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2017 인문/역사
텔레비전은 영화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앙드레 바쟁의 사유를 바탕으로
이지호 리뷰어 | 승인 2017.09.05 22:59

영화 콘텐츠를 텔레비전 콘텐츠와 비교하거나 연관 짓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소비되는 매체의 차이가 컸으며, 이로 인한 소비자 접근성의 편차도 매우 컸기 때문이다. 더불어 콘텐츠 제작 방식도 서로 방향이 달랐기에, 비슷하게 보이는 이 두 가지 문화 콘텐츠의 접점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영화 콘텐츠와 텔레비전 콘텐츠는 서로를 견제하고 시기하면서 발전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을 가장 먼저 드러낸 앙드레 바쟁은 텔레비전에서 영화의 미래를 제시했다. 바쟁은 텔레비전에 관한 글을 100여 편 정도 발표하며 텔레비전이 만들어내는 사실 효과에 주목, 텔레비전이 영화에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지 탐색했다. 이러한 바쟁의 의견은 영화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고전 영화에서 현대 영화로 넘어가는 지점에 크게 이바지했다. 청주대학교 영화학과 심은진 교수는 「바쟁과 텔레비전 : 영화와 텔레비전 스타일」(『영화연구』 (72), 2017)에서 텔레비전에 대한 바쟁의 글을 중심으로 영화에서 표현된 텔레비전적인 스타일을 분석했다.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사유한 첫 번째 비평가
앙드레 바쟁


전 세계에서 텔레비전의 대중화가 시작된 1950년대부터 일상생활은 변하기 시작했고 인접한 다른 매체들도 바뀌기 시작했다. 현실을 포착하여 이를 움직이는 이미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 콘텐츠와 텔레비전 콘텐츠는 매우 비슷했지만, 영화는 텔레비전을 시기하고 적대시하며 가장 긴장했다. 사실 이 1950년대는 영화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이기도 했다. 누벨바그를 중심으로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고, 할리우드 고전 영화 스타일에서 한 단계 진화하는 시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영화인들은 텔레비전은 영화와 같은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으나, 앙드레 바쟁은 텔레비전과 영화를 함께 주목했다. 그리고 바쟁은 텔레비전을 거만하게 다루는 영화인들에게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텔레비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보다 텔레비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텔레비전이 영화에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100여 편의 글을 썼다. 그리고 이는 장 르누와르(Jean Renoir)와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프랑수와 트뤼포(François Truffaut) 감독에게 영향을 끼치며, 영화와 텔레비전을 이어주는 다리를 만들었다.

무엇을 보는가 vs 지금 보고 있는가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 <이탈리아 여행>

바쟁은 “텔레비전의 즐거움은 스펙터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에 토대를 두고 있다. 보는 사람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환상에 토대를 둔다.”라고 텔레비전의 즐거움을 분석하며 영화와의 차이를 정리했다. 영화는 스크린 위에 관객의 욕망을 펼치면서 관람의 즐거움을 만들어주는 반면, 텔레비전은 우리 시각 기관이 활동하는 연장처럼 기능하며 보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즉, 영화는 무엇을 보는가가 중요하다면 텔레비전은 본다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다. 이를 바쟁은 이미지를 도처에서 본다는 행위인 현전(présence)으로 주장했으며, 이 현전성을 텔레비전의 중요한 특징으로 설명했다. 또한 텔레비전은 촬영의 시간과 재현의 시간이 영화처럼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미지의 재현이 아니라 이미지의 현전, 제시임을 주장했다.

이탈리아 여행 포스터 (출처: 네이버)

1953년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은 <이탈리아 여행 VIAGGIO IN ITALIA>을 만들었다. 이 영화는 당시 비평가들에게 심하게 비판을 받았지만 바쟁은 이 영화를 옹호하는 글을 발표했다. 바쟁은 "네오 리얼리즘을 가장 멀리까지 밀고 나간 작품"이라며 시대를 앞서나간 작품이라 평가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탈리아 여행>은 현대 영화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여행>은 바쟁이 텔레비전의 특징으로 꼽은 현전성이 잘 구현된 작품으로 영화와 텔레비전의 첫 만남이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이 자동차로 혹은 걸어서 이탈리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전개된다. 특별한 인과관계없이 주인공들의 이동에 따라 이미지가 펼쳐지고, 특정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마치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이 사건 그 자체인 것처럼 인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모습이다. 그렇다 보니 당시의 평론가들이 이 영화가 지루하고 공허한 이미지뿐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위해 특정 내러티브를 가지고 전개되지 않으며, 두 주인공이 이동하며 보이는 상투적인 이미지가 영화 그 자체가 된 것이다. 로셀리니 감독은 이런 이미지의 나열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바쟁이 제시한 현저성이란 개념으로 이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 <이탈리아 여행>은 이미지의 시간과 바라보는 시간을 일치시키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텔레비전이 만드는 사건의 시간과 관람의 시간, 촬영의 시간, 재현의 시간이 거의 일치되는 것처럼 이 영화도 텔레비전의 미학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앞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어떻게 발전되고 진행될지 모른 채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관객들. 텔레비전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영화도 관객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연속성의 구축 vs 연속성을 전달
장 르누아르 감독의 <코들리에 박사의 유언>


텔레비전 방송 시간이 길어지면서 텔레비전 영화, 드라마, 시리즈물 같은 허구의 이야기 프로그램도 텔레비전으로 방송되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자들은 영화와의 차별점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에 대해 고민했다. 편집을 통해 시간의 연속성을 구축하는 영화와 달리, 텔레비전은 연속성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서트 장면 사용과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생방송과 녹화된 장면이 섞이는 텔레비전은 송출과 시청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여러 사람들이 각자 다른 공간에서 동시에 관람한다는 점에서 현재적 시간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현재성을 통해 텔레비전은 사실 효과를 만들어내온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텔레비전이 가진 현재성과 즉각성을 표현할 수 없고, 재현의 기능만을 가졌다 볼 수 있다. 여기서 바쟁은 이 현재적 시간을 시청자의 관점에서 생각하였다. 생방송이 아니더라도 생방송 형식으로 제작된 텔레비전 드라마는 보는 사람에게 생방송의 효과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바쟁은 이를 지연된 생방송이라 표현하며 영화도 이를 받아들어야 함을 주장했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생방송의 정신, 스타일, 어조 이지 순수한 생방송이라는 형식적인 개념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바쟁은 텔레비전의 생방송 형식이 당시 프랑스 영화에는 결여된 리얼리즘의 요구에 부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코들리에 박사의 유언 스틸 (출처: 네이버)

이러한 생방송의 미학을 영화로 실천한 첫 번째 영화는 장 르누아르 감독의 <코들리에 박사의 유언>이다. 이 영화는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Dr. Jekyll And Mr. Hyde>를 195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재해석한 영화이다. 영화는 텔레비전 방송 르포처럼 시작하고, 텔레비전 생방송처럼 12대가 넘는 카메라가 동시에 촬영을 하여 사실 효과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텔레비전 중계방송처럼 촬영을 단 한 번만 진행하여 관객이 라이브 중계방송을 보듯이 연출했다. 르누아르 감독은 카메라를 위해 긴박함을 만들어 내기 보다 긴박한 현장을 카메라는 담기만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배우들의 움직임에 의해 카메라 움직임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인 영화 촬영을 벗어난 이 새로운 시도는 영화에서도 생방송 같은 시간의 현재성, 연속성이 가능함을 보여줬다. 바쟁은 “텔레비전은 영화에 장점을 알려준다. 오래전부터 영화가 잊었던 것 반(半) 즉흥성, 즉석에서 작업하는 것이 지닌 장점을 알려준다.”라며 텔레비전 생방송의 미학을 영화에 적용하여 표현했다. 그리고 르누아르는 바쟁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제가 텔레비전으로 향하는 이유를 물으신다면, 텔레비전은 지금 기술적인 초기 단계이고 마치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예술가들이 가져야 했던 투지를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라며 영화와 텔레비전의 콜라보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관객과의 밀당 vs 관객과의 친밀함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

400번의 구타 포스터 (출처: 네이버)

텔레비전은 장치가 가진 친밀함과 수용방식이 만들어 내는 친밀함을 모두 가지고 있다. 개인적인 공간에 배치되는 전자기기로서 친밀함을 가진 텔레비전은 특정 장면을 수백만 개의 개인적인 기기로 나누면서 그 친밀함을 강화한 것이다. 바쟁은 “나는 여러 시청자 중 하나이지만, 그리고 나 혼자만 텔레비전에 등장한 사람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은 바로 ‘나’이고, 텔레비전이 바라보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한 개인이다."라고 표현하며 텔레비전이 가진 친밀함에 주목했다. 영화에서 카메라 정면 보기는 관객에게 환상을 없애기 때문에 금지되고 있었으나, 텔레비전은 카메라 정면 보기를 시도하며 관객에게 대화를 걸고 친밀감을 높이고 있었다. 시청자를 파트너로 여기는 텔레비전의 태도는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에 의해 영화에서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트뤼포 감독은 <400번의 구타>에서 일상의 대화체로 대사를 구성하며 진짜 같은 말하기가 오갈 수 있도록 시나리오를 썼다. 일상 언어의 사용이 돋보인 연출은 리얼리즘을 배가시키며 친밀감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보이스오버를 시도해 이미지와 소리가 불일치하는 텔레비전 인터뷰 방식의 편집은 관객을 증인의 위치로 승격시켜줬다. 또한 주인공이 탈출해서 뛰어가는 모습을 롱테이크 핸드핼드로 보여주며 관객들도 함께 뛰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결국 트뤼포 감독은 누벨바그의 시초가 되는 이 작업에서 그 새로움을 텔레비전에서 찾아낸 것이다. 텔레비전은 누벨바그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텔레비전의 대중화 과정의 초반을 지켜본 바쟁은 이 매체의 특징과 미학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물론 이것은 영화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했기에, 그의 글은 텔레비전이 영화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으로 맺어져 있다. 바쟁의 의견들처럼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구성하고, 사실 효과를 추구하며, 친밀감을 더해온 텔레비전의 스타일이 영화를 새롭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예술과 영상에서 멈출 수 있었던 영화를 좀 더 산업적으로 진화시키고 관객 친화적으로 오픈시킨 것도 확실하다.
영화와 텔레비전은 카인과 아벨처럼, 혹은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처럼 서로 반목하고 경쟁하며 공존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요즘은 케이블 채널의 좋은 제작 여건 덕분에 양질의 콘텐츠가 텔레비전을 통해 다량 등장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21세기 버전의 앙드레 바쟁이 나타나서 이 둘의 관계를 섬세하게 간파하고 영화가 배워야 할 지점을 다시 한번 제시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지호 리뷰어  hwscjj@hanmail.net

<저작권자 © 리뷰 아카이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지호 리뷰어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글항아리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210, 1층  |  대표전화 : 031)955-8898  |  팩스 : 031)955-2557
등록번호 : 경기, 아51383   |  등록일 : 2016.05.13   |  발행인 : 강성민  |  편집인 : 강성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현민
Copyright © 2018 리뷰 아카이브.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