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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어의 폭력과 은폐'안여돼' 류 신어를 중심으로 보는 신어의 화용론적 특징
최종원 리뷰어 | 승인 2017.08.21 13:50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말은 끊임없이 만들어져왔다. 특히 21세기 이후에 엄청나게 많은 줄임말 신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기존의 신어들에 대한 접근은 주로 그 형태의 형성 과정을 주목하였다. 이 글은 그보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 박재연 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한국어 줄임말 비어의 어휘론과 화용론」 (『한국어의미학』 56, 2017)에 대한 리뷰이다. 논문의 저자는 기존의 형태론적 접근 방법보다, 줄임말 신어들의 어휘론적 특성과 화용론적 특성을 분석하고, 이러한 단어들이 존재 자체로 특정 대상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현상을 고찰한다.

 

최근 생겨난
일부 신어들의 특징

흔히 줄임말 신어라고 하면 예전부터 꾸준히 쓰여 왔던 것으로, ‘농협(농업협동조합),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자판기(자동판매기)’ 등은 전통적인 줄임말 신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김천(김밥천국), 스벅(스타벅스)’ 등의 고유명, ‘엄빠(엄마 아빠), 버카충(버스 카드 충전)’ 등의 명사구, ‘지못미(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 등처럼 문장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어들에 대한 유형 분류적 특징에 대해서는 기존에 많이 논의되어왔던 바이다.

그런데 저자가 주목하는 현상은 ① ‘지균충(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입학한 벌레), 지잡대(지방 잡대)’, ② ‘안여돼(안경 쓰고 여드름 난 돼지), 안여멸(안경 쓰고 여드름 난 멸치)’, ③ ‘사시충(사법고시 본 벌레), 로퀴(로스쿨 다니는 바퀴벌레)’ ④ ‘할줌마(할머니+아줌마),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벌레)’와 같이, 크게 4가지 현상이다. 이들은 앞서 앞 단락에서 보였던 줄임말 신어들과는 형태상 유사해보이나, 어휘, 화용론적 지위는 다르다. 특히 이들은 비어라는 측면에서 특징적이다. 기존의 비어는 대개 대응되는 평어(平語)가 존재하는데, 이들은 단어 형식으로 평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화용론적 관점에서, 가령 ‘바위, 의자, 이순신, 김연아’ 등의 명사들은 그 자체로 지시대상을 지시하는 것 외에는 어떤 함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안여돼’와 같은 단어에는 ‘안경 쓰고 여드름 난 뚱뚱한 사람은 혐오스럽다’와 같은 명제가 포함되어 있다. 단어의 형식이지만 문장적인 함의를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단어가 발화되는 것만으로, ‘모욕’이 된다. 즉 단어가 존재 자체로 언어폭력(verbal abuse)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한국어에서도 일부 계층의 화자들에 의해 점유된 말이며, 그 생명력도 오래 유지되리라 여기기는 쉽지 않다. 다만 저자는 개별 사례들에 천착하기보다, 이러한 신어들이 생성되고 작동하는 방식에 큰 관심을 가진다.



어휘론적
특징

저자가 보고 있는 안여돼 류 신어의 어휘론적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가) 단의적 비어: 오직 비어 용법만을 가진다.
(나) 의도적 비어: 지시대상의 비하를 목적으로 생성되었다.
(다) 총칭적 비어: 지시대상의 범주 구성원 전체를 비하한다.
(라) 평어 없는 비어: 대응되는 평어가 존재하지 않으며 비어 자체가 오직 비하를 위해 새로운범주를 만든다.

이들 신어는 애초에 비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말이므로 평어의 용법을 가지지 않는다. 가령 ‘지방대’라는 단어는 문맥에 따라 비하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잡대’는 비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말이므로 당연히 평어적인 용법을 찾을 수 없다(물론 ‘지방대’와 ‘지잡대’의 지시대상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또한 ‘안여돼’류 신어는 해당 문맥에서의 지시대상뿐 아니라 범주 구성원 전체를 비하하는 총칭적 비어이다. 가령 ‘할줌마’는 할머니와 아주머니의 경계에 있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여성을 가리키는데, 그 연령대 여성들의 전형적 속성들을 비하하는 어감이 있다. 가령 ‘할망구’는 문맥에 존재하는 개별 지시대상만을 비하한다. 그러나 ‘할줌마’는 범주 구성원 전체를 비하한다. 또한 ‘할망구’와 같은 단어는 애칭으로도 쓰일 수 있지만 ‘할줌마’는 현재, 애칭적 용법을 가질 수 없다.

 

신어의 폭력성과 은폐성을 생각하면 마냥 재미있게만 쓰면 안 될 것이다


언어의
수행성

언어는 존재하는 세계를 모사(模寫)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가 어떤 행위를 수행한다. 가령 ‘A를 반장으로 임명한다’는 임명, ‘생일 축하해’는 축하의 행위를 수행한다. ‘지금 비가 온다’는 진술, ‘비가 오겠다’는 추측 행위를 수행한다. 그런데 만약 ‘비 온다’라는 발화는 진술 행위일 수도 있지만, 문맥에 따라서는 ‘우산 가져와라’라는 명령 행위를 수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구체적 발화 상황 이전에 특정 언어 표현이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할 수 있는 행위를 ‘잠재 행위’라 한다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문장 유형이란 잠재 화행에 따른 분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장의 일부(특히 종결어미)가 생략된 경우나, 단어만 제시된 경우에는 이러한 잠재 화행을 가지지 못한다. ‘사과’, ‘이거 작은 거지만...’과 같은 발화를 접했을 때, 구체적인 맥락 없이는 어떤 행위에 사용되기 위한 발화인지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다. 즉 이러한 단어나 문장 파편은 잠재 화행을 가지지 않음은 물론, 그 자체로는 어떤 행위도 수행하지 않는다.


단어 차원의
수행성

그러나 수행성을 가지는 단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머나’와 같은 감탄사, ‘개새끼’와 같은 욕설 등은 화자의 감정 표출과 관련된 단어이므로 잠재적인 표현 화행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비어는 지시대상을 비하하는 말이므로, 화용론적 관점에서 보면 비어들이 수행하는 화행은 어떤 대상에 대한 모욕 화행이라 볼 수 있다. 가령 ‘안여돼’는 ‘안경 쓰고 여드름 난 뚱뚱한 사람은 혐오스럽다’라는 주장을 담아, 모욕 화행을 수행한다.

그런데 비어 중에도 문맥의 도움을 얻어서 모욕 화행을 수행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주둥이, 대가리, 모가지’ 같은 것들은 발화 상황에 따라 평어적으로 쓰일 수도, 비어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 ‘환쟁이’ 같은 단어는 어떤 상황에서도 비어 용법만을 가지며, 단어의 존재만으로 범주 구성원 전체에 대한 비하를 수행한다. 단어 자체로 모욕 화행을 수행하는 수행 단어인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주의 깊게 다루고 있는 ‘안여돼’류 신어는 모두 단의어 비어와 총칭적 비어의 성격을 가지므로 수행 단어라 할 수 있다.

 



신어의
폭력과 은폐

그러나 직관으로 봤을 때, ‘안여돼, 지잡대’ 등의 신어들이 가진 모욕 화행적 용법은 그런데 기존의 ‘환쟁이, 군바리’ 등의 단어들보다 그 강도가 높은 듯하다. 가령 ‘군바리’가 군인에 대한 가벼운 경멸적 단어로는 볼 수 있으나 혐오하는 단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안여돼’ 류의 신어들이 행사하는 모욕 화행이 더욱 더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첫째, 모욕 화행의 대상을 매우 구체적으로 지목하여 새롭게 범주화한다. ‘할망구’ 등은 기존의 ‘할머니’와 같은 명사 범주의 비어로 볼 수 있지만, ‘안여돼’ 류 신어들은 기존에 명사로는 없었던 새로운 범주가 생성된 것이다. 이렇게 나타난 새로운 범주는 매우 구체적인 속성을 지닌다. ‘안경 쓰고 여드름 난 뚱뚱한 사람’, ‘지역균형선발전형을 통해 입학한 학생’과 같이 지극히 구체적인 부류의 사람들을 모욕한다.

둘째, 대상을 부당하게 모욕한다. ‘안여돼, 지균충, 지잡대’ 등의 지시 대상은 모욕을 당할 이유가 전혀 없는 대상이다. 가령 ‘된장녀, 맘충, 기레기’와 같은 신어들의 경우, 지시 대상의 본 속성과 관련하여 부도덕 또는 부적합적인 대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안경 쓰고 여드름 난 뚱뚱한 사람’이 모욕을 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안여돼’ 류 신어들은 이러한 대상을 겨냥해 폭력을 가한다.

셋째, 모욕의 단어는 모욕의 문장보다 더 잘 기억되고 전파되기 쉽다. 그래서 더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문장은 즉각적으로 생성되고 소멸되기 쉽다. 그러나 단어는 문장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함의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단어의 형식으로 그 함의 또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오히려 확대 재생산되기도 한다.

넷째, 모욕 화행을 수행하는 주체는 화자가 아닌 ‘단어’이다. 즉 ‘쟤는 안경 쓰고 여드름 나고 뚱뚱한 아이야, 난 그런 사람이 싫어’라는 발화의 책임은 화자에게 있다. 그러나 ‘쟤 안여돼야’에서의 책임은 단어에 있다. 즉 책임을 회피하며 모욕하고자 하는 대상을 모욕할 수 있는 것이다.

다섯째, ‘안여돼’ 류 신어들은 언어 유희적 성격을 띠는 다른 줄임말처럼 ‘재미있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대상에 대한 모욕 행위 수행과, 폭력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외형은 재미를 줄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곧 그러한 재미가 폭력성을 은폐한다.

이상과 같이 최근 유행하고 있는 신어 줄임말들의 유별난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 논문의 중요한 부분은 논문에서 집중하고 있는 소위 ‘안여돼’ 류 신어들의 언어적 폭력성과 은폐성으로 보인다. 그러한 두 성질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더욱 더 활발하게 쓰이며 유사한 다른 모욕 행위 수행 단어들의 형성을 부추길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이러한 논문의 내용은 청소년을 위주의 언어 생활 교육의 일환으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별 생각 없이 재미있게만 쓰고 있었던 표현들에 대한 폭력성과 은폐성을 들추는 것은 다시 한번 각자의 언어 생활 습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김민정, 「일베식 “욕”의 법적 규제에 대하여: 온라인상에서의 혐오 표현에 대한 개념적 고찰」, 『언론과 법』 13(2), 2014.

황패강, 「비속어․은어 유행과 그 사회심층적 의의」, 『어문연구』 4(2), 1976.

최종원 리뷰어  zwpow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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