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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청산의 동력은 무엇인가-노무현 정부 과거사 청산의 한계를 통해 본 정의 실현의 문제
최은영 리뷰어 | 승인 2017.09.20 22:06

최근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를 꼽으라면 아마 ‘적폐’가 될 것이다. 정치, 사법, 방송, 기업과 국가기관 등을 비롯해서 과거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정부의 주요한 정책 기조의 하나도 바로 적폐 청산이다. 이것은 과거사 청산을 외쳤던 노무현 정부와 맞닿는 지점이 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과거사 청산의 방향을 돌아보고 그것이 왜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는지 실패의 원인과 한계를 짚어보는 것은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적폐 청산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정승현 「과거사 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현대정치연구』 제7권 제1호)는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 청산의 면면을 분석, 비판하면서 그 과거사 청산이 추구했던 ‘정의’의 문제에 대해 고찰한다.
 

과거사 청산이
진전되지 못했던 이유

논문의 필자는 한국의 정치사상 연구자들이 대부분 서구의 정치사상이 다루는 추상적 개념, 가령 공동체라든가 자유 등의 연구에만 몰두한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정치 현실에서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즉 “한국정치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사건들이 어떠한 사상사적 함의를 갖고 있으며, 그 사건의 주역들이 벌이는 논쟁 속에 담겨 있는 사상적 의미를 추적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노무현 정부에서 진행되었던 과거사 청산 논쟁에서 찾고자 한다.

당시 “과거사청산론자들이 가장 많이, 그리고 중요하게 제기했던 명분은 ‘정의의 실현’이었다. 이때 정의는 분배 차원의 용어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 그리고 그 위에 축조된 정치사회질서가 정당한 것인지 묻는 질문이었다. 반면 반대자들은 그러한 정의 개념에 반발하거나 혹은 과거사 청산 속에 숨은 정치적 의도를 공격하는 우회 전략을 구사하였다.” 양 진영의 논쟁은 치열했지만 과거사 청산의 핵심 논리인 정의 그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논쟁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과거사 청산이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당시 과거사청산론자들은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친일 세력들이 해방 후 집권 세력이 되면서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외세와 연합하는 과정에서 민족 분단이 이루어졌고, 또한 이들이 권위주의 정권, 독재 정권을 지탱하는 세력이 되어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인 폭력을 저질렀으며, 그 범죄가 지금까지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은 채 많은 피해자들만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에 대한 진상 조사와 처벌, 또는 정당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모든 주장의 제일 높이 서 있는 원칙, 과거사 청산의 명분으로 가장 강조되었던 것은 ‘역사의 정의’ ‘진실로서의 정의’ ‘사회 정의’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정의의 실현이었다.”

문제는 과거사청산론에서 정의의 개념이 “명확한 규정을 결여한 채 과거사 청산의 구체적 문제와 관련하여 정의의 어떤 한 측면이 거론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식의 논리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정의 개념이 무한 확장됨으로써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구분되지 않고 과거사 청산의 목적이 불명확하게 된다는 점이다.” 과거사청산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입법 조치, 사법적 심판, 제도 개혁, 의식 개혁, 도덕적 각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렇게 “한국 사회정치 구조의 광범위한 개혁이 정의 그 자체와 동일”시됨으로써 정의에 관한 개념 규정이 분명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제도 개혁의 범위와 내용도 논자에 따라 무한정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청산론자들의 본래 기획과 달리 정의의 실현은 아무리 애써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과거사청산론자들이 내세웠던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애매모호한 이러한 정의의 개념은 “정의가 정치·사회·역사의 포괄적인 근본 원리로 제시되면서도 정의 개념 그 자체는 논자들이 내세우는 과거사 청산의 목적에 따라 개별적으로 규정”되었다. 또한 “정의가 중심 가치인지, 아니면 여러 가치들 중의 하나인지, 정의가 실현되면 다른 목적들이 저절로 성취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들이 먼저 실현되면서 따라오는 것인지, 정의가 무엇이고 불의는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인식” 또한 찾기 어려웠다고 필자는 지적한다. 더불어 이들의 주장이 “과거사청산이 이루어지면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된다는 일종의 ‘과거사청산 근본주의’를 보여줄 뿐”이었다고 말한다.

반면, 과거사 청산 반대론자들에게 정의의 개념은 “국가 건설이라는 근본적 정의 아래 평가되어야 하는 ‘하위 개념으로서의 정의’, 북한과의 ‘상대적 정의’, 세계의 기적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역사로 증명되는 ‘결과적 정의’, 아무리 목적이 좋더라도 주어진 법의 한계 내에서 추구되어야 하는 ‘실정법적 정의’”로 전개되었다.

여기에서 과거사 청산의 한계가 노출된다. 논문의 필자는 “한국에서 정치사상을 둘러싼 논쟁들은 사상의 논리적 정합성이나 개념 혹은 근본적 세계관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그 사상이 수행하는 정치적·사회적·계급적 역할을 지적함으로써, 그 배후에 있는 숨은 동기나 의도를 파헤치고 비판하는 데 주력”해왔기 때문에 서로를 비난하고 의심하면서 극단적으로 치닫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논문의 필자는 과거사 청산의 가장 큰 핵심 이데올로기인 정의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것이 과거사 청산이 진전되고 성공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즉 정의에 대한 빈약한 개념화를 실패의 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정의의 개념을 바로 세우는 것이
곧 청산의 동력

논문의 필자는 “정의 그 자체에 대한 철학적 논구의 빈약함”을 지적하면서, 양 진영이 이 정의의 개념을 중심에 두고 서로 논쟁하고 합의점을 찾아갔다면 과거사 청산의 동력을 충분히 마련했을 것이라고 본다. “상대방의 불의를 지목하며 피해자로서의 억울함을 드러내는 감성적 호소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렬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정의 그 자체에 대한 탐구나 논리적 결여는 감정적 상흔만 남기고 실효성을 가진 법적 장치나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도덕적 우월성과 정당성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정의가 무엇인지, 화해·화합은 정의 위에서만 성립하는지 등의 문제에 관해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해야 확고한 논리와 추동력을 가지고 청산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적폐 청산을 둘러싸고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진행되고 있다. 물론 노무현 정부 시절의 과거사 청산과 현 정부의 적폐 청산을 같은 선상에 두고 단순하게 비교, 분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때의 정치 지형과 지금의 그것이 다르며, 시민들이 인식하는 오류와 비리와 부정·부패에 대한 반응과 인식이 당시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철학 부재 현상으로 인해 보수 세력은 색깔 논쟁이나 정치적 음모 같은 논리로 반박”하고, “반대쪽은 공세를 맞받아서 그 당위성을 주장하는 지극히 단순한 대립 구도”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위시한 과거사 진상 규명, 이전 정부에서 벌어졌던 불법 행위에 대한 조사와 처벌 등이 왜 필요하며, 그것이 어떤 의미의 정의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정의는 어떻게 세워질 것인가에 대한 철학이 먼저 서고, 그 철학이 전 국민에게 공유되고 확산되면서 구체적인 정의 실현의 절차가 세부적으로 계획되어야 적폐 청산은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민주화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민주화 근본주의, 통일이 되면 정치사회적 모순들이 일거에 해소된다는 분단 근본주의 등 그동안 저항 담론을 이끌어왔던 근본주의 정서들”을 넘어서야 국민적 합의와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종교적, 추상적, 일방적인 정의의 개념이 아니라 정의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논쟁하면서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합의점을 찾아내고, 그리하여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정의를 찾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잘못된 과거사로 인해 고통 속에서 살아왔던 피해자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과거와 같은 과오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길이 될 것이다.

최은영 리뷰어  octovemb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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