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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는 페미니즘의 패배인가힐러리 로댐 클린턴과 포스트 페미니즘
홍혜원 리뷰어 | 승인 2017.09.29 13:43

지난 미국 대선 패배 이후로 힐러리 클린턴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그는 2016년 대선을 회고하는 <What Happened?(무슨 일이 일어났나?)>의 출간을 앞두고 TV 인터뷰에서 산책과 샤르도네 와인, 요가 등으로 패배감을 달랬다고 털어놓았다. 힐러리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접했던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언급하며 여성의 공직 참여를 장려하는 단체를 포함한 ‘Onward Together(함께 앞으로)’라는 정치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Onward Together은 지난 주 수요일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이메일을 힐러리 지지자들에게 보냈다.

힐러리 트위터. 자신이 설립한 정치단체인 Onward Together에 후원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을 ‘유리천장을 깨는 사람’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페미니즘의 역사적 소명으로 제시하였다(2017, 김보명). 김보명(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의 「힐러리 로댐 클린턴과 (포스트) 페미니즘-클린턴의 패배는 페미니즘의 패배인가?」(『페미니즘 연구』 17(1), 2017)는 현 페미니즘의 다층적인 모습을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인물을 통해 구체화한 논문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생애와 페미니즘

힐러리는 1947년 평범한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성인기를 보낸 1960~70년대는 페미니즘 운동이 사적인 영역까지의 확대를 도모한 시기이기도 했다. 힐러리는 예일대 법대를 졸업한 후 민권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빌 클린턴과 결혼 후 정치인의 아내로 이름을 알렸다. 힐러리는 다른 정치인의 아내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공적 활동에 참여했고 이로 인해 언론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1995년 베이징 여성대회에서의 연설은 힐러리가 국제적인 페미니즘에 자신을 기입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그 덕분에 힐러리는 자신을 페미니즘의 아이콘이자 진보주의 정치인으로 이미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 그녀가 월 스트리트와 친분을 맺고 클린턴 재단 및 고액 강연을 통해 부를 축적했기에 기득권에 속한다는 비난도 있었다. 또한 힐러리가 국무장관으로 있으면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보호했다는 점도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야기했다. 이런 모순은 그동안 서구에서 주류를 이뤄왔던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와 결합한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페미니즘이 백인 중산층 여성의 승리로 국한되는 한계를 볼 수 있다.

1995년 베이징 여성대회에서 연설하는 힐러리 클린턴.

 

힐러리의 정체성과 포스트 페미니즘

포스트 페미니즘은 여성을 이미 해방된 존재로 보며 페미니즘을 과거의 일로 돌린다. 또한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면서도 사적이고 문화적인 영역에서는 여성스러움을 잘 구현하는 여성상을 출현시켰다. 이는 신자유주의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힐러리의 정체성은 이런 페미니즘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결정된 후, 힐러리 클린턴은 후보 수락 연설에서 “어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Some people don’t know what to make out of me)”라는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김보명, 2017). 이 말은 힐러리의 복합적이고 상호모순적인 이미지에서 기인한다. 힐러리는 여성과 정치인이라는 말이 양립하기 어려운 시대를 거치면서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비난을 겪어왔다. 이런 정서는 여성과 정치 사이의 간극이 큰 사회 조건을 반영한다.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정치권에서 힐러리의 존재는 성적 모순을 보여주는 기표가 되는 것이다.

지난 미 대선에서 연설하는 힐러리 클린턴.

또한 힐러리는 국제 여성인권 옹호자이면서 미국 패권의 유지자로서의 모순도 안고 있었다. 1995년 베이징 여성대회에서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던 힐러리는 여성 인권 증진과 역량강화, 전쟁강간, 지참금 살해dowry murder, 여성 성기절제female genital mutilation 등의 예를 들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중지할 것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그러나 힐러리가 이후 국무장관으로서 미국의 군사개입을 실행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면서 그런 개입에서 가장 취약한 여성과 아동들에게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혔을 거라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2008년 대선과는 달리, 2016년의 힐러리는 여성이자 페미니스트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부각시켰다. 이는 페미니즘이 더 이상 못생긴 여자들의 진지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대중문화와 자기계발서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즉 포스트 페미니즘은 ‘한 개인으로서 여성의 성공과 발전=페미니즘’이라는 도식을 만들어냈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재구성된 페미니즘은 대중들이 여성이자 정치인으로서의 힐러리를 조화롭게 수용하도록 해주었다.

 

젠더 정치학의 미래

포스트 페미니즘에서의 여성은 유연한 개인성과 생존의 자세를 지닌다. 힐러리의 생애와 정치적 궤적은 결국 백인 중산층 여성을 대표하는 힐러리만의 정체성에 그쳤으며, 신자유주의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종, 계층, 제3세계를 포함하는 정치적 지평으로 확대되지 못했다.

논문의 필자는 마지막에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는 페미니즘의 패배인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클린턴의 패배가 여성 비하와 소수자 혐오를 드러내는 트럼프의 당선을 의미했다는 점에서는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필자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백인 중산층 여성 중심이라는 한계와 더불어 포스트 페미니즘이 가진 개인성과 소비주의 역시 한계로 지적한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젠더 정치학은 인종, 계층, 국가적 차이들 사이에서 복잡하게 얽히는 다층적인 사람들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참고문헌

Eisenstein, Zillah. “Hillary Clinton’s Imperial Feminism.” The Cairo Review of Global Affairs. 14 October 2016. Web. 28 September 2017.

Fang, Marina. "Hillary Clinton Rules Out Seeking Office Again, But Remains Committed To Public Service." Huffpost. 10 September 2017. Web. 28 September 2017.

Owens, Eric. “Hillary’s New Political Group Is Now Using Her Granddaughter To Beg For Cash.” The Daily Caller. 20 September 2017. Web. 28 September 2017.

홍혜원 리뷰어  hhw3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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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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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1 2017-11-03 23:00:52

    "이는 페미니즘이 더 이상 못생긴 여자들의 진지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페미니즘의 오랜 역사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쓴이가 페미니스트, 즉 성평등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이 보임.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 발언을 필터링없이 내보낸 편집부도 일부러 이대로 낸 것인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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