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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파브르 『곤충기』를 어떻게 읽었을까?과학적 계몽과 우화적 교훈 사이에서
문지호 리뷰어 | 승인 2017.09.29 13:43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1822-1915)는 생전 열 권의 곤충기를 출판했다. 그러나 그 명성에 비해 그의 곤충기 전체가 한글로 완역된 것은 비전공자들에 의한 공역본이 나온 1999년을 기준으로 잡아도 20년이 채 넘지 않는다. 더욱이 곤충학자가 전문성을 발휘해 꼼꼼한 주석과 함께 곤충기 전체를 완역한 시점은 놀랍게도 불과 7년 전인 2010년이다. 그렇다면 그 동안 수많은 사람이 읽어온 ‘편집된’ 파브르의 곤충기는 어떤 책이었고, 사람들은 거기서 어떤 것을 읽었던 것일까? 과학책은 자연에 관한 ‘사실’을 알려줄 뿐이므로 ‘편집’된 ‘번역서’라 할지라도 사실적 지식의 차이 이외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김성연 박사의 논문, 과학서사의 번역과 그 영향 – 파브르 곤충기의 한국 근현대 수용사」 (『코기토』 79, 2016.2)는 식민지기 이래 『곤충기』가 읽힌 다양한 직간접적 방식을 검토하며 이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좌) 노년의 파브르 [출처: 위키피디아] (우) 1916년에 출간된 『곤충기』 원본

 

식민지와 해방기의 곤충기 - 도덕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우화

어떤 형태로건 파브르 『곤충기』가 한글로 처음 번역된 것은 1964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곤충기』가 한반도에서 읽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이미 일본의 무정부주의자 오스기 사카에(大杉栄)가 1922년에 번역한 일어판으로 『곤충기』를 접한 적이 있다. 오스키 사카에는 그 전에 다윈의 『종의 기원』(1914년)과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1917년)을 번역한 적이 있는데, 사회진화론적 “부국강병론[을] … 비판적으로 견제하며 보완할 수 있는 사상과 서사”를 소개하려는 진보적 목사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의 소개로 『곤충기』까지 번역하게 됐다. (88쪽)

필자에 따르면 이 번역서는 당시 일간지에도 소개됐고, 여러 식자층에게 “취미 혹은 교양”으로 읽힌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시 자연과학자들에게 파브르 『곤충기』는 자연과학의 입문서였으며 파브르는 롤 모델”이었던 듯하다. 가령 석주명의 어느 제자의 회고에 의하면, 석주명은 “식민지인으로 고보 교사생활을 하며 부족한 시간과 자본 속에서 채집과 관찰에 매진하던 자신의 처지를 프랑스의 주류 아카데미에서 벗어나 변방의 교사로 묵묵히 곤충기를 작성하던 파브르와 유사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89쪽)

파브르 『곤충기』 이후 식민지 조선에도 “조선 땅의 곤충기”가 등장했다. 예컨대 1930년대 일간지에는 파브르 『곤충기』의 유명한 말똥구리/소똥구리 일화를 차용한 듯한 「백두산 곤충기」와 같은 글들이 실렸다. 이런 글들은 곤충의 행동을 “의인적 해설법”으로 읽어 “교훈을 이끌어내려는 독법”을 흔히 구사했는데, 가령 말똥구리/소똥구리를 “근면한 노동자로 묘사”하는 식이었다. “곤충계를 하나의 ‘사회’로 보고 인간 사회 조직의 질서와 개인의 역할에 대한 자연법적 근거를 도출해내는 질료”로 삼았던 것이다. (90쪽) 나아가 ‘조선’의 곤충에 대한 관심은 조선을 안다는 조선 자체에 대한 민족주의적 열망과 결합되기도 했다. 조선의 곤충표본을 널리 전시하고, 해외에 기부하는 등의 활동은 그런 흐름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런 흐름은 해방 직후 더욱 강화됐다. “억압되어 있는 민족의식이 식민지 시기 자연과학의 유산인 분류학, 박물학적 지식의 산물”에서 발현된 것인데, 어려운 출판 여건 속에서도 1947-1949년 사이에 여러 자연과학 서적이 출간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곤충기의 경우 일본어 번역본 파브르 『곤충기』를 정전 삼아 조선 땅의 생물을 관찰했던 식민지 지식인들이 해방 직후 유사한 한글 저작물을 발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93쪽) 예컨대 석주명은 「국학과 생물학」에서 “생물학처럼 향토색이 농후한” 자연과학이 없다면서 “‘국학’으로서의 ‘조선생물학’”을 주장하며 곤충학을 그 일부로 위치지었고, 조복성은 “청소년들에게도 자연과학적 호기심을 주는” 여러 ‘곤충기’를 써서 “근대 대중과학물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94-95쪽)

필자에 따르면, 특히 조복성의 『곤충기』는 “살아있는 생물의 질서와 본능”을 생생하게 담고 “인간 사회 규칙이나 질서, 개인의 본능과의 유비적 서술”까지 나아간다는 파브르 『곤충기』의 독특한 의의를 잘 살려냈다는 점에서 “한국의 파브르 『곤충기』라고 불릴 만 했다.” (96쪽) 가령 조복성 『곤충기』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자.

인간 세상에는 오로지 자신이 인생을 바쳐 연구하는 학문에는 관심이 있고, 다른 일에는 어수룩하기 그지없는 학자를 못되게 등쳐먹는 종자들이 더러있다. 곤충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학자를 좀먹는 놈이 있다. 글자 그대로 좀이다. (96쪽)

그러나 이처럼 조복성이 파브르의 의인화된 서술을 따랐다고 하여 그 우화적 해석까지 반복한 것은 아니었다. 파브르가 때때로 곤충계에서 관찰되는 “약탈 관계” 같은 부정적 관계까지 지적한 반면, 조복성은 이런 대목을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의 『곤충기』는 “사회 내 부정적 관계보다는 긍정적 미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서술”돼 있었다. (97쪽) 한편, 조복성의 『곤충기』가 석주명의 저술처럼 해방기의 자각적 민족의식의 산물이란 점 역시 파브르의 저술과는 결을 달리하는 점이었다. 조복성에 따르면 그가 다루는 곤충들은 “백두산과 울릉도를 포함한 한반도”, 즉 “상징적 국토의 경계지대”에 서식하는 “토종 곤충”들이었다. (98쪽)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기에 출판된 “한글 저작들은 금강산에서 한라산까지 한반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던 마지막 저술이 되었다.” (94쪽)

 

1960-1980년대 파브르 곤충기 - 산업화 시대의 계몽, 근대 과학적 계몽

이처럼 파브르 『곤충기』가 과학도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쳤음에도, 그 원서는 해방 후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다. 필자는 이를 “국토와 국어를 회복한 해방공간에서 자국민의 자기 기술을 듣고 싶었던 해방직후의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한다. (93-94쪽) 파브르 『곤충기』의 한글 번역본이 출판된 것은 그 열망이 어느 정도 잦아든 1964년이 되어서였다. “세계문화의 동시적 수용과 이상적 국민양성을 지향하던 분위기”에 발맞춘 교육계의 필요가 그 배경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98쪽) 당시 『곤충기』는 서울시립농대 교수 구건이 번역한 『파브르의 곤충기』(양서각. 조복성 감수)와 김기일, 김종오 공역의 『파아브르 곤충기』(실학사) 두 판본이 같이 출판됐다. 특히 구건 번역본은 “최초의 한글 번역본”이자 “1967, 1968, 1972(삼중당), 1976(아리랑사), 1983(삼중당, 마당문고사), 1989, 1991, 1993년까지 지속적으로 출판”돼 널리 읽힌 것으로서, “원본의 완역이 아닌 발췌본이었지만 … 사실상 2000년대 이전까지 한국에서 읽히던 [대표적] 판본”이었다. 그렇다면 원본에서 무엇이 선택됐고, 그것들은 어떻게 재배치됐을까?

우선 구건 번역본은 “근면과 협동, 직분의 미덕이 부각되는 사례들인 소똥구리, 개미, 벌에 대한 관찰 대목들로 구성”돼 있었다. 원본 『곤충기』에는 “성, 모성, 죽음, 생존, 협동, 경쟁 등 다양한 본능을 추적”한 여러 관찰 결과물이 담겨 있었으나, 한글 발췌 번역본에는 “그중 근로의 신성함을 찬미하는” 장들이 특히 강조돼 있었던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라.

요컨대 나는 책임을 중히 여기는 인격, 양심, 의무, 일하는 존엄성을, 하다못해 꿈속에서라도 생각하고 있어야 할 것을 멈추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 만약 동물이 아무 것도 아니하고, 남의 폐만 끼치고 있는 것이 자기 자손을 위한 것이라면, 어째서 동물의 자손인 인간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까닭이 있겠는가? … 자기 새끼에게 남의 것을 가져다 먹이는 벌들과 접촉해온 이래, 나는 그 벌들 가운데서 게으름뱅이를 본 것은 아직 한 번도 없다. 이와는 정반대로, 놀고먹는 벌레는 부지런한 벌레보다도 한층 더 괴롭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100쪽)

이처럼 구건 번역본은 무엇보다 “‘국민성’을 계몽하고자 하는 의도[를] 짙게 표출”하고 있었다. 실제로 조복성은 “젊은이들이 자연의 깊은 섭리를 깨닫게 될 것과 이 책을 통하여 풍부한 인간성을 간직하게 될 것”임을 기대한다고 감수의 소회를 밝힌 바 있다. 번역자 구건에 따르면, 여기서 ‘풍부한 인간성’이란 다름 아닌 “책임을 중시 여기는 인격, 양심, 의무, 일하는 존엄성”을 가리켰다. “곤충에 대한 서사에서 국민성 함양을 위한 성실, 직분에의 충실, 노동의 찬양”, 즉 “경제성장을 독려한 산업화 시대의 미덕이라 부를만한 것”을 “추출”한 것이었다. 이처럼 “이 시기 『곤충기』는 도덕적 훈계의 참조 지점으로서 어느 시기보다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99쪽)

파브르 『곤충기』는 한글 번역본이 출간되지마자 “청소년 권장도서로 자리 잡았다.” 필자에 따르면 이 책은 “1960년대 이래로 교과서와 ‘우량도서, 권장도서, 추천도서, 고전도서’ 목록에서 지난 60여 년 간 빠진 적이 없다.” (101쪽) 더욱이 파브르 『곤충기』는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교과 연계 추천도서 제도’ 등과 연계돼 “국어, 과학, 도덕 교과목이 공통적으로 꼽은 유일한 도서”이기도 했다. (102쪽) 그렇다면 청소년 권장도서 선정자들은 어떤 이유로 『곤충기를』 추천했을까? 한 일간지는 다음과 같은 추천의 변을 적은 바 있다.

곤충의 생활을 인간과 같이 취급하여 쓴 파블의 곤충기는 과학서적인 동시에 훌륭한 시집이다. 대체로 과학자는 문학자가 아니고 따라서 시인이 아닌 사람이 많으나 파블은 과학자인 동시에 훌륭한 시인이다. (103쪽)

요컨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추천사에서는 교훈적 가치 이외에도 과학적, 문학적 가치가 부각된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그런 다양한 가치를 잘 흡수한 것 같지만은 않다고 필자는 지적한다. 왜냐하면 “너무나 낯선 낱말들이 많아 모르겠다”며 책읽기를 그만뒀다는 어느 중학생 학부모의 일화가 일간지에 실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번역서의 “낯선 해외 지명, 학명, 전문용어 등은 일반 대중 및 학생들에게 그것이 과학적 지식보다는 에피소드적 우화로 소화되어 단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한계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103쪽)

그렇다면 이런 한계를 크게 느끼지 않았을 법한 지식인들은 『곤충기』를 어떻게 읽었을까? 필자에 따르면 이 시기 지식인들 역시 대체로 『곤충기』의 과학적, 문학적 측면에 주목했다. 특히 『곤충기』에서 구체적인 과학적 계몽의 서사를 읽어낸 사례들이 특징적이었다. 가령 1970-80년대의 대표적 논객 이어령의 경우 『곤충기』를 “철저히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록으로서 취급”했다. (106쪽) 그는 파브르의 『곤충기』를 이솝의 『우화』, 이규보의 수필과 비교하며 파브르의 과학적 태도를 강조했는데, 이로부터 그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인들은 이솝처럼 상상적인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거나 반대로 파브르처럼 과학적인 관찰적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이 가장 결여되어 있다. 상상성과 과학성보다는 일상적 경험의 세계를 통해 주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경향이 가장 지배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07쪽)

이어령이 비록 이솝의 상상력 역시 한국인에게 ‘결여’된 것이라고 지적했으나, 그의 강조점은 파브르의 ‘과학성’에 있었다. “파브르의 매미를 생각하면 이솝도 이규보도 다같이 우스워진다”라는 그의 논평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진단은 “과학적 시선의 우위를 전제”로 그러한 시선을 통해 “우화적 세계와 주관적 경험의 세계의 허상을 깨트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07쪽)

 

과학과 우화 사이

필자에 따르면, 이어령이 파브르 『곤충기』를 읽은 방식 역시 하나의 ‘독해’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이어령은 파브르의 방법론적 과학성을 강조한 나머지 그의 의인화된 서술이 파생시키는 유추적 독해의 가능성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108쪽) 과학학의 연구 성과들이 보여준 것처럼, 자연과학자들 역시 그들의 연구 대상을 기술할 때 다양한 방식의 ‘의인화 기법’을 사용해왔다. 영장류학이나 곤충학은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그러므로 과학과 우화의 경계를 날카롭게 나누려드는 것은 어쩌면 ‘과학적’으로도 지극히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어온 한국인들의 장기 20세기의 역사는 그런 경계 나누기가 역사적 분석의 원칙으로는 더더욱 성립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김성연 (2013), 「“나는 살아있는 것을 연구한다” – 파브르 『곤충기』의 근대 초기 동아시아 수용과 근대 지식의 형성」, 황종연 외, 『문학과 과학』 2 (소명출판)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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