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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에서 민주주의를 발견할 수 있나쇼핑몰의 기원과 발전, 빅터 그루엔의 이상
홍혜원 리뷰어 | 승인 2017.09.24 23:17

강남에 사는 사람들은 약속장소로 코엑스를 선택한다. 송파 사람들은 가든파이브에서 장을 보고, 하남과 고양에서는 스타필드가 핫하다. 이런 대형 쇼핑몰에 들어서면 영화관람과 쇼핑, 식사와 만남까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소비의 중심지로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한 쇼핑몰이 애초에 지역 공동체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생겨난 것이라면 누가 믿을까? 쇼핑몰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진빈「전후 미국의 쇼핑몰의 발전과 교외적 삶의 방식」(『미국사 연구』 37, 2013)은 전후 미국의 교외에 쇼핑몰이 발달하게 된 역사를 추적했다.

 

쇼핑몰의 아버지, 빅터 그루엔

건축물 조감도를 살펴보는 빅터 그루엔(오른쪽)

쇼핑몰은 건축가 빅터 그루엔(Victor Gruen) 이상에서 출발했다. 그 이상이란 미국인의 향수 어린 공동체를 재건하는 일이었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나간 20세기 중반에 미국에서는 도시도 농촌도 아닌 교외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주거단지가 대부분인 교외 근처에 Strip Mall이라고 불리는 상업지구도 들어섰다. 오스트리아 태생인 빅터 그루엔이 나치를 피해 비엔나에서 뉴욕으로 이민을 갔던 해가 1938년이었다.

그루엔은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과 그들 사이의 구매/판매행위에 공간이 기여하는 역할을 고민했다. 가게 입구를 화려한 쇼윈도우로 꾸미고 문을 건물 안쪽으로 끌어당긴 디자인이 그 고민의 결실이었다. 그 와중에 우후죽순 생겨났던 스트립스는 난개발과 투기 문제로 비난을 받고 있었고, 때마침 1943년 『건축포럼(Architectural Forum)』 잡지사가 스트립스를 대체할 만한 건축물의 디자인을 공모했다. 그루엔은 그의 동료 크럼멕과 함께 이 공모에서 쇼핑몰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건축 디자인을 제안했다.

교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트립 몰의 전경.

우선 그 쇼핑몰은 자동차로 접근이 쉬운 곳에 위치해야 했다. 따라서 대규모 야외 주차장을 갖추게 되었고, 주차장에서 건물로 이어지는 길을 쾌적한 정원으로 꾸몄다. 쇼핑몰 안에는 도서관, 우체국, 마을 회의실 등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들은 쇼핑몰을 사회문화적 기능을 하는 공동체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시민의 소양을 기르고 서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의 설계를 실현할 기회는 그루엔과 크럼멕이 4년 뒤인 1947년 밀리론즈(Miliron’s) 백화점 설계를 맡으면서 찾아왔다.

 

초기 쇼핑몰의 탄생

밀리론즈 백화점은 위풍당당한 외관과 아름다운 실내 장식을 갖췄을 뿐 아니라 옥상 주차장이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보여주었다. 백화점 안에는 음식점, 육아실, 극장 같은 마을 공동체에 있을 법한 시설들이 들어섰다. 이 백화점은 언론인들과 건축가, 주민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고, 이로 인해 그루엔은 1952년 디트로이트 시에 대규모 쇼핑센터를 건축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 역시 허드슨스(Hudson’s) 백화점과 100여개의 상가, 회랑과 화단을 갖추었고 여가와 취미, 주민들의 공동체 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채워졌다.

그루엔은 이처럼 쇼핑몰을 소비 뿐 아니라 사람들의 교류와 공동체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여겼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중세의 시장, 미국의 전통적인 타운 광장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었다. 이는 자동차로 인해 가로막히고 타인과 쉽사리 접촉할 수 없었던 현대 미국인의 삶에 다시금 활력을 주고자 하는 시도였다. 잇따른 성공으로 그루엔은 쇼핑몰 설계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의 설계는 지금까지도 미국 쇼핑몰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밀리론즈(Miliron's) 백화점의 외관.

 

쇼핑몰은 왜 공동체적 공간이 될 수 없었나

그러나 쇼핑몰이 공동체적 가치를 담은 공간이 되리라는 그루엔의 소망은 엇나가고 말았다. 쇼핑몰은 미국 내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마저 사람들의 삶과 경험을 규격화 시켰다. 쇼핑몰이 지역 분산의 효과를 가져올 거라는 그의 바람과는 달리 쇼핑몰은 오히려 부동산 투기를 조장했다. 또한 쇼핑몰마다 이용하는 계층이 달라짐으로써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유대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되었다. 이런 문제점들은 애초에 상업공간을 통해 공공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모순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인다. 또한 쇼핑몰이 위치하게 된 교외는 애초에 쾌적한 주거지를 찾아 떠난 백인들의 공간이었다. 따라서 쇼핑몰은 그루엔이 원했던 것처럼 예전의 다운타운이 될 수 없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식 쇼핑몰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 수출되어 소비와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쇼핑몰이 지역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시민의 권리보다 자본의 소유권이 더 우선시된다는 필자의 우려와 맞닿아 있다. 결국 소비와 생활의 계층별 분리는 공동체 의식과 사회 관계망 형성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암시로 이 논문은 끝난다.

 

공간의 사용과 가치의 문제

이 논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문제이다. 강서구 장애인학교 설립 문제, 임대주택 혹은 청년주택의 입지 선정 문제와 같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에 공동체적 시민의 권리와 이익 추구의 권리가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 한국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줄 건축물은 과연 어떤 가치를 더 많이 옹호하고 추구할 것인가? 가치를 재는 저울은 계속해서 흔들림을 멈추지 않는다.

홍혜원 리뷰어  hhw3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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