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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 선생님, 러일전쟁 당시 왜 그러셨어요?“위대한 지성조차 ’종군시’ 창작에 내몬 내셔널리즘의 무서운 그림자
강성민 리뷰위원 | 승인 2016.03.02 00:54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품격을 지킬 것 같은 사람이 있다. 가령, 사회의 광적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고 차분하게 시대를 꿰뚫어보며 뭇사람을 인도해줄 것 같은 이들 말이다. 요즘 셰프들의 셰프라는 말이 유행인데, 가까운 과거에 지식인들의 지식인이라고 할 만한 이들이 몇몇 있었다. 중국의 루쉰이 아마 대표적인 상징일 것이다. 일본에서 이에 부합할 만한 인물은 누가 있을까? 내 개인적으로는 메이지 시기의 대표적인 지성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가 떠오른다. 변화하는 시대 앞에서 흔들리고 고뇌하는 근대적 인간을 그렸지만, 그 자신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지성과 통찰로 생의 비밀을 꿰뚫어보는 작가적 임무를 완수한 이 아니겠는가. 

나쓰메 소세키 (출처: 위키피디아)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소세키의 ’과거‘가 있었다. 오준영 공군사관학교 교수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전쟁관 고찰」(『일본학보』 105, 2015년 11월)에서 소개한 「종군행從軍行」의 일부를 보면 이것이 소세키의 작품인가 의심스러워 눈을 비비게 된다.

「종군행從軍行」

                      나쓰메 소세키

우리에게 적 있으니, 전함이 포효한다
적을 용서하지 마라, 남아의 기개
우리에게 적 있으니, 용사들 몰려든다
적을 놓치지 마라, 용사의 기백
진한 핏빛 색깔인가, 일본국 깃발은
살기를 품은 채, 적을 비추지 않네

천자天子의 명령이다, 적을 무찌르는 건
신자臣子의 본분이다, 저 멀리 나아가는 건
천리를 나아가더라도, 애써 돌아오지 않는 건
만 리 이만 리, 승리를 기약함이라
찬란한 북두칠성은, 하늘에 떠있는 그대
오만한 우리 적은, 북쪽 저편에 있노라

하늘을 향한 맹세는, 바위조차 뚫는구나
들리는가 긴 칼, 칼집에서 빠져나오는 소리
차가운 빛 뜨겁게 달아오르니, 시퍼런 피 솟구치고
뼈를 스쳐지나, 쨍하고 울린다 부러지지 않는 이 칼, 적을 베는 칼
선혈 삼키는 칼인가, 피에 목마른 칼

이 작품은 명실상부 전쟁을 독려하는 신체시로 『제국문학』(1904년 5월)에 발표되었다. 일본은 1904년(메이지 37) 2월 러시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했다. 소세키의 시는 그 석 달 뒤 발표되었다. 어떤 강압에 의한 시가 아니었다. 오 교수는 “이 시에 대해 소세키가 얼마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같은해 6월 3일에 문하생인 노무라 덴시野村伝四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라고 말한다. 소세키는 편지에서 『태양』 6월호에 실린  오쓰카 구스오코大塚楠緒子의 「진격의 노래進撃の歌」에 대해 약간의 개인적 감정을 실어 불만을 표했다.

“『태양』에 실린 오쓰카 부인이 쓴 전쟁 신체시를 보게나. 무학無學의 노졸老卒이 잔뜩 기분에 취해 읊조리는 바보 다라니경陀羅尼經 같지 않나. 여자인 주제에 그만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걸 생각하면 내가 쓴 「종군행」은 참 잘 만든 거지.” (209쪽)

오쓰가 구스오코는 소세키의 친우 고야 야스지小屋 安治의 부인으로 이 세 사람은 한때 삼각관계를 형성했다는 설이 있다.(『나쓰메 소세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까지』, 한국일어일문학회, 글로세움, 2003) 그리고 ”여자”라서 어떻다는 말도 일단 여기서는 넘어가도록 하자. 그러면 남는 것은 소세키의 농담조의 자기 과시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 가볍고 우스꽝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내용인즉, 자신의 종군시가 훨씬 윗길이라는 것 아닌가.

오 교수는 논문에서 그간 소세키의 이런 부분이 연구자들에 의해 충분히 거론되지 못했거나 은폐됐다고 지적한다. 통상적으로 전쟁 시기에 쏟아져 나오는 각종 언설은 군대의 사기를 고양하고 적개심을 불러 일으켜 전투의지를 고취시키려는 목적에서 쓰여진다. 따라서 이 시기 전쟁소설이나 시는 숙명적으로 명확한 주제와 일관된 방향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세키 연구자 이즈 도시히코伊豆利彦는 “전쟁 시기에 전쟁을 미화하고 사기를 고무하는 언사는 언론이나 시가나 모두 틀에 박힌 것일 수밖에 없다. 소세키는 그것을 매우 싫어했던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오 교수는 이 견해를 수긍하기 어렵다고 본다. 물론 이즈가 그렇게 주장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종군행」의 내용과 관련하여 러시아에 대한 더러운 욕설이나 전쟁을 미화하고 국민을 선동하는 등의 위세 좋은 말은 없다. 오히려 이 시에서 느껴지는 것은 무겁고 괴로운 압박감이며 고독감이고 어두운 숙명, 죄와 저주의 냄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언사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천황과 신민의 도리를 논거로 삼아 젊은이들의 출정을 부추기는 내용의 2연을 보면 국민을 선동하는 말이 없다는 설명은 억지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210쪽)

그 외에도 일본 연구자들의 잘못된 주장은 많은데 이에 대하여 오 교수는 “소세키의 「종군행」에는 천황에 대한 충성이 일본 신민으로서 지켜야 할 절대적 가치임이 강조되고 있으며, 봉건적인 신민도덕론 또는 전제적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긍정이 피력되어 있다“고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기존 평가처럼 “소세키가 전쟁을 싫어했거나 혹은 일본 국민으로서 어쩔 수 없이 일시적이나마 국책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1904년은 러일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이라고 하자. 그러나 소세키의 만년의 생각이 담긴 『점두록点頭録』(1916)은 다르다. 『점두록』을 자세히 읽어보면 “소세키가 군국주의의 실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기존의 견해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고 오 교수는 말한다. 그가 파악한 『점두록』 속 소세키의 전쟁관은 일단 무척 추상적이고 여유롭다는 점이다. “마치 플라톤의 미학사상에 근거한 이상주의자 내지는 길가 개미들의 영역싸움을 대수롭지 않게 내려다보는 방관주의자의 면모마저 느껴진다“라고 오 교수는 지적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지 소세키의 원문을 읽어보자.

“원래 전쟁의 시작이 종교, 도의, 내지는 일반 인류에 공통적으로 깊은 뿌리를 내린 사상이나 감정이나 욕구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 이상은, 어느 쪽이 이겼다고 해서 선善이 번창하는 것도 아니고 또 어느 쪽이 졌다고 해서 진眞이 세력을 잃는 것도 아니며 미美가 빛을 잃게 되는 위험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점두록』에서, 논문 212쪽)

“설령 살상에 참여한 사람들 개개인의 머릿속에는 천차만별의 비극이 뒤섞여 시시각각으로 그 들의 운명을 변화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당면했을 때에 한해서만 영향을 미치는 한시적인 것 에 지나지 않는다. 영구적으로 우리 일반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변색시킬 정도의 강력한 결과는 그 어디에서도 발생하지 않는다.“ (『점두록』에서, 논문 213쪽)

일본의 기존 소세키 연구자들은 “소세키가 평소에는 귀족적 취미의 생활태도를 지니고 있었지만 전쟁에 관련해서는 서민의식에 기반을 두고서 간접적인 형태로 전쟁의 비참함을 호소했다“고 했지만 오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살상에 참여했던 이들이 겪는 정신적인 충격과 죄책감조차도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신념과 오만함“만이 보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취미의 유전>

물론 논문에서는 소세키가 전쟁의 어두운 면을 깊이 인식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형상화한 여타의 작품도 분석대상으로 삼고 있다.  특히 『취미의 유전』(1905)과 같은 작품에 나타난 소세키의 전쟁관은 천황을 미치광이 신으로 그리고, 개선하는 장군의 얼굴에서 초췌함만을 발견하는 등 전제적 천황제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제국주의 전쟁을 수행하는 군수뇌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그리고 전쟁 장면의 묘사도 철저히 고증되어 있으며 구체성을 띠었다. 이 작품에서의 소세키는 병사들을 도살장으로 내모는 전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화신이었다.

그렇다면 1904년의 종군시, 1905년의 전쟁비판, 1916년의 전쟁에 대한 달관적 태도로 이어지는 소세키의 전쟁 사유는 매우 분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은 그간 소세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완성된 지성“이라는 이미지를 이지러뜨린다. 그 틈을 타고 다시 들어갈 때에야 소세키에 대한 좀더 깊은 인식이 이뤄질 것이다.

결론에서 오 교수는 말한다. 바로 소세키 개인의 한계이자 메이지 시대 모든 지식인들의 내면을 적셔버린 내셔널리즘이라는 거대한 구름 그림자에 대한 지적이다.

“소세키는 메이지시대를 대표하는 지성답게 전쟁의 본질과 속성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지 만, 그의 시야는 언제나 일본・일본인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자국의 침탈과 자국민의 희 생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일본의 제국주의가 이웃나라 국민들의 자유와 평화를 유린하는 것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려 했다. 대부분의 메이지 지식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소세키 역시 메이지 국가체제가 만들어낸 내셔널리즘에 침윤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216쪽)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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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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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언니 2016-03-10 13:06:13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소세끼뿐이겠어요.   삭제

    • 놀자 2016-03-02 11:05:02

      소세키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실망이 크다. 물 속에서 물 밖의 풍경을 말할 자 누구인가. 문득 자본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나의 세상이 의심스러워지는 아침이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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