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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중심의 한국 원전 시스템의 역사핵무기 개발에서 산업 발전을 위한 에너지 개발까지
문지호 리뷰어 | 승인 2017.08.04 09:18

한국의 산업 발전에서 원자력 에너지의 공헌을 제외할 수 있을까? 원자력 발전을 통한 저렴한 전기 에너지 공급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발전이 가능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일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소가 도입될 당시 경제적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러 반대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평가는 의미 심장하다. 그렇다면 왜 원자력 에너지여야 했을까? 홍덕화의 논문 「발전국가와 원전사업의 형성: 한국전력공사 중심의 원전산업구조 형성 과정을 중심으로」 (『공간과사회』 , 26(1), 2016)에 따르면 현재 한전을 중심으로 유지, 개발되는 한국의 원자력 시스템의 형성 과정은 정부 부처 간, 정부 부처와 하위 기구 간, 정부와 대기업 간 이해관계의 각축장이었다. 

“원전산업의 발전과정을 성공적인 기술추격의 역사로 바라보는 논의들의 경우 정부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목표로 장기계획을 수립, 일관되게 지원한 것이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을 추진한 목적은 핵무기 개발 을 통한 안보 강화, 발전설비산업의 수출산업으로의 육성, 가격왜곡을 통한 수출 보조 등 중층적이었다.” (273쪽) 

“한국은 1970년대 원전을 건설하기 시작한 국가 중 예외적으로 기술추격에 성공하여 독자적인 원전 모델을 개발한 국가이다” (274쪽) 학자들은 이런 한국의 원전 역사를 “장기적인 전력수급계획과 기술개발계획을 수립하여 원전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중앙집권적인 국가의 조정 아래 한전의 주도로 기관별 역할 분담을 원활하게 한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결과라고 평가하였다. (275쪽) 그러나 본 논문의 저자는 원전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당시 원전이 도입될 당시의 사회적 조건을 간과하고 정부 계획은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이나 의도하지 않은 효과, 정책 실패에 대해서는 눈감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에 그는 원전 건설 계획이 드러난 1967년 경부터 한전의 자회사체제로 통합된 1984년까지의 기간 동안 “연구개발-설비제작-전력공급 부문 간의 경쟁과 타협 속에서 전력공기업집단이 주도하는 원전사업구조가 형성된 과정을 분석”한다. (273쪽)

 

석유위기와 안보위기로 시작된 원전 개발:
경쟁의 시작, 1967~1979년

석유 중심의 전력 공급 시스템은 1973년 말 발생한 1차 석유위기를 계기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정부는 유가상승으로 불안정한 기존의 석유 중심의 시스템을 타개하고 나날이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대비하고자 새로운 에너지정책을 추진한다. 이 때 초기 건설비, 막대한 고정자본투자금 때문에 추가 건설이 미뤄지던 원전이 새로운 대안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초반 안보위기는 정부가 원전을 새로운 에너지 정책의 핵심으로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정부는 주한미군이 감축됨에 따라 국가 차원에서 방위산업 육성을 장려하려 했고 이 계획의 일환으로 원전 연구를 통한 핵무기 개발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반대하고 나서자 한국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에너지 사용을 위한 원전 건설만을 지속하는 것처럼 발표하고 핵기술을 위한 연구는 비밀리에 추진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정부가 선택한 전략은 “신속핵선택전략”이었는데 이는 “평화적 이용을 명분으로 유사시 신속하게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전략”을 뜻하는 것으로 “공개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지 않되 잠재적인 핵무기 기술 개발 역량을 키우는 전략”이었다. (286쪽) 우선 산업 육성을 위한 원전 개발은 중화학공업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고, 정부는 국가안보를 위해 “원자력발전기술의 국산화와 핵연료 기술의 자립화” 주장하였다. 그리고 민감한 핵기술 개발은 원전산업육성계획의 곳곳에 비밀리에 포함되어 추진되었다.

한국은 앞서 기초 기반이 형성된 상태에서 원전을 추진했던 미국, 독일과 같은 국가들과 다르게 원전 개발의 시작부터 자본, 기술, 조직(연구개발부문, 설비제작부문, 전력공급부문) 등을 동시에 구성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기초 기반이 부재한 상태에서 여러 상황을 동시에 구성해야 하는 상황은 그만큼 관련 담당 부처 간에 갈등이 발생할 소지를 내재하고 있는 점이었다. 이는 원전 계획을 추진하는 기구가 제도적으로 분리되는 데서 오는 문제였는데 각 부문별로 전략이 중첩될 가능성과 누가 계획을 주도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가령 전력산업의 보조적 역할을 동력자원부와 한전이, 원자력 연구의 안보적 성격이 강화될수록 과학기술처와 원자력연구소의 영향력이 강해졌던 것이다. 

더구나 정부 주도의 원전 개발 발표로 인해 연구개발 중심지로 잠시 위상을 얻은 원자력연구소는 비밀리에 핵무기 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로 핵연료 관련 연구를 연구소로부터 분리시키며 내부적으로도 갈등이 발생했다. 결국 정부가 신속핵선택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내부 응집력을 강화하고 조직적 역량을 배양하는데 걸림돌이 된 것이다.” (290쪽) 이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체계적인 원전산업 육성을 위해 전력공급과 발전설비산업에 대한 지원을 모색한다. 이에 따라 한전과 원자력 연구소, 그리고 대기업 등이 진출 경쟁을 시작하며 원전 산업이 활기를 띄는 듯 했지만 핵무기 개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돌변하며 원전 계획은 전혀 새로운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한전을 중심으로
수직 통합 원전 시스템의 안정화, 1980~1984년

원자력연구소와 한전, 대기업들 간의 관계는 전두환 정권이 미국 정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비밀리에 추진한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후 급변한다. 원자력연구소는 한국에너지연구소로 통합 개편 되었고, 연구소의 비전을 잃은채 표류했다. 잠시 대덕공학센터의 3대 전략 사업 중 하나로 선택되어 핵연료 국산화 사업에 대한 정권의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미국의 방해에 막힐 수 밖에 없었다. 연구개발부문을 강점으로 원전개발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설계회사를 육성하려 한 노력 역시 한전이 전력산업 전반을 책임지는 설계엔지니어링회사를 지원하기로 결정하며 난항을 겪었다. 

한편 설비제작 부문에서는 정부와 대기업 간의 갈등이 계속되었다. 기업들의 무분별한 설비투자로 기업 간 경쟁은 심화되고 설비제작산업은 자연스레 자생력을 상실했다. 발전설비산업을 2원화시켜 투자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해당 대기업들의 반발로 저지되고, 현대그룹이 자동차 산업을 택하며 대우그룹으로 발전설비산업이 1원화 된 이후에는 정부의 예상을 넘어선 대우그룹 측의 지원 요청 요구 때문에 갈등이 계속되었다. 원전산업구조 개편을 통해 상공부와 대기업이 사업 물량을 확보하는 방안은 한전과 동력자원부가 그들의 영향력이 제한되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다. 정부는 설비제작부분의 자생력이 없는 현실에서 전력공급을 책임지는 한전의 강한 반발을 무시할 수 없었고 결국 대우그룹의 요구를 거부하고 공기업으로 전환시킨 한국중공업을 한전이 인수하게 하며 대기업이 원전 발전설비산업에서 철수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전이 한국중공업을 자회사로 인수하는 과정에서는 자본 유치를 비롯한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한전이 주도권을 쥐고 사업을 관리하되 한중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정리가 되었다. 원전 개발의 관점에서 한국중공업의 역할은 기기제작으로 한정된 대신 한전으로부터 “주계약자의 지위를 보장받고 기술개발비를 지원받았다.” (300쪽) 반면 한전은 한국중공업을 비롯한 원전사업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제 한전의 역할은 전력공급 뿐 아니라 한국중공업의 경영을 정상화시켜야 하는 등 산업보조의 역할까지 확장된 셈이다. 

 

“흥미로운 역설은 한전으로의 수직계열화 이후 원전의 추진력이 한층 강해졌다는 점이다. 비록 원전의 군사·안보적 가치는 심각하게 약화되었지만 수직계열화를 통해 산업보조와 산업육성의 목표가 조직적으로 통합되었다. 이로 인해 한전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원전 국산화·표준화를 추진해야할 유인이 생겼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으나 한전으로의 조직 적 통합이 이후 안정적으로 기술추격에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것이다… 이처럼 원전산업이 전력공기 업집단의 형태로 수직계열화되면서 국가의 사회기술적 구성 역량은 한 층 강화될 수 있었다.” (302-303쪽)

논문의 저자는 “발전국가의 산업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시구성적 상황에서 유래하는 개발 목표의 다층성과 제도적 복합체인 국가기구 안 에 내재된 갈등과 균열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한전으로 수직통합된 원전 산업의 형성은 개발 초기 “원전을 둘러싼 중측적인 개발 목표와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고려”해야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전을 정점으로 한 전력공기업집단과 원전산업구조는 계획의 산물이라기보다 계획 실패의 결과물에 가까”웠다. (302쪽) 다시 말해, 한국에서 원전 에너지의 개발은 필연적 선택이 아닌 당시 한국이 처해있던 사회적 조건과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상호작용이 만나 시작되었고, 오늘날의 결과물은 당초 계획한 목적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모습으로 나왔다 볼 수 있다. 

문지호 리뷰어  lunate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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