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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살해는 “조선 특유의 범죄”?식민지시기 서구 부인과학 지식을 통한 ‘반(反)자연적’ 미개 ‘전통’의 구성
문지호 리뷰어 | 승인 2017.08.31 23:15

1933년 한 일본인 의사가 정리한 각국 남녀 살인범 비례표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독일, 프랑스 같은 서유럽 국가는 물론이고 일본 내지나 일본의 다른 식민지 대만에 비해 유독 식민지 조선에서만 남성 살인범에 비해 여성 살인범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이다. 조선의 여성 살인범 수는 남성 살인범 수의 88%에 육박했고, 이 수치는 다른 국가의 비율이 10% 안팎에 머무르는 데 비해 엳아홉 배는 족히 되었다. 더욱 놀라운 대목은 조선 여성의 살해 대상 다수(전체의 63%)가 바로 그들의 남편이었다는 점이었다. 이 수를 제외할 경우 조선 여성의 살인범 비율은 일본 내지의 비율과 엇비슷해졌다.

일본인 의사 쿠도(工藤武城)가 정리한 각국 남녀 살인범 통계표. 대만과 조선의 통계는 1930년 국세조사보고서의 보고에 따른 것이고, 일본 내지의 통계는 사법성 제24 행형통계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통계는 전거가 제시돼 있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리고 이런 통계를 수집한 일본인 의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왜 이런 통계를 수집했고, 이로부터 어떤 결론을 도출했을까?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홍양희 교수의 논문, 「식민지시기 ‘의학’ ‘지식’과 조선의 ‘전통’: 쿠도(工藤武城)의 “婦人科學적 지식을 중심으로」 (『의사학) 제22권 제2호, 2013년 8월)은 이러한 흥미로운 질문에 답을 주고 있다.

 

서구 ‘부인과학’ ‘지식’을 배운
산부인과 의사 쿠도의 지식 생산과 전파

서두의 각국 남녀 살인범 비례를 정리한 이는 쿠도란 성을 가진 일본인 산부인과 의사였다. 아직 연구자들 사이에 그 이름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쿠도는 1878년 5월 1일 구마모토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에 나가사키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해 1901년에 졸업한 그는 1903년 9월에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1904년 7월 의학사 학위를 받았다. 쿠도는 1905년 12월 한성병원의 부인과부장으로 경성에 왔는데, 1907년 11월부터는 경성부인병원을 개업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13년 7월부터 다시 유학을 떠나 프랑스 파리대학 퀴리라듐 연구교실에서 수학한 뒤 1915년 12월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다. 요컨대 쿠도의 “‘의학’ ‘지식’은 일본에서 출발하여 유럽과 조선 사이를 순환하면서 형성”됐다. (583쪽)

1912년 쿠도의 모습

경성에서 쿠도의 활동은 병원을 운영하며 산부인과 의사로서 본분을 수행하는 것 이외에 서구 의학을 선진적으로 배운 전문의로서 ‘부인과’와 ‘산과’ 지식을 널리 알리는 데 집중돼 있었다. 필자에 따르면, 이런 활동은 크게 “저술, 강연, 언론 기고 등 세 가지 방면”으로 나눠 살펴볼 있다. (584쪽) 쿠도의 저술 활동에서 가장 중심에 놓일 저작은 『부인의 양생(婦人之養生)』이란 부인과학 서적이었다. 1907년 제 1판부터 1928년 제 4판까지 총 네 번에 걸쳐 출간된 이 책은 애초 수십여 쪽의 소책자에 불과했으나, 제 4판에서는 100여개의 삽화까지 포함한 460여 쪽의 단행본으로 두툼해졌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의 학설은 대개 망라”한 “유례가 없는 기획”이라고 자부할 만큼 야심찬 저작이었다. (585쪽)

특히 1913년에 출간된 두 번째 판은 한 해 전에 출간된 한글판 『부인의 조섭(婦人의 調攝)』의 일본어판이었다. (참고로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일본어판 제 2판(1913년)과 4판(1928년), 그리고 한글판(1912년)이 소장돼 있다고 한다.) 쿠도에 따르면, 한글판 『부인의 조섭』은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이 “부인의 위생에 관한 소책자의 편찬”을 위촉한 것이 계기가 돼 나오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쿠도는 이렇게 기록했다. (585쪽)

“東洋婦人은 너무 억지 죽엄이 過多하니라 그 즁으로 논지할지라도 조선부인의 모랄 병적된 사람들온 일신하난 의학의 은택을 입지 아니하고 슬픔을 머금고 세상을 버리나니라 오시예 이태왕전하께셔 깁히 이일을 진염하서셔 필경은 조선부인의 위생사상이 결핍한 결과인즉 통촉하사 이 책을 저술하라난 명을 전하셧삽기에 그 영지랄 깁히 감격하와 명치44년 3월부터 기초하야 익 대정원년 11 월에 지하야 비로소 탈고하얏나니라.” (工藤武城, 1912: 1. 논문 585쪽 재인용.)

여기서 볼 수 있듯 쿠도는 조선의 부인들의 과다한 사망 원인을 ‘위생사상이 결핍한’ 상황에서 ‘의학을 은택’을 입지 못한 점에서 찾았다. 그러므로 쿠도의 책은 “죽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죽음에 이르는 조선 여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의학 지식을 전파하고, 서양 의학에 대한 계몽을 목적”으로 한 계몽서였다. 이를 위해 책은 “부인병과 임신 및 분만, 산욕 시 여성의 건강과 관련된 지식, 그리고 난산일 경우 의사가 올 때까지 할 수 있는 응급처치 등”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었다. 필자에 따르면, 이는 “조선 ‘여성’의 몸에 서양의 근대적 의료가 본격적으로 개입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 쿠도가 제시한 ‘근대 의료’는 “죽지 않아도 되는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야만의 생각’과 아울러 ‘여성의 생리에 능통치 못한’ 의학 지식의 ‘무지’와 ‘미신’으로부터 … 조선 여성의 ‘생명’을 구할 하나의 빛”처럼 그려졌다. (586-587쪽)

 

순종이 친필로 써준 제자(題字). ‘어진 덕이 있고 수명이 길다’는 의미로 “인수(仁壽)”라고 썼다. 쿠도는 이 제자를 일본어 판본 제 4판에까지 그대로 실었다.

이와 같은 쿠도의 계몽 활동은 다양한 강연회와 언론 기고를 통해서도 이뤄졌다. 대중 강연에서 쿠도는 “다양한 실물 모형”을 활용하며 “병원 의료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조선의 부인들이 “외국 의술”에 불필요한 거부감을 가진 탓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아 “병을 악화시킨다는 점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 ‘진찰권을 다수 발행’하여 그 진찰권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에게는 진찰료, 약값 및 입원료를 반액만” 수령하기도 했다. (589쪽) 또한 쿠도는 『매일신보』, 『경성일보』, 『조선』, 『문교의 조선』, 『경무휘보』 등에 다수의 글을 실었는데, 가장 많은 글을 기고한 『조선급만주』를 살펴보면 “의료와 관련된 기사만도 50건”이 넘었다. (590쪽) 이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글은 쿠도가 1929년과 1933년 두 해에 걸쳐 잡지 『조선』에 게재한 “조선부인의 본부 살해에 관한 부인과학적 고찰”이라는 연재물이었다. 서두에 언급한 조선 부인의 ‘과도한 살인 비율’에 대한 논의가 바로 여기에 실렸기 때문이다.

 

생리적 불안정성과
여성의 ‘범죄’ 성향

서구 부인과학을 익힌 쿠도는 여성의 몸을 근본적으로 당대 서구의 해부학, 생리학 지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까닭에 그는 “여성의 ‘생식기’와 ‘여자 특유의 범죄’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남녀의 생식기의 차이가 인간의 행동을 규정한다는 ‘성 본질주의’적 인식론”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 (591쪽)

“남녀의 차이는 생식기의 차이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 남성 생식기는 매우 복잡한 발달을 하는데 반해, 여자의 생식기는 원시적인 형태에 머문다. 다시 거슬러 태아생성의 유양(有樣)을 관찰하여 보면 남성의 정자는 매우 활발하게 용약 돌진하는데 반해, 여자의 난자는 전혀 운동성을 결여하고, 겨우 나팔관 및 자궁점막, 상피세포의 직모운동에 의해 도는 것이어서 철두철미 피동성(被動性)이다. 이 양자의 태생기에 차이는 남녀 양성의 종생(終生)을 지배하는 철칙(鐵則)을 만드는 것이고, 태생(胎生)의 상태와 심리상태는 항상 병행상태를 달려 성욕과 정신은 항상 동일 궤도를 간다. … 질(膣)의 작은 골반 내에 숨어 전혀 외계(外界)와 접촉하지 않는 바의 생식기같이 여자는 대부분 실내에 칩거하여 사회와 접촉하는 경우가 적고, 따라서 외계의 자격(刺激, 자극을 받아 격동함)에 대하여 매우 민감하고, 소위 자격성(刺激性)이 천성(天性)이 된다.” (工藤武城, 1930a: 40. 논문 592쪽 재인용.)

이러한 생식기 중심의 생물학적 성 본질주의는 ‘여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는 논의로 이어졌다. “여성은 ‘생리적’으로 ‘범죄’적 성행이 농후한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쿠도는 우선 여성 고유의 생리 현상인 ‘월경’을 꼽았다. 특히 그는 월경으로 인한 출혈 현상을 “신체 구조상 및 기능상 절대로 남자에게는 없고 여자에게만 오는” “손상”, 혹은 “손실”이라고 규정했다. (593쪽)

“해부학의 대가 오스칼 슐츠 교수가 이르듯 … 유구한 원시 고대부터 인류여성이 다달이 상실해 오는 혈량인 월경[으로 인한] … 손실은 잠시 정신적으로도 잃어, 여자의 지능은 적이 진보하지 못하니, 진실로 부득이한 현상이다. … 월경이 바르게 주기성으로 조래하면 모든 자극에 반응이 강하고, 극기심이 감소한다는 사실은 롬브로소가 창도하고, 다음으로 불란서의 르 구랭 드 소르, 봉당, 라츠카사뉴 등도 이를 승인하고, 독일의 못스레 다고네, 후리드리히 등의 제씨도 독약 사용, 방화는 월경 중에 주로 행해진다고 보고하였다.” (工藤武城, 1933f: 100. 논문 593쪽 재인용.)

다음으로 쿠도는 “‘임신’, ‘분만’, ‘산욕’, ‘수유’ 등 여성의 인간 재생산 활동”을 여성이 범죄적 성향이 높은 이유로 꼽았다. “월경 정지에 수반하여 정신 상태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유 없는 혹은 과격한 분노의 표출 등 성격 이상이 발생되기 쉽고, 극단적으로는 ‘정신병’ 상태에 이를 정도”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여성 특유”의 “생리적 견지”에서 제시된 ‘과학적’ 설명은 왜 영아살해가 대개 분만 후에 발생하는지도 설명해줄 수 있었다. 쿠도에 의하면, “임신, 분만, 산욕 중에 생기는 희로애락의 감정의 변화는 매우 민속하여, 상시와는 거의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떤 때는 매우 격노하고, 어떤 때는 극도로 침울하다.” 그러므로 영아살해와 같은 여성의 범죄는 “결코 병리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생리적인 범주”에 해당하는 문제였다. (595쪽) 이러한 설명은 흥미롭게도 여성의 ‘생리학적’ 범죄에 대해서는 형벌을 감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그외에도 쿠도는 ‘폐경기’나 ‘갱년기’가 여자들의 범죄 성향을 높이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월경이 끝난 ‘갱년기 노녀기(老女期)’의 여성은 ‘집요성’을 드러내, 이것이 범죄로 이어질 경향이 농후하다”는 것이었다. (595쪽) 진화론적으로도 여성은 범죄 성향이 강했다. 롬브르소와 같은 서구 학자들의 논의를 수용한 쿠도는 진화 초기에는 암컷의 성질, 즉 자성(雌性)이 웅성(雄性)보다 압도적이어서 암컷이 수컷을 “잔학하게 괴롭히거나 살해하는 원시적 상황”이 있었으나, 진화의 과정에서 이런 성질은 점차 잠재화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런 성질 역시 격세 유전되므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격세유전의 성질을 남자에 비해 다량으로 타고난 여자”의 경우 “어떤 특정한 조건”이 되면 진화의 과정에서 잠재된 ‘원시적’ 성질을 발현시킬 수 있었다. 쿠도가 염두에 둔 ‘특정한 조건’은 무엇이엇을까? 다름 아닌 “성욕 변조”였다. “‘성욕 변조’라는 조건만 충족되면 무자비한 ‘잔학성’이 언제든지 발휘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여성’”이라는 논리였다. 더욱이 쿠도는 월경이나 분만을 통해 많은 피를 흘린 여성은 “고통을 달게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고 “타인의 출혈이나 고통을 보아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 역시 여성의 범죄율이 높은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596-597쪽)

 

조선 여성 특유’의 범죄와
조선의 ‘미개한 전통’

‘여성 특유’의 높은 잠재 범죄 성향의 원인을 근대 서구 생물학에서 찾은 쿠도의 논의는 ‘조선 여성 특유’의 압도적 범죄율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쿠도의 과제는 “다른 민족에 희박하고 유독 조선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현상”, “범죄 통계학”적으로 “조선 특유의 범죄”라고 할 수 있는 남편 살해의 원인을 해명하는 것이었다. (598쪽) 쿠도의 조사에 따르면 조선의 남편 살해범들은 선천적 여성 범죄형은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 유독 쿠도의 눈을 잡아끈 것은 대다수의 남편 살해범들이 어린 여자들이라는 점이었다. 쿠도는 그 결과를 아래와 같은 그래프로 정리했다. 조선의 여자들이 내지의 일본 여자들보다 통상 결혼을 빨리하기는 했지만, 조선의 본부 살해범들의 경우 조혼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맨 왼쪽으로 치우친 그래프부터 각각 조선의 본부 살해범, 조선 여자, 내지 여자들의 결혼 연령 분포를 나타낸 그래프. 남편을 살해한 조선 여자들의 경우 80%에 육박하는 이들이 15세 이하에 결혼한 것으로 조사됐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남편 살해범의 결혼 연령이 초경보다도 이르다는 것이었다. 쿠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결혼 연령이 평균 14년 1개월인데 반해 실제 성적 교섭은 평균 15년 1개월이어서, 약 1개년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므로 “남편 살해범들은 ‘부인과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완전히 여성의 ‘생리를 무시하는 부자연이 극에 달한 부부관계’, ‘부인의 생리를 무시한 성생활’ 하에” 처해 있다는 것이 그의 ‘과학적’ 진단이었다. (601쪽) 그러므로 ‘조선 여성 특유’의 높은 남편 살해 비율은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에 역행하는, 그리하여 여성 특유의 높은 범죄 성향을 악화하는 ‘조선 특유’의 ‘환경’에 기인한 것이었다. 요컨대 “조혼”과 “여성을 재물시하여 개체 품성을 인정하지 않는” “조선의 사회악”, 조선 특유의 “사회 상태”가 여성의 ‘성적 변조’를 유발하여 여성 범죄를 “양성 유치”하는 주요인이었다. 남편 살해는 “본래” “조혼의 나라”인 조선에 “좁게 한정된 지방적 원인”, “오직 민족적 지방적 인자”에 기인한 범죄였다. (602쪽)

조선의 높은 남편 살해율의 원인이 ‘민족적, 지방적’ 성격을 띠고 있다면, 그 “치료법” 역시 “조선의 풍속 습관을 고치는 길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민족병”을 윤리나 교육으로 고치려는 것은 애초에 무용한 일이었다. “유교 특히 주자학파의 보급이 가장 완전하다고 칭해지는 조선”에서 “세계에서 비할 데 없는 이런 종류의 범죄를 낳은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발생한 것을 생각하면, “윤리 교육의 효과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쿠도가 보기에 조선의 ‘민족병’에 대한 ‘치료법’은 “부인 생리”에 토대를 둔 의학적 풍속 교정 및 계몽에서 찾아야 했다. (604쪽) 근본 원인이 ‘부인 생리’에 대한 무지에 있으니 대책 역시 ‘부인 생리’에 대한 계몽에서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리학적 성 본질주의와
인종주의의 결합

쿠도의 생리학적 성 본질주의는 생리학에 토대를 둔 조선 사회 개조론으로 이어졌다. 조선 여성의 높은 남편 살해율은 조선 여성의 선천적 조건이 아니라, 조선 ‘사회’의 ‘미개한 전통’에 기인한 것이라는 진단이 그 근거였다.  그러나 그의 ‘과학적’ 사회 개조론은 ‘과학적’ 인종주의와 결합하며 조선 사회가 나아갈 수 있는 ‘생물학적’ 한계를 설정하는 이중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를 잘 보여준 사례는 남편 살해범의 출신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대목이었다. 쿠도가 정리한 다음 표에서 볼 수 있듯 남편 살해범은 경상남도에서 가장 적었고, 황해도에서 가장 많았다. “야만적인 여성 범죄가 남쪽 지방에 적고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증가”하여 “경상도와 황해도를 대비하면 약 10배의 비율”로 차이가 난 것이다. 이로부터 쿠도는 남편 살해범이 “일본 내지에 근접할 수록 적고, 만주국에 가까울 수록 많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605쪽) 쿠도는 이 결론을 당대 인종주의적 혈액형학과 연결했다.

“근시 혈액형학의 진보에 수반하여 남부조선은 일본 내지의 형에 가깝고, 북상함에 따라 그 유사농도가 감소한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여자의 살해범 계수도 이것과 같은 양상을 보이면, 장래 혈액형학, 유전학, 인류학, 민족학의 진보로 인해 이 관계가 천명되기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북변의 민족은 지방적 풍속·습관·성질이 매우 흉악하고 사나워 윗사람에 반항하여 어진 관리가 적응하지 못한다. … 북변의 민족은 저 사납고 흉포하기로 유명한 여진족과 오랫동안 범죄자의 유배지인 고로 형벌자로서 추방된 조선인과의 혼혈아의 자손인 때문은 아닐까.” (工藤武 城, 1933a: 59-60, 논문 606쪽 재인용.)

각 도별 ‘유부녀 인구 대비 남편 살해범 수 비율’을 순위대로 나열한 그래프. 황해도(13.125%)가 맨 앞에, 경남도(1.420%)가 맨 뒤에 위치해 있다.

쿠도가 공감을 표한 당대의 혈액형학은 “혈액형 분포의 차이를 지수로 나타낸 ‘생화학적 인종계수’에 의해 인종적 차이”를 표시하는 접근법을 취했는데, 이런 계열의 연구자들은 “생체 계측 등의 방법을 통해 일본인과 주변 민족들 사이의 인종적 차별성과 위계를 통계적으로 입증하고, 일본인의 인종적 우위와 특권적 위상을 확보하려” 했다. (607쪽) 그러므로 “월경형, 혈액형, 두개시상횡경지수(頭蓋矢狀橫經指數), 본부살해범인의 지수 등 모두 남쪽 조선 부인은 내지 부인에 가깝고, 북쪽으로 감에 따라 이것과 멀다”는 쿠도의 결론은 “일본인에 대한 조선인의 인종적 열등성을 통해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한편, 조선 남부와 일본 사이의 일선 동조의 가능성을 열어두려 하는 식민지 관학 연구의 인식과 동일 궤도에 존재”하는 주장이었다. 이처럼 쿠도의 부인과학적 범죄론은 젠더, 서구 부인과학, 인종학적 조선 사회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아가 쿠도의 논의는 통치민과 피통치민의 “‘차이’를 부각시켜야만 하는 식민지 정치 현실과, 다른 한편에서는 식민지 통합의 논리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제국 통치의 딜레마이자 역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구체적 사례이기도 하다. (608쪽)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홍양희 (2011), 「식민지조선의 “본부살해사건”과 재현의 정치학: 조선적 범죄의 구성과 식민지적 ‘전통’」, 『사학연구』, 102, 79-114쪽.


정준영 (2012), 「피의 인종주의와 식민지의학: 경성제대 법의학교실의 혈액형인류학」, 『의사학』, 21(3), 513-549쪽.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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