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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적정기술 운동에 대한 성찰적 제언“선량한 기술”에서 “정의로운 기술”로
문지호 리뷰어 | 승인 2017.08.31 23:13

얼마전 여러 언론은 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 중인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 과제의 일환으로 지난 2017년 8월 10일 탄자니아 아루샤에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한 보도에 따르면, 탄자니아 센터는 캄보디아, 라오스, 네팔에 이어 네 번째로 설립된 것으로서, 아프리카 대륙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적정기술센터라고 한다.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 과제는 한국 정부가 “대외 공적개발원조(ODA)의 일환으로 1회성 물자 원조를 벗어나 필요한 과학기술 지원을 통해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돕기 위한 사업”으로 지난 정권에서 집중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대표적인 적정기술로 널리 인용되는 라이프스트로(LifeStraw). 수질이 나쁜 물을 필터로 바로 걸러 음용수로 만들어준다. (https://eartheasy.com)

특정 정권에서 정력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라 하여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 과제의 배경에 깔린 생각이 시종 정략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적정기술이란 생각 자체는 “학교, 기업, 언론, 정부, 성인, 학생, 어린이 등”을 막론하고 “2010년대 한국 사회의 다양한 기관과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129쪽) 카이스트 전치형 교수의 논문, 「소외된 90%, 따뜻한 기술, 최고의 솔루션 – 한국 적정기술 운동의 문제의식 비판」 (『과학기술학연구』 14(1), 2014년 12월)은 이처럼 변화하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자기 인식을 기술의 윤리학 및 정치학의 차원에서 중간점검하고 성찰하기에 적절한 글이다.

 

따뜻한 기술”, 문제 해결의 “최고의 솔루션”:
한국 적정기술자들의 자기 인식

적정기술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지역의 생활 여건을 고려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기술”이라는 교과서적 정의(실제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듣기 문제에 출제된 정답이다)에서부터, “기술중심주의가 아닌 인간중심주의! 인간과 환경 모두를 위한 기술!”이라는 활동가적 정의는 물론, “기술을 부정하는 대신 기술에 인간적인 색을 입힘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기술이란 정책학적 정의까지 존재한다. (131-132쪽) 그러나 필자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적정기술의 개념과 의의, 나아가 그 잠재적 문제점에 관해 논의해왔으나, 한국 “적정기술자들의 말과 글을 통해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적정기술의 의미와 그것이 지향하는 바와 그 배경에 있는 문제의식을 파악”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133쪽) 이 논문의 일차적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

우선 한국의 적정기술자들은 왜 적정기술 활동에 나서게 됐는가? 필자는 이에 대한 답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고 있다. 우선 ‘봉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한 팀장이 언급하듯, “‘빈곤문제 같은 복잡다단한 사회문제에 개입할 여지가 없던 이공계 학생들은’ 적정기술에서 이웃과 사회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가회를 발견한다.” 이에 부응하여 여러 대학들은 “‘공학’과 ‘봉사’를 결합하는 통로로 적정기술 프로젝트를 장려”한 바 있다. (138쪽)

과학기술자들을 적정기술로 이끄는 두 번째 동인은 ‘기독교 신앙’이다.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어야 한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적정기술 프로젝트를 통해 “현실이 되고 적정기술 활동의 동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적정기술자들이나 그 단체들이 처음부터 종교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적정기술자들은 의식하지 않고 있다가도 막상 구성원들의 종교를 알게 되면 그 다수가 개신교 신자인 경우가 많다”고 자신들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물론 기독교 신앙과 적정기술의 결합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적정기술이 “선교지 지역사회개발의 수단”으로 활용될 때이다. 이때 적정기술은 “교육과 의료를 보완하는 21세기형 선교수단으로 등장한다.” (138-139쪽)

한국 적정기술자들의 동기를 이해할 수 있는 마지막 세 번째 키워드는 “자부심 혹은 성취감”이다. 이런 생각은 서두에서 언급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대외 공적개발원조(ODA) 프로그램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적정기술 대상 국가”였던 한국은 이제 “적정기술을 다른 나라에 보급”하는 성공한 국가로 그려지고 있다. 2010년에 방영한 한 EBS 다큐멘터리는 이런 이미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 바 있다. “‘과거 우리를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던 기술이 이제 이 [케냐] 땅의 가난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적정기술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140-141쪽)

이처럼 봉사, 신앙, 자부심이라는 적정기술자들의 동인에 깔린 생각은 적정기술은 “따뜻한 기술”이라는 생각이다. (142쪽) 여기서 ‘따듯함’이란 선한 감정이 봉사, 신앙, 자부심과 맞닿아 있다면, ‘기술’이란 ‘수단’은 기술의 사회적 효용에 대해 고민해 본 ‘기술자’를 적정기술로 강하게 끌어당기는 요인이 된다. 필자에 따르면, 이 때문에 적정기술자들은 적정기술이란 개념을 처음 접한 경험을 대부분 “놀라움과 기대”로 묘사한다. (134쪽) 그리고 특정한 사회 문제를 기술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강한 “기술 솔루션주의(technological solutionism)” 경향을 드러낸다. 즉, “숨 막혀 있는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제시하는” “최고의 솔루션”으로서 적정기술이 상상되고 있는 것이다. (137쪽)

탄자니아 아루샤에 개소한 서울대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 테이프 커팅식 현장 ⓒ서울대 (http://eng.snu.ac.kr/node/14797)

 

소외된 90%”라는 타자

한국의 적정기술자들이 널리 공유하고 있는 “따뜻한 기술”, “최고의 솔루션”이란 적정기술관에 깔려 있는 또 다른 생각은 그러한 기술을 제공하는 ‘우리’와 그 기술의 수혜를 받는 ‘그들’이라는 구별이다. 즉, ‘우리’ 적정기술자는 ‘신앙’에서 우러난 선한 마음으로 기술적 ‘봉사’를 하고 그 성과를 통해 정당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성과는 지금껏 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한 ‘그들’, 즉 개발도상국과 같은 외부의 “소외된 90%”, 혹은 빈곤층이나 “재해를 겪어 평소의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없게 된 사람들” 같은 내부의 “소외된 90%”의 혜택으로 드러난다. 요컨대 적정기술자들의 자기 인식 속에서 “적정기술이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분은 비교적 굳게 유지”되는 것이다. (153-154쪽)

이런 특징은 “한국 적정기술의 특성으로 학계에 있는 엔지니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든 한 적정기술자의 평가와도 상통한다. 학계에서 인정 받고 사회적 안정을 획득한 학자들이 “자신의 삶과 경력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는 한편 평소의 종교적, 사회적 신념에 자신의 전문지식을 결합하여 소외된 이웃을 돕는 활동에 나선” 결과의 하나가 바로 적정기술 운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배경의 적정기술자는 적어도 자신을 소외된 90%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정기술은 ‘우리’가 아닌 ‘그들’을 향한 활동”인 것이다. (154-155쪽)

필자에 따르면, 이런 구도는 몇 가지 문제를 낳는다. 우선, ‘소외된 90% 그들’을 향한 기술이란 적정기술 개념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적정기술자가 되려는 주체적 상상과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적정기술의 시혜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상상된 ‘그들’과 자신들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풀어나가려는 ‘그들’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하여 더 단순해 보이지만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문제도 있다. ‘우리’는 과연 ‘그들’의 문제를 정확히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상상된 ‘그들’은 누가 대표하는가? ‘그들’이 모두 동일한 문제를 공유하는가?

 

이런 문제가 가장 잘 드러난 사례 중 하나는 2008년부터 한동대학교 공학교육혁신센터와 ‘나눔과 기술’(과학기술을 통한 봉사와 선교에 관심 있는 이공계 기독교인들이 주축이 된 사단법인)이 주관해 온 ‘소외된 90%와 함께하는 공학설계아카데미’였다. 이 프로그램은 2010년부터 “‘제3세계 현지인들’을 참여시키고 이들에게 ‘설계문제의 고객’”으로서 참가 학생들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더 직접적으로 들려줄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처음 아카데미 측이 초청한 ‘현지인들’은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던 ‘제3세계 현지의 지도자’ 또는 ‘현지의 엘리트’들이었다.” 2011년에는 “한국의 대학원에서 유학 중인 11개국 출신 학생 12명”을 초대했다. 이들은 “‘제3세계 현지인 고객’의 역할과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적정기술자의 역할을 동시에 떠맡게” 된 것이다. (156쪽) 그러나 이 역시 문제를 드러냈다. 주최측 역시 이를 인지하고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이들 외국인들이 아직 학생이고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자신들의 지역 공동체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고 현지의 도시에서 주로 생활하던 이들이 다수이어서 설계의 현실적 제약조건을 제시하는 데 바람직한 조건을 가진 고객으로는 미흡한 점이 있었다.” (157쪽)

 

선량한 기술에서 정의로운 기술로

이처럼 한국 적정기술자들은 흔히 90%의 그들과 10%의 우리를 나누고, 그들에게 우리가 배푸는 시혜로서 적정기술을 이해하고 있다. 이런 인식에 깔린 ‘선량함’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적정기술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유인이 되고 있으나, ‘그들의 문제’를 단순화하고 그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술 솔루션주의’의 소박한 기술관의 위험에 빠질 가능성 역시 안고 있다. 이런 소박한 기술관의 영향으로 적정기술 활동은 흔히 “‘그들’이 ‘가지지 않은 기술’”, 특히 “제품이나 장치의 형태로 이해”된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필자에 따르면, 이런 경향의 바탕에는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삶에서 기술의 결핍 또는 부재를 발견하고 그 비어 있는 부분을 적정기술 제품과 장치가 들어가 채워줄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157-158쪽)

그러나 필자가 강조하듯, 과학기술학자들의 오랜 연구에 따르면 기술을 제품과 장치 중심으로 이해하고 기술과 사회를 분리한 뒤, 사회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려는 생각은 기술의 역사는 물론이고, 현대 기술 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별 장치와 제품의 작동과 운영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기술적 시스템, 정치경제적 제도, 사회문화적 관계의 영향을 받으면서 동시에 그러한 시스템과 제도와 관계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158쪽) 그러므로 사회의 문제를 ‘비기술적 초기조건’처럼 상정하고 이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장치와 제품을 찾으려는 생각은 기술의 정치경제학과 사회학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이처럼 단순한 기술관은 결국 소위 ‘그들’의 문제를 ‘그들만의’ 문제로 만들 위험이 있다. 기술의 역사는 ‘그들’과 ‘우리’를 가르고, 우리는 극복했으나 그들에게는 잔존하는 문제를 만들어내는 데 기술 및 기술과 결합한 다양한 요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술 및 기술과 결합한 다양한 요인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는 좀 더 정의로운 공동체, 그러한 공동체와 결합할 좀 더 정의로운 기술에 대한 성찰을 요청한다. “선량한 기술을 추구하는 것으로 출발한 한국의 적정기술은 정의로운 기술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인가?” (158-159쪽)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손화철 (2011), 「적정기술의 의의와 과제」, 제3회 적정기술포럼: 적정기술과 국제개발협력 (자료집), 1-10쪽.


장하원·박상욱 (2013), 「적정기술의 맥락과 공학교육에의 적용 필요성에 관한 연구」, 『공학교육연구』, 16권 5호, 36-42쪽.


정용교 (2017), 「베트남 대상 적정기술 프로그램의 개발과 적용 - 대학교육의 새로운 탐색을 중심으로」, 『교양교육연구』, 11권 3호, 585-614쪽.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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