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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알쏭달쏭함은 '대참사'인가 '대전환'인가'컨템포러리 아트'의 본질과 그를 둘러싼 해석의 긴장 다룬 강수미 교수
강성민 리뷰위원 | 승인 2016.03.01 22:49

“때때로 이런 교환은 어떤 실천이나 학문 분과가 하나의 패러다임을 다 써버린 후 다른 패러다임으로 옮겨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교환들은 미술과 비평 영역을 크게 확장시켰다. 하지만 현재 이 두 영역은 모두 상대주의의 징조를 보이고 있으며 어느 패러다임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거나 문화 일반에 관한 의미 있는 논쟁으로 끌어낼 정도로 강하지 않다.” (329~330쪽)

“이를테면 그것이 모더니즘 미술에서 현재로 진보해온 미술 자체의 변증법적 과정과 결과인지, 최첨단 미술로서 동시대 미술이 창출한 혁신의 양상인지, 역으로 1990년 후반 이후 동시대 사회 제반 조건이 변화한 데 따른 미술의 반영인지 등을 말이다.” (331쪽)

모던한 감각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콘템퍼러리 아트의 현장.

미술비평가 강수미 동덕여대 교수가 최근의 논문 「컨템포러리 아트의 융합과/또는 상호학제성 비판」(『미술사학』 30, 2015년 8월)에서 컨템포러리 아트를 심도 깊게 다뤘다.

위의 인용은 결론 부분에서 두 대목을 발췌한 것이다. 첫번째 대목은 할 포스터 등의 『1900년 이후의 미술사』(세미콜론, 2012)에 나오는 것으로 “하나의 패러다임을 다 써버린 후 다른 패러다임으로 옮겨가는 것”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미술이 모더니즘이라는 패러다임을 다 써버린 후 컨템포러리 아트라는 융합적, 상호학제적 패러다임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 두 패러다임 사이에서 발생한 교환들은 미술과 비평의 영역을 많이 확장시킨 것이 사실이지만, 확실히 패러다임 교체 선언을 외치기엔 양자 모두 미흡하다. 모더니즘은 사라졌는가 하면 여전히 다시 나타나고, 컨템포러리는 모든 걸 압도하는 듯 하면서도 소리만 요란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강수미 교수는 그래서 이 컨템포러리라는 우리 미술의 ‘현재’가 과거로부터의 지속적 발전의 결과인지, 아니면 평지돌출처럼 혁신적으로 나타난 건지, 아니면 다소 수동적이지만 사회 급변의 예술적 반영인지가 불투명하다고 말한 것이다.

강 교수는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까. 논문은 컨템포러리 아트의 융합적 현상에 대한 본인의 경험과 유수 이론가, 평론가들의 평가를 추적, 정리했다. 컨템포러리 아트란 복잡하게 생각하면 복잡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순하다. 먼저 단순한 쪽으로 생각해보자. 미술관에서 음악가가 바이올린을 켜는데 그 한쪽 옆에서는 행위예술가가 알몸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이를테면 미술, 음악, 행위예술, 조각물, 비디오 등 다양한 것들의 결합이다. 주로 공간을 잘 활용하며 대규모일 때가 많으며 오브제가 기괴하다.

복잡하게도 한번 생각해보자. 그럴 때는 개념적 서술로 갈 수밖에 없다. 논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컨템포러리 아트를 이전 시기의 미술과 구분 짓는 ‘동시대적인 것’은 ‘사조’나 ‘양식’이 아닌 ‘경향’인데, 특히 횡단, 확장, 융합, 혼성, 다양화, 복합화, 다원화 등 역동적이고 가변적인 경향이 그것이다. (…) 이를테면 모더니즘 미술의 동일성 또는 자기 지시성, 배타적 예술 사조, 미학적·비평적 형식(매체)과 내용에서의 특정성,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론적 의심/비틀기/해체와 그에 근거한 담론 및 텍스트성은 희박해진 대신, 컨템포러리 아트는 다종다양한 예술적 사건들의 시간적 전개가 되었다.” (308~310쪽)

컨템포러리 아트는 범위가 넓고, 관계는 다원적이고, 움직임은 역동적이다. 이전의 미술과 비교하면 깊이보다는 확장을, 인과성과 밀착력보다는 임의적이고 다변적인 관계를 우선시하는 느슨한 미술 집합체에 가깝다.

따라서 컨템포러리 아트는 대상화가 쉽지 않다. 미적 판단에 이르기 위해 텍스트를 고정하고 비평적으로 횡단하기가 만만치 않다. 사실 많은 이가 이 부분에서 좌절했다. 독해를 포기하고 그냥 기분과 감각의 콘서트 속에 휘말리는 것이다. 하지만 강수미 교수는 컨템포러리 아트를 이제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몇 가지로 컨템포러리 아트의 등장 배경과 소비구조를 정리해주고 있다.

“첫째, 조형적이고 심미적인 틀과 원칙을 고수하는 미학적 차원으로부터 수행적이고 행위지향적인action-oriented 태도와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사건의 전개 쪽으로 이행한 미술의 구조 변동. 둘째, 유일무이하고 배타적인 미적 형식 대신 창작과 수용의 거의 전 과정이 개방되면서, 상호 관계적이고 점차 네트워크 자체가 되어가는 미술의 작용 방식. 셋째, 앞선 두 가지 기제에 연관된 문제로서 미술비평에서 점차 엄격하고 진지한 미학적 판단이나 비판적 평가가 퇴조하는 대신, 완곡어법의 유연한 서술이 환영 받고 미술 비즈니스, 마케팅, 프로모션과 교차된 다자적이고 실용적인 글쓰기가 득세하는 현상이다.” (311~312쪽)

이 한 문단만으로도 논문을 펼쳐든 ‘본전’은 뽑았다는 생각이 들만큼 명확하고도 가지런한 정리다. 그렇다면 여기에 문제의 ‘융합/상호학제성’은 어떻게 관여되고 있는가, 그것은 또 몇 가지로 정리가 가능한가?

“모든 단단한 것은 녹아 사라진다”는 『공산당선언』의 구절이 단단한 틀에 대한 19세기적 해체였다면, 다시 단단하게 굳은 20세기적 모더니즘을 해체하는 데에 요즘은 지그문트 바우만이 자주 불려나온다. 강 교수는 컨템포러리 아트가 이러한 조건을 갖추게 된 이유가 전세계적 비엔날레와 국제 기획전, 아트 이벤트, 고성장한 미술 시장과 자본, 대중의 다양화한 미적 경험과 소비 속에서 나타났지만, “좀 더 비판적 이해를 넓혀볼 때” 바우만이 말한 ‘액체근대’라는 유동적 근대성 속에서 조감될 수 있다고 본다.

“학계부터 미술계를 포함한 문화예술계 전반까지 예술의 기교보다는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을 강조하고, 그 연장선에서 학제 및 방법론을 다양화하는 일을 적극 부양해왔다. 그것이 더 첨단이고 진보적이며 고차원적인 동시에 실천적인 예술과 학문이라는 맥락에서다. 우선 아트&퍼포먼스/안무, 아트&뮤직, 아트&미디어, 아트&휴먼사이언스, 아트&바이오테크놀로지, 아트&뇌과학처럼 기존의 예술분과에 통찰의 기초를 두되, 그간 유사하거나 전적으로 다른 영역으로 분리돼 왔던 분야 사이를 결합하는 상호 학제적 시도가 있다.” (312~313쪽)

아트업계의 액체화에 대한 서술이다. 액체화는 이론적 영역에까지 침투해들어왔다. 특히 미술사나 미학에서 이 같은 방식의 연구가 자리를 잡은 추세라는 필자는 미술사&페미니즘․철학·심리학·사회학·정신분석학·문학·언어학, 미학·정신분석학·도시공학·건축비평·미디어론·인지신경과학 등이 상호학제적 연구로 행해지고 있다고 예를 든다.

강 교수는 여기서부터 지금까지 정리한 상황을 토대로 쟁점을 구체화시킨다. 즉 이런 경향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미술의 부정성을 벗고 미술이 더 자유롭고 유연하며 창의적이고 창발하는 양태로 전개됨을 보여주는가,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점이 기대할 만한가를 비평적으로 논할 수 있다. 반면 “글로벌리즘의 이면처럼, 불확실성과 미결정성이 만연한 가운데 특정 미술 기제로의 전체주의적 수렴 및 예술 식민화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해 회의적인 분석을 가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논문의 초점은 “그런 섞음(융합)과 귀속(수렴)의 대세적 경향이 동시대 미술의 내부를 고갈시키고 패러다임의 부재를 부르는 것은 아닌가”에 더 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미국 오하이오대의 상호학제예술학교의 과정에 대한 분석으로 이를 살펴보고 있다. 그 결과는 아쉽지만 ‘교차적 의사소통’이나 ‘통합 추구’가 아닌 ‘병렬’에 가까웠다. 그것은 ‘상호학제’와 ‘초학제’가 아닌 ‘다학제’에 불과했던 것이다. 강 교수는 이어서 미술관의 정체성과 정책 변화 속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읽어낸 뒤 논의를 미술비평의 장으로 옮겨온다.

오하이오대학 상호학제 예술학교 웹사이트 안내 페이지. (315쪽)

“현재 미술비평의 장에서는 컨템포러리 아트의 경향으로서 어떤 융합이나 상호학제성을 읽을 수 있는가? 혹은 소박하게 말해서, 미술비평의 이름으로 동시대 미술의 어떤 새로운 시도나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가?” (320쪽)

앞서의 인용들보다 질문이 더 날카롭고 무서워졌다. 왠지 여기서도 좋지 않은 결과가 도출돼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역시 예상이 적중했다. 지난 20년 동안 컨템포러리 아트의 장이 이 같이 돌아가는 가운데 정작 미술비평은 “세간에 회자되듯이 ‘세계적 위기’에 처했고, 영향력이 약해지고 지적, 예술적 효용성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게 강 교수의 입장이다. 그 주범은 ‘판단의 중지’였다. 미술비평가인 제임스 엘킨스는 비평이 논쟁을 우회하는 산책로만 걷다보니 비평에서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뉴욕의 평론가 로버트 모건은 사람들은 “비평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미술시장이 ‘뉴욕의 사고’를 잠식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레비 스트로스의 말을 빌려 이제 “비평은 없고, 오직 돈만이 유일한 척도인데, 그 척도가 변덕스럽고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고 진단했다. 물론 사정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결국 살펴본 결과 융합/상호학제성은 “기성의 학제를 중심 토대로 한 수렴작용에 그치거나 분야들의 단순 결합을 융합이나 상호학제로 혼동하는 양상, 다양한 미술의 가치를 옹호하기보다는 미술의 가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保守하는 제도적 역작용, 그리고 특히 미술비평의 자유로운 판단과 비판적 논쟁을 고갈시키는 효과를 우려할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융합과 상호학제성을 기반으로 하는 컨템포러리 아트는 이처럼 평면적 재능 나열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는가. 처음 인용했듯 지금은 패러다임과 패러다임이 교차하는 어정쩡한 시기다. 내 개인적으로 볼 때 ‘역사적 안목’과 ‘매체적 상상력’이 결합한 ‘획기적인 감식안’이 등장하여 컨템포러리의 미학적 개념과 용어의 질서(이 용어 자체가 전 패러다임에 속하긴 하지만)를 잡아주지 않는 한 당분간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이때의 논란은 “저게 도대체 뭐하자는 짓인지”라는 측과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와 같은 측의 대립이다.

 

논문에서는 컨템포러리 아트를 둘러싼 비평적 논란의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다름 아닌 2015년 3월 8일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이하 모마)에서 기획한 뷔욕Björk 회고전이다.

미술관 1~3층 전부를 사용한 대규모 전시인 뷔욕 회고전은 “아이슬란드 출신으로 20년 넘게 작곡가, 뮤지션, 가수로 활약해온 뷔욕의 사운드, 영화, 시각이미지, 악기, 오브제, 의상”이 다양하게 조합되었다. 10년 이상 연인이었던 매튜 바니와의 사랑이 깨지고 심적 고통을 호소한 노래 ‘검은 호수Black Lake’를 위해 미술관이 커미션한 사운드 비디오 설치작품이 스펙터클하게 배치되기도 했다. (‘검은 호수Black Lake’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YGn1pJIpZw8)

뷔욕의 <Vulnicura>, 2015, Copyright &#169; 2015 Inez and Vinoodh. Image courtesy of Wellhart/One Little Indian. (논문 326쪽)

이에 대한 반응은 “열광, 찬미, 흥미, 비우호적 수용, 비판, 비난, 조롱, 풍자”가 동시다발적으로 혼재되어 나타났다. “왕국에 뛰어든 어느 어린 소녀에 관한 실없는 우화를 들으려고 관객이 엄청나게 긴 줄을 서야 하는 대참사”라는 혹평이 있는가 하면 “뒤틀리고, 문제적이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전시”라는 호평도 있었다.

강 교수는 여기서 두 가지 점을 주목한다.

“첫째, 융합과 상호학제성을 긍정하고 적극화하는 동시대 유행 경향과 문화적 조류 속에서 가능해진 뷔욕의 모마 전시가 미술 전문적 담론에서는 어떤 식의 미술 가치에 한 판단도 무의미/불가능하게 한 악명 높은 사례가 되었다 는 점. 둘째, 역설적이지만 그런 전시가 오히려 그간 단호한 비판과 논쟁 적 평가를 유보해온 미술비평가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의견개진, 분별하는 판단, 비판적 담론을 생산하도록 자극했다는 점이다.” (327쪽)

동시대적인 것을 담보하고자 하는 미술관의 확장된 전시가 글로벌 자본주의 문화산업의 경제적 성과를 높이기 위한 맹목적 기획, 심지어 스스로에게 위기를 초래하는 자기 파괴적 이벤트로 귀착될 가능성도 있지만, 이들이 비평이라는 혹독한 과정을 통과해 “미술사, 나아가 진리의 영역에서 용인된 정전 및 위계에 해체계적인 질문을 던지는 일을 스스로 책임지는” 상황으로 멋진 연착륙을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이 혼돈스러운 긴장감 속에서 강 교수는 “컨템포러리 아트의 융합 과/또는 상호학제성은 횡단, 섞임, 교차, 교류, 유동성, 다원성만이 아니라 거기에 필수적으로 대상과의 거리, 비판적 ‘긴장’이 전제된 방법론으로 이해되고 실행될 필요가 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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