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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세월호 참사를 극복하려는 노력들 (1)
문지호 리뷰어 | 승인 2017.10.13 15:29

2014년 4월 15일 밤 9시에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항을 떠나 제주도로 향하던 한 척의 배가 그 다음날 아침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경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이제 침몰 사고를 당한 선박의 이름을 넘어 당대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을 집적한 고유명사가 된 ‘세월호’ 사고는 전 국민을 충격과 안타까움, 분노와 무력함으로 몰아넣으며 2017년 3월 25일 인양이 완료되기까지 295명의 사망자와 9명의 실종자를 낸 대재난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이러한 데이터로 기록될 과거의 ‘사고’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다. 이는 인양 이후 여섯 달이 지난 지금까지 수습되지 못한 5명의 실종자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침몰로 몰고간 기술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원인을 여전히 파악하려 애쓰고 있고, 그 책임 소재를 낱낱이 가리지 못하고 있으며, 참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제2의 ‘세월호’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지 부심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학계에서도 세월호 참사를 극복하려는 여러 학술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이런 노력의 결과물들을 리뷰해보려 한다.

인천항에 정박해 있는 세월호. 2014년 3월 27일. [출처: 위키백과]

 

재난을 기록하고 토론하다

커다란 사회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어떤 사회는 그 재난을 복기하고 그로부터 그 재난의 원인과 처방을 진단한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곤 한다. “재난의 발생은 그 자체로 현 사회 체계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24쪽) 실제로 올 4월 각종 언론이 이르면 2017년 말, ‘정부 차원의 첫 백서’가 나올 것으로 보도한 만큼, ‘재난의 기록’에 대한 성찰은 지금 우리에게도 무척 시급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몇달 지나지 않아 최형섭 교수가 발표한 「재난의 기록: 재난 보고서의 사회적 기능」 (『Future Horizon』 제21호, 2014년 8월)은 이러한 성찰에 도움이 되는 역사학자의 조언을 담고 있어 참고할 만한 글이다.

필자는 미국의 9/11 테러 사건 이후 발간된 9/11 위원회 보고서와 일본의 3/11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발간된 후쿠시마 원전사고 보고서를 살펴본 후 이를 한국 재난보고서의 과거와 현재와 대조하고 있다. 두 재난 이후 발간된 보고서들은 각각의 재난이 독특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발생한 만큼 보고서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필자에 따르면, 이들 재난 보고서들은 “발간 이후 제도 개선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첨예한 논쟁과 갈등의 초점에 놓이게 된다는 공통점”도 지닌다. (24쪽) 재난이 복잡다단한 만큼, 그 진단과 처방 역시 하나의 목소리로 단순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재난 만큼이나 재난 보고서 역시 한 ‘사회 체계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9/11 공격 이후 미국 정부와 의회는 ‘미국에 대한 테러리스트 공격에 관한 국가위원회 (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Upon the United States)’를 구성했다. “2001년 9월 11일의 테러리스트 공격과 관련된 사실과 정황”을 면밀히 조사할 임무를 부여 받은 위원회는 “20개월의 활동 기간 동안 250만 쪽의 문서, 10개국 1200명과의 면담, 그리고 160명의 증인들에 대해 19일에 걸친 공개 청문회를 개최”했고, 그 결과를 “500쪽이 넘는 보고서”로 종합했다. (24-25쪽) 필자에 따르면 이 보고서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형식”에 있었다. 가령 “2001년 9월 11일 화요일의 미국 동부의 아침은 온화하고 구름도 거의 없는 날씨였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일터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라는 보고서 본문의 도입부에서 알 수 있듯 이 보고서는 9/11과 관련한 복잡한 인물과 사실 정보를 “서사(narrative) 형식”으로 묶어냈다. “기존의 정부 보고서의 건조하고 정치(精緻)한 문체와는 큰 차이가 있”는 형식이었다. (25쪽)

이런 독특한 형식 때문이었는지 9/11 보고서는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보고서가 “정부의 책임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전문가들도 있었으나, 필자에 따르면 “적어도 전문가 및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사회 구조를 설계하기 위한 민주적 토의의 장을 열었다는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보고서였던 것이다. (25쪽)
 

서가에 진열된 9/11 위원회 보고서. 2004년 7월에 출간, 며칠 만에 인터넷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여러 편의 보고서들이 출간됐다. 필자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일본 국회가 구성한 ‘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조사위원회’에서 2012년 7월 5일에 최종 제출한 보고서가 “가장 공신력이 있는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원전 운영, 관리 주체인 도쿄전력과 사고 대응 주체인 일본 정부의 보고서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추진되었다. 국회 사고조사위원회는 2011년 12월 8일에 발족하여 “1167회의 인터뷰, 5주에 걸쳐 900시간의 청문회 개최, 그리고 2000건 이상의 자료를 도쿄전력과 정부 기관에 요청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그 결과를 “6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조사보고서”로 정리했다. (26쪽)

사고조사위원회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자연재해가 아닌 명확한 인재”라고 결론지었는데, 이러한 결론을 그저 보고서에 담아두는데 만족하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미국의 9/11 위원회처럼 “방대한 조사보고서를 시민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가령 위원회는 “‘알기 쉬운 국회조사보고서’라는 웹사이트 (http://naiic.net)”를 구축하여 “보고서에 대한 해설서와 해설 동영상을 제공”하는가 하면,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윤독회(輪讀會)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필자에 따르면 몇몇 한계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사고조사위원회 역시9/11 위원회처럼 “재난 보고서를 중심으로 일본 사회의 미래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기능을 했다. (26쪽)

 

세월호 교실’

이러한 비교 검토를 거쳐 필자는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가 어떻게 ‘세월호’를 기록하고 토론할 것인가를 묻고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이 글이 2014년 중엽에 발표되었음에도 그 중 몇몇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시의성을 잃지 않은 듯하다.

우선 필자는 한국에서 과거 ‘재난’이 어떻게 기록되고 논의되었는지 간략히 검토한다. 예컨대 1994년 10월 21일에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나온 백서를 보자. “사고 이후 나온 가장 종합적인 보고서는 수사기관인 서울지방검찰청”이 1995년 6월에 발간한 『성수대교 붕괴사건 원인규명감정단 활동백서』였다. 이 백서의 발간사에 따르면, 서울지방검찰청은 “성수대교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책임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와 같은 사고 발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하여 사고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철저히 밝히기로 하고 다양한 전문가 7인으로 성수대교 붕괴사건 원인규명 감정단을 구성”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성수대교 백서는 “기술적 원인을 규명함으로써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려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27쪽) 그러나 이런 접근은 기술이 더 큰 사회, 경제, 문화적 관계망 속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가리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그러나 필자에 따르면 더 큰 문제는 “보고서, 백서 등 관련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 보관하는 체계가 없는 것”이다. 재난 보고서가 “새로운 사회 구조를 설계하는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제2, 제3의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돼야 할 문제이다. (27쪽) 아직 정부 차원의 세월호 공식 백서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 문제는 앞으로의 사회적 관심에 따라 그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을 열린 문제이기도 하다.

나아가 필자는 이렇게 축적된 조사 보고서나 백서를 어떻게 시민적 숙의 과정에 통합시킬 수 있을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조사보고서를 작성한다면 앞서 살펴본 미국과 일본 등의 사례를 참조하여 새로운 사회 구조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27쪽) 필자는 여러 학계의 인사들과 함께 이를 위한 작은 방안을 마련한 바 있는데, ‘세월호교실’이라는 온라인 토론 공간(http://teachsewol.org/)이 그것이다. 이 공간을 만든 이들의 소개를 들어보자.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가리려는 정치적, 사회적, 법률적 과정과 더불어 꼭 필요한 것은 이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세월호는 도대체 무슨 사건인가? 이 사건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을 각자의 교실로 가져가 학생들과 함께 얘기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세월호교실은 대학교(또는 고등학교) 교실에서 세월호 문제를 가르치고, 배우고, 토론하려는 분들을 위한 수업계획안을 만들고 공유하는 온라인 프로젝트입니다. 전공분야나 담당과목과 상관없이 학생들과 함께 세월호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지려는 분들이 세월호교실 사이트에서 토론을 위한 질문과 자료를 얻고 이를 더 발전시켜 교육 현장에서 구현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는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하면 더 넓은 논의와 성찰의 장으로 가지고 올 수 있을지 고민한 작은 성과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후 나올 백서와 결합하여 더 진전된 ‘교실’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어쩌면 그런 와중에 필자가 글의 마지막에 담은 바람 역시 달성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재난의 희생자들과 유가족, 그리고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을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실을 밝히되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되 그것을 새로운 안전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집단적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제대로 된 재난 보고서는 이러한 기능을 떠안을 수 있어야 한다. (27쪽)

 

 

물론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일이다.

 

 

함께 참고할 자료:

세월호교실: http://teachsewol.org/

416참사 진상규명의 여정 (416가족 협의회 온라인 사이트 타임라인): http://416family.org/index.php/timeline-n1/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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