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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진 세상에 나로 살아가기랠프 앨리슨의 『보이지 않는 인간』을 소개하며
홍혜원 리뷰어 | 승인 2017.09.29 13:47

넷플릭스Netflix에서 제작한 영화 <Barry(배리)>에는 컬럼비아 대학에 편입한 청년 시절의 오바마가 나온다. 데번 터렐이 연기한 준수한 외모의 흑인 청년은 길에서 산 『Invisible Man(보이지 않는 인간)』이라는 책을 끼고 다닌다. 책을 사는 장면부터 농구장에서도 탐독하는 장면, 책 표지를 비춘 카메라 앵글 탓에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민음사에서 번역된 책을 구입했고, 검색을 통해 『Invisible Man』이 미국 중고교 문학 시간에 배우는 소설작품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소설에서 내내 이름 없이 ‘나’로만 나오는 주인공은 흑인이고, 20년 넘는 시간을 통해 자신이 ‘보이지 않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강준수의 「『보이지 않는 인간』에 나타난 주체성 고찰」(『영어영문학』 21(1), 2016)은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인 주체성을 다룬 논문이다.

Netflix가 제작한 영화 에서 데번 터렐(오바마 역)의 모습. 『Invisible Man(보이지 않는 인간)』 책을 읽고 있다.

 

보이지 않는 백인의 권력

미국의 백인들은 흑인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그들의 문화와 주체성을 억압했다. 이런 억압은 노예해방 이후 특권층으로 올라선 일부 흑인들에게 전염되어 그들 역시 같은 흑인을 억압하고 차별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주인공은 고등학교 졸업식 연설을 잘 해서 선물로 대학장학증서가 든 서류가방을 받게 된다. 그는 선물을 준 백인들이 말했듯 공부를 해서 자신을 개발하는 궤도에 오르는 선택 받은 흑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다니게 된 대학의 블래드소Bledsoe 총장은 주인공이 흑인들만 가는 곳에 백인인 학교이사를 데려갔다는 이유로 주인공의 순진한 아메리칸 드림을 가로막는다. 그 방식이 추천서를 가장한, 주인공을 다시는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내용이어서 주인공은 더욱 좌절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명망 있는 자리에 오른 흑인조차 자신의 동족을 곤란에 빠뜨리는데 백인다운 교묘한 권력을 이용한다. 백인들은 손을 쓰지 않고도 전도유망한 젊은 흑인의 솔직한 정체성을 짓밟을 수 있었던 것이다.

『Invisible Man(보이지 않는 인간)』을 쓴 랠프 앨리슨.

 

흑인은 짐승 혹은 아이와 같다는 편견

주인공과 함께 학교 바깥을 구경하던 노튼Norton(주인공이 다니는 대학의 설립자이자 학교 이사)은 흑인들을 짐승처럼 간주한다. 백인인 본인도 딸과 성관계를 갖고 싶어한다는 암시를 무의식적으로 내비치지만, 흑인사회의 근친상간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자네네 사람들은…(짐승들처럼 성적으로 문란하니까.)’이라고 말한다.

1970년대 인종차별 논란으로 도서관 및 공립학교 서가에서 사라진 『Little Black Sambo(꼬마 검둥이 삼보)』 동화책의 표지. 흑인의 외모를 우스꽝스럽게 그리거나 호랑이에게 바보처럼 옷을 빼앗기는 이야기 등이 문제가 되었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성숙하지 못한 아이로 보는 편견은 샘보Sambo 이미지에서도 드러난다. 샘보는 남북전쟁 이전까지 흑인 노예들의 흔한 이름이었다. 주인공과 같은 동지회Brotherhood 조직의 단원이었던 클립턴Clifton은 말 잘 듣고 순종적인 노예의 이미지를 가진 샘보 인형을 팔면서 자신의 절망스러운 처지를 표출한다. 그는 백인들이 동지회에 속한 흑인들을 샘보 인형처럼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인공에게 상징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2016, 강준수).

 

보이지 않는 자신에 대한 인식과 성찰

소설의 시작부터 주인공은 자신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백인들에게 자신은 톱니바퀴 같은 부속품에 불과하며, 같은 흑인에게서 조차 기만 당하는 존재라는 것. 그는 어떤 삶을 살더라도 흑인인 자신은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의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욕망했던 것들 역시 보이지 않는 권력을 지닌 백인들의 욕망이었다.

할렘 폭동에 휘말린 주인공은 맨홀에 빠지게 되고,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서류가방에서 고등학교 졸업장, 샘보 인형, 동지회에서 받은 서류들을 태운다. 이는 타인들이 규정한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주체성을 세워가려는 상징적인 노력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백인의 가치가 만연한 외부와는 단절된 지하세계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에 나아가기 위한 작업을 한다. 그는 자신의 동굴을 천 개가 넘는 전구로 밝힌다. 이는 자신도 ‘보이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형상화하는 상징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보이지 않는 인간』 표지.

 

흑인의 문제와 보편성

앨리슨은 『보이지 않는 인간』을 통해서 무지하고 수동적이었던 주인공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고 능동적인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려냈다(2016, 강준수). 랠프 앨리슨은 미국의 흑인 작가들 중 한 명이었지만, 그의 작품은 흑인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주체성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인류 보편의 문제를 미학적으로 잘 다뤘다는 평을 받았다. 엘리슨은 미국의 흑인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윤리적 가치와 태도를 발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다양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앨리슨은 흑인의 문제와 해결방식을 개인적인 실존 차원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흑인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고 회피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본 논문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핵심적인 주제를 소설 속의 여러 장면을 통해 잘 전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랠프 앨리슨과 그의 작품이 그동안 잘 연구되지 않았던 탓인지 핵심적인 만큼 진부한 주제였다고 볼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인간』을 다룬 논문을 찾으면서 손지영의 「랠프 엘리슨의 『보이지 않는 인간』에 나타난 푸코적 주체화」(『새한영어영문학회 학술발표회 논문집』 2014)도 읽을 수 있었는데, 앨리슨의 소설만으로도 충분한 주제의식에 굳이 푸코의 개념을 끌어왔다는 점에서 본 논문보다는 매력을 덜 느꼈다. 바라건대는 영문학에서도 아직 소개되지 않았으나 충분히 소개될 가치가 있는 작가들과 그의 작품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런 토대에서 보다 참신한 주제와 문제의식을 가진 논문들이 훨씬 많아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홍혜원 리뷰어  hhw3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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