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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사회와 젠더 관점의 일자리 정책일본 사회를 통해 본 여성 일자리 정책의 문제점
최은영 리뷰어 | 승인 2017.09.05 23:00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을 유지 또는 증가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4차산업혁명으로 산업 구조는 재편되고, 일자리는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면서 노동 환경도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저임금·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여성 일자리의 환경 개선은 젠더 평등이라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잠재 노동력 개발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경제 성장의 한 축으로 여성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계획은 우리 사회에 큰 시사점을 던진다. 와코대학(和光大学) 현대인간학부 다케노부 미에코(竹信三恵子) 교수(노동사회학)의 「젠더 관점에서 본 저성장 사회-저성장으로의 적응을 가로막는 일본의 젠더 차별」(『일본비평』 15호)은 일본 사회의 젠더 차별이 어떻게 노동 시장에서의 젠더 차별로까지 확대되었는지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이렇게 평가절하된 여성 노동력을 저성장 사회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노동 시장으로까지 확대된
일본 사회의 젠더 차별


일본의 여성 노동 환경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열악하다. 일본 사회의 보수성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젠더 차별이 노동 시장으로까지 확대된 가장 큰 원인은 정치적인 이유다. “1945년 패전까지의 메이지헌법은 남성을 한 집안의 중심에 두고, 나머지 구성원을 그 종속물로 규정하는 ‘이에(家)제도’가 기본이었다. 이 틀 안에서 여성은 좋은 아내로 전쟁터에 나가는 남성을 보좌하고, 또한 좋은 어머니로 병사의 육성에 힘쓰도록 장려하는 ‘현모양처 교육’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차별적 젠더 의식이 굳어졌고, 큰 저항 없이 여성의 역할은 가정에 있다는 공식을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현모양처를 여성의 역할이자 가치로 규정하는 것이 일본의 전통 사상은 아니라고 교육학자 후카야 마사시(深谷昌志)는 말한다. 그는 이것이 일본 근대화의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메이지 정부는 “‘천황(부모)을 정점으로 하는 신민(적자)’의 국가, 즉 ‘국체(国体)’를 고안했다.” 이 국가관에 따르면 여성도 신민으로서 국가에 통합되어야 할 대상이었지만 당시 여성은 “이에라는 생산공동체의 귀중한 노동력”이었고, 농촌의 토착 세력은 “남성에게 순종하는 유능한 부인의 노동력이 ‘이에’에서 국가로 유출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패전 직후의 관료들이 점령군들을 의식해 ‘남녀평등’을 헌법에 넣는 것은 허용했지만 끈질기게 ‘현모양처’를 부활시키려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여성 개인으로서의 권리는 국가와 지역사회의 입장에서 볼 때 ‘이에’의 순종적인 무상 노동력의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장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국가적 합의를 통해 이룬 경제적 부가 기업 성장과 남성 근로자의 임금 인상으로 돌아감으로써 “여성과 아이는, 이들을 부양해야 할 남편과 아버지의 경제력이 상승해야 비로소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담론으로 타협”이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 “장시간 노동하는 남편을 내조하며 집안에서 무상 노동에 힘쓰면, 경제가 성장하여 가계가 풍요로워진다는 것이 일본 중산층 가정 남녀의 성공 체험으로 각인”된 것이다. 노동 시장에서의 차별적 인식은 1985년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의 제정으로 여성 차별이 금지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법은 사회에서의 여성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기존의 남성 정규직과 똑같이 장시간 노동에 종사하지 못하면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여전히 팽배했다. 거품경제기에 정규직이 다수인 남성의 임금수준이 상승하면서 그 아내인 비정규직 여성의 생활수준은 향상되었고, 그러다 보니 전통적인 젠더 차별(분업) 구조를 바꾸기보다 남성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가정 경제에 더 도움이 되고 여성들에게도 이익이라는 사고방식에서 의식이 전환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남녀의 역할 분업으로 “가족을 돌보는 책임을 지고 있는 대부분의 여성은 정규직에서 배제되어 비정규직으로 향했다. 일본사회에서는 ‘동일(가치의) 노동에는 동일 임금’이라는 규정이 미비한 채, ‘비정규직은 남편 수입에 의지하는 여성들이 하는 부업’이라는 사회적 인식에 기반하여 비정규직의 평균 시급이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억제되었다.” 여기에 피보험자제도가 이런 구조를 더 견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 제도는 배우자의 피부양자로 되어 있는 여성에게는 연금 보험료 납부를 면제하는 것으로, 보험료 부담 없이 최고 월 6만 엔 정도의 기초연금을 보장한다. ‘피부양자’의 조건이 연 수입 130만 엔 미만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범위를 넘지 않도록 취업을 조정하는 여성이 증가하여 파트타임 시급 인상 요구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각종 제도로 인해 굳어진 차별적 구조는 기업의 인건비를 억제하는 저임금 근로자층을 낳았다. 문제는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가정경제에 큰 역할을 하던 남성고용마저 불안정해지고, 그에 따라 여성의 빈곤화까지 불러왔다는 점이다. “1995년 새 시대의 ‘일본적 경영’으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근로자 증가 정책은 ‘남편이 있기 때문에 값싸고 불안정해도 괜찮다’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극단적인 저임금이 방치되어온 비정규직 세계로 여성근로자의 약 60%를 끌어들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빈곤하다는 현실은 이러한 정책의 당연한 귀결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남녀 모두의 고용 환경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가계 기반은 악화되었고, 이로 인해 소비가 감소했고,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상품 가격을 낮추다 보니 다시 인건비가 낮아지는 악순환에 빠지면서 일본 사회는 깊은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일본의 여성 일자리 정책,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나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경기 침체에서 탈출하기 위해 모든 정책을 총동원하겠다는 아베노믹스를 발표한다. 그리고 이를 떠받치는 정책의 하나로 ‘여성이 빛나는 사회’를 강조한다. 즉 열악한 여성 노동 시장의 환경을 개선하여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그로 인해 가계 경제의 회복을 돕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말만 요란할 뿐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현모양처주의로 일관된, 여성의 국가에 대한 공헌과 동원이라는 측면이 엿보인다.” 논문의 저자는 이 정책이, 헌법 19조를 개정하려는 아베 총리가 여성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마련한 선심성 정책일 뿐이라며, 여성 일자리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정치 슬로건이 선행한 측면이 있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물론 아베노믹스의 취지, 즉 남녀가 함께 일하는 사회, 건강한 일자리 환경을 통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겠다는 구상은 저성장 사회가 취할 수 있는 건전한 정책 방향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성이 무리 없이 일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보장 삭감과 짝을 이루어, 일본의 경제대국 복귀를 위해 여성이 가정 내 무상 복지노동을 계속 떠맡으면서 이에 더하여 남성과 같은 장시간 노동에 맞추거나, 혹은 불안정한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를 감수하거나 하는 양자택일 형태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이중부담을 강화한 것”일 뿐이라고 논문의 저자는 말한다.

저성장 사회에서 어떻게 경제 성장을 유도하고 가계 소득을 유지 또는 성장시키느냐는 매우 중요한 의제다. 우리나라 현 정부는 저소득층에 적극적인 복지제도를 펼쳐 사회의 부를 재분배함으로써 그들의 소비를 유도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함으로써 소비를 유인하는 소득 주도 성장론을 경제 성장의 기본 기조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노동력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섬세하고 치밀한 구상은 별반 보이지 않는다. 혹시 일본처럼 근본적인 시스템과 의식 개선은 외면한 채, 취업률이라든가 일자리의 다양성만 추진하여 오히려 육아와 가정, 직장 생활이라는 이중삼중의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여성 일자리를 어떻게 개선하고 여성 노동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전체 노동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환경 개선에 변곡점을 마련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여성뿐만 아니라 특정 계층이 차별받지 않는 공평하고 공정한 노동 시장이 전체 노동 시장의 환경 또한 개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이 더딘 사회에서는 창출되는 부를 되도록 가계와 생활에 환원함으로써 근로자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생존권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젠더 관점에서의 경제 정책은 바로 그 때문에 필요하다.” 일본이나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젠더 관점에서의 경제 정책을 어떻게 설정하고 실현하느냐는 저성장을 기회로 활용하여 풍요로운 사회로 향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최은영 리뷰어  octovemb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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