과 복지의 미비로 꼽으면서 이것을 해소할 대안으로 경제민주화를 제시한다. 이들은 각각 재벌을 긍정적으로 활용하자는 입장과 재벌을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차로 나뉘지만 기본적인 입장은 보편적 복지를 확층하자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보편적 복지는 잔여적 복지(residual welfare)의 반대말로써 주로 북유럽 국가의 복지체제를 말한다.[1]

이들은 공공영역이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시장통제의 열쇠가 ‘사회적 타협’에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실제로 스웨덴 등지가 노조와 기업가 측의 ‘대타협’으로 복지를 이루어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장하준과 정승일은 기업들의 운영원리에 민주적 원칙을 적용하기보다는 기업의 운영원칙은 존중하자는 입장인데, 외국자본에 종속될 우려 때문이다. 외국자본이 한국의 자본을 좌지우지하게 되면 국민경제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 요컨대 장하준과 정승일은 보편적 복지를 우선하되 기업의 운영원리에 민주주의적 원칙이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병천은 장하준, 정승일과는 다르게 재벌의 운영원리 역시 민주적 책임 규율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 요컨대, “재벌의 소유, 지배 구조를 사회적 책임 기업형태”로의 개혁이 바로 경제민주화의 핵심인데, 이 때 단지 주주만이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납품업자를 포함해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권을 보장받는 형태가 이병천이 주장하는 바로 경제민주화라 할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론의 역사는 어디서 발원했다고 할 수 있을까? 사회민주주의의 기원은 마르크스주의의 수정주의적 해석에서 출발한다. 19세기 프랑스 사회당의 대표적인 수정주의자였던 장 조레스(Jean Jaures)는 사회주의란 노동자계급이 “민주주의와 보통 선거의 법 아래 자신의 세력을 체계적, 합법적으로 조직함으로써 권력에 도달”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민족국가 단위가 확립되기 시작하면서 조레스는 “민족과 조국이라는 것이 하나의 사실”이라고 선언하는데, 수정주의가 발달하게 된 배경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외국자본을 경계하는 장하준과 정승일의 주장은 사민주의적 발상이라 부를 수 있다.

한 편 사회민주주의의 또다른 기원은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정치가였던 비그포르스(Ernst Wigforss)로부터도 찾을 수 있는데, 그는 생산수단을 독과점하고 있는 대기업들을 민주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유주 없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이 그가 제시한 대안인데, 그것은 경영자, 노동자, 정부 관료, 소비자, 지역 대표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다.[3] 이러한 이론은 이병천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마지막은 공화주의인데, 김종인과 문재인의 경제민주화 개념이라 말할 수 있겠다. 먼저 김종인은 자유로운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4] 그는 “한 나라의 경제와 사회가 시장경제의 원리로만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는다(김종인, 2012, 32). 그에게 경제민주화란 “어느 특정 경제세력이 나라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김종인, 2012, 41). 다시 말해 국가 내의 사회세력의 균형과 조화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다. 문재인 역시 이와 같은 사상을 공유하고 있다. 문재인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 경제의 다양한 부문을 “획일화”시키고 “독점”하여 한국 경제 전반의 성장 잠재력과 창조성, 다양성을 악화시킨다고 말한다(문재인, 2012, 122).[5]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정치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을 경제 영역에 적용하는 것이 김종인과 문재인의 경제민주화다. 이러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공화주의의 원칙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공화주의란 무엇인가? 서구 정치 사상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공화주의의 한 모습은 혼합정부라고 말할 수 있겠다. 혼합정부란 과도한 대중주의의 경향을 막고, 과도한 귀족주의 역시 경계하고자 했던 사상이다. 달리 말해 공동체 내 사회 세력들의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공화주의의 목표라 할 수 있겠다. 대표적으로 마키아벨리를 들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각각의 순수한 정치체로서는 오래 갈 수 없고 다만 좋은 점들이 혼합될 때 건설적인 정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로마 공화정이 대표적이다. 로마는 처음에는 왕국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집정관과 원로원을 설치함으로써 군주정과 귀족정의 요소를 포괄했고 더 후에는 호민관을 선출함으로써 민주정의 요소까지 포괄하여 “완벽한 국가를 유지했다”(Machiavelli 2003, 78-84).[6]

마키아벨리는 각각의 요소에 포함되는 모든 구성원들의 야망을 긍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궁극적으로 공공선에 부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는 파벌을 “자기이익만 추구하는 자들”로 규정함으로써 이러한 파벌이 공동체 전체의 자유로운 이익추구를 방해한다고 경계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에게 중요한 것은 갈등적인 세력 간의 견제와 균형이 중요하다. 김종인이나 문재인이 특정 경제세력이 경제를 독점하고 있는 현상을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한국에서는 어떤 가치들이 격돌하고 있나

지면의 문제로 말미암아 각각의 사상들이 가지는 구체적인 함의들과 각 논자들의 주장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명백히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세 가지 이념적 대립 구도가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최근에는 경제민주화의 한 방편으로 ‘기본소득’ 의제가 제시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것이 더 당위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다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실업률와 빈곤이 중요한 화두라는 점은 강조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기본적인 키포인트로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경제민주화는 실패했다거나, 경제민주화가 쓸모 없다는 일체의 주장들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어쨌건 중요한 것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들이 이념적 기반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념 대립은 이제 사라졌다는 주장을 종종 보곤 하는데, 경제민주화를 중심으로 한 이념 대립은 여전히 남아있다. 많은 종류의 인간 갈등 중 경제를 둘러싼 갈등이야말로 가장 길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먹고 사는 것에 관한 문제만큼 인간에게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념대립들이 보다 분명해지고 표면적으로 드러날 필요가 있다는 점이겠다.

 


[1] 권도혁, 강정인, 경제민주화 담론에 대한 정치사상적 고찰, 『한국정치학회보』 51(1), p.12

[2] Ibid. p.15

[3] Ibid. p.17

[4] Ibid. p.18

[5] Ibid. p.19

[6] Ibid. p.20

최태준 리뷰어  xowns518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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