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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은 어떻게 노동자에게까지 뻗어나갔나?1987년 이후 한국의 금융화 분석
김종현 리뷰어 | 승인 2017.09.24 23:20

올해는 1987년 민주항쟁이 30주년을 맞는 해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지금은 수 년 전부터 제기된 가계부채문제 등 ‘금융화’ 현상의 부작용들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마침 최근 한 논문에서 참세상연구소의 홍명관씨는 (「87년 체제와 대중의 금융화」, 『진보평론』 72, 2017)에서 소위 ‘87년 체제’의 성립으로 정치적 민주시민-경제적 중산계층이라는 이중의 주체가 창출됐다고 지적했는데, 여러모로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80년대 이후로 중산층이라는 정체성이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 과정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금융화’에 주목하고 이를 분석하겠다고 주장한다.

 

중산층 육성전략과
대중의 금융화

저자는 금융거래에 관계된 이해관계자들은 금융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고 더 나아가 확대하기 위해서 상시적으로 신경을 쓰는 주체로 변모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것은 지배계급이 의식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규율을 노동자들에게 불어넣기 위한 전략이라는 측면 역시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분석을 세밀하게 전개한다. 또한 1997년 이후 이것이 대중의 금융화가 어떻게 확대∙심화됐는지, 그리고 금융화의 실패가 대중의 삶과 사회의 새생산을 어떻게 위협하게 됐는지에 대한 분석을 더한다.

저자는 산업화 시절, 복지체계가 제대로 형성되기 이전에 노동자각 복지를 대신해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은 저축과 ‘내 집 마련하기’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급속한 도시화와 부동산 투기∙상류층의 부동산 점유 등으로 인해서 내 집 마련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지배계급은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분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87년의 민주화 열기는 대중들의 잠재된 경제적 불만이 폭발되는 한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배계급은 국가재정 부담이 적은 방향을 추진하고자 했다. 따라서 국민주택기금 등 공공기금을 이용한 주택정책을 추진했고 공기업민영화 재정수입과 국민연금 여유자금을 주택정책에 투자했다. 이는 일반회계 상 복지지출은 최소화하면서 주택건설∙내 집 마련을 지원하여 가계의 자산형성을 촉진하는 방도로 고안된 것이다. 이를 통해 노태우 정권 등은 “중산층 신화 만들기”(59)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이 분배갈등으로 인해 계급적 적대감을 갖게 되는 것을 탈정치화시키고 이들을 보수적 중산층으로 변모시키기 위함이었다. 주택 외에도 증권시장에 참여하는 인구가 확대되는 것 역시 같은 효과를 나았는데,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국민주 방식으로 주식을 매각한 일 역시 비슷한 맥락이 있었다. 사회보험 제도가 미비했던지라 민간보험 시장 역시 확대됐는데 이 역시 가계의 자금이 금융시장과 연결되는 계기가 됐다. 금융화는 투기적 욕구와 신분상승 열망뿐 아니라 복지수단의 미비로 인해서 대중으로부터 창출된 수요가 또 다른 버팀목이 된 것이다.

저자는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에 노동자들이 유의미한 성과를 얻었지만 노동자들의 경제적 욕망이 계급정치로 모아지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중산층화와 ‘내 집 마련’이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것이었고, 그나마 증가한 기업복지의 혜택 역시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집중됐다고 주장한다. 이런 정책은 90년대 중반까지 순항하는데, 90년대 초반의 과잉투자와 97년경 외환위기 사태로 인해서 고비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고비는 대중의 금융화를 심화시키고 미약한 복지제도가 더욱 왜곡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신자유주의 경제와
금융화의 확장

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이제는 재무건전성 확보가 경제적으로 중요한 목표가 된다. 기업들은 따라서 부채비율 감소를 중시하게 된 반면, 거꾸로 가계는 부채가 급격히 늘어났다. 저자는 기업들이 재무건전성 관리가 생산적 성장만큼이나(혹은 더?) 중요한 목표로 삼게 됐다는 듯한 암시를 덧붙이기도 한다. 이전과는 정반대로 기업이 순저축자가 되고 가계는 순차입자가 된 것이다.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위해 98년 9월 ‘내수진작 종합대책’을 발표하는데, 이는 소비자금융의 확대를 통해 경기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와 인출한도 확대, 할부금융 금리인하, 주택자금대출 확대 등이 그 방책이었다. 은행들도 마침 기업대출이 외환위기 이후로 축소대자 수익성이 나올만한 시장으로 소비자금융시장을 노리게 된다. 관련한 규제완화와 주택거래활성화 정책도 이에 맞물려 진행됐다.

이는 가계의 소비수준을 유지 내지는 상승시키기 위해서 소득을 끌어올리거나 분배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을 지배계급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진된 방향이었다. 사회안전망의 강화가 아니라 신용카드와 ‘빚내서 집 사기’가 내수진작-경기부양과 노동자들의 복지를 책임지는 구실을 하게 됐다. 그리하여 “빚 권하는 사회”(65)가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2003년 카드 대란 등의 위기로 연결되곤 했다. 이제 상황에서 가계는 투자자요, 자금조달자 구실을 하게 됐다. 물론 이는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었는데, 2000년대의 미국에서도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소비자금융의 대대적인 확대가 이뤄졌다. 이것이 부동산 거품으로 이어지곤 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재테크를 넘어 “빚테크”(66)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는데, 수 억대 빚을 져가면서 부동산투기에 뛰어든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었다. 같은 시기에는 펀드계좌 열풍이 불기도 했다. 지난 20년간 한국사회의 내수를 지탱하던 버팀목이 가계부채였기 때문에 이런 것이었는데, 이때 가계들은 흔히 그 채무부담을 자산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득으로 무마하려고 했다. 그것을 잘하는 것이 재테크, 더 나아가 빚테크로 여겨지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제 개인은 채무를 관리하고 효과적으로 빌린 자금을 잘 투자하여 성공적으로 채무상환과 금융소득을 획득하는 구실을 하게 됐으며, 그러한 행동양식∙사고양식이 평범한 대중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부정적인 단어였던 채무와 투기는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왔고 관련된 정보∙교육의 매체들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금융적 합리성’에 따르면 오늘날 부자가 되기 위해선 안정적인 직장과 습관적인 저축행위가 아니라 금융지식의 숙달과 체계적 실천(재테크)이 필수적이다.”(68) 개인은 자신의 자산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주체로 여겨졌다. 개인을 투자와 대출 등 금융시장으로 끌여 들이는 정책은 금융 소외계층에게 기회를 제공해주는, 모종의 금융 민주화로 포장되기까지 했다. 저금리 기조와 제2금융권 양성화가 이때 이뤄졌다. 이처럼 중산층 만들기로 대변됐던 80년대의 전략은 외환위기 이후로 세련되게 재탄생하여 서민들을 재테크에 몰두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변모했다.

출처: Wikipedia의 Finance 문서

금융화와 자산기반 복지체계,
그 딜레마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실업과 불안정노동의 확대 등으로 인해 국가복지의 필요성이 크게 증대하면서 각종 사회보험제도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복지국가’를 추구했다기 보단 신자유주의 개혁 프로그램의 보조물이었을 뿐이다. 여전히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강력히 추진됐다. 저자는 이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다시금 계급정치로 응축되지 못하고 “개별화된 생존전략의 싸움터 속으로 융해”됐다고 말한다.

여전히 내 집 마련은 중요한 수진이었고 생활보장수단으로서 부동산에 대한 대중의 집념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빚을 내서 집을 사고 그것으로 생활을 보장하는 자산형성 복지체계는 안정적인 자산가격 상승을 전제로 한다. 그래야 서민들이 주택마련에서 발생한 빚을 무마하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택가격의 유지∙하락은 정치경제적 불안정성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택가격이 유지되거나 하락을 해야 무주택자들이 주택을 구입할 수가 있다. 결국 주택가격이 오르는 흐름 속에서 무주택자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더 많은 빚을 지는 것뿐이다! 내 집 마련과 자산가격 인상에 열중한 대중은 따라서 복지확대 등에 대해서 냉담해지고 정치적으로 보수화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채위기가 재생산의 위기로 나아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는 이상의 상황에 아주 전복적인 파급력을 미치게 된다. 빚테크는 무너지는 환상이 됐으며 ‘하우스푸어’의 양산이 시작된다.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책은 부동산 시장과 건설경기 활성화에 맞춰졌는데 여기에서 하우스 푸어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각종 경제적 소외계층이 조명도기 시작하고 약탈적 금융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이 시기 들어 커지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저소득층에 대한 저이자 대출을 늘리는 ““햇살론”등의 형태로 일종의 빈곤비즈니스를 형성”(73)하기에 이른다. 빈곤비즈니스의 본질은 빈곤 탈출에 기여하기 보단 빈곤층이 현재의 경제적 지위에 되려 머무르게 하면서 수익을 내는 사업이었다. 그리고 이 빈곤비즈니스로 대출된 자금 역시 위태롭게 내수경제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축이 된다.

하지만 이처럼 과도한 부채는 가계의 생산동력을 악화시키고 계층갈등을 강화시키고 있다. 삶의 재생산 위기는 청년, 노년 등 세대를 가리지 않으며 저소득층, 자영업자, 실직자에게는 특히 가중돼있다. 특히나 ‘자영업푸어’의 경우에는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산업예비군들이 생존을 위해 창업을 선택한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란 점도 주목할만한 특징이다. 부채와 자산효과에 기댄 재생산구조는 자산가격 변동에 의해 좌우되는 법이라 그 위기가 갈수록 심대해지고 있다.

그런데 주택금융화는 오히려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심화됐다. 부실화된 단기 주택담보대출을 장기 주택담보대출로 전환시키고 주택투자를 중심으로 한 주택거래를 활성화시켜 MBS와 같은 파생상품 발행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됐다. 동시에, 오랫동안 이어진 금리 인하 기조로 인해 전세공급자들이 전세보증금을 굴리느니 월세를 받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면서 전세공급도 줄고 따라서 전세가격이 높아지게 된다. 전세대란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전세대출 제도의 확장이었고 주택매매를 활성화시키는 것이었다. 노동계급 가구의 돈은 다시 경기부양을 위한 자금으로 유용된 것이다.

재생산 위기와 양극화를 대중이 환영하고 있는 것은 물론 단연코 아니다. 저자는 이것이 노동계급이 지배계급의 중산층 육성과 금융화 전략에 포섭되어 파편화된 것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맞은 현 시점에서 지배계급의 기존 대응전략은 장기적으로 지속불가능하다고 본다.

 

저자의 정치적 결론에 대한
의문점들에 대하여

 하지만 왜 아직까지 대중의 금융화에서 비롯되는 악순환은 끊어지지 못했는가? 저자는 87년 민주화부터 최근의 조기대선 등 대중저항으로 일궈진 정치적 격변이 계급정치로 이어지지 못한 것에서 원인을 찾는다. 바로 그 원인이 앞서 말했듯 금융화 전략으로 인한 대중의 파편화라는 것이다. 저자는 작금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을 효율적 재정관리에 국한시키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는 대안을 내린다.

 이 논문에는 크게 두 가지 축이 있다. 하나는 경제학적 분석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에서 비롯한정치적 결론의 도출이다. 우선 경제학적 분석에서는 큰 축에서 동의한다. (저자가 살며시 기업이 생산적 성장보다 재무적 문제에 더 집착하는 변화가 금융화 과정 속에서 벌어졌다는 듯한 언급을 하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으나, 이 글의 초점이 아니기도 할뿐더러 이런 지점에 초점을 삼아 저자를 비판하는 것은 말꼬리잡기가 될 수 있다.)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에게 경제위기의 비용과 사회재생산의 비용을 부담시키는 과정에서 복지지출을 확대하지 않았고, 분배를 촉진시키는 게 아니라 부채조달을 확장시키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과거에는 금융시장과 체계적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노동계급 대중이 금융상품 거래와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됐다는 분석에 동의한다. 이런 분석은 수익성 위기와 노동력재생산 문제에 대한 자본의 해결책으로서 제시된 ‘신자유주의’ 이념과 정책들을 금융화 현상과 체계적으로 연결 지어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 그 과정이 단지 금융자본의 음모적 헤게모니 장악이 아니라 각국 자본주의의 (상당부문 실물적이기도 한) 위기 대처 과정과 어떻게 연결돼있는지도 잘 설명해준다. 특히 고도성장시기에도 자본축적을 위해서 분배를 희생시켰기에 지금과 같은 ‘자산형성복지체계’가 형성되는 초기의 경로가 열렸음을 지적한 것 역시 인사이트를 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정치적 분석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이 있는 편이다(금융화의 문화정치적 측면보다는 경제학적 측면에 주된 관심을 가지고 들어오신 독자라면 이 부분은 생략해도 좋다). 우선 저자는 노동자들이 계급정치로 신자유주의 경제운영에 저항하지 못한 핵심 요인으로 금융화를 지적한다. 물론 부채에 쪼달리면서 이자를 갚을 궁리와 자산을 굴려서 미래를 대비할 생각에 전념한 노동자들은 보다 파편화에 시달리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를 제외하면 어느 시기인들 평범한 노동계급 성원들인들 그런 고뇌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이러한 부담은 심지어 (저자가 사내복지의 혜택으로 인해 ‘외부자’들과 많은 괴리를 겪었다고 주장하는)노동계급 내 고소득 층에게도 해당할 일이다. 주택문제나 학자금 등의 문제는 임금소득자 중에서 일부 최상위층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라도 보편적으로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일이다.

사실 계급정치로 대중이 응축되는지의 여부의 가장 심층에 있는 근본요인은 노동자운동의 성패여부다. 계급정치로 대중이 모여서 이른바 “계급형성”으로 이어지는 방식을 고찰하는 사유의 원조인 루카치 죄르지가 고전적 저작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강조한 바도 바로 이 점이다. 결정론적으로 정치를 보자는 것이 아니라, 이 다음 심급에서야 비로소 정치조직적 요소들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고 문화적 요인들도 그제서야 비로소 고찰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더 타당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런데 본 논문은 아무리 금융화를 주제로 삼은 논문이란 점에서 이 점이 불가피하게 강조된다고 한들 금융화가 바로 개인의 파편화와 계급정치의 약화를 강조하는 핵심요인이라고 보다 보니 이런 점에서 취약해진다. 계급적 분석을 접근하는 듯하지만 얼핏 오히려 푸코주의적 접근을 택한 문화연구와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대중이 권력에 의해 포섭되는 점을 압도적으로 강조하다보니 말이다. 또, 압도적으로 경제적 의도에서 도입된 정책들을 논평함에 있어서 정치적 의도를 압도적으로 부각하다 보니 일부 문장에서는 음모론적 어조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론 이 점은 단순한 뉘앙스의 문제도 있을 수 있겠으며, 그런 의도가 전무하다고 생각되지는 결코 않음에도 말이다(그런 음모가 절대적인 의도였다고 한들, 그것이 매번 차곡차곡 진행됐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약간 부자연스럽기도 하다).

더군다나 계급정치를 실패 일변도로만 보는 것도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저자는 계급정치가 약진했던 시절을 단 한번도 인정하지 않지만, 한국 정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노골적으로 계급정치를 표방했던 원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저자가 상정한 금융화의 시기에 성장하기도 했다. 저자가 대중이 복지에는 신경을 기울이지 않기 시작했다는 시기에 이미 신자유주의 비판 담론은 서서히 대중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고, 조기 대선에서도 노동이 당당한 미래를 표방한 후보가 역대 최다 득표를 한 사회민주주의적 정치인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저자가 바라는 수준의 계급정치에는 미달할지 몰라도 이 또한 계급정치의 신호가 아닐까? 또한 저자가 개인들이 파편화됐다는 이 시기에도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 한미FTA 저지나 철도파업 등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대중적 운동이 성장했던 시간들이 많이 있다. 몇 년에 한번을 거르지 않고 그런 일들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물론 80년대와 비교하면 미약해 보이겠으나 영미권 등과 비교하면 친노동적 대중운동은 가장 침체됐던 시기에도 훨씬 역동적이었다. 물론 괄목할만한 개혁적∙정치조직적∙선거적 성과가 없기도 하고 각각의 대중운동 사이의 시기마다 좌절감이 증폭되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비관적 전망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금융화 분석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경제학적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화를 보다 총체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에 필요한 혜안을 주며, 흥미로운 사실들을 다채롭게 제시한다. 정치적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서 나오는 비관주의로 인해 경제 분석의 장점이 빚을 바랜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정종남, 「한국 노동계급은 쇠퇴했는가?」, 『마르크스21』 12, 2011

알렉스 캘리니코스, 「금융화와 오늘의 세계경제」, 『마르크스21』 12, 2011

김종현 리뷰어  mrkim_s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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