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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창제가 매춘과 성병을 줄일 수 있을까?제정 러시아 말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매춘과 공창제 분석을 통해
오제하 리뷰어 | 승인 2017.08.01 08:58

매춘은 줄곧 뜨거운 논란거리를 일으키곤 하는 문제다. 매춘을 허용해야 하느냐 아니냐(합법화, 불법화, 비범죄화 등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매춘을 과연 없앨 수(혹은 사회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매춘의 기원은 언제이며 매춘이 나타나는 핵심 이유는 무엇인가, 애초에 매춘 행위 자체를 자아실현을 위한 주체적 활동이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가 등…

필자가 보기에 매춘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또 다른 의문은, 매춘이 과연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다. 매춘은 한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 매춘이 존재하는 사회는 매춘을 통제한다. 매춘을 금지하진 않아도 매춘 행위나 그와 관련된 저변의 환경을 관리한다. 지배계급은 매춘을 통제하는데 실패하기도 하고,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 중 하나로 매춘을 활용하기도 한다.

기계형제정러시아 말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빈민층 여성과 성매매」(여성과역사 20, 2014.06, 63-96) 논문은 이를 잘 보여준다. 19세기 중반~말 봉건체제인 짜르의 러시아는 아래로부터의 불만과 자본주의적 시초축적이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짜르는 위로부터의 개혁 조처로 농노제를 폐지했지만 러시아 민중의 변화 열망을 충족시키진 못했으며,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적 대공업이 밀집된 도시들이 발전하고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이농현상이 일어나며 도시로 농민가정 출신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 대부분은 빈곤과 배고픔에 시달렸고, 주거환경이 좋지 않거나 거주지조차 얻지 못했으며 도시 빈민으로서 철저하게 버림받은 삶에 메이게 된다.

오랫동안 러시아에서 빈민은 “정신적, 도덕적,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지칭”하였고, “순례자이자 경험이 많은 인간으로서 자신이 지나다녔던 숱한 곳에서 경험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지치지 않는 이야기꾼으로서” 간주되었다(68p). 하지만 1861년 알렉산드르 2세가 농노제를 폐지하고 나서, 빈민과 가난에 대한 사회적 담론은 변화되기 시작했다. 가난한 농민 출신의 사람들이 대거 도시로 밀려들어와 도시 빈민이 되고, 그들의 비참한 모습들이 도시민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죄와 벌』 등에 나타나듯이, 어느새 가난은 죄악으로 규정되고 있었다.

 

제정 러시아 말기
매춘 여성

제정 러시아 말기 도시 빈민들의 상당수는 여성들이었다. “빈민의 남녀분포에 대한 경찰보고서에 따르면, 1882-1887년에 남자가 64%, 여자가 36%를 구성하였으며, 1910년에는 남자 79.8%, 여자 20.2%를 차지했다. 연령분포는 22세~55세가 65%를 차지”하였다. 남녀 임금 격차도 심각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전에 남성 산업노동자의 하루 평균임금이 1루블 20코페이카인데 비해 여성노동자는 45~85코페이카로 계산되었으며, 여성노동자가 대규모로 분포한 방직업의 경우에 남성노동자 70코페이카인 데 비해 여성노동자는 30~50코페이카를 받았다”(71p).

이미 17~18세기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매매춘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기록들이 나온다.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남성 노동력의 비율이 매우 높았으며 항구도시였다. 1800~1853년 사이 있는 몇몇 기록들을 보면, 여성인구의 비율은 30%대 근처에 계속 머물러 남녀 성비의 불균형을 보여준다(73p). 불균형한 남녀 성비는 1880~90년대 들어서면서 55:45(남:여) 정도로 균형을 찾기 시작하는데, 자본 축적의 동력이 여성들도 대거 도시로 끌어들였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성들의 처지가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여성들은 “언제라도 해고될 가능성이 많았으며, “추악한” 가난 의 상태에 빠져 값싼 방을 찾아 선술집을 드나들면서 결국 매춘의 올가미 에 걸려드는 것으로 비쳐졌다. 도시빈민의 큰 축을 차지하는 하층의 빈민층 여성들은 정부가 공창제도를 시행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사회적 통제의 대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76p).

1843년 차르 정부는 성매매를 규제하던 기존 입장에서 국가의 통제 하에 두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매춘으로 인해 빠르게 확산되던 성병의 확산을 막기 위함이었다. 차르 정부는 내무부 산하 “의료경찰위원회(В рачебно-полицейский комитет)”를 설치, 공창 운영을 감독헀다. 경찰이 매춘 여성들의 통행증을 가져갔으며, 매춘 여성들은 정기적으로 주기적으로 성병 검사를 받아야 했다.

공창의 여성들이 부여받았던 일명 '노란 딱지'(출처: http://myhistori.ru/blog/43471438640/Kiev---stolitsa-prostitutsii)

이러한 공창의 여성들은 “노란딱지(ж ёлтый билет)”를 받아 일명 “티켓 매춘부(Билетные девицы)”라 불렸는데, 통행증을 돌려 받을 가능성은 희박했다(당시 차르 정부는 사회 통제를 위해 자유로운 이동을 막고 통행증을 강요했는데, 가난한 여성들에게 통행증이 없다는 것은 매춘 외에 거의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점에서 공창제도의 도입은 매춘을 이들 여성들의 영속적인 직업으로 확정 짓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매춘이 합법화되면서, 공창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매춘과 매춘 여성들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의료계였다. 공창제가 도입되면서 매춘 여성들에 대한 검진과 성병 치료 등이 요구되었고, 이에 대한 전문 의학 지식의 심화가 요구되었다. 공창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희대의 화두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법학자들은 공창제 폐지를 주장했고, 의료계에도 공창 폐지론자들이 꽤 있었다.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들을 다룰 때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법의 적용이 달라지기 쉬웠고, 성매매 여성들이 그 일을 그만두고 싶어해도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매춘 여성의 전형은 이렇다. 24살~25살 정도에, 성병 경험이 수 차례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매춘 전까지 고용상태 그것도 하녀나 재단사로 고용되었던 경우가 많다. 대체로 가난과 빈곤 때문에 매춘을 시작했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주택 문제가 생기자, 거처가 없는 여성들도 선술집 등에서 묵으며 매춘을 하거나 의료경찰위원회의 눈에 걸려 공창에 가게 되곤 했다.

매춘에 대한 규제에는 성매매 여성의 나이 규정, 화대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등도 명시되어 있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16살 이하의 여성은 유곽에 들어올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20대 중반의 매춘 여성들 중에는 이미 10년 넘게 매춘을 하고 있는 여성들도 있었다. 화대도 포주들이 3/4을 가져가고 나머지 1/4을 매춘 여성이 챙기는 식이었다. 포주들은 여성들을 노예처럼 다뤘다. 화장품 등 치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도 포주가 3배 이상 가격을 불렀다. 매춘 여성은 결국 빚에 시달려 매춘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 어떤 공창의 매춘 여성들은 하루에 50명의 남성을 상대해야 했다. 화대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매춘 여성이 알코올 중독에 빠지곤 했는데, 포주와 기둥서방들이 이를 더욱 부추겼다.

논문에는 당대 매춘 여성들의 끔찍한 현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여성들이 매춘 여성이 되는 (어이없는) 과정들에 대해서도 묘사되는데, 여기 한 가지만 소개해보겠다. 농촌에서 올라온 가난한 여성이 여관에 묵게 되면, 여관의 기둥서방들이 이 여성 숙박객의 통행증을 훔친다. 경찰은 곧 이 여성을 체포하고는 성매매 여성으로 규정해버린다. 그리고 그 여성은 곧 매음굴에 쳐넣어지는 식이다. 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비정한 체제인가?

 

매춘 통제에 실패한
짜르 정부

한편 필자는 “정부의 설명에 따르자면 성매매 여성들을 등록하여 고립시키고 악행을 절멸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나온 공창제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성병은 줄어들기 보다는 확대일로에 있었고 매춘여성의 숫자도 증가했다”고 정리한다.

19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비밀 매춘이 증가한다. 비밀 매춘은 ‘무기명 매춘부(бланковые девицы)’ 또는 ‘단독 매춘부(проститутки-одиночкиа)’ 등으로 불렸다. 차르가 공창제를 공식화했음에도, 비밀 매춘이 증가했다는 것은 사실상 매춘 통제에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단독 매춘부로 불리던 사람들은 대체로 지속적인 은신처를 갖지 못했고, 선술집 등을 전전하며 병사, 뜨내기 등에게 병을 퍼뜨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공창의 매춘 여성들보다 더 위생적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양상에 더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폭발적인 인구증가는 매춘을 훨씬 더 복잡하고 통제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실제 비밀 매춘 등 매춘을 하던 여성들의 수는 의료경찰위원회가 계산한 매춘 여성의 수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매우 은밀하게 행해지는 아동 매춘 등 당시 러시아의 매춘은 워낙 음성화되어 있었기에, 정부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는 매춘 여성의 비중이 매우 컸던 것이다. “‘의료경찰위원회’의 계산에 따르면 1914년에 등록하지 않고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을 804명이라고 쓰고 있는데, ‘제1차 여성 매춘 반대투쟁대회’에 따르면 약 4만 명 정도로 추산되었다”(86p).  

의료경찰위원회는 성병을 통제하기 위해 끊임없이 매춘을 통제하려 했지만, 매춘 여성은 계속해서 증가했고 특히 비밀 매춘의 비중이 계속 늘어났다. 매춘 여성 중 성병 환자의 비중도 1910년 50%대에서 1914년 76%대로 늘어났다.

19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비밀 매춘이 성행. 공창 반대 운동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순 없지만, 분명 공창이 없어지면서 비밀 매춘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공창이 없어진 데는 공창 폐지 여론이 커졌던 영향이 컸다.

짜르 체제는 공창을 통해 매춘 통제하려 했으나 결국 매춘 통제에 실패한 것. 이는 짜르 체제의 통제력 상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논문의 필자는 그게 바로 매춘 여성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메타포(metaphor)”라 말한다. 이외에도, 필자는 수도에 일자리를 구하러 온 여성들에게 집과 안식처를 제공하거나 공창제 폐지운동을 벌인 여성활동가들에 대해서도 이 논문의 각주 등을 통해 간단히 소개하며, 후속 논문에서 이에 대해 상술할 것임을 밝힌다.

리뷰어는 공창이 준 것과 비밀 매춘이 증가한 것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지 궁금증이 있었다. 리뷰어가 보기에는, 이 부분이 공창제를 통해 매춘의 여러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이 착각임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 공창제는 말 그대로 국가가 매춘을 통제하는 것이기에, 앞에 서술했듯 매춘 여성들은 국가에 등록되는 셈이다. 또한 여기에 등록되지 않은 매춘 여성들은 사실상 모두 불법 매춘으로 간주되는 것이기도 하다.

매춘 여성들 중 매춘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매춘 여성들 다수가 국가의 통제를 정말 반길까? 공창제 시행 이후 비밀 매춘과 성병이 오히려 증가한 것은 공창제가 매춘을 통제하지도, 매춘여성들이 겪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지도 못함을 잘 보여준다. 성매매 여성들이 겪는 여러 끔찍한 문제들과 성매매에 대한 문제의식을 섬세하게 발전시키고 싶다면, 리뷰어는 이 논문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같이 읽으면 좋은 논문

이규식, 1993, 「제정러시아의 빈민굴 -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그를 중심으로」 , 「러시아 연구」. 제3권, pp.121-151

Engelstein, Laura, 1988, 「Gender and the Juridical Subject: Prostitution and Rape in Nineteenth-Century Russian Criminal Codes」, Journal of Modern History 60, pp. 458-495.,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이성숙, 2009, 『여성, 섹슈얼리티, 국가』, 책세상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외, 2015,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 책갈피

오제하 리뷰어  super_boy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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