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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연애각본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2007)과 <난폭한 연애>(2012)가 재현하는 새로운 젠더 담론과 연애론
한채윤 리뷰어 | 승인 2017.09.07 22:31

2007년 여름,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될 청춘 드라마를 만났다. 바로 <커피프린스 1호점>이다. 남성만 취직할 수 있는 카페에 남장을 하여 위장 취업을 한 은찬(윤은혜 분)이 카페 사장 한결(공유 분)과 친구처럼 우정을 나누다가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의 줄거리는, 보통의 남장여자 로맨스의 오락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한결과 은찬의 ‘케미’가 그토록 훌륭했던 것이 그저 은찬이 결정적으로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야기의 재미가 반감될 만큼, <커피프린스 1호점>(2007)의 남장에는 특별한 부분이 있었다. 보이시한 여성 은찬과 한결의 관계는 동성의 우정을 기반으로 하여 발전된 것이 명백해 보이며, 사랑을 이룬 후에도 우정의 관계가 그들 관계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찬이 여성임을 알게 되고 한결이 그녀의 거짓말에 큰 배신감을 느끼며 이별을 고했던 것에서 그들은 사랑보다도 우정에 가까운 관계였음이 드러난다. 우정인가 사랑인가? 그들의 관계를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까? 

 

김지혜(계명대)는 「TV 드라마에 나타난 연애 각본의 변형과 젠더/섹슈얼리티 재현에 대한 연구 : <커피프린스 1호점>(2007)과 <난폭한 로맨스>(2012)를 중심으로」(「젠더와 문화」 제 7호, 2014년 12월)에서, 이에 대하여 '동성사회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비평가 세즈윅의 주요 개념 중 하나인 '동성사회성'은 "동성 간의 사회적 유대가 형성되는 관계성"(김지혜, p.20)을 말하는데, 그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2007)과 <난폭한 로맨스>(2012) (이후 각각 <커프>와 <난로>로 표기)의 예를 들며, 동성사회성에 기반한 이성애의 로맨틱한 관계와 젠더규범에서 탈주하는 '젠더위반적' 여성 캐릭터를 연구한다. 나아가 김지혜는 이러한 캐릭터들이 젠더/섹슈얼리티 관념의 사회적 변화를 의미함을 지적한다.

 

젠더퀴어적 여성 캐릭터의 등장

 

<커프>나 <난로>에서처럼 '남성적인 여성'의 이성애적 사랑 이야기가 TV에 반영되고 공감을 얻었다는 점은 한국사회 젠더의식의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커프>나 <난로>는 모두 "여성 젠더퀴어 로맨스"(p.10)이다. 젠더퀴어란 "여성적인 남성, 남성적인 여성, '남성' 혹은 '여성' 하나의 젠더에 귀속되는 것을 거부하거나 중성성을 추구하는 사람, 트렌스젠더 등 다양한 젠더 주체"(p.10)를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젠더퀴어'라 함은, "여성(섹스)은 여성적이어야 하고(젠더) 남성적인 남성을 욕망(섹슈얼리티)한다"(p.9)는 '섹스-젠더-섹슈얼리티의 일원적 관계'를 파괴하는 이들이라 말할 수 있다. 김지혜에 의하면 <커프>와 <난로>의 여자주인공 고은찬과 유은재가 바로 이런 젠더퀴어적 여성 인물들이다.

 

젠더의 수행성

고은찬과 유은재는 '남성적인 여성'으로서, 보통의 청순가련형 캔디들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그들은 젠더퀴어로서, 규범적인 젠더를 거절하고 위반하는 이들이다. 이들이 담지하는 남성성은 '생물학적 성과 무관한 문화적 실천'으로서 '수행적인 것'이며, 그러므로 버틀러가 말하는 젠더의 수행성을 잘 보여준다.(pp.13-14 참조) 버틀러는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사회적인 '젠더'는 존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반복적인 수행을 함으로써 얻어짐을 지적한 바 있다. 김지혜는 은찬이 오토바이 무리들 속에서 다수의 남성 배달부들과 경쟁을 하는 장면으로 첫 막을 올리는 <커프>는 '남성 지배적인 공간'에서 가장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은찬의 정체성을 강렬하게 가시화함을 지적한다. 은찬은 보는 이들마다 남성으로 오인할 만큼 젠더퀴어적인 인물인데, 그와 같은 젠더퀴어성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 혹은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p.15 참조) 은찬은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사이,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의 사이, 아이와 어른 사이의 공간'을 횡당하는 경계적인 인물"(p.15)로서 '톰보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은찬의 이러한 소년성은 '남성 전용 공간'인 한결의 카페에 위장취업을 할 수 있게 돕고, 한결(남자 주인공)과의 남성적 유대의 형성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은찬이 다만 생존을 위해 남성적이게 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김지혜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은찬은 아버지의 셔츠와 넥타이를 걸치고 놀았다는 점이 흑백 회상 장면으로 등장하며, 그러한 어린 시절은 비에 젖은 은찬이 한결의 셔츠와 바지를 빌려 입었을 때 자연스레 병치된다는 점을 말한다. "은찬의 젠더퀴어성은 아버지와 연애 남성과의 유대를 '남성성'이라는 공통분모로 연결"(p.17)시키는 것이다. 은찬은 어린 시절부터 남성성을 수행해온 인물로서, 은찬의 모습은 "젠더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임을 효과적으로 전경화"(p.15)한다. 따라서 은찬은 한성(한결의 사촌형)을 따라 미술 전시회에 갈 때 '여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지혜는 여기서 드러나는 은찬의 여성성이 마치 "드랙 퍼포먼스(여장 남성)"(p.16)와도 같았다 말한다. 여성의 옷을 입고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더욱 어색해 보이는 은찬을 통해 "여성 젠더의 수행적 성격과 인위성"(p.16)이 명백히 드러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난로>의 유은재 또한 여성성의 규범에서 벗어나는 인물이다. 그녀는 유도 5단의 사설 경호원으로서 항상 남성복을 입으며, 프로야구단 블루 시걸즈의 광팬이라는 점도 중요한 정체성으로 설정된다. 김지혜는 <난로>의 첫 막이 남녀 간의 몸싸움으로 열리고, 여성이 승리한다는 설정을 "'난폭한' 로맨스의 이미지와 젠더 관계의 역전을 함축"(pp.17-18)하는 것으로 본다.  그는 <난로>의 로맨스가 "남녀(연인)의 남성성 대결과 각축"(p.18)이라고 설명한다. <커프>와 마찬가지로 <난로>에서도 '여자 코스프레' 행사가 이어지는데, 이때에도 은재의 여성성은 부자연스럽고 나아가 우스운 것으로까지 전시된다. 파스를 붙이고 드레스를 입은 은재는 "출생 시 부과된 섹스와 추구하는 젠더의 불일치"(p.18)를 의미하는 "젠더 디스포리아(dysphoria)"(p.18)를 드러내며, 그녀는 드레스를 입고 레드 드림즈 구단의 회식에 참석하기까지 하면서 본인의 여성성을 무참히 희화화한다. 이처럼 은찬과 은재의 "젠더퀴어성이 자연스럽게 묘사되고 여성성이 인위적으로 그려지는 것"(p.37)은 여성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되는 것임을 명백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난로>의 유은재는 사랑을 얻기 위해 여성성으로 자기를 위장하지 않는다. 김지혜는 "은재가 남성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젠더 표현(expression)을 희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난로>는 여성성과 이성애 로맨스 사이의 본질적인 연계를 분절시킨다"(p.19)고 이야기한다. 은재는 자신이 응원하는 야구단인 블루 시걸즈의 라이벌 구단 레드 드림즈의 투수 박무열의 경호를 맡게 되면서, 그와 남성적인 힘을 겨루며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아옹다옹 싸우던 형제가 연인이 된 설정인 것이다.

이와 같은 '여성성'과 '이성애 로맨스'의 분리는 한국 드라마 역사상 매우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판단에 의하면 그동안의 드라마 여주인공들은 지고지순한 연약한 여성이거나 아름다운 악녀, 또는 씩씩하고 명랑하며 귀여운 캔디, 세 가지로 나뉘어 왔다. 여기에 전문직의 똑똑한 여성 캐릭터가 새로 등장하는 한편, 이와 같은 젠더 전복적 여성 캐릭터 또한 추가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중 가장 새로운 캐릭터가 바로 '남성적이면서 이성애 로맨스에 성공하는 캐릭터'가 아닐까 하다. 나머지 캐릭터들은 모두 남성에게 사랑 받을 만한 여성적 매력을 기반으로 하여 로맨스를 성사시키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커프>나 <난로>에서와 같은 젠더퀴어적 여성 인물의 등장은 이성애적 관계가 여성성과 남성성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는 기존의 젠더규범을 파괴하며, 애초에 여성성과 남성성의 존재 자체가 허구이고 젠더란 사회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산물임을 드러낸다.

 

동성사회성과 로맨스의 결합

김지혜에 의하면 <난로>의 남자주인공인 야구선수 무열이 연약하고 여성스러운 옛 여자친구 대신 보이시한 은재를 택하는 것은, "젠더 퀴어 여성 로맨스가 상상하는 새로운 연애 문법"(p.19)으로서, "남녀가 동질적인 남성문화와 취향을 함께 공유하면서 친밀성을 형성"(p.19)함을 뜻한다. 말하자면 늘 보호해주고 지켜줘야 하는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라, 활발하며 때로는 자기를 역으로 보호해주기도 하는 능동적인 여성을 원하는 요즈음의 남성의 욕망이 TV를 통하여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동성사회성에 대한 열망이라고 볼 수도 있다. 본고에서 '유사 동성사회적 관계'를 가장 먼저 소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커피프린스들이 몸을 부딪히며 남자의 우정을 나누는 장면이나, 은재와 무열이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 등은 모두 동성사회성에 안착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가시화한다. 그리고 "남성들의 동성친밀성은 동성애적(homoerotic)인 감정과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교류하는 장이 될 수도 있다."(p.21) 동성적 친밀성이 진정한 감정 교류를 가능하게 하여, 동성애적 코드로 이어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김지혜는 한결이 은찬에게 품는 동성애적 사랑이 그저 동성애 코드를 유희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섬을 주장한다. 레고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레고방을 만들어 그 속에서 노는 한결은 어른아이와 같으며, 그의 소년성은 그야말로 순수한 소년과도 같은 은찬을 마음에 품게 하였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 http://cafe.naver.com/churkey/980

 

이처럼 한결과 은찬은 우정과 사랑을 넘나들며 형제애와 동성애, 그리고 이성애까지 모두 보여주고 있다. 남성 직원 카페에서의 우정으로 시작하여 동성친밀성인지 사랑인지 모를 연애를 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새로운 연애 각본을 쓰는 이들이다. 프로야구단이라는 남성적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은재와 무열의 연애 역시 매우 새롭다. 이들은 '다름'에 끌리기보다는 '비슷함'에 끌리는 것 같은데, 무열과 은재가 야구를 계기로 소통하며, 형제애인지 사랑인지 모를 연애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pp.24-25 참조) 이와 같이 "'케이크보다는 등심! 꽃보다는 족발'을 좋아하는 보이시한 여성과의 '전우애' 혹은 유사 형제애는 젠더 질서가 변형되는 새로운 연애 각본과 트렌드를 제시"(p.26)한다. 김지혜는 "드라마에서 여성 인물이 주체적인 자아의식을 확보하게 됨에 따라, 남성 캐릭터도 여성의 젠더 위반을 허용하고 욕망하는 인물로 진화해 왔다"(p.27)고 말한다. 규범적으로 젠더를 이분화하는 방식으로는 남녀가 진정으로 소통하고 이해할 수 없음을, 우리에겐 공유하는 취향과 감수성이 필요함을, 이 두 편의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계와 의의

그런데 김지혜는 <커프>와 <난로>의 중요한 한계 지점을 지적한다. 그것은 은찬과 은재의 계급 설정이다. 은찬과 은재는 평범한 노동계층의 사람들이며, 그들의 남성성 또한 육체적인 것을 제외한 지성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발휘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젠더퀴어 여성의 남성성이 노동계급성과 친연적인 관계에"(p.28)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 은찬은 이태리 유학 이후 바리스타 여성이 되어 돌아왔을 때 떠날 때와는 다른, 여성적인 몸선이 드러나는 복장을 하고 있는데, 김지혜는 이러한 모습이 은찬의 젠더 퀴어성이 다소 탈색된 것이라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은찬과 은재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은, 여성이 젠더 위반을 하는 원인을 한부모 가정인 것에서 찾게 할 수 있다는 위험이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커프>와 <난로>는 기존의 '여성성'과 '남성성'으로 고착화된 젠더 담론을 전복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그들이 '여장'을 하였을 때 그 모습이 어쩐지 슬프거나 우습게 보였던 것은, '여성성'이라는 젠더가 허구이며, 수행되고 구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김지혜는 <커프>에서 한결의 성 정체성 혼돈은 "섹슈얼리티의 유동성을 근본적으로 노출"(p.31)시키며 "이성애의 '정상성'과 동성애혐오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게 되는 결과"(p.31)를 가져오며, <난로>에서는 은재의 젠더퀴어성이 여러 다른 인물들과 얽히는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와 이어지는 부분들도 종종 눈에 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고 말한다. 또한 김지혜는 여성성을 가장하지 않고도 남성에게 충분히 사랑 받는 여주인공들을 통해 여성 시청자들이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자기 검열을 하지 않는 나 자신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연애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김지혜의 분석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커프>와 <난로>에서의 연애가 동질성을 기반으로 한 '자연스러운' 연애임을 밝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운 연애 방식은 젠더 의식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김지혜는 은찬과 은재의 연애 방식이 "한국 사회의 변화된 젠더 의식을 반영하고, 새로운 연애/결혼관을 추동하며 지배적인 젠더/섹슈얼리티 이데올로기를 균열시키는 효과가 있다"(p.10)는 점을 밝힌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과 남성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좁혀지고 여성성과 남성성에 속박되지 않는 본연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된 오늘날의 사회에서, 달라진 젠더규범에 발맞추는 연애란 이런 것이 아닐까. 여성과 남성이라는 다른 점에 끌려 그 다른 것들을 끝끝내 붙잡고 유지해야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굳이 여성이고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지 않아도 그 사람 그대로 좋은, 동성친구와의 관계와도 같은 진정한 이해와 공감의 관계. 그러한 친애적인 연애를 꿈꾸며, 우리 시대 연애의 각본은 현실에서도, 미디어에서도 시시각각 다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한채윤 리뷰어  oisiiworl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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