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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청계천에는 소문이 무성했지박태원의 『천변풍경』에 나타난 근대의 불안
홍혜원 리뷰어 | 승인 2017.09.27 23:28

하루에도 몇 번은 페이스북을 들락거린다. 언제부턴가 오밀조밀한 일상사, 경제 전망, 정치 개그, 소소한 취미에 대해 쓰는 페이스북 친구들이 많아진 덕분이다. 방에서 뒹굴거리면서 갖가지 정보를 꿰뚫고 친구들 사는 모습에 댓글도 달게 된 것은 SNS라는 플랫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SNS를 통해 하는 일들 중 가장 중요하고도 은연 중에 이루어지는 일은 따로 있다. 바로 내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같거나 다른지 확인하는 일이다. 마치 눈치게임이라도 하듯, 사람들은 글과 댓글을 쓸 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친삭(친구 삭제)을 당하거나 키배(키보드 배틀)를 벌이게 되는 모습을 심심찮게 엿보곤 한다.

SNS는 커녕 전화기도 귀하던 1930년대 경성(지금의 서울), 사람들은 지금의 청계천 주변에 모여 무성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하층민 아낙들이 빨래를 하던 천변이 그랬고, 짐짓 점잖은 남자들이 머리와 수염을 깎고 다듬던 이발소에서도 곧잘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얻어들을 수 있었다. 도시의 하층민이었던 청계천변 사람들은 소문을 주고받으면서 불안한 삶을 다독이고 위안을 얻었다. 엄숙희의 「박태원의 『천변풍경』 속 ‘소문’으로 읽는 근대의 풍경」(『국어문학』 61, 2016)은 서울이 급격한 근대화를 겪던 시절, 사람들이 소문을 주고받는 풍경에서 그들의 불안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주고자 한 논문이다.

 

소문의 진원지, 빨래터와 이발소

청계천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논문의 필자는 ‘소문’이라는 소재에 주목한다. 소문은 두 사람 이상이 모여야 가능한 의사소통 행위다. 1930년대 경성에는 일본을 통한 근대 문화가 빠르게 유입되었지만 하루 아침에 전근대적인 삶의 모습이 신식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특히 도시화의 바람을 타고 경성으로 상경한 빈민들에게 새로운 문화와 근대적 사고방식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제는 도심을 재개발하면서 한강 이남 지역을 개발했고 한강 이북은 슬럼화 되어 조선인들의 공간이 되었다. 박태원의 『천변풍경』에 등장하는 청계천변은 그런 시대적 배경의 산물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소문의 진원지는 빨래터와 이발소 두 곳으로 나눠볼 수 있다. 빨래터는 예로부터 여인네들의 공간이었고 여럿이 이용하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귀돌어멈, 칠성어멈, 점룡이 어머니 같은 하층민 여인들은 빨랫방망이를 두들기며 남의집살이하는 애환을 털어놓고 주인집 흉도 실컷 본다.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덕분에 그들은 속내를 편하게 드러내고 남의 흉도 허물없이 볼 수 있다. 소문을 얘기하고 한마디씩 거들면서 그들은 서로를 이해해주고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위로를 얻는다.

한편 이발소는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점잖은 남성들의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소문을 떠들지 않는다. 대신 이발소 소년 재봉이의 독백을 통해 소문이 그려진다. 따라서 빨래터에서처럼 감정이 해소되거나 신산한 이야기가 벌어지지는 않지만, 남자들은 재봉이를 통해서 천변의 소문을 듣게 된다.

 

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까 불안해

근대식 자본주의 도시로 변화해가는 1930년대 경성은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동시에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파산한 사업가의 이야기가 소문으로 들려온다.

“어떡하다 그러긴... 그것도 다 말허자면 시절 탓이지, (중략) 고무신이 생겨가지구 내남 즉헐 것 없이 모두들 싸구 편헌 통에 그것만 신으니, 그래 징신 마른신이 당최에 팔릴 까닭이 있어? 그걸 그 당시에 어떻게 정신을 좀 채려가지구서 무슨 도리든지 간에 생각해냈더라면 그래두 지금 저 지경은 안 됐을걸…(중략)…”

“그 쥔 영감이, 왜, 지난번에 강원도 춘천엔가 댕겨오지 않었수? 그게 거기다 집을 보러 갔던 거라는군 그래. 인제 왼 집안 식구가 모조리 그리 낙향을 헐 모양이지.”

그는 자기 이야기에 거의 모든 빨래꾼들이 일하던 손을 멈추고, 놀라는 기색으로 자기 얼굴을 쳐다보는 것을, 일종 자랑 가득히 둘러보다가, 갑자기 또 눈살을 찌푸리고,

“하여튼 남의 일이나마, 그, 안되지 않었수? 그 양반이 원래가 서울 태생이라는데, 더구나 한참 당년에 남부럽지 않게 지내다가, 일조일석에 그만 그 꼴이 되니…… 자기두 정신을 못 채리긴했지만 그래두 말허자면 시절 탓이지…(하략)…

파산한 주인집의 가사일을 하는 점룡이 어머니는 주인집의 불행을 ‘시절 탓’으로 돌린다. 부자들 마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파산하는 모습은 하층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그들은 소문을 통해 불안감을 공유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체감한다.

 

전근대의 일상, 가부장의 폭력

1930년대 경성은 근대화를 달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전근대적인 일상은 지속되고 있었다. 남자들이 첩을 들이고 본처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야기와 바람난 남편 때문에 고생하는 젊은 처자의 이야기가 그런 전근대적인 일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만돌이 아버지가 관철동에 첩이 하나 생겼다우.”

“저이 시골, 바로 한 이웃에, 그저 밤낮 제 서방헌테 얻어만 맞구 지내는 젊은 여펜네가 있다구. 그래 그동안 무던히 참어두 왔지만, 근래엔 딴 기집이 또 생겨 더구나 구박이 심해서 그대로 지낸단 수강 벗어, 어떻게든 자식 데리구 서울루나 올러갈까 허는데, 어디 남의집 살 데 없겠냐구, 바로 요 며칠 전에두 편지를 했다던 그 예펜네 말야.”

남편의 일상적인 폭력에 못 이겨 서울로 쫓기다시피 올라온 시골 아낙에 대한 소문도 떠돈다. 이는 근대화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적 남녀관계와 가정 내 가부장의 폭력이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달라진 점은 여성이 적극적으로 남편에게서 벗어나 도시로 이주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근대적 자본주의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게 근대적 개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청계천을 빼앗기는 사람들

1930년대 후반, 일제는 경성을 도시화하면서 청계천을 콘크리트로 덮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천변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더구나, 소문을 들으면, 뭐 청계천을 덮어버린단 말이 있지 않어? 위생에 나쁘다던가… 그러니, 정말 그렇게나 되구 본댐야, 인젠 삼순구식두 참 정말 어려울 지경이니...”

청계천변은 카페, 이발소, 술집 같은 근대적인 상가들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농촌에서 상경한 도시 빈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공간이었다. 청계천이 복개되면 이들은 살 곳을 잃게 되는 셈이었다. 『천변풍경』에는 청계천이 복개된다는 소문에 불안해하는 이들의 모습도 드러나 있다.

청계천 복개 공사.

 

근대문화를 수용해가는 모습

1930년대 청계천변에 살던 사람들은 근대화된 도시에서 근대에 적응해야 했던 동시에 여전히 전근대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모순을 안고 있었다. 신식남녀의 자유로운 연애를 이해하고 수용해가는 과정은 그들의 혼란스러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경서 갓 나온 한약국집 아들이, 역시 그해 봄에 ‘이화’를 나온 ‘신식 여자’와 ‘연애’를 한다는 소문은, 우선 빨래터에서 굉장하였고, 이를테면 완고하다 할 한약국 집 영감이, 이러한 젊은 사람들의 사이에 대하여, 어떠한 의견을 가질지는 의문이었으므로, 동리의 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법 흥미를 가지고 하회를 기다렸던 것이나, 아들의 말을 들어보고, 한 번 여자의 선을 보고 한 완고 영감이, 두말하지 않고 그들에게 선뜻 결혼을 허락해준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중략) 흔히 ‘신식 여자’라는 것에 대하여 공연히 빈정거려보고 싶어하는 동리의 완고 마누라쟁이로서도, 이제는 방침을 고쳐, 도리어 그들 젊은 내외를 썩 무던들 하다고, 그렇게 뒷공론이 돌게 된 것은 퍽이나 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신교육을 받은 두 남녀가 자유연애를 하고 신식 결혼을 하는 것은 당시의 웬만한 사람들에게 낯설고 가치 판단이 서지 않는 행위였다(엄숙희, 2016). 그래서 빨래터 아낙네들은 한약집 영감이 그들의 결혼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해 한다. 영감이 결혼을 허락하자 아낙들은 이제 신식 연애, 신식 결혼, 신식 여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게 된다.

 

소문의 역할과 의미

청계천변 사람들은 소문을 통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똑같이 어렵고 신산한 삶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불확실한 시대를 이해하고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소문의 대상이 되는 이야기들은 그들의 삶과 별다르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신식으로 무장한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근대화로 인한 불안함과 혼란스러움 속에서 1930년대 경성의 하층민들은 소문을 얘기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자신들의 가치관도 재정립해 나간다(엄숙희, 2016). 가진 것이 적어서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었다.

2010년대의 서울에는 더 이상 천변의 빨래터나 이발소가 없다. 대신 기술의 발달로 인터넷과 SNS, 전화와 메신저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글의 도입에서 언급했듯 SNS가 자신의 생각을 확인 받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 또한 읽어볼 수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곳에는 나와 동류인 사람들이 대부분일 가능성이 크다. 청계천변에 사는 하층민들의 삶은 언제까지 감정만 해소되고 말아야 하나. 본 논문을 읽으면서 이 점이 가장 안쓰러웠다.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면서도 각자가 처한 자리에서 문화의 격차를 경험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잘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 아프리카에 인터넷을 보급하는 이유, 소외계층과 다문화가정에 문화적 지원을 포함한 여러 가지 지원이 필요한 이유는 그런 지원이 그들의 불안감을 낮추고 새로운 것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기 때문이다. 소문만 떠도는 것과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 시대의 천변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소문 뿐만 아니라 기회와 문화적 경험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본 논문을 읽으면서 함께 떠올랐던 생각이다.

홍혜원 리뷰어  hhw3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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