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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의 진정성을 복구하여 삶을 추동하기김수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던졌던 파장
한채윤 리뷰어 | 승인 2017.08.01 08:54

우리에게는 다소 흥미로운 문화적 인식이 있다. 남녀노소 TV 드라마를 좋아하고 즐겨 보면서도, 드라마 시청에 있어서는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문화생활’의 범주에 드라마가 포함되는 경우는 드물고, 고상한 취미활동으로서 드라마 시청이 언급되는 경우 또한 희귀하다. 드라마는 너무나 우리와 가까이 있고, 상업적으로 소비되며, 모두의 입에 쉽게 오르내리는 가십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막장’이라는 단어가 드라마에 붙더라도 우리는 크게 괘념치 않는다. 막장 소설이나 막장 시가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대중 문화’를 넘어서 이미 ‘대중 오락’이 되어 버린 것 같은 이 친근한 장르에서 본질이나 정체성 같은 것을 찾아낸다면, 그래서 장르 특유의 영향력으로 대중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어떨까?

1968년 MBC 라디오드라마로 데뷔한 이후 홈드라마와 멜로드라마를 오가며 그만의 작가적 정체성을 뚜렷이 나타내어 온 김수현 작가는, 아마도 이러한 질문을 오래도록 해온 것 같다. 그의 작품은 독특한 언어적 묘미와 이야기의 내적 합리성으로 인해 들마로서는 드물게 학문적으로 연구되기도 했다. 최상민(전남대)「대중의 욕망과 드라마적 재현 : 김수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중심으로」(「드라마연구」 제36호, 2012년 2월)에서, ‘대중적 이슈를 선점’하고 ‘사회 문화적인 의제를 설정’하는 그의 능력에 주목하며, 그것은 김수현 본인의 ‘작가적 진정성’에서 기인함을 밝힌다.

 

‘언어’가 아니라 ‘사태’
재현의 진정성을 복구하기

최상민은 이때의 ‘진정성’이란 “현실의 생생한 단면을 진실 되게 재현할 수 있는 예술가의 성실하고 진솔한 시각이나 태도, 그리고 그러한 작품의 특성”(204쪽)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작가 김수현 하면 으레 떠올리곤 하는 ‘언어의 연금술사’와 같은 한정된 수식어를 넘어서는 특성임을 밝힌다. 언어 그 자체로서의 묘미도 물론 드라마에서 중요한 지점이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사태(Cose e non parole)”(206쪽)라는 것이다. 최상민은 김수현 작품에서의 진정성을 언어에서 찾는데, 그때의 ‘언어’는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품위를 잃지 않는 김수현식 수사법에 한정되는 ‘언어’가 아니다. 그때의 언어란 “구어적 진정성”(207쪽)을 담은 언어이며, 그 언어는 언어 그 자체에 천착하기보다 언어가 가리키는 진실된 삶을 복구한다. 곧 “재현의 진정성을 복구”(206쪽)하는 언어가 김수현표 드라마의 변별점이 된다는 뜻이다.

민재 – (멈추고 보며) 무슨 남자가 이래… 한번 결정했으면 끝이지 아냐?

병태 – 그래 맞어어어…
민재 – 그런데 왜 축 늘어져 그러냐구.
병태 – 몰라… 기운이 빠지네… 기운이 빠져…
민재 - 다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래… 그 거죽으로만 받아들여서
(<인생은 아름다워> 22회)

김수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2010, SBS)는 제주도 펜션집 대가족이 동성애자인 아들 태섭을 수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여, 은폐되어 왔던 소수자의 아픔을 대중매체로 끌어올려 사회적 담론의 장을 열어젖혔다. 그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위와 같은 대사들이지 않았을까. 동성애자인 아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지만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 병태의 모습은 아내인 민재의 대사로 설명되고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민재는 김수현 작가의 페르소나로 느껴지기도 한다. 김수현은 문제를 회피하는 식으로 내용 없이 작품 회차만 늘리거나 다소 비현실적일 정도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버리는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설득하고 자기를 이해시킨다. 이와 같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반응하는 심리표현들, 사건에 반응하는 등장인물의 심리적 정서적 반응들”(211쪽)은 ‘사태로서의 언어’의 핵심을 보여준다. 단순한 말놀이가 아닌, 현실세계에 발을 딛고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진실한 순간의 필연적인 언어들을, 김수현은 적절히 구사해나가는 것이다.

 

‘유기적 지식인’으로서의 작가 김수현
이슈의 선점과 사회・ 문화적 의제 설정

사진 출처 :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공식 홈페이지

<인생은 아름다워>의 핵심 주제는 동성애자라는 태섭의 비밀에 있다. 그러나 그 비밀이란 것은 비밀로서 은폐되기보다 오히려 극 초반부부터 드러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추동해간다. 최상민은 <인생은 아름다워>가 TV 드라마의 일반적인 전개 방식인 ‘두껍게 묘사하기’, 즉 ‘서사의 은폐’나 ‘지연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동성애를 그저 드라마적 흥미 소재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함을 밝히며, 그것은 김수현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식인 한편, 그렇게 나타나는 작가적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문화적 의제’가 설정된다고 말한다. 작가 김수현이 시도하는 현실세계에 대한 진솔한 재현은 TV 앞에 앉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들을 자꾸만 던져 놓는 것이다.

김수현이 재현하는 극적 상황은 두 가지로 나뉜다. ‘가족관계에서 발견되는 극적 상황’(홈드라마 장르)과 ‘정념을 바탕으로 맺어지는 남녀관계의 맥락’(멜로드라마 장르)이 그것이다. 최상민은 작가 김수현이 각각의 장르의 기본 문법에 머무르기보다도 끊임없이 ‘반복과 변주’를 하여 “대중의 드라마적 욕망을 조직하고 드러낸다”(212쪽)는 점을 강조한다. 김수현의 드라마는 “새로운 고부관계설정, 불륜에 대한 독특한 시선,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독립적인 자아감을 중시하는 어머니상, 남성 동성애의 표현”(203쪽) 등을통해 ‘대중적인 욕망’을 ‘드라마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이다. 최상민은 김수현의 이러한 말하기 방식을 통하여 고유한 ‘김수현표 드라마’가 자리잡은 것이며, 그렇게 차별화된 서사를 갖춘 드라마 양식은 그람시가 말하는 ‘유기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마저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기적 지식인이란 “그들 스스로가 특정 계층이나 계급을 형성하기보다, 어느 다른 특정계층이나 계급에 대해 지도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 그 계급의 방향을 제시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리담론의 ‘실천적 지식인’”(214쪽)을 의미한다. 만약 그들이 주류 헤게모니에 반대하는 대항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있다면, 그들은 “담론 형성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이슈를 선점하고 선도적으로 의제를 설정’해 가기 위해 노력해야”(214쪽) 하는데, 최상민이 말하길 김수현 드라마에 역시 그러한 “이슈의 선점과 사회・ 문화적 의제 설정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김수현 드라마가 갖는 특징으로 확인되는 ‘이슈의 선점과 사회・ 문화적 의제 설정능력은 유기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확인케 하는 것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수현의 작가적 지위를 구축하는 데 출발점이 된 것으로 평가되는 <새엄마>(1972-1973, MBC)는 재취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뒤바꾸는 데 일조한 드라마로 평가되고 있다. (중략) 김수현 작가의 비교적 최근작들에서도 이런 점은 흔히 발견된다. <내 남자의 여자>(2007, SBS), <엄마가 뿔났다>(2008, KBS), <인생은 아름다워>(2010, SBS), <천일의 약속>(2011, SBS) 등이 그런 사례이다. <내 남자...>에서는 가장의 불륜을 겪는 부부 갈등과 그 과정에서 주목하게 되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자기성찰의 문제’를, <인생은...>에서는 ‘동성애’ 문제를, <엄마가...>에서는 평범한 가정주부의 ‘자아찾기’ 내지는 ‘태업’이 갖는 의미를, <천일의...>에서는 젊은 여성을 통한 ‘치매’의 문제 등을 지적한다.” (214-215쪽)

특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이성애를 중심으로 작동되는 사회문화적 담론의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최상민은 90년대 중반 이후 TV 드라마에서 동성애 문제가 다루어지기는 했으나 이렇게 중심 소재로서, 그리고 사회・문화적 의제의 제기로서 동성애가 전면에 내세워진 것은 드문 일임을 지적한다. 실제로 <인생은 아름다워>가 일으켰던 사회적 반향은 꽤나 큰 것이었다. 동성애 커플의 사랑도 이성애 커플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진실되게 그려낸 이 드라마는 ‘참교육어머니 전국모임’ 등의 비난광고를 불러오기도 했고, 종교단체와의 갈등을 빚기도 했다. 요컨대 작가 김수현은 동성애라는 민감한 이슈를 선점하여 “지배집단의 대리담론과 대항담론 간의 헤게모니 투쟁”(219쪽)을 선도했던 것이다.

 

이상과 한계
오늘 김수현을 말한다는 것

마침내 동성애자 태섭은 이 가정 안에서나마 그 존재 자체를 오롯이 인정 받는다. 동성애자인 아들이지만 그가 동성애를 고백했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가 변화하지 않았음에, 여전히 그들의 아들임에, 태섭의 가족들은 그를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전히 세상과 싸워야만 하는 태섭이지만, 가장 가까운 세상이 변화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그러한 아름다운 결론은 김수현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드라마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었을 테다.

“우리들 드라마 작가들이 천착해야 할 것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고전이라고 하는 작품들이 고전으로 남아 있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것은 본질에 대한 탐구였기에 두고두고 고전으로 남아 있습니다.”
- 한국방송작가협회, 『드라마 아카데미』, 펜타그램, 2005, 31쪽 (김수현 작가의 말)

김수현은 ‘드라마니까’라는 말에 저항하기를 주문한다. 그것은 곧 “드라마는 다 쓰레기야”라는 말로 해석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드라마란 “인간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혹은 유쾌하게, 혹은 아름답게 그려 내서, 보는 이들에게 휴식과 기쁨 혹은 감동을 주면서, 그들이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유도하고 활력을 주는 작업"(한국방송작가협회, 같은 책, 27쪽)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김수현은 정말로, 문학의 언어가 그 ‘표현의 유기성’을 통하여 “언어적 표현의 대상이 지닌 세계 자체의 내적 질서를 부활”(최상민, 206쪽)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현실 세계에 대한 성실한 재현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그려내는 방식으로 시청자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작가 김수현이 품어온 드라마의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수현의 이상은 오늘날에 와서 더욱 실현되기 어려운 양상을 띠고 있다. 김수현의 가족주의는 이제는 예전의 주류담론에 대한 대리담론으로서 오늘날의 주류담론과 대항하는 느낌마저 갖고 있는 것이다. 작가 자신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말했듯이, 그가 이제 ‘꼰대’ 계열에 속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작가 김수현은 주류담론에 대한 대항담론자인 동시에 대리담론자인데, 최상민이 말했듯 “가족 중심주의 서사는 작가 김수현의 담론 대리인으로서의 모습을 증거하는 것”(최상민, 219쪽)이다. 실제로 김수현의 홈드라마는 핵가족화를 넘어 1인가정이 자연스러워진 우리 시대에 맞지 않는 대가족 서사를 고수하여 대중의 공감을 잃고 있는 부분도 있다. 최근에 반영된 <그래, 그런거야>(2016, SBS)가 바로 그런 예일 테다. 기존 60부작으로 기획된 드라마를 54회에 조기종영하게 된 데에, 혹자는 ‘김수현 월드의 균열’이라고까지 이야기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래, 그런거야’ 조기종영, 균열 간 ‘김수현 월드’” - 텐아시아 조현주 기사) 그럼에도 지금 김수현을 말하는 것은, 드라마계에 김수현이라는 무게중심이 있어주어 다행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많은 작가들은 그의 작품을 되짚어가며 작가적 소명을 되새길 것이다. 그들이 밝혀낼 삶의 진실이, 던져줄 물음들이, 지금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며 괴로워하고 있는 수많은 태섭들을 조용히 응원해주리라 믿고 싶다.

한채윤 리뷰어  oisiiworl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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