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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은 어떻게 신촌을 만들었는가건축적 특성과 역사성을 중심으로 본 신촌의 장소성
강병준 리뷰어 | 승인 2017.08.04 09:47
신촌 거리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공공 조형물인 육근병 작가의 <Time in the time>. 강병준, CC BY-NC 4.0

2015년 4월 대한건축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에 실린 이와타 신노스케씨와 김광현 교수의 논문 「신촌 대학가에 나타나는 시간적 복합성에 관한 연구」는 두 페이지짜리 짤막한 프로시딩(발표용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이와타 씨는 신촌 지역에서 나타나는 건축적 특성에 관한 기존 연구가 “물리적인 건축물의 분석”에 그칠 뿐 “그것이 담아 온 인간의 생활상을 그리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신촌 지역을 서로 다른 세 가지 시간의 흔적들이 겹치는 "복합성"의 장소로 묘사한다. 역사와 시간의 흐름을 통해 건축물과 도시에 부여된 "시간적 복합성"은 건축을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든 오늘날 신촌의 장소성은 그다지 매력적인 것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특색 없는 곳, 서울의 다른 지역 어디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간판들로만 기억되는 곳. 그나마 간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특색 있는 상점들조차 여기저기 제각기 흩어져 있어 단일한 장소성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나마도 높아만 가는 임대료의 압박에 밀려 하나씩 사라져 가고 있는 곳. 이것이 신촌의 대중적 인식이자 실상이다.

관할 지자체인 서대문구청은 갖가지 사업으로 신촌에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부여해 보려 애쓰고 있지만 어딘지 겉도는 느낌으로 매번 단발성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신촌의 장소성 문제에 관해 여러 고민과 문제 제기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적 맥락에서, 신촌의 매력과 고유성을 그 건축적 특성과 지역의 역사성으로부터 찾는 이와타 씨의 시각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신선함이 있다.

2017년 7월 현재 서대문구청 산하 신촌도시재생지원센터 주민공모사업의 일환으로, 한 그룹의 청년들은 신촌의 장소성에 관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해 보는 잡지 형태의 출판 매체를 기획하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일원으로서, 이번 리뷰에서는 그 취재 과정에서 조사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들을 재료로 삼아 이와타 씨의 관점을 참고하여 글쓰기를 시도해 보기로 한다.

 

연세로13길 골목을 동쪽에서 본 모습. 오른편 옹벽 위로 경의선 선로가 지나가고 있고, 옹벽과 도로 사이 공간에 오래된 주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강병준, CC BY-NC 4.0

세 개의 시간

오늘날 신촌 지역 대학가에서는 크게 나누어 세 시기의 건축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이와타 씨는 지적한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시기의 건축은 연세로13길, 즉 연세대학교 정문 맞은편을 지나는 경의선 선로 바로 남쪽 면에 붙어 있는 작고 오래된 1층짜리 주택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집들은 건축물대장이 없어 정확한 건축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이곳에 오래 살아 온 주민들의 증언 등을 참고할 때 늦어도 1960년대 초에는 이미 집이 지어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이 지역에는 대규모의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와타 씨는 1945년 이후 북한, 일본, 만주 등에서 모여든 피난민과 이주민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이 집들을 지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지역은 원래 1930년대 말에 일제가 대규모 택지지구를 조성하려고 계획했었던 곳이다. "대현토지구획정리계획"으로 이름붙여진 이 사업이 당초 계획대로 완공이 되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설명이 엇갈리고 있다. 이와타 씨는 논문에서 "중일전쟁이 격화되면서 ... 진행이 지연"되어 결국 일제가 패방할 때까지도 완공되지 못한 탓에 이 일대가 공터로 남아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펴낸 조사자료집인 단행본 『신촌』에서는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2년에 이미 사업이 완공되었다고 적고 있다.

결국 이 집들이 언제 지어졌는가 하는 것은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을 듯하다. 어쩌면, 일제가 이 지역의 토지 구획을 정리한 1930년대 말~1940년대 초에 이미 이 집들이 지어져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한국전쟁 이후 이 지역에 형성됐던 무허가 판자촌의 일부가 남아 수리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철로가 지나는 옹벽과 골목 사이, 작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 이곳의 좁고 긴 부지는 본래 철도부지로서 주거지로 사용할 수는 없는 땅이다. 그러나 이곳에 이미 오래 살아 온 사람들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 서대문구청이 주택을 소유하고 지료를 받는 형태로 합법과 비합법의 중간 영역에서 주거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덕분에 이 집들은 개발의 손길을 피해 짧게는 50년, 길게는 8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한 채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젊음의 거리라는 이미지로 인식되어 있는 신촌이지만, 그런 신촌에서 가장 이질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 연세로13길 골목이다. 번화한 연세로 거리와 바로 맞붙어 있는 곳에 이같은 낡은 주택 골목이 존재한다는 이질감은, 신촌 지역의 시간적 복합성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 흥미로운 요소다.

1960년대 후반에 지어진, 지붕과 마당을 갖춘 주택. 강병준, CC BY-NC 4.0
1980년대 후반에 지어진 전형적인 신촌의 주상복합 건물들. 각 건물의 지하와 1~2층은 상업 공간, 3~4층은 주거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강병준, CC BY-NC 4.0

일제가 수립했던 택지 조성 계획은 박정희 정권기에 계승, 추진되었다. 이와타 씨는 1960년대 후반에 지어진 지붕과 마당을 갖춘 양옥집들이, 일제가 이 지역에 조성하려 했던 교외 주택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신촌 지역 건축 양식의 두 번째 시대를 형성하는 이 주택들은, 본래 개인 주거 목적으로 건축되었으나 신촌이 대학가로서 발전해감에 따라 점차 하숙 등의 형태로 학생들의 주거 수요를 수용하게 되었다.

주거만을 주된 목적으로 건축된 이같은 단독주택들은 오늘날 신촌 상권 서쪽 외곽에서 일부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1984년 지하철 2호선 신촌역 개통 이후 이 지역에 재건축 붐이 일면서, 신촌 중심 지역의 단독주택들은 대부분 헐리고 4층 정도 높이의 주상복합 형태의 건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오늘날 신촌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 상가 건물들이 세 번째 양식이다. 이후 민주화를 거치면서 1990년대 들어 대학생들의 관심사가 사회 운동에서 소비 문화로 이동하게 된 것 또한 이 일대의 풍경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이와타 씨는 해석하고 있다.

 

경의선 숲길공원. 옛 경의선에 쓰이던 철로가 보존되어 있고, 그 뒤로 소형 주택과 연립주택, 아파트가 차례로 보여 신촌 지역 건축의 시간적 복합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철도와 골목

신촌이라는 도시의 복합성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시간적 요소로 철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신촌 지역의 발달과 형성은 1917년 지금의 연세대학교 개교와 더불어 1920년 경의선 신촌역 개통을 그 시작점으로 볼 수 있다. 1908년 부설된 경의선은 원래 용산역을 기점으로 하여 지금의 서강대역, 홍대입구역을 지나 가좌역으로 이어지는 노선이 본선이었는데, 용산역은 당시 경성 시내에서 멀어 접근성이 떨어져 경성 시민들의 교통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켜줄 수 없었기 때문에 1920년 지금의 서울역을 기점으로 하여 신촌역을 지나는 노선이 신설되었다.

신촌역 노선은 신설되자마자 승객을 쓸어모으며 사실상 경의선의 본선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용산역을 기점으로 하는 노선은 용산선이라는 이름의 지선으로 격하되었다. 승객이 급감해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처한 용산선의 수요를 개발하기 위해, 일제는 신촌역과 서강대역 사이에 신촌연결선이라 불리는 짧은 반원형의 선로를 부설했다.

이로써 (지금의 역명 기준으로) 용산역-서울역-신촌역-서강대역-공덕역-효창공원앞역-용산역으로 이어지는 순환 선로가 구성되었고, 이 선로 위로 경성순환열차라는 이름의 열차편이 운행되었다. 이는 경성 서부 교외 지역의 교통 편의성을 대폭 증가시켜 많은 승객들에게 사랑받았고, 특히 연희전문학교와 이화전문학교 학생들의 통학 용도로 애용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세 선로의 운명은 무척 대조적인데, 신촌역을 지나는 경의선 지상 선로가 개통 후 1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 거의 모습에 변화 없이 본래 자리를 지키며 열차를 실어나르고 있는 반면, 용산선은 2000년대에 지하 복선전철화가 진행되면서 지상 선로는 철거되었고 경의선 숲길공원으로 조성되어 일부 선로와 역사 시설만이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신촌연결선은 1960년도에 폐선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다만 해방 직후 미군이 작성한 지도 등의 자료를 오늘날의 지도와 비교해 보면, 오늘날 신촌로9길과 신촌로10길이 거의 완전한 반원 형태를 그리고 있어 옛 신촌연결선 선로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촌로9길. 철도가 있었던 자리에 형성된 골목 특유의 좁은 길이 완만한 반원을 그리며 굽어져 있다. 강병준, CC BY-SA 4.0

오늘날 우리가 신촌으로 인식하는 지역의 범위를 살펴보면 사실상 경의선, 용산선, 신촌연결선이 존재했던 길이 각각 그 북쪽, 남쪽, 서쪽 경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신촌이라는 지역의 스토리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있어서 철도와 지역이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아 온 관계의 역사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것으로 보인다.

신촌 지역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여러 연구로부터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의아스러운 점 하나는, 하나같이 그 연구 대상 지역을 신촌로를 기준으로 북쪽, 즉 서대문구와 마포구 경계 북쪽으로만 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체로 신촌 지역의 중심이 서대문구 관할에 위치해 있어 신촌의 재활성화에 주로 이해 관계가 있는 서대문구의 지원 하에 연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닌지 짐작된다.

그러나 실제로 신촌이라는 지역의 범위가 서대문구 관내에만 한정될 수 없고, 신촌 지역 재생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문화적 고유성 역시 신촌로 남쪽 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으므로, 앞으로는 보다 넓은 의미의 신촌을 시야에 두는 연구가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존 신촌 상권의 주축으로 여겨진 연세로와 명물거리에서 벗어나 있는 골목과 주택가의 건축물들로부터도 이처럼 여러 흥미로운 역사적 스토리와 컨텐츠를 발견할 수 있는 데 비해, 그 동안의 신촌 상권 활성화의 정책이 거리와 골목 사이의 유기적 조화를 통한 고유의 장소성 형성을 도모하지 못하고 주로 연세로의 컨텐츠 개발에만 치중해 온 것은 아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읽어볼 만한 논문 :

김종헌, 「경의선 신촌역사의 변천 과정에 관한 연구」, 『한국철도학회 논문집』 10(5), 2007.12

최인영, 김제정, 「1930-40년대 경성지역 대중교통의 문제점과 대책」, 『서울학연구』 (50), 2013.2

강병준 리뷰어  iyyag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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